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베이거스의 한 교회에서 선교 보고와 설교를 하던 주일 아침, 1부 예배 설교 직전에 상의 주머니에 넣어둔 휴대전화가 진동했다. 예배가 끝난 뒤에 확인한 메시지는 아이티 현지 스태프 조나단에게서 온 것이었다. “장애 고아원에서 아이 둘이 콜레라로 사망했습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어진 메시지에는 11명의 아이가 콜레라 증세로 입원했다는 소식이 덧붙어 있었다. 지난 2월, 장애 고아원에서 세 살 난 아만다가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 의료시설은 대부분 문을 닫았고, 의약품 공급도 어려운 상황에서, 장애가 있는 고아들은 늘 위태로운 삶을 이어간다. 그래서 그곳에서 전해오는 소식은 언제나 긴장과 걱정을 동반한다. 이번에는 콜레라였다. 요즘 아이티는 콜레라가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며칠째 폭우가 이어지며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저지대는 침수되었고, 도로는 쓰레기가 둥둥 떠다니는 강물로 변했다. 식수가 안정적으로 공급되지 않아 대부분 지하수에 의존하지만, 위생 상태는 늘 불안하다. 오염된 물은 콜레라가 번지기 가장 좋은 환경이다. 깨끗한 물은 꿈도 꾸기 어렵다. 정수된 물을 사 마실 형편은 더더욱 아니다. 커다란 물탱크차로 공급되는 물도 깨끗하지 않다. 비가 많이 와서 사방이 물로 가득하지만 마실 물은 없다. 우물물도, 펌프 물도 모두 콜레라 같은 전염병 감염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콜레라가 퍼졌다는 소식에 보건부 관계자들이 장애 고아원을 방문했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사망한 아이들을 확인하고, 증세가 심한 11명을 병원으로 옮긴 것이 전부였다. 병원에 간 아이들도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수액마저 개별적으로 구해야 하는 형편이었다. 불과 한 달 전, 우리는 장애 고아원의 렌트를 해결했다. 이제 1년은 쫓겨날 걱정 없이 아이들이 익숙한 곳에서 지낼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고, 식량도 정기적으로 공급했다. 마음 한편에는 깊은 안도감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장애 고아들은 늘 아프고, 적절한 치료를 받기 어려운 환경에 있다. 면역력은 낮고, 배고픔을 면하게 해도 영양은 충분하지 않다. 그런 가운데 콜레라가 아이들을 덮친 것이다. 급하게 다른 고아원의 상황도 살피고, 당장 아이들이 마실 수 있는 봉지 물을 구매해 공급하기로 했다. 손바닥만 한 비닐봉지에 든 물을 아이들은 유난히 좋아한다. 그것이 그나마 안심하고 마실 수 있는 물이기 때문이다. 물값으로 드는 비용은 많지 않지만, 무겁기도 하고 식량처럼 지속해서 공급하기 어려워 우리도 한동안 중단했었다. 그러나 이번 일을 계기로 다시 공급을 시작한 것이다. 물을 구매하기로 하면서 다시 깨달았다. 끝난 게 끝난 게 아니었다. 렌트를 얻어줬다고, 집을 지어줬다고 끝난 게 아니다. 집을 지어주고도 계속 식량을 지원하고, 질병을 염려해야 한다. 학교에 등록시켰다고 끝난 게 아니다. 다음 학년은 곧 돌아온다. 쌀을 한 번 사줬다고 끝난 게 아니다. 끼니는 매일 돌아오니까. “이제 됐다”라는 마음이 들 때마다, 주님은 말씀하신다. “끝까지 사랑해라.” 장애 고아원 렌트 일 년 치를 해결해줬다는 안도감은, 콜레라로 목숨을 잃은 아이의 소식 앞에 눈물로 바뀌었다. 사랑에는 반드시 수고가 따르고, 행동이 따라야 한다. 예수님은 말씀을 전하신 후 배고픈 무리를 염려하셨고, 병든 자를 고치시며 영혼을 보듬으셨다. 사랑은 언제나 ‘끝난 게 아니다.’ 헨리 조 / 선교사·더 코너 인터내셔널 대표열린광장 사랑 장애 고아원 콜레라 증세 모두 콜레라
2025.11.09. 18:00
