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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업] 윈스턴 처칠이 그럴 리가

Los Angeles

2026.02.18 18:17 2026.02.18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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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잔 정 / 소아정신과 전문의

수잔 정 / 소아정신과 전문의

2차 세계대전을 승리고 이끌고 그 후 국제 질서 구축에 이바지한 윈스턴 처칠은 ‘2차 세계대전’이라는 책으로 노벨 문학상까지 받았다. 그런 그가 ‘재발성 우울증’이라는 정신 질환으로 고생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의 우울 증상은 20대 초반에 시작됐지만 다행히 60대, 즉 2차 대전 당시에는 증상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학자들은 현재의 진단 기준에 따르면 그는 제2형 조울증에 해당한다고 본다. 그의 아버지 랜돌프 처칠은 성(sex)에 집작했고 조증과 정신증 증상을 보였다. 또 윈스턴 처칠의 딸은 약물 과다 복용으로 극단적 선택을 했고, 사촌 한 명도 심한 우울증을 앓았다.  
 
어쨌든 심각한 우울증을 극복한 그의 도전 정신과 긍정적 마음은 조울증으로 고생하는 많은 환자와 가족들에게 희망의 상징이 되고 있다.  
 
이는 ‘조울증의 거의 모든 것’이라는 책에 담긴 내용이다. 이 책은 윈스턴 처칠 외에도 조울증(일명 양극성 질환)이 있는 유명인들을 소개하고 있다. 책을 펴낸 이들은 2005년 한국에서 37명의 정신과 교수 및 전문인들이 결성한 ‘바이폴라 포럼’ 소속이다. 2015년 ‘조울증과의 여행’에 이어 두 번 째 출간이다.  
 
책은 조증이나 경조증, 그리고 심각한 우울증세가 있지만 뛰어난 창조성과 위기 극복 능력을 보여준 유명인들의 예를 잘 설명하고 있다.  
 
 미국정신건강국( NIMH) 발표에 따르면 양극성 질환의 올바른 진단에는 시간이 걸린다. 많은 조울증 환자가 심각한 우울 증상이 있는 시기에만 전문의를 찾는데, 이 때의 우울 증상은 주요 우울증(Major Depressive Disorder)에서 오는 우울 증상과 아주 비슷하기 때문에 오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여성 환자는 주요 우울증으로, 남성 환자는 조현병으로 오진하기 쉽다고 한다. 물론 이런 경우 가족이나, 친구가 동행해 과거 경조증이나 조증이 있었거나, 극단적 선택을 한 친척이 있다는 등의 중요 정보를 주면 조울증의 정확한 진단이 가능하다.  
 
필자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수잔 정 마음 건강 열린 상담실’에는 한국에서의 문의도 많다. 그런데 한국의 환자들을 보면 비교적 빠른 시기에 진단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마도 37명의 정신과 전문의들이 조울증에 대해 20여년간 축적한 연구 결과 덕분이 아닌지 생각해 본다. 이에 반해 정신과에 대한 한국인의 상식이나 지식수준은 아직 낮은 듯하다.  
 
조울증은 두뇌의 화학 물질 불균형과 관계된 장기의 병이다. 마치 췌장에서 인슐린이라는 화학 물질에 문제가 생겨 당뇨병이 생기는 것과 비슷하다.  
 
담당 의사가 아무리 약물치료의 중요성을 강조해도 환자의 가족이나 지인들은 ‘단약’을 들먹인다. 약물 복용 중단을 단약이라고 한다는데, 필자는 의과대학 시절이나, 인턴, 레지던트 수련을 받는 동안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이상한 단어다.  
 
당뇨병을 예로 들면 혈장 내 당분의 숫자가 100 이하로 내려가면, 우리는 일단 안심한다. 인슐린이나 다른 약품을 일단 보류하고 음식과 스트레스 조절, 운동 등에 집중한다.  
 
그러나 갑자기 교통사고가 났거나 수술을 받아야 한다면 당장 인슐린이 필요하다. 젊은 여성이 임신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즉, 당뇨병은 조절해가면서 살아야 하고 언제라도 필요하면 약을 사용해야 하는 생물학적 문제다.
 
두뇌의 뇌전파 물질인 도파민, 세로토닌,노어에피네프린 등의 문제 때문에 생기는 조울증이나 조현병도 생물학적 치료가 필요하다. 두뇌 안에서 일어나는 전기 현상에 문제가 생기면 뇌전증이 온다. 최근 뇌전증을 치료하는 항경련제들이 많이 개발돼 이제는 이 병을 가진 환자도 약물치료로 2년간 발작이 없으면 운전이 허용된다. 신경세포끼리 정보를 전해주려면 우선  수상 돌기에 전기가 생겨서 시냅스로 가고, 거기에 도달하면 전기는 뇌전파 물질인 화학물로 바뀌어서 전해진다. 이때 문제가 생기면 조울증 증상이 올 수 있다. 그래서 이런 경우에 정서 안정제인 리튬이나, 항경련제 또는 항정신제를 쓰는 것이다. 이들 약물은 발병 시 치료제로 효과가 증명된 것이다. 그리고 급한 증상이 치료된 이후에는 재발 방지를 위해 소량을 계속 사용하도록 권고된다. 이를 유지 치료라고 부른다.

수잔 정 / 소아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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