옵세션 (Obsession) 소원 통해 짝사랑을 현실로 만든 남자 인데 나바레트의 광기 어린 연기 압도 ‘집착’이 보여주는 현대적 사랑의 불안
애원하다가, 웃다가 분노하고 갑자기 무너지는 캐릭터 니키를 입체적으로 연기한 인데 나바렛의 연기가 훌륭하다. [Focus Features]
강제한 사랑이 가져올 그 공포를 당신은 감당할 자신이 있는가. 영화가 던지는 질문이다. [Focus Features]
강제한 사랑이 과연 사랑일까.
사랑이 단순히 상대가 나를 떠나지 않는 것 또는 나를 계속 원한다고 말하는 것이라면 사랑을 강제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사랑을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건 보통 상대가 자유롭게 선택한 감각에서 시작한다. 언제든 떠날 수도 있는데 남아 있다는 사실, 바로 그 불확실성과 자발성이 사랑의 핵심이다. 그래서 사랑을 통제할 수는 없다.
강제한 사랑은 역설적으로 사랑의 가장 중요한 요소를 제거한다. ‘자유’를 없애는 순간 남는 건 애정의 형태를 한 복종이나 중독에 가깝다. 흥미로운 건 인간이 실제 관계에서도 완전히 자유로운 감정만 주고받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는 늘 어느 정도 인정받고 싶어 하고 버림받기 싫어하고 상대의 마음을 붙잡고 싶어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영화 ‘옵세션’이 시작한다. 주인공 베어(Bear·마이클 존스턴)는 음반가게에서 일하는 청년이다. 오랜 친구이자 동료인 니키(Nikki·인데 나바레트)와 굉장히 가깝다. 주변 친구들조차 “둘이 사귀는 거 아니냐”고 할 정도로 허물없는 농담을 주고받고 서로를 잘 이해해 주는 사이다.
베어는 니키를 사랑하지만 고백하지 못하고 내내 고심한다. 극도로 자신감이 없는 베어는 거절당할까 두려워 계속 타이밍만 재다가 결국 아무 말도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베어는 기묘한 잡화점에서 ‘One Wish Willow’라는 물건을 발견한다. 나뭇가지처럼 생긴 이상한 부적으로 누군가의 ‘소원 하나를 들어준다’는 신비한 물건이다. 처음엔 장난감인 줄 알았지만 베어는 술김 반 좌절감 반으로 소원을 빈다. 니키가 세상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하게 해달라고.
그 소원은 진짜 이루어진다. 적어도 처음엔 베어의 꿈이 이루어진 것처럼 보인다. 니키는 갑자기 적극적으로 다가오고 베어에게 집착적으로 애정을 표현하며 항상 함께 있으려 한다. 하지만 곧 그녀의 태도는 이상해진다. 니키는 베어가 잠깐만 자리를 비워도 공황 상태가 되고 다른 여자와 이야기하면 극도로 공격적으로 변한다. 밤중에 비정상적으로 웃거나 울고 혼잣말을 하며 아무것도 없는 곳을 보며 비명을 지른다. 관계는 점점 사랑이 아니라 집착의 단계로 변해간다.
베어는 점점 니키의 이런 상태에 죄책감을 느낀다. 니키가 자신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소원 때문에 정신이 망가졌다는 걸 알게 된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완전히 관계를 끊지 못한다. 평생 원하던 감정을 드디어 얻었고 그것을 쉽게 포기하지 못한다.
니키의 집착은 점점 폭력적으로 변한다. 그녀는 베어의 친구들을 적으로 여기고 둘 사이를 방해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공격적으로 반응하며 현실과 환상을 구분하지 못한다. 베어는 결국 저주를 풀 방법을 찾으려 하지만 이미 상황은 너무 멀리 가버렸다. 그리고 비로소 깨닫는다. 자신이 죽어야만 ‘One Wish Willow’의 저주가 끝난다는 걸.