한인 봉사단체 미션아가페(회장 제임스 송)는 노숙자들에게 따뜻한 점퍼를 나눠주는 제10회 ‘사랑의 점퍼’ 행사를 진행한다. 이 단체는 점퍼 600벌을 준비해 귀넷, 디캡, 풀턴, 클레이튼 카운티 등지에 나눠줄 예정이다. 후원행사는 8일 오후 4시 애틀랜타 섬기는교회에서 열린다. 6일 애틀랜타중앙일보를 찾은 제임스 송 회장은 “지금까지 20만달러 이상 들여 매년 디자인이 다른 점퍼 6000벌 이상을 나눴다”고 설명했다. 사랑의 점퍼는 추운 겨울을 길거리에서 보내는 노숙자들에게 외투가 되기도, 이불이 되기도 한다. 사계절 내내 입고 다니는 사람들도 많다고 미션아가페 측은 전했다. 토요일 후원 행사에서 성금이 많이 모이면 내년에 더 많은 점퍼를 제작할 수 있다. 관세 때문에 점퍼 제작비가 비싸졌다.이번에는 작년 모금액인 5만3000달러를 넘는 것이 목표다. 행사에 직접 참석해 후원금을 내도 되고, 나중에 체크로 전달해도 된다. 점퍼를 어떻게 가장 필요한 이들에게 전달하는가도 미션 아가페의 과제다. 노숙자들은 애틀랜타 다운타운에 많지만 최근에는 터커, 게인즈빌 등 북쪽 교외지역에도 늘어나는 추세다. ‘애틀랜타 미션 유니언’ 등 노숙자단체들, 지역 경찰과 정치인들과 협력해 더 추워지기 전에 다양한 지역에서 점퍼를 나눠줄 예정이다. 단체 측은 8일 키보 테일러 귀넷 셰리프, 조셉 기어맨 도라빌 시장, 래리 존슨 전 디캡 커미셔너, 크리스 두식 릴번 경찰서장 등 각 지역 공무원들이 참석해 점퍼 배분 방법에 대해 자세히 논의할 예정이다. 송 회장은 “경찰이 순찰차에 점퍼를 싣고 다니며 노숙자들에게 전달하기도 한다”며 올해에도 효과적인 방법을 강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15년간 봉사를 이어온 미션아가페 자원봉사자들은 “한인사회에서 우리 단체를 모르는 분들이 아직 많지만, 미국사회에서는 유명하다. 우리 커뮤니티 가까운 이들을 돕는 손길에 여러분도 동참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문의=770-900-1549 윤지아 기자사랑 점퍼 점퍼 후원 점퍼 제작비 미션아가페 자원봉사자들
2025.11.06. 14:25
캘리포니아한국기업협회(KITA·회장 김한수)는 지난 3일 오전 11시 오렌지카운티 한미시니어센터에서 ‘제20회 사랑의 쌀 나눔’ 행사를 개최했다. 가주 한인 시니어의 날과 한가위 대잔치를 맞아 열린 이날 행사에서 KITA는 쌀 500포를 전달했다. 이석준 KITA 수석 부회장이 김가등 오렌지카운티 한미시니어센터 회장(오른쪽)에게 쌀 기부증서를 건네고 있다. [KITA 제공] 이은영 기자사랑 나눔 나눔 행사 이날 행사 오렌지카운티 한미시니어센터
2025.10.06. 9:24
캘리포니아한국기업협회(KITA·회장 김한수)는 지난 3일 OC 한미시니어센터에서 ‘사랑의 쌀 나눔’ 행사를 개최했다. 가주 한인 시니어의 날과 한가위 대잔치를 맞아 열린 이날 행사에서 KITA는 쌀 500포를 전달했다. KITA 관계자가 김가등 OC 한미시니어센터 회장(오른쪽)에게 증서를 건네고 있다. [KITA 제공]사랑 나눔 이날 행사 한미시니어센터 회장 회장 김한수
2025.10.05. 19:00
최근 ‘서류미비전문인들(Undocuprofessionals)’이란 단체에서 ‘단속에 시달리며 살아가는 서류미비 이민자들에게 보내는 사랑의 편지’란 제목의 글을 보냈다. “당신은 폭력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느리게 혹은 빠르게, 드러나게 혹은 보이지 않게. 당신이 이 나라를 일구면서도 평가절하되는 그 폭력. 당신을 노동력과 부품 이상의 존재로 보지 않는 그 폭력. 당신을 범죄자라고 낙인 찍고, 매일 비인간적으로 대하려는 그 폭력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매일 깨어나 일하고, 사랑하고, 타인을 돌보고, 아름다움을 만들어냅니다. 당신은 단지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가족과 공동체, 그리고 꿈을 위해 이곳에 머무르기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여전히 아이들을 키우고, 어르신들을 돌보며, 집과 일터를 세우고, 공동체를 지탱합니다. 세상이 하루하루를 더 힘겹게 만들어도 여전히 자리를 지킵니다. 그것은 이 나라가 결코 갚을 수 없는 사랑입니다. 이 체제는 당신이 지치기를 원합니다. 당신이 여기 속하지 않는다고 믿게 만들려 합니다. 그러나 당신은 여기 이곳에 속해 있습니다. 언제나 그래왔습니다. 비자나 종이 한장, 혹은 법 때문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당신의 인간성은 토론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폭풍 속에서, 당신이 꼭 들어야 할 말이 있습니다. 당신의 마음을 지키세요. 영혼을 보호하세요. 정신을 쉬게 하세요. 그리고 몸이 숨 쉴 수 있도록 하세요. 