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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진실 아닌 권력의 도구로 전락하다

Los Angeles

2026.04.15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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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검사(Two Prosecutors)

스탈린 대숙청, 공포 시대 배경
신임 검사, 조작된 혐의 추적
거대한 권력 체제와 신념 충돌
교도소·관저, 두 공간의 대비
영화는 ‘진실을 추적하는 행위’ 자체가 범죄가 되는 세계를 드러내 보인다. 법을 수호해야 할 검찰 조직이 권력의 하수인으로 전락해 어떻게 자신을 파괴하는지 집요하게 보여준다. [Janus Films]

영화는 ‘진실을 추적하는 행위’ 자체가 범죄가 되는 세계를 드러내 보인다. 법을 수호해야 할 검찰 조직이 권력의 하수인으로 전락해 어떻게 자신을 파괴하는지 집요하게 보여준다. [Janus Films]

1937년, 숨을 쉰다는 것이 곧 공포를 들이마시는 일과 다르지 않았던 스탈린 대숙청의 절정기. 우크라이나의 거장 세르히 로즈니차의 신작 ‘두 검사’는 그 질식할 것 같은 공기를 정면으로 파고든다.  
 
영화는 1937년 소련의 한 어두운 감옥에서 시작된다. 수감자 스테뱌크(알렉산드로 필리펜코)는 자신에게 가해지는 부당한 고문과 조작된 혐의에 저항하기 위해 자신의 피로 억울함을 호소하는 ‘혈서’를 작성한다. 이 위험한 문서는 삼엄한 감시를 뚫고 신임 검사 코르네프의 책상 위에 놓이게 된다.  
 
영화는 이때부터 아주 조용히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 작은 문서는 곧 체제 전체를 향한 도전으로 번지고 코르네프는 자신이 딛고 서 있는 현실의 기반이 얼마나 취약한지 그리고 그 위에 세워진 정의라는 개념이 얼마나 허구적인지 서서히 체감하게 된다.  
 
젊고 정의감에 불타는 검사 코르네프는 법과 원칙에 따라 사건의 진상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상급 검사들과 대립하며 스테바크의 무죄를 입증하려 고군분투한다. 하지만 조사가 진행될수록 그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벽에 부딪힌다. ‘적당히 덮으라’는 동료 검사들의 경고와 함께 수사 기록들이 교묘하게 사라진다.  
 
코르네프는 마침내 지하 감옥 깊숙한 곳에서 스테바크를 대면한다. 한때 당의 엘리트였던 스테바크는 이제 육체와 정신이 파괴된 노인에 불과하지만, 자신의 결백을 밝히겠다는 의지만큼은 굽히지 않는다.  
 
코르네프는 그와의 대화를 통해 이 사건이 단순한 개인의 비리가 아니라, 무고한 이들을 ‘인민의 적’으로 만들어 체제를 유지하는 ‘거대한 기계’의 작동 방식임을 깨닫는다.  
 
코르네프는 이 과정에서 검찰총장 비신스키(아나톨리 벨리)를 정의의 최종 보루로 믿고 찾아가지만, 법에 대한 신념은 처참하게 무너진다. 대숙청의 상징적 인물이며 중앙의 권력자인 비신스키는 법을 ‘진실의 척도’가 아닌 ‘체제 보존의 도구’로 정의한다. 정의와 권력이 충돌하는 지점이다. 강력하고 무자비한 시스템은 진실을 원하는 개인을 인정하지 않는다.  
 
결국 코르네프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간다. 영화는 코르네프가 자신이 믿었던 정의가 무너지는 것을 목도하며 그의 서늘한 뒷모습으로 끝을 맺는다.  
 
로즈니차는 이 단순한 플롯을 통해 ‘진실을 추적하는 행위’ 자체가 범죄가 되는 세계를 드러내 보인다. 법을 수호해야 할 검찰 조직이 권력의 하수인으로 전락하여 어떻게 자신을 파괴하는지 집요하게 보여준다.  
 
안드레이 비신스키는 실존 인물이다. 그는 “자백은 증거 중의 증거”라는 악명 높은 논리를 내세워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사형으로 몰아넣었다. 로즈니차 감독은 이 실존 인물을 영화의 정점에 배치함으로써 코르네프라는 개인이 마주한 벽이 단순한 관료주의가 아니라 국가에 의해 설계된 거대한 살인 기계였음을 보여준다.  
 
