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하순의 뉴저지 산골은 간이역 (簡易驛)이다. 어느 틈엔가 봄이 슬그머니 지나 가버린 것 같기도 하고 아직 기다려야 할 것도 같고…. 하루는 눈 덮인 잔디밭에 흙이 드러나면서 훈훈한 흙냄새가 바람에 실려 오더니 그다음 날엔 진눈깨비가 세차게 휘날린다. 겨울 패딩을 아직도 멀리 두지 못하는 건 계절의 흐름이 믿음직스럽지 못하기 때문이다. 봄을 기다리는 간이역에는 시간표가 없다.
내가 중학교를 다닌 시골 황간역은 간이역은 아니었으나 완행열차 외엔 모두 통과를 하는 작은 역이었다. 바로 앞 노근리 쌍굴 다리를 빠져나올 때나 추풍령 고개를 오르기 직전에는 기적 소리를 크게 내며 지나갔다.
아침 산책길에 하늘에서 요란한 소리를 지르며 날아가는 새떼를 만난다. 미국지빠귀 와 동부딱새 (Eastern Phoebe) 라는 철새가 남쪽에서 돌아와 먹이를 찾아가는 소리라고 한다. 그 새소리들이 마치 기적소리처럼 들린다.
새소리를 따라 그래도 어디선가 봄은 오겠거니 하고 까치발로 봄 마중을 나가 본다. 놀라운 일은 봄기운을 먼저 전해주는 것은 집 주변에 정성껏 가꾼 꽃나무가 아니라 두꺼운 잔설 속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잡초였다는 점이다. 그뿐만 아니라 산비탈에서 모진 삭풍을 이겨낸 낙락장송(落落長松)도 줄기의 검푸른 잎은 양지바른 길가의 개나리보다 훨씬 먼저 연초록 새 빛으로 갈아입는 걸 보게 된다.
이달 초순 모리스타운에 있는 한 수목원을 찾아갔을 때는 이른 봄에 나오는 노란색 봄꽃, 아도니스, 스노우 드롭 등이 보일 듯 말 듯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보름 뒤 이번에는 프린스턴 방면으로 내려가다 듀크 팜에 들렀는데 예년 같으면 지금쯤 피었어야 할 별목련과 수선화, 산수유들이 깊은 겨울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3월 한 달 내내 그렇게 많은 비가 오면서 햇볕이 부족했고 밤에는 늦은 서리까지 내렸으니 당연한 이치다.
폭설과 혹한이 지나간 뒤의 봄에는 나무 잎사귀가 더 푸르러지고 농사도 잘된다고 했지만 세상이 하 수상하니 그도 모를 일이다. 오히려 기후변화로 봄은 봄답지 않게 되고 5월부터 서둘러 무더위가 오고 가을에는 잦은 비와 이른 추위로 수확 시기를 놓치게 되는 바람에 농사가 그전만 못하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 그래도 곧 얼었던 땅이 녹는 날을 기다렸다가 겨우내 쌓였던 마른 잎과 잡초 등을 걷어내고 퇴비나 비료를 섞어 흙을 뒤집을 참이다.
텃밭 가꾸기가 3년째 들어선다. 서툰 솜씨로나마 흙을 만지고 꽃과 야채들이 자라는 것을 지켜보면서 작은 행복을 느끼며 살고 있다. 설사 수확이 덜 되어도 좋다. 흙에 손을 대고 삽질을 하는 그 자체가 좋고 손자가 학교 오가는 길에 꾸벅 인사하고 가는 모습이 보기 좋다. 딸이 간혹 샌드위치 새참을 갖고 나와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다 가는 시간도 너무 행복하다.
그러나 이 작은 꿈마저 급박했던 전쟁뉴스 앞에서는 사치스럽기만 했다. 종전을 앞두고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는 사이에도 이번 전쟁은 누구를 위해서, 무엇 때문에 일어난 전쟁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명분 없는 전쟁이기에 더더욱 무고하게 목숨을 잃은 소중한 민간인들의 생명과 미국인을 비롯해 전 세계인이 겪는 심각한 경제적 고통을 어떻게 보상할 것인지, 누군가 답을 내놔야 한다.
침략 전쟁은 인류가 저지르는 최악의 범죄다. 무력으로 평화를 만들겠다는 것은 범죄자들의 궤변이다. 성경도 칼로 흥한 자는 칼로 망한다고 가르치고 있지 않나. ‘선한 전쟁’이란 없다.
‘이산 저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 봄은 찾아 왔건 만은 세상사 쓸쓸하더라…’ 둔탁해진 목청을 가다듬어 오랜만에 ‘사철가’를 소리 내 보지만 이 봄은 역시 쓸쓸할 뿐이다. 그런 가운데 한인이 많이 거주하지 않는 이곳에서 어디 가면 ‘왕과 사는 남자’ 를 볼 수 있다며 사발통문을 돌려주던 한인들의 인정이 정겨웠고 ‘BTS 광화문 공연’이 190개국으로 동시에 생중계되면서 음악과 평화를 사랑하는 한민족의 품성이 온 세계에 전파된 것은 흐뭇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