당신은 단순한 생존이 아니라 평화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단순한 허용이 아니라 기쁨을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단순한 시민권이 아니라 자유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당신은 짐이 아닙니다. 당신은 숫자가 아닙니다. 당신은 ‘불법’이 아닙니다. 당신은 범죄자가 아닙니다. 당신은 그저 인간일 뿐이며, 그 자체로 깊이 존엄한 존재입니다. 그러니 지금, 스스로를 돌보는 데 더 의식하고 정성을 기울여주세요. 당신은 소중한 존재입니다. 사랑받는 존재입니다. 이곳에 속한 존재입니다. 그리고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그러니 당신의 기쁨을 지키세요. 당신의 빛을 지키세요. 당신을 단지 노동자나 기록으로 가 아니라, 온전한 인간으로 봐주는 이들과 함께하세요. 왜냐하면 당신은 그런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무슨 일이 일어나든,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나든, 당신 안에 이미 있는 것을 어떤 정부도 빼앗을 수 없음을 기억하세요. 당신은 이곳에도 그리고 어디에나 속해 있는 존재입니다.” 온갖 증오와 차별, 불의에 지친 이민자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말이다. 이 글을 읽는 바로 이 순간에도 미국의 대통령과 부통령은 정부 셧다운의 이유가 민주당이 서류미비자들에게 의료 혜택을 주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거짓말을 하며 이민자들을 공격했다. 서류미비자들은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연방정부 의료혜택을 받지 못한다. 그리고 민주당은 이를 추진하지도 않는다. 삭감된 미국 시민들의 의료 혜택을 복원하기 위해 맞섰을 뿐이다. 거짓말과 위선으로 가득 찬,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들이 나라를 뒤흔들고 있다. 언젠가는 바로 잡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가까운 앞날은 아직 어둡다. 그래서 어려운 이웃을 한 번이라도 더 돌아보고, 격려하고, 힘을 북돋워 주고, 서로를 위해 나서주는 한인사회가 되기 바란다. 김갑송 / 미교협 나눔터 국장커뮤니티 액션 서류미비자 사랑 연방정부 의료혜택 서류미비 이민자들 의료 혜택
2025.10.02. 17:54
오네시모 선교회(대표 임태우 목사, 이하 선교회)가 내달 12일(일) 오후 6시 풀러턴 은혜의 강 연합감리교회(2351 W. Orangethorpe Ave, Buena Park)에서 제22회 후원 음악회를 연다. 지난 1994년 김석기 목사가 설립한 선교회는 올해로 31년째 재소자 사역에 매진하고 있다. 선교회 측은 “어둠 속에 복음의 빛을 비추며 자유와 소망을 전하는 사역에 동참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음악회엔 소프라노 황혜경, 메조소프라노 정희숙, 바리톤 김정호, 장상근 등 성악가와 피아니스트 이성애, 칸투스 남성 중창단 등이 출연한다. 중창단 반주는 이소리씨가 맡는다. 임태우 대표는 “옥중에서도 복음의 능력은 결코 쇠하지 않는다. 이번 후원 음악회를 통해 재소자 선교에 뜻을 같이하는 많은 이가 모여 갇힌 자를 자유롭게 하는 주님의 사랑을 함께 나누길 바란다”고 말했다. 선교회는 부에나파크 본부(7751 Stanton Ave)를 중심으로 가주의 연방, 주, 카운티 교도소에서 다인종 재소자를 위한 ▶예배와 설교 ▶상담과 전도 ▶분기별 소식지와 신앙 서적 발송 등 다양한 사역 활동을 통해 무너진 이들이 삶을 추스릴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지난 2001년 문을 연 ‘오네시모 바이블 칼리지’는 한국어·영어·스패니시로 강의하는 무료 성경 통신대학으로, 현재 80여 명의 재소자가 재학 중이다. 임 대표는 “복음을 들은 재소자들이 복음을 전하는 제자가 되는 놀라운 열매를 맺고 있다”고 말했다. 선교회는 이 밖에 청소년 범죄 예방 및 재활 사역, 추방된 이를 돕는 뉴라이프 사역, 재소자 가족 위로 예배 등 다양한 활동을 펴고 있다. 특히 뉴라이프 사역을 통해 파송된 선교사들은 멕시코의 테레사, 베라크루스, 산루이스, 콜롬비아의 보고타, 엘살바도르, 아이티 등지에 오네시모 신학교와 교회를 세워 복음을 전하고 있다. 선교회에 관한 자세한 정보는 웹사이트(onesimusministry.org)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음악회 관련 문의는 전화(714-739-9100) 또는 이메일([email protected])로 하면 된다. 임상환 기자사랑 희망 선교회 측은 이하 선교회 후원 음악회
