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에 작약 꽃이 한창이다. 이달 초순만 해도 단단한 텃밭에서 줄기만 올라온 채 도저히 꽃을 피울 것 같지 않더니 하순에 들어서자 ‘늦어서 미안하다’ 는 표정을 지으며 얼굴을 내민다. ‘아니, 네 잘못이 아닌데’ 하며 위로를 해주기는 했지만 지난해에 비해 춥고 비 오는 날이 많았던 탓에 지각했다. 늦게나마 흰색, 분홍색, 붉은색의 작약이 얼마나 탐스럽고 기품 있는 자세로 꽃을 피우는지, 만개 직전 이웃에 두루 꽃 잔치를 벌였다.
그런데 또 이변이 있었다. 텃밭 주변으로 오디나무 (뽕나무) 세 그루가 잘 자라고 있어 올해는 꼭 열매를 따 손자를 먹이려고 했었는데 어느 날 보니 푸르게 솟아나던 잎들를 어디 가고 마치 불에 그슬린 것처럼 검게 보였다. 며칠 뒤 근처에 있는 국립야생동식물 보호구역에 갔다가 거기에 있는 몇몇 나무들도 똑같이 나목(裸木)으로 변신한 걸 보고 올해 ‘가짜 봄(False Spring)’ 현상이 약한 과일나무에 큰 피해를 주고 지나간 걸 알게 되었다.
이른 봄에 기온이 빨리 올라가 나무나 꽃들이 ‘이제 봄이로구나’ 하고 새싹을 일찍 피웠다가 날씨가 갑자기 영하로 떨어지니 이미 밖으로 나온 조직은 약해지기 마련이었다. 그것도 한번이 아니라 따뜻함과 추위가 반복되다 보면 나무가 스트레스를 받아 아예 고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후재앙이 식물성장과 농작물 재배에도 심각한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을 실감한다. 산 나무 지켜내기도 힘든데 죽은 나무 살리기가 가능할지 걱정을 했다.
잎이 떨어져 죽은 것처럼 보이는 나무 가운데 줄기가 쉽게 부러지는 것은 이미 말라 죽은 것이고, 줄기 속이 초록색이고 유연하게 휘어지면 그 나무는 살릴 수 있다는 걸 알아냈다. 물은 주지 않고 햇볕만 잘 받게 해주었는데 얼마 뒤 다시 살아나는 오디나무를 보면서 그 놀라운 생명력에 감탄한다. 사람도 저렇게 다시 살아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사이 날씨가 마음에 안 든다고 원망만 하고 있을 수가 없어 가지, 오이, 호박, 비트, 상추 등을 심었고 토마토와 가지 등을 위해 지지대도 준비했다. 이러다 느닷없이 폭염이 찾아올 수 있어 그전에 무성한 잡초를 뽑아내는 일도 서둘러야 할 것 같다. 풍파를 겪으며 자라는 화초와 야채들을 쳐다보다가 도종환 시인이 쓴 ‘흔들리며 피는 꽃’이 생각났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맞다. 세상의 일들이 어느 것 하나 일직선으로 흘러가는 것은 없다. 그래서 성경의 전도서에도 ‘날 때가 있으면 죽을 때도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으면 춤출 때도 있다’고 했는데 나는 참을성 부족으로 기다리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러나 미국과 이스라엘이 명분도 준비도 없이 일으킨 전쟁으로 많은 사람이 고통을 겪고 있는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마저도 ‘전쟁할 때가 있으면 평화가 올 때도 있다’ 는 말을 믿으며 마냥 기다려야 하는지 부아가 치민다.
이른 아침 텃밭 일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가끔 근처 공원을 찾는다. 전쟁과 물가 걱정만 없다면 뉴저지의 5월은 참으로 평화롭고 넉넉한 계절이다. 하늘을 뒤덮은 참나무와 단풍나무의 연두색 잎들이 바람결에 흔들리는 숲길로 조금만 들어서면 잦은 비로 축축해진 흙냄새와 싱그러운 풀 냄새가 좋은 향기로 느껴진다. 연못가에는 오리와 거위가, 나뭇가지 사이에는 각종 새가 요란하게 울어대며 숲속의 작은 음악회를 베풀어 준다.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 길래…’교회가 여는 붓글씨 전시회에 올해는 김동환 선생의 시를 써 봤다. ‘밀 익는 오월이면 보리 내음 새…’ 새삼 보리 내음이 그립다. 그런데 요즘 들어 미국 대형매장을 가득 메워가는 한국 식품과 한국 화장품의 내음도 너무 좋다.
뉴저지에서 보자면 애틀랜타는 ‘산 너머 남촌’이다. 그곳에 사는 손자와 손녀가 보내준 배구와 테니스 경기 영상을 보며 기쁨을 느낀다. 그리고 9월에 중학교에 가는 뉴저지 손자는 한 달이 다르게 키가 자라더니 마침내 다음 달에는 내 키를 넘길 것만 같다. 꽃보다 아름다운 어린 생명들이 자라는 모습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