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칼럼에서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된 수많은 유물 가운데 외국 것도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중 유독 특별한 의미를 지닌 유물이 고대 그리스에서 제작된 코린트식 투구다. 이 투구에는 큰 역사적 가치와 함께 의미 있는 이야기도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 투구는 기원전 8세기경 만들어진 것으로, 고대 그리스 전사들의 명예와 영광을 상징하는 장비였다. 특히 로마 시대 조각가들이 만든 아테네의 정치가 페리클레스의 조각상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형태로, 그 상징성은 더욱 깊다. 이러한 의미를 지닌 투구가 한국에 오게 된 배경에는 한 인물의 특별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바로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인 손기정이다. 당시 올림픽 발상지인 그리스에서 발행되던 바드리니(Vadrini)라는 신문사는 코린트식 투구에 담긴 영광에 적합한 인물로 손기정을 선정했고 그에게 투구 수여를 결정했다.
1936년은 인류 역사의 최고 암흑기 가운데 하나다. 그리고 베를린은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 정권의 중심지였다. 나치 정권은 나중에 세계 2차 대전을 일으켰으며 무려 7500만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은 단순한 스포츠 대회를 넘어, 당시 국제 정세의 긴장과 갈등이 고스란히 드러난 무대였다. 나치 정권은 인종 우월주의를 앞세우며 세계를 위협하고 있었고 올림픽은 그들의 체제 선전의 장으로 활용되었다. 선수들은 단순한 경쟁자가 아니라 각국의 이념과 가치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이 대회에서 미국의 육상 선수 제시 오언스는 4개의 금메달을 획득하며 인종차별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그러나 히틀러는 흑인 선수인 그를 인정하지 않았고 악수조차 거부했다. 그런데도 오언스가 거둔 성과는 인류의 평등과 존엄을 상징하는 역사적 사건으로 남았다. 지금도 수많은 공원과 도로,광장, 건물이 그의 이름을 딴 것이 이를 반영한다. 위대한 선수들은 힘과 신념으로 인종적 모욕에 맞선다.
손기정이 처한 상황은 또 다른 차원의 비극이었다. 그는 당시 세계 최고의 마라토너였다. 하지만 일제의 강점으로 그는 조국과 문화, 그리고 이름마저 빼앗겼다. 그래서 이 영웅은 유니폼에 일장기를 달고, 일본식 이름으로 올림픽에 출전해야 했다. 그가 이룬 업적에 누가 될 것 같아 올림픽 출전 당시 이름은 굳이 밝히고 싶지 않다. 시상대 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고도 조국의 국가가 아닌 압제자의 국가를 들어야 했던 그의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악조건에도 그는 세계 최고의 기량으로 우승했고 올림픽 신기록까지 세웠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위대한 성취를 보여준 것이다. 그리스 신문사가 그에게 코린트식 투구 수여를 결정한 것도 이런 이유다. 그러나 그는 또 한 번 상처를 입었다. 일제의 방해로 투구는 손기정에게 전달되지 못했고 베를린 박물관에 보관되었다.
이 투구가 다시 주인을 찾은 것은 무려 50년이나 지난 1986년이었다. 오랜 세월 베를린에 머물렀던 유물은 비로소 손기정의 품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는 이를 개인 소유물로 간직하지 않았다. 대신 국민과 함께하기 위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이로써 투구는 개인의 영광을 넘어 민족의 역사와 기억을 담은 유물이 되었으며, 현재는 서양 유물 가운데 유일하게 지정문화재(보물 제904호)로 전시되고 있다.
이 투구는 단순한 고대의 유물이 아니다. 그것은 억압과 차별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을 지켜낸 용기의 상징이다. 오늘날 우리는 여전히 인종과 종교, 문화의 차이로 인한 개인적 갈등과 혐오, 심지어 집단학살까지 목격하고 있다. 증오심이 갖는 위험성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증오심은 주택과 학교, 심지어 병원까지 공격하는 반인륜적 만행을 저지르게 한다.
손기정과 제시 오언스는 스포츠인으로서의 성과와 함께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실현한 인물들이다. 그들이 역경을 극복하고 자신과 조국, 그리고 세계를 위해 긍정적인 성취를 이뤘듯이 우리 역시 그들로부터 영감을 받아 그에 못지않게 노력하고 성과를 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