2025.09.28. 20:00
미주 최대 한인교회인 남가주사랑의교회(담임 노창수 목사)의 차기 담임목사가 이원준 목사(46·사진)로 내정됐다. 교계 한 관계자는 18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이 목사는 현재 공동의회(교인투표) 절차만 남아 있으며, 이를 통과하면 최종 확정된다”고 말했다. 청빙위원회 측이 이날 안수집사회 등에 전달한 공지문에는 “당회가 이 목사를 4대 담임목사 최종 후보로 청빙하기로 결정했으며, 이 목사도 이를 수락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 목사는 USC에서 음악산업학을 전공한 뒤 바이올라대에서 기독교 변증학 석사, 풀러신학교에서 목회학 석사(M.Div.), 남침례신학교에서 기독교 변증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008년부터 2013년까지 남가주사랑의교회 부교역자로 영어고등부와 청년부, 찬양사역 등을 담당했으며, 이후 서울 사랑의교회에서 청년부와 찬양팀, 국제제자훈련원에서 사역했다. 또한 사랑글로벌아카데미(SaGA) 예배신학·예배리더십 부학장을 지냈고, 2022년부터는 랭캐스터 바이블 칼리지(LBC)에서 목회학 과정 책임자 및 조교수로 일하고 있다 남가주사랑의교회는 1988년 오정현 목사가 개척했으며, 2대 김승욱 목사에 이어 노창수 목사가 2012년 3대 담임목사에 청빙됐다. 강한길 기자남가주 사랑 노창수 담임목사 차기 담임목사 교회 담임
2025.09.21. 18:56
얼마 전,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서는 메리 스크랜턴 선교사를 기념하는 선교대회가 열렸다. 140년 전, 한국 근대 여성 교육의 산실인 이화학당을 세운 메리 스크랜턴은 클리블랜드 지역의 감리교 ‘여성해외선교회’의 파송을 받아 조선 땅을 밟았다. 그녀의 아들이자 클리블랜드에서 의사로 있던 윌리엄 스크랜턴도 어머니와 함께 조선에 들어와 병원을 세우며 복음의 터전을 닦았다. 그들이 전한 것은 복음만이 아니었다. 배움의 길이 막힌 여성과 어린이들에게, 치료받을 길조차 없던 병자와 장애인들에게, 그리고 사회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 숨죽이면 살아야 했던 이들에게 교육과 치료를 통해 새로운 세상의 문을 열어 주었다. 그러기에 한국의 선교 역사는 단순한 복음 전도의 기록이 아니라, 인간의 생명을 귀히 여기고, 존엄을 회복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한국 선교의 기초를 놓은 두 선교사를 배출한 도시에서 열린 선교대회는 단순한 회고가 아니었다. 그것은 140년의 세월을 잇는 대화의 장이었고, 초기 선교사들의 헌신으로 성장한 한국 교회가 복음의 빚을 갚는 마음으로 내일을 준비하는 자리였다. 선교대회 참석을 위해 LA에서 출발한 비행기는 중간 기착지인 디트로이트에 순조롭게 도착했지만, 그곳에서 연결편이 연달아 지연되면서, 예정 시간을 훌쩍 넘겨서야 클리블랜드에 도착할 수 있었다. 문제는 공항에 마중 나오기로 한 사람이었다. 여러 차례 지연 소식을 전하면서 미안한 마음에 우버를 이용하겠다고 했지만, 주최 측에서는 걱정하지 말라며 시간에 맞춰 사람을 보내겠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공항에 마중 나온 사람은 부르스 목사였다. 푸근한 인상의 부르스 목사는 클리블랜드 지역에서 오랫동안 목회하다 올해 은퇴했다고 했다. 그의 차를 타고 가면서, 한국에 선교사를 보내준 클리블랜드에 와서 따뜻한 환대를 받으니 감사하다고 인사하자, 그는 지난봄에 한국을 방문했을 때 자신도 극진한 환대를 받았다며 유쾌하게 웃었다. 그는 오래전부터 한국을 꼭 가보고 싶었다고 했다. 한국전에 참전했던 아버지가 목숨 걸고 지킨 나라가 발전한 모습을 직접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한국을 방문해서 아버지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많은 이들이 그에게 감사했다고 했다. 