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심리학의 거장 ‘로버트 치알디니’는 인간의 행동을 결정하는 중요한 원칙 중 하나로 ‘사회적 증거의 법칙’을 꼽습니다. 무엇이 옳은지 결정하기 위해 우리가 사용하는 방법 중 하나는,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옳다고 생각하는지 살펴보는 본능입니다. 이 본능은 때로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거대한 함정이 되어 우리를 벼랑 끝으로 몰아넣기도 합니다. 1820년 프랑스 파리의 오페라 극장에는 기이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등장했습니다. 소통(Sauton)과 포르셰(Porcher)라는 인물들은 '공연 성공 보장'을 내걸고 전문적인 박수부대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이 풍습은 이태리로 넘어가 더욱 정교해졌는데, 당시 이태리 오페라 극장에서 광고한 서비스 요금표는 놀라울 정도로 구체적이었습니다. 입장 시 박수(남) 25리라, 입장 시 박수(여) 15리라, 평범한 박수 10리라, 눈에 띄는 박수 15리라, 활기찬 박수 17리라, ‘와와’, ‘브라보’ 등의 목소리 첨가 5리라, 2회 반복 50리라, 열렬한 환호는 특별한 가격을 받았습니다. 리라(Lira)는 당시 이태리의 화폐 단위로, 노동자의 하루 일당이 5리라 정도였음을 감안하면 상당한 고액이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관객들이 그것이 돈에 매수된 가짜 박수임을 알면서도, 옆에서 누군가 박수를 치면 자신도 모르게 “아, 이 공연은 훌륭하구나!”라고 착각하며 덩달아 손뼉을 쳤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회적 증거’의 함정입니다. 타인의 소리가 내 주관을 지배해 버리는 순간입니다.
우리는 흔히 다수가 가는 길을 안전하다고 믿습니다. 마케팅 용어인 ‘밴드왜건 효과(Bandwagon effect)’는 서부 개척 시대에 악대차를 선두에 세우고 역마차들이 금광을 찾아 나섰다는 소문에 맹목적으로 추종했던 현상에서 유래했습니다. 하지만 그 끝이 모두 금광이었을까요? 아닙니다. 근거 없는 헛소문인 ‘풍설(風說)’에 휩쓸려 패가망신한 이들이 부지기수였습니다.심리학자 ‘솔로몬 아쉬(Solomon Asch)’의 ‘선분 실험’은 인간이 얼마나 군중심리에 취약한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명백히 길이가 다른 선분을 두고, 앞선 7명의 공모자가 틀린 답을 말하자 피실험자의 75%가 자기 눈에 보이는 진실을 버리고 다수의 오답을 선택했습니다. 다수의 압박이 개인의 눈과 이성을 멀게 한 것입니다. 성경 출애굽기 23장 2절은 우리에게 엄중히 경고합니다. “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지 말며.” 성경은 이미 인간이 ‘남들도 다 하는데 뭐 어때’라는 ‘방관자 효과’에 빠지기 쉬운 존재임을 꿰뚫어보고 계셨습니다. 다수의 박수소리가 들리는 곳이 항상 진리의 길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바람이 부는 대로 머리를 돌리는 풍향계인가, 아니면 어떤 폭풍우 속에서도 북쪽을 가리키는 나침반인가?” 자석 주위에 철가루를 뿌리면 모두 자석의 힘에 이끌려 같은 방향으로 정렬됩니다. 그러나 나침반은 주위의 철가루가 어떻게 변하든, 주변에서 어떤 박수소리가 들리든 오직 ‘북극(하나님)’만을 가리킵니다. 진정한 인격(Integrity)이란 남들이 보지 않을 때나 남들이 다 아니라고 할 때도 변함없이 옳은 가치를 지향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7장에서 우리를 ‘좁은 문’으로 초대하십니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길이 넓어 찾는 이가 많습니다. 그곳엔 세상의 화려한 박수부대가 가득하고, 밴드왜건의 악단 소리가 고막을 즐겁게 합니다. 반면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습니다. 아무도 박수 쳐 주지 않고 고독하며 불확실해 보입니다. 세상은 오늘도 우리에게 끊임없이 가짜 박수소리를 들려줍니다. “이것이 유행이다!”, “이렇게 살아야 성공한다!”, “남들도 다 이렇게 산다!”며 우리를 넓은 길로 유혹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트렌드 팔로워(Trend-follower)’가 아니라 ‘지저스 팔로워(Jesus-follower)’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세상의 가짜 박수보다 더 확실한 증거가 있습니다. 히브리서 12장 1절은 우리를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다고 말합니다. 신앙의 선배들, 진리를 위해 좁은 길을 걸었던 그들이 하늘의 관중석에서 우리를 응원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조작된 박수부대가 주는 안락함에서 이제는 걸어 나옵시다. 비록 그 길이 좁고 외로울지라도, 그 끝에는 세상의 어떤 ‘브라보’보다 값진 주님의 음성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우리의 영혼을 그 진짜 칭찬에 맡기는 나침반 같은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