지하철 열차 안. 전광판 광고가 눈길을 끈다. “Your roommate wants you to get a job, 너의 룸메이트는 네가 직업을 갖기를 원한다.” 불철주야 소시민으로 열심히 일하는 친구와 같은 방을 쓰면서 어영부영 허송세월을 보내지 말라는 충고. 부드럽고 간접적인 말투다.
옛날 세계대전 때 성조기를 연상시키는 키 높은 모자를 쓰고 미정부, ‘Uncle Sam’을 대변하는 노인이 당신을 손가락질하며, “I want you for U. S. Army, 나는 너를 미국 군인이기를 원한다.” 하던 위압적인 포스터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거세고 직설적인 화법과 에둘러 말하는 부드러움이 분위기가 이렇게 서로 다르다. 당신과 나의 감각기능은 미약한 자극으로 큰 감성의 파문을 일으키지 않는다. 음악 용어로 전자가 ‘forte, 강하게’라면 후자는 ‘piano, 여리게’에 해당된다.
“rejection is hot, 거절은 뜨겁다.(섹시하다?)”라는 문구가 열차 출입구 도어 바로 위에 붙박이로 쓰여 있다. 일부러 대문자를 쓰지 않은 것으로 보아 강압적 인상을 피하려 애쓴 흔적이 보이지만 얼른 듣기에 아주 센 발언이다. 주의를 확 끈다.
‘irl’라는 새로운 말도 배운다. ‘in real life’의 약자.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인터넷 스페이스는 비현실이지만, ‘현실’에서 사람을 만나보는 것이 ‘진짜’라는 말. 시쳇말로 ‘찐’ 이라 불리지. 찐은 진짜라는 인터넷 은어.
인터넷에서 대화를 나누고 잘 다듬어진 사진을 주고받다가 실제로 서로 만나봤는데 뭔지 상대 마음에 들지 못해서 퇴짜(rejection)를 맞을 수 있다. 그렇다고 인생을 비관하지 않는다. 그 대신 단숨에 거절할 수 있는 상대의 견고한 바운더리 컨셉과 주관성이 괜찮게 느껴진다. 포스트모더니즘식 용감한 사고방식이 뜨겁다.
‘Gallantry wins the heart, 용감한 자가 (귀부인)의 환심을 얻는다’라는 중세기 무사도에서 비롯된 금언이 있다. 현시대에 적용해서 풀이하면, 패배나 거절을 두려워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받아들여 역경을 돌파하는 용감한 남녀가 상대의 마음을 획득한다는 좋은 가이드라인이다.
‘reject’는 묘한 뉘앙스를 풍기는 단어다. ‘re’는 ‘다시’, 그리고 ‘ject’는 ‘던지다’, 라는 뜻이니까 ‘reject’는 ‘다시 던지다’라는 의미다. 한쪽이 다른 쪽을 거절하는 장면은 둘 사이에 처음 터지는 일인데 뭐가 ‘다시’라는 말인지 잘 모르겠다.
다시 던지다니.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는 사연인가. 상대방이 먼저 내게 무의식적으로 발사한 혐오감 아우라를 나 또한 부지부식간 다시 되돌려준다는 뜻인가. 일종의 부메랑 효과? 자업자득?
‘project, 투사하다’, ‘eject, 쫓아내다’, ‘inject, 주사 놓다’, ‘deject, 기를 꺾다’ 같은 단어에서도 에너지의 방출이 느껴진다. 에너지는 늘 던져지는 법. 심리적으로 가장 상처받기 쉬운 에너지는 ‘reject’. 그런 참담한 상황이 섹시하다니.
니체의 말을 곱씹는다. “What does not kill me makes me stronger, 죽지 않으면 나는 더 강해진다.”(1888) 데이트 서비스 회사의 현대판 명언 ‘rejection is hot’에도 좌절에 굴하지 않는 도전의식의 긴장감이 발휘하는 신비로움이 있다. 결코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이 신의 축복을 기다리고 있는 요즘 지구촌의 기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