반면 코르네프는 이상주의자다. 법과 정의가 여전히 작동한다고 믿는 인물이며 체제 내부에서도 최소한의 합리성과 윤리가 존재할 것이라 기대한다. 그러나 그가 마주하는 것은 법의 외피만 남은 권력의 기계다. 고문당한 구세대 볼셰비키 스테뱌크를 만나는 순간, 영화는 개인의 윤리와 국가 시스템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지점으로 내려앉는다.  
 
연출은 놀라울 정도로 절제되어 있다. 롱테이크와 최소한의 카메라 움직임은 사건을 설명하기보다 관객이 그 상황을 ‘지켜보게’ 만든다. 복도, 감옥, 사무실 같은 폐쇄된 공간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심리적 압박을 강화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이러한 형식은 로즈니차가 다큐멘터리 작업에서 구축해온 미학과 깊이 연결된다.  
 
그는 극영화에서도 관찰자의 거리를 유지하며 감정을 직접 유도하지 않는다. 대신 상황 자체가 윤리적 판단을 요구하도록 만든다. 이 점에서 ‘두 검사’는 카프카적 부조리와 오웰적 디스토피아의 감각을 동시에 환기한다.  
 
보이지 않는 권력은 모든 곳에 존재하지만, 그 실체는 끝내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다. 체제는 인물들을 압박하면서도 자신을 설명하지 않는다. 그 결과 관객은 사건을 이해하는 대신, 구조 속에 갇혀 있는 고립감과 무력감을 체험하게 된다.  
 
게오르기 데미도프의 원작 소설은 굴라크 수용소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일종의 증언이다. 그 텍스트가 지닌 힘은 구체적인 고통의 기록에 있다. 그러나 로즈니차는 이를 충실히 재현하는 데 머무르지 않는다. 오히려 그 경험을 보다 추상적이고 철학적인 차원으로 확장한다. 소설이 개인의 고통을 증언한다면, 영화는 그 고통이 생산되는 시스템을 분석한다. 영화 ‘두 검사’는 역사 재현을 넘어, 권력과 진실의 관계를 탐구하는 사유의 장으로 확장된다.  
 
로즈니차는 꾸준히 국가 권력과 개인의 관계, 그리고 역사 속에서 반복되는 폭력의 구조를 탐구해왔다. 극영화에서는 개인의 여정을 통해 시스템의 잔혹함을 드러냈고 다큐멘터리에서는 집단과 기록을 통해 역사적 기억을 복원했다.  
 
‘두 검사’는 사회적·정치적 질문을 던지는 작품에 주어지는 칸영화제 프랑수아 샬레상을 수상했다. [Janus Films]

‘두 검사’는 사회적·정치적 질문을 던지는 작품에 주어지는 칸영화제 프랑수아 샬레상을 수상했다. [Janus Films]

‘두 검사’는 이러한 흐름을 하나로 조화시킨 작품이다. 개인의 윤리, 체제의 논리, 그리고 역사적 맥락이 하나의 서사 안에서 긴밀하게 얽히며, 감독 특유의 냉정한 시선이 그 위를 관통한다. 사회적·정치적 질문을 던지는 작품에 주어지는 칸영화제 프랑수아 샬레상을 수상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영화는 특정 인물의 비극을 강조하기보다 ‘구조의 지속성’에 더 큰 무게를 두고자 한다. 코르네프 개인의 선택이나 결단은 서사의 중심에 있지만, 그것이 만들어내는 변화는 거의 없다. 오히려 체제는 어떤 개인도 쉽게 대체 가능한 존재로 환원시키며 사건을 끊임없이 반복 가능한 형태로 조직한다. 결국 ‘두 검사’는 한 개인의 실패담이 아니라, 실패가 구조적으로 예정된 세계에 대한 보고서에 가깝다.  
 
‘두 검사’는 과거를 다루지만, 현재를 겨눈다. 그것은 현재를 향한 질문이자, 반복되는 역사에 대한 경고처럼 읽힌다. 어떤 명확한 메시지를 선언하지도 않는다. 대신 관객을 불편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불편함 속에서 스스로 질문하도록 유도한다.  
 
우리는 우리가 사는 사회의 정의와 시스템을 온전히 신뢰할 수 있을까. 이 사회에 개인의 양심이란 과연 존재하나. 법은 누구를 위해 복종하고 부역하는가. 그리고 정의란 무엇인가. 

김정 영화 평론가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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