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을 잇는 대규모 국제 마약 유통망이 연방 수사당국에 적발됐다. 수사 결과 한국인 사업가가 이른바 ‘물뽕’ 원료로 알려진 GBL(감마부티로락톤)의 공급책 역할을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연방검찰 워싱턴DC 지검은 한국과 가주에서 각각 GBL과 메스암페타민을 공급받아 워싱턴DC를 비롯한 동부 지역에 유통한 혐의로 마약 밀매 조직원 11명을 기소했다고 지난 7일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이 조직은 지난 2023년 1월부터 올 4월까지 뉴욕, 필라델피아, 볼티모어, 워싱턴DC 등 동부 주요 도시를 중심으로 마약을 판매해 왔다. 또 플로리다와 남가주 등으로 신규 판매망을 확대하려 한 정황도 확인됐다.
수사당국은 이 가운데 한국을 GBL 공급지로 지목했다. 한국인 사업가 안소현 씨는 호주와 유럽, 미국 등지로 대량의 GBL을 수출해 온 인물로 파악됐다.
그는 뉴욕과 워싱턴DC에 유령 화장품 회사를 설립한 뒤, 한국에서 매달 약 600리터 규모의 GBL을 미국으로 밀반입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세관 신고서에 GBL을 세정제나 미용용품으로 허위 기재한 것으로 조사됐다. GBL은 실제로 매니큐어 리무버 원료 등 산업·미용 용도로도 사용된다.
수사당국은 한국 정부와 공조해 서울에 인력을 파견, 지난해 9월 안씨를 포함한 한국인 5명을 체포했다. 또 한국 내 마약류 압수 사례 가운데 최대 규모인 약 1.5톤의 GBL을 압수했다.
메스암페타민 공급망은 가주에서 시작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에 따르면 조직은 가주에서 확보한 메스암페타민을 UPS와 USPS 등 상업 배송 서비스를 이용해 주 경계를 넘어 동부 지역으로 운반했다.
이들은 수사망을 피하기 위해 암호화 메신저와 은어, 택배 서비스, 비밀 보관 장소, 유령 회사를 이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모바일 송금 플랫폼과 사업체 계좌를 통해 마약 대금을 정상적인 사업 수입처럼 위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사당국은 지난달 29일 워싱턴DC와 메릴랜드, 버지니아, 펜실베이니아, 뉴욕, 플로리다 등 8개 연방 관할 지역에서 동시 다발 압수수색을 벌여 고순도 메스암페타민 35kg과 GBL 800kg을 압수했다.
직접 브리핑에 나선 제닌 피로(74) 워싱턴DC 연방검사장은 한국과 가주, 동부 지역을 잇는 마약 이동 경로를 그래픽으로 공개하며 초국가적 공급망의 실체를 설명했다. 그는 “워싱턴DC의 마약 보관소에서 서울의 물류창고에 이르기까지 공급망을 끝까지 추적해 차단했다”고 밝혔다. 법조인이자 폭스뉴스 진행자 출신인 그는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지명을 받아 워싱턴DC 연방검사장에 취임했다.
GBL은 지난 2018년 한국 사회를 뒤흔든 ‘버닝썬 게이트’ 당시 성범죄에 사용된 마약, 이른바 ‘물뽕’으로 불리는 GHB의 원료다. GBL은 인체에 들어가면 GHB로 변해 환각과 의식 상실 등을 유발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