결국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그 순간 니키는 저주에서 깨어난다. 하지만 정신을 차린 니키의 눈앞에는 자신이 저지른 끔찍한 사건과 피투성이 현장이 남아 있을 뿐이다. 영화는 니키가 충격 속에서 마침내 현실을 인식하는 듯한 장면으로 끝난다.
영화는 베어를 단순한 피해자나 가해자로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외로운 영혼을 지닌 인물로 표현된다. 상처받고 싶지 않은 마음과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어 하는 그의 ‘좋은 남자 콤플렉스’는 관객으로 하여금 그를 이해하고 동정하게 만든다.
문제는 바로 그 용기 없음이다. ‘옵세션’은 그 감정을 극단까지 밀어붙인다. 그리고 그 메타포로 ‘공포’를 선택한다. 영화는 강제로 얻은 감정이 어떻게 점점 본래의 형태를 잃어가는지를 집요하게 보여준다. 처음에는 꿈처럼 보였던 관계가 시간이 흐를수록 자유를 잃은 감정과 불안 집착으로 변질된다.
‘옵세션’은 호러 영화의 외양을 지니고 있지만, 단순히 자극적인 공포 영화에 머물지 않는다. 영화가 주목하는 것은 광기가 아니라, 그 광기를 만들어 내는 욕망이다. [Focus Features]
호러 영화의 외양을 지니고 있지만 ‘옵세션’은 단순히 ‘미친 여자친구’를 소재로 한 자극적인 공포 영화에 머물지 않는다. 영화가 주목하는 것은 니키의 광기가 아니라 그 광기를 만들어낸 베어의 욕망이다. 그래서 이 영화의 공포는 초자연적 존재나 살인 장면보다도 인간 내면의 결핍과 집착에서 비롯된다.
영화는 그 감정을 사회적 공포의 형태로 극단화한다. 누군가를 너무 오래 사랑했고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해주기만 한다면 모든 게 완벽해질 거라고 믿는 순간 그 욕망은 결국 ‘무서운 현실’이 되어 버린다.
영화의 공포는 저주 자체보다 사랑을 통제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아주 익숙한 욕망에서 나온다. 우리는 보통 사랑을 순수한 감정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안에는 늘 버려지기 싫은 마음 선택받고 싶은 욕망 관계를 붙들고 싶은 충동이 뒤섞여 있다.
이 영화는 설정 자체만 보면 자칫 유치해 보일 수 있다. 소원을 빌어서 누군가를 사랑하게 만든다는 이야기는 전형적인 B급 호러의 설정이다. 그런데 배우들이 감정을 현실적으로 잘 연기해 낸 덕분에 관객은 상황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연출보다 배우들의 연기가 영화의 몰입감을 더욱 효과적으로 끌어올린다.
특히 니키를 입체적으로 연기한 인데 나바레트의 연기가 훌륭하다. 중반 이후 니키는 애원하다가 웃다가 분노하고 갑자기 무너진다. 그런데 그 변화가 단순한 연기 과시처럼 보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정신이 붕괴되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상반기 공개된 작품들 속 여배우 연기 중 가장 폭발적인 호평을 받은 나바레트는 자칫 ‘광기’에만 머물 수 있었던 니키를 인간적인 캐릭터로 살려낸다. 실제 오래된 친구처럼 보이는 두 배우의 케미 덕분에 관객은 “둘이 잘되면 좋겠는데?”라는 마음을 자연스럽게 품게 된다. 그래서 후반부의 비극은 더욱 아프게 다가온다. 두 배우가 관계의 자연스러움을 설득력 있게 표현해 냈기 때문이다.
상대는 나만 바라보지만 그 시선에는 자유가 없다. 떠날 가능성이 사라진 순간 안도감과 함께 관계의 생동감도 죽어버린다. 그래서 이 영화의 질문은 단순히 “사랑은 강제할 수 있는가”가 아니다. 어쩌면 “우리는 정말 사랑받고 싶은 걸까 아니면 거절당하지 않을 확신을 원하는 걸까”에 더 가깝다. 강제된 감정이 만들어낼 그 공포를 당신은 감당할 자신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