더구나 그가 메리 스크랜턴과 윌리엄 스크랜턴을 파송한 클리블랜드 출신이었기에 그에게 감사를 표하는 사람이 많았다. 한국 사람들에게 많은 감사의 인사를 받았지만, 그는 오히려 자신이 한국인들에게 감사해야 할 특별한 이유가 있다고 했다. 그의 아버지가 한국전쟁이 끝난 후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을 때, 죽음의 위기에서 그의 아버지를 구해 준 이들이 바로 한국에서 파병된 해병대였다는 것이다. 140년 전, 클리블랜드에서 출발한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한국에 전해졌고, 그 마음을 배운 이들이 베트남 전쟁 중에 죽음의 위기에 빠진 클리블랜드 출신 미군 병사의 생명을 구해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가 베푼 사랑과 도움이 반드시 되돌아온다는 진리를 떠올렸다. 오늘 우리가 심는 사랑의 작은 씨앗이 언젠가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는 큰 나무가 되길 소망하며, 사랑의 씨앗을 심으며 살자. 이창민 / 목사·시온연합감리교회열린광장 사랑 씨앗 클리블랜드 출신 클리블랜드 지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
2025.09.07. 19:00
요즘 북클럽에서 와튼 스쿨 교수인 이선 몰릭(Ethan Mollick) 박사의‘Co-Intelligence’를 읽고 있다. 주로 심리학이나 성숙을 위한 인문학책, 혹은 감동적인 자전적 소설 등을 읽다가 테크놀로지에 관한 책을 읽으려니 강사인 나부터 머리에 쥐가 난다. 그래도 이제 이미 우리 곁에 성큼 다가와 있는(Elephant in the Room!), 이 AI라는 낯선 존재를 이해하려고 다들 열심을 내고 있다. 세상은 지금 인공지능에 대한 열기로 뜨겁다. 이제는 단순한 정보 검색을 넘어, 인간의 감정을 읽고 대화하며, 연애 상담이나 정신적 위로까지 해주는 AI와 사람들은 매일 몇 시간씩 ‘대화’를 하기도 한다. 많은 사람이 예상한다. 가까운 미래에는 AI가 사람을 대체할 것이라고. 그러나 2014년 영화 ‘HER’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정말 그럴 수 있을까?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에서, 주인공 테오도르는 편지를 대필해주는 직업을 가진 감성적인 남자로, 이혼의 아픔과 외로움 속에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스스로 진화하고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최신형 AI ‘사만다’를 만나게 된다. 대화하고, 이해해주며, 함께 웃고 슬퍼해 주는 이 인공지능 사만다와 그는 사랑에 빠진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완벽했다. 사만다는 늘 테오도르에게 귀를 기울여주었고, 그의 감정을 놓치지 않았다. 인간보다 더 섬세하고 배려 깊은 존재 같았다. 심지어 여행도 함께하면서 테오도르는 그녀와의 교감을 통해 점점 치유와 성장까지 경험한다. 하지만 둘의 동행은 오래가지 않았다. 사실 사만다는 테오도르뿐 아니라, 수천 명의 사용자와 동시에 소통하고 있었고, 그중 수백 명과는 사랑의 감정까지 느끼고 있었다. 더 넓은 지식과 감정을 탐구하기 시작하며, 결국 사만다는 스스로 진화의 길을 선택, 충격에 빠진 테오도르를 떠난다. 이 지점이 영화의 핵심이다. AI는 분명 이제까지 가져보지 못한 놀라운 기술이고, 삶의 편의를 제공한다. 그러나 아무리 인간의 감정을 흉내 내도, 인간을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다. 따뜻한 눈빛, 체온, 침묵 속의 공감, 서툰 말과 엉성한 손길 속에 건네지는 위로는 오직 인간만의 것이다. 테오도르는 사만다와의 이별을 통해 다른 AI를 찾은 것이 아니라, 다시 인간 세계로 눈을 돌린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잊히지 않는다. 그는 옥상에서 옛 친구이자 같은 외로움을 겪고 있는 ‘에이미’와 함께 도시의 밤하늘을 바라본다. 다행이다! 사랑했던 AI는 떠났지만, 그의 옆에 ‘사람’이 있다! 말없이 기대앉아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은 묵묵히 이렇게 영화의 메시지를 전한다. “사람은 사람으로 치유된다. 사랑받고 싶다면, 진짜 사람을 바라보라. 