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년의 생을 마감한 한 정신과 의사가 인류의 미래를 향한 메시지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그는 생의 마지막 40일 동안 극심한 육체적 고통의 시간을 견딘 후 4월 3일 아침 11시, 마치 제단의 번제물처럼 자신의 생을 불태우듯 한 권의 책을 완성했다. 그가 남긴 ‘이원택의 영-한 지구촌 사전’은 단순한 언어 사전이 아니라 인류의 평화를 향한 철학과 사유가 응축된 결과물이다.
경기도 파주에서 태어난 그는 미국에서 50여년간 정신과 의사로 활동하며 수많은 환자의 고통과 마주해왔다. 본래는 문학을 꿈꾸던 소년이었으나 아버지의 권유로 의학의 길을 선택했고, 이후 오랜 세월 환자 치료에 헌신했다. 그러나 그의 내면에는 언제나 작가로서의 꿈이 자리하고 있었고, 40대 이후 그는 다시 글쓰기를 시작하며 창작의 세계로 들어섰다. 여러 작품을 남겼지만 그는 기존 문학의 틀을 넘어서는 새로운 형식을 고민하게 되었고, 결국 생의 후반부에는 사전이라는 독창적인 형식을 통해 자신의 사유를 담아내기로 결심했다.
그가 도달한 결론은 단순했다. 셰익스피어와 같은 대문호를 따라가기 어렵다면, 차라리 인간이 사용하는 모든 언어를 담아내는 작업을 하자는 것이었다. 그렇게 그는 ‘모든 단어가 살아 움직이는 사전’, 즉 단순한 정보의 집합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언어의 공간을 꿈꾸었다. 기존 사전들이 권위적이고 고정된 지식을 담은 ‘죽은 사전’이라면, 그가 만들고자 한 것은 대화가 ‘살아 숨 쉬는 사전’이었다.
그의 작업은 인간의 교만으로 하늘에 닿으려 했던 바벨탑과는 달랐다. 그는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이해와 공감의 확장을 목표로 삼았다. 영어와 한글을 비롯한 다양한 언어를 통해 인류가 서로를 이해하고 평화롭게 연결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고자 했다. 이는 갈등과 경쟁이 심화하는 시대에 언어를 통한 화해의 가능성을 모색한 시도였다.
의사 이원택, 그의 삶은 겸손과 배려로 채워져 있었다. 그는 자신을 드러내거나 자신의 주장을 앞세운 적이 없었다. 타인을 평가하지도 않았으며,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공감하며 위로와 격려, 도움을 줬다. 그는 훌륭한 정신과 의사이며 스승이자 친구, 그리고 성자와 같은 존재로 기억될 것이다.
그는 은퇴 이후 경기도 파주에서 독서와 집필 활동으로 여생을 조용히 보내고자 했으나, 그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그는 떠났지만, 그의 언어는 여전히 살아 움직이며 독자들에게 말을 건넬 것이다. “말에는 온도와 힘이 있다”는 그의 믿음처럼, 그의 사전 속 단어들은 단순한 뜻의 정의가 아니라 살아 있는 대화가 된다.
혼란과 갈등이 깊어지는 시대, 그는 마지막까지 평화의 언어를 선택했다. 그의 육체는 사라졌지만, 그가 남긴 책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 호흡하며 인류의 미래를 향해 조용히 말을 건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