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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불 아래서] 사과와 회개

Los Angeles

2026.03.09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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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방송에서 고위직에 있는 이들이 자신의 행동에 대해 ‘유감(遺憾)’이라고 말하는 때가 있다. 이 말은 때로 사과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사과를 피하는 기술이 되기도 한다.
 
이 말을 한자로 풀어 보면 “섭섭하다”는 의미가 되니,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거나 사과하는 말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피해를 입은 사람이 하는 말에 어울린다. 그러니 “유감이 정말 유감이다”라는 말도 심심찮게 쓰이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 말은 정치권은 물론 대중에게까지 들어와 자존심을 지키는 사과 방식으로 쓰이곤 한다. 이런 경우 “사과까지는 아니다”라는 말이 되니, 아픈 사람을 두 번 아프게 하는 말이 될 수 있다.
 
이런 말을 쉽게 받아들이는 데는 우리가 쓰는 사과의 표현들도 한몫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미안하다”는 말은 이 일로 내 마음이 편치 않다는 뜻이다. “면목이 없다”는 내 얼굴을 들 수 없다는 것이고, “죄송하다”도 잘못으로 내가 두렵다는 말이다. 대부분 자신의 마음과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는 사과의 목적이 상대의 감정이나 책임 소재보다는 나와 사회의 관계 회복에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문화인류학자 와가쓰마와 법학자 로셋이 분석하듯, 사과가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기보다는 주로 사회적 윤활유로 쓰이는 경우에 해당된다.  
 
사회적 윤활유로서의 사과는 사회적으로는 의미가 있겠지만, 교회가 이런 사과를 경건으로 생각하는 것은 문제다. “잘못했다”, 혹은 “사과한다”고 말하더라도, 마치 이것이 자신의 희생으로 교회를 지키는 것처럼 보이는 ‘교회적 윤활유로서의 사과’는 말씀 앞에서는 충분할 수 없다.
 
이는 성도들의 아픔을 공감하고, 진정한 책임이 어디에 있는가를 보여 주지 못하는 것이다. 세상에서는 자신이 맡았던 자리를 내려놓는 것이 사죄가 될 수 있지만, 교회는 도둑이 도둑질을 그만둔 것이 사과의 다가 아니다. 성경은 그 손으로 일하여 다른 이들에게 선을 베풀라고 말한다. 이것이 참된 사과, 즉 회개다.
 
오늘날 회개는 한 번 하나님 앞에 크게 울고 반성하는 것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회개란 분명 마음이 죄를 인정하고 미워하며, 그 삶 전체가 방향을 바꾸어 돌이키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대로 어떻게 다 지키며 사냐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말씀대로 사냐고 물으면 모두 고개를 젓는다. 안타깝지만 그것은 겸손이 아니다. 우리는 말씀대로 살 수 있다. 왜냐하면 실수하고 잘못하면 회개하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실수도 잘못도 하지 않는 것만이 말씀대로 사는 것이 아니다. 유혹과 죄가 만연한 이 땅에서 회개하는 삶이 바로 말씀대로 사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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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윤 / 목사·나성남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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