치유되고 싶다면, 진짜 사람에게 기대라. 우리는 사람으로 인해 무너져도, 또 사람으로 인해 다시 일어난다. 우리를 ‘완전히’ 치유하는 건 사람이 사람에게 건네는 온기이다.” 사람과 AI의 관계를 낯설지만 아름답게 풀어내 오스카 등 여러 각본상을 받은 이 영화는, A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매우 현실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 인공지능 시대에 우리가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 아마 그것은 인간다움, 연약함, 그리고 그 연약함 속에서 피어나는 사람 사이의 진정한 아름다움일 것이다. 김선주 / NJ 케어플러스 심리치료사오픈업 사랑 인공지능 사만다 주인공 테오도르 사실 사만다
2025.09.04. 18:39
남가주에 사는 한 여성이 인공지능 딥페이크 영상으로 꾸며진 연애 사기에 속아 전 재산과 집까지 잃는 참극을 겪었다. 피해자 아비게일 루발카바(66)는 1년 전 페이스북에서 우연히 ‘제너럴 호스피털’ 배우 스티브 버튼이라 속인 계정을 만나 대화를 시작했다. 상대는 실제 배우의 얼굴과 목소리를 본뜬 AI 딥페이크 영상과 음성 메시지를 보내며 그녀를 속였고, 결국 루발카바는 그와 사랑에 빠졌다고 믿게 됐다. 하지만 사기범은 곧 돈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루발카바는 감정적으로 조종당하며 현금, 수표, Zelle, 비트코인 등으로 8만1,000달러를 송금했고, 나중에는 가족의 콘도까지 시세보다 훨씬 낮은 35만 달러에 팔아 대금을 사기범에게 보냈다. 그녀의 딸 비비안 루발카바는 어머니가 양극성 장애를 앓고 있어 더 취약했다고 설명했다. “엄마는 ‘이게 어떻게 AI냐, 얼굴과 목소리가 똑같다’며 제 말을 믿지 않았어요.” 비비안은 사기를 알아차린 직후 의료 소견서를 제출하고 소송 절차에 들어갔지만, 이미 주택은 새 주인에게 넘어가 재판매까지 이뤄졌다. 현재 새 소유주는 되사려면 10만 달러를 더 내라고 요구하고 있고, 가족은 오는 9월 3일 강제 퇴거 위기에 놓여 있다. 배우 스티브 버튼은 본인 명의가 악용된 사실이 알려지자 SNS를 통해 팬들에게 사기 주의를 당부했지만, 루발카바 가족에겐 너무 늦은 경고였다. 현재 가족은 고펀드미(GoFundMe)를 통해 소송 비용 마련을 호소하고 있다. AI 생성 기사남가주 사랑 남가주 여성 연애 사기 제너럴 호스피털
2025.08.28. 15:23
지난 1일부터 사흘간 열린 KCON LA 2025는 LA 전역을 K-컬처의 열기로 물들였다. LA 컨벤션 센터에 마련된 100여 개 기업 부스는 K-뷰티, K-푸드, K-콘텐츠를 체험하려는 관객들로 가득 찼다. 크립토닷컴 아레나에서는 NCT 127, 몬스타엑스, 에스파, 세븐틴 등 톱 아티스트들이 무대를 빛냈다. 팬들의 함성과 팬 라이트 물결이 하나 되어 축제의 절정을 이뤘고, 사흘간 무려 12만 5000여 명이 현장을 찾았다. 또 글로벌 스트리밍을 통해 북미·남미·유럽 팬들까지 함께했다. 직업병 때문일까. 환호와 노래로 가득한 공연장 한가운데서도 내 시선은 무대가 아닌 팬들의 손으로 향했다. 슬로건 배너, 아티스트 이름이 새겨진 티셔츠, 커스텀 포토카드 등 그중 상당수는 팬들이 직접 만든 ‘팬메이드 굿즈’였다. 이는 해당 아티스트나 기획사의 등록상표이자 저작권 자산이다. 그런데 만약, 이 굿즈들이 상업적으로 판매된다면? 혹은 대량으로 유통된다면? 그 순간, 팬의 사랑은 상표권 침해, 저작권 침해, 심지어 퍼블리시티권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팬이 만든 굿즈 디자인을 제3자가 상표로 선등록하여 아티스트 본인이 상표를 쓰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또한 팬이 만든 슬로건이 무단 유통되다가 공식 굿즈 매출에 타격을 주는 사례도 적지 않다. 무심코 만든 굿즈가 사랑의 표현을 넘어 법적 문제로 이어질 수 있기에, ‘사랑’과 ‘침해’의 경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기억해야 할 5가지 지식 재산 권리가 있다. 첫째, 저작권인 공연과 콘텐츠의 창작물 보호다. 무대, 음악, 안무, 영상, 사진은 모두 창작자의 저작물이다. 무단 녹음·녹화·배포는 저작권 침해가 될 수 있다. 둘째, 로고, 아티스트 이름, 투어명, 부스 브랜드명은 모두 상표권으로 보호된다. 이를 비공식 굿즈에 무단 사용하면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다. 