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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건 살이] “다른 뺨도 내어주라”

Los Angeles

2026.03.18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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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건 회계사

이유건 회계사

오리건주는 집과 집 사이가 가깝지 않다. 나무에 가려 옆집 사람과의 인사를 놓치기도 하고, 창문이 터질 듯 악기를 연주해도 소리가 옆집까지 닿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시끄럽다고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일도 드물다.  
 
이민자들은 이런 밀도에서 인간관계를 만들어 간다. 한인들 사이의 거리는 그보다 더 멀다. 그래서인지 마음이 맞는 사람을 만나면 더 쉽게 속마음을 보이고, 더 많이 기대하고, 그래서 더 크게 상처를 받기도 하는 것 같다.
 
반대로 서울은 집과 집,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가 지나치게 가깝다. 굳이 알고 싶지 않은 것도 금세 누군가의 입을 통해 귀에 들어온다. 비교와 소문도 쉽게 접하게 된다.
 
부부싸움도 비슷하다. 평소 배우자의 요청을 잘 들어주다가도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에는 거부할 때도 있다. 그 순간 분위기는 달라진다. 그렇게 되면 수만 년 전 인류가 태어나기도 전의 일까지 꺼내 서로 헐뜯게 된다. 인류를 지구라는 상자 속 작은 분자라고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어떤 날은 수소와 산소가 만나 물을 만들 듯 서로를 필요로 하지만, 또 어떤 날은 충돌해 폭발을 일으키기도 한다.
 
인생을 살다 보면 뜻대로 되지 않는 것 중 하나가 인간관계인 듯하다. 얼마 전 아끼는 두 동생이 다툰 적이 있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서로 상대방의 거짓말에 속았다고, 상처를 입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마치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사이가 된 것처럼 보였다.
 
친구뿐이겠는가. 사람들은 본인이 피땀 흘려 번 돈을 빼앗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 자기편을 더 만들려고 애쓴다. 반대로 다른 쪽에서는 왜 공정한 기회를 주지 않느냐며 뭉친다. 지금 이 순간 지구촌에서는 피눈물 나는 디아스포라의 기억을 가슴에 새기고, 조상과 신이 준 땅을 되찾겠다며 오랜 기간 그 땅에서 살던 사람들을 쫓아내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이 모든 것을 자연의 법칙이라고 말하기에는 내 몸의 호르몬이 그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런 상황에 놓이면 나 역시 분노하고, 이성을 잃을지도 모른다.
 
떠오르는 이야기 하나가 있다. 한 사람의 외투를 벗기기 위해 바람은 거세게 불어댔지만, 그럴수록 그 사람은 외투를 더 단단히 움켜지었다고 한다. 그러나 햇볕이 따뜻하게 비추는 순간, 그는 스스로 외투를 벗었다는 것이다.  
 
증오라는 감정도 어쩌면 단순하다. 상대가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지 않았을 때 생기는 감정일지 모른다. 우리는 온 힘을 다해 화를 내고 상대를 공격하지만, 그럴수록 상대방은 자신의 외투를 감쌀 뿐, 절대 그것을 벗지 않는다.  
 
“원수가 네 뺨을 치거든 다른 뺨도 내어주라”는 예수의 말은 이런 순간에 더욱 크게 다가온다. 그러나 그러한 마음의 요동과 달리 나 역시도 실행은 쉽지 않은 일일 것 같다. 먼저 사과한다고 해서 상대가 받아줄 것 같지도 않고, 괜히 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 것 같기도 하다.
 
개인의 일도 그런데 사회와 국가 사이의 일은 얼마나 더 어렵겠나. 국가는 이익을 계산하고, 사회도 그 흐름 속에서 움직인다. 개인 역시 그 속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런 모습도 본다. 엄마 말을 듣지 않고 징징대던 아이가, 아픈 친구가 있으면 다가가 안아주고, 혼자 있는 아이에게는 배시시 웃어 준다. 먹고 살고 지키는 문제와는 별개로, 우리 안에는 선천적으로 어떤 ‘선’이 스며들어 있는 것 아닐까.
 
전쟁으로 앞날을 알 수 없고, 좌우 혹은 너와 내 편이 분명히 갈라지는 시대지만  우리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먼저 나의 잘못을 보여주고, 상대의 외투를 벗길 수 있는 따뜻한 햇볕이 되어 보는 것 말이다. 선을 행함에 주저함이 없는 사람이 다수가 되고, 그들이 사회에 빛을 비추기 시작한다면 저 멀리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도 곧 끝나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이유건 / 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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