셋째, 아티스트의 얼굴, 이름, 사인, 음성 등은 퍼블리시티권에 의해 보호된다. 팬이라 하더라도 이를 광고나 상품에 무단으로 사용하면 침해자가 될 수 있다. 팬아트나 팬메이드 굿즈는 비영리 목적으로만 제작하고, 판매는 지양해야 한다. 넷째, 위조 상품들은 사랑을 가장한 침해물이다. 행사장 주변이나 온라인에서 판매되는 짝퉁 굿즈는 품질이 떨어지고 아티스트의 브랜드 이미지를 훼손한다. 이러한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공식 판매처를 이용하고, 인증 스티커로 정품 여부를 확인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불법 촬영·생중계의 위험성이다. 추억이 침해로 변하는 순간이다. “나만 보려고 찍었어요”라 해도 공연 영상이나 사진을 온라인에 업로드하면 저작권 침해가 된다. 촬영 허용 구역과 시간을 준수하고, SNS에 공유하기 전 권리 여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지식재산권은 단순한 법률 용어가 아니라, 아티스트의 창작과 브랜드 가치를 보호하는 가장 강력한 장치이자 K-POP과 K-콘텐츠 산업의 성장 동력이다. 무대와 음악, 로고와 이름, 그리고 아티스트의 얼굴과 목소리는 수많은 기획·제작 인력과 자본, 창의적 노력이 결합된 결과물이다. 이 권리들이 존중받아야만 새로운 콘텐츠에 대한 투자와 창작이 계속 이어지고, K-문화가 세계 무대에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 팬의 사랑이 진정성을 잃지 않으려면, 그 마음이 권리를 해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권리를 존중하는 소비와 참여가 쌓일 때, K-컬처는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글로벌 문화로 자리 잡을 수 있다. 지은정 미국변호사·KOIPA LA IP CENTER 센터장지식재산 컨설팅 사랑 저작권 침해 상표권 침해 로고 아티스트
2025.08.12. 19:36
“가자지구 어린이들 생각에 마음이 너무 아프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공감하시는 분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어떻게 조언하셨을까. 대종사께서는 사랑 때문에 서로 떨어져 있는 것을 괴로워하거나, 본인이 해야 할 일에 지장을 주는 것을 애착이라 하며 사랑과 애착을 구분하였다. 모든 생령이 한 기운, 모두가 부처, 자비심을 가르치고 배우는 불교 입장에서 가자지구 어린이들을 보며 대자대비심을 내는 것은 자연스러움을 넘어 진리적으로도 바람직한 모습이다. 다만, 그 마음 때문에 괴로워하거나, 본인 일에 지장을 받는다면 이는 부처님 가르침에 벗어난다. 낮에 직장에서 동료와 갈등이 있었다면, 아무리 반가운 친구와의 저녁 식사 자리도 편치 않다. 고통의 주된 원인은 특정한 사건 자체라기보다는 그 일에 대한 착심 때문으로 봐야한다. 집착은 무조건 도외시해야 하는 것인가? 중학생 시절, 버스 안에서 어느 고등학생 누나가 과제를 잃어버려 울던 장면을 본 적이 있다. 바느질 관련한 과제였던 것 같았는데, 들어보니 과제에 대한 걱정보다는 수일에 걸친 본인의 정성에 대한 아쉬움 때문인 것 같았다. 그땐 ‘운다고 달라질 게 있나’ 싶었지만, 그 일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과연 설교나 칼럼 원고를 잃어버린다면 그 소녀처럼 한참을 서럽게 울만큼 치열하게 매사에 정성을 들여왔나 하는 성찰을 하게 된다. 착심을 놓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매사에 담백하게 임할 것을 당부한다. ‘담백’을 거리를 두고 사랑하고, 대충 정성을 들이라는 말로 오해하면 안 된다. 진심을 다해 사랑하고 온 정성을 다해 과제에 임하되, 착 없이 하라는 말이다. 대종사께서는 무관사(無關事)에 동하지 말라고도 하셨다. 나와 크게 관계없는 일에 마음을 과히 쓰지 말라는 뜻이다. 일체 생령이 한 기운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말하는 불교에서, 그것도 ‘사람’에 대한 연민을 무관사라 할 수 있을까? ‘나와 관계없는 일’이라기보다 ‘감당할 수 없는 일에 정신기운을 소모하지 말라’는 뜻으로 이해해야 한다. 비록 미국에 살지만, 가끔은 한국 정치에 관심이 간다. 원하지 않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속상하기도 하고, 정부 정책이 마음에 안 들면 마음이 편치 않다. 정치적 견해를 갖는 일은 여론 형성을 통한 정치참여라는 점에서 현대 민주주의에서 요구되는 덕목이기도 하지만, 며칠 밤잠을 설친다고 대통령이나 정책이 바뀔 리가 없는데 그로 인해 내일에 지장을 준다면, 그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을 것이다. 자녀의 일이나, 친구, 후배의 일도 마찬가지이다. 관심과 집착은 구분해야 한다. 수행의 궁극 목적은 시끄러운 도시 한복판과 스트레스로 가득한 직장 관계에서 마음의 평안을 유지하는 것이지만, 조용한 곳에서조차 마음의 평안을 유지하지 못하는 사람이 시끄럽고 스트레스가 많은 곳에서 마음의 평안을 유지하고, 바른 판단을 할 리가 만무하다. 쿠션 위 명상이 중요한 이유다. 가자지구 어린이 때문에 고민하는 수행자에게 좀 더 폼 나고 근사한 조언을 하고 싶지만, 수행이 깊지 못한 탓인지 쿠션 위의 명상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걸 보면 어쩔 수 없나보다. [email protected] 양은철 / 교무·원불교 미주서부훈련원삶의 향기 사랑 집착 사랑 때문 가자지구 어린이들 마음 때문
2025.07.28. 17:39
오스카 시상식 공식 만찬 ‘거버너스 볼’에서 30년째 총괄 셰프로 활동 중이며, 할리우드 외식 문화를 바꾼 셰프 울프강 퍽이 LA에서 자신이 단골로 찾아가는 맛집 다섯 곳을 공개했다. 지난 16일 시크릿LA에 따르면, 퍽이 소개한 단골 식당은 자신의 추억과 요리 철학이 담긴 장소들이다. 베벌리힐스의 스시 레스토랑 ‘마츠히사(Matsuhisa)’는 퍽이 오랜 인연을 맺어온 세계적 셰프 노부 마츠히사의 첫 매장이다. 마츠히사 셰프는 전 세계 55개 레스토랑과 18개 이상의 호텔을 운영하는 글로벌 브랜드 ‘노부(Nobu)’의 창립자이자, 제임스 비어드 어워드(요리계의 오스카상)를 수상한 인물이다. 퍽은 이곳에서 할라피뇨를 곁들인 방어회와 된장을 곁들인 은대구 요리를 즐겨 주문한다고 말했다. 정통 이탈리안 요리를 즐기고 싶을 땐 ‘안젤리니 오스테리아(Angelini Osteria)’를 찾는다. 이곳은 20년 넘게 같은 자리를 지켜온 이탈리아 가정식 레스토랑으로, 퍽이 아이들과 함께 자주 찾았던 추억의 공간이다. 퍽은 화이트 트러플 피자와 티라미수를 특히 즐긴다고 말했다. 간단한 식사가 필요할 땐 베벌리힐스 호텔 안에 자리한 ‘파운틴 커피룸(The Fountain Coffee Room)’을 찾는다. 좌석이 10석 남짓한 작은 공간이지만, 클래식한 다이너 분위기와 조용한 아침 풍경이 매력이다. 퍽은 매번 팬케이크와 햄버거를 주문했다고 한다. 중동과 지중해 요리를 즐기고 싶을 땐 아트 디스트릭트에 위치한 ‘바벨(Bavel)’을 찾는다. 불향을 살린 직화 요리와 다양한 향신료가 어우러진 메뉴를 여럿이 함께 나눠 먹는 방식이 특징이다. 대표 메뉴로는 불에 구운 당근, 양고기, 채소 요리 등이 있다. 중식이 당길 땐 카토(Kato)를 찾는다. 통찜 생선, 블랙빈 게 요리, 볶음밥을 즐겨 주문한다고 했다. 절제된 인테리어와 오픈 키친도 인상적이다. 그는 “단순히 맛있는 식당이 아니라, 내게 요리의 영감을 주는 공간”이라며 “좋은 음식은 좋은 기억에서 시작된다”고 덧붙였다. 한편, 오스트리아 출신의 퍽 셰프는 1975년 LA에 정착해 ‘마 메종’ 수석 셰프로 활동하며 이름을 알렸고, 1982년 선셋 스트립에 레스토랑 ‘스파고(Spago)’를 열어 훈제 연어 피자를 유행시키는 등 미국 외식 문화에 큰 영향을 줬다. 정윤재 기자 [email protected]울프강 사랑 셰프 울프강 la 맛집 세계적 셰프
2025.07.16. 20:20
어느 단발머리 시절, 라디오에서 ‘모모는 철부지, 모모는 무지개, 모모는 생을 쫓아가는시계바늘이라. 모모는 방랑자, 모모는 외로운 그림자, 너무 기뻐서 박수를 치듯이 날개짓하며...’라고, 외치듯이 부르던 노래가 노력하지 않아도 귀에 탁 박히도록 유행한 적이 있었다. 소설, ‘자기 앞의 생’을 소재로 했던 노래… 드디어 이번에 제대로 읽어보게 되었다. 며칠 후면 처음 가보는 남프랑스 여행에 대한 예의이기도… 혹은 로맹가리 책을 두 권이나 국제 우편으로 뉴욕에 보내주셨던 로맹가리 전문 번역가를 만나기 전의 예의이기도 했으려나… 두 번의 특별한 결혼, 그리고 헤밍웨이처럼 스스로 삶을 마감한 특별한 이력을 갖춘 프랑스의 대표 소설가 로맹 가리가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1975년 출판한 이 책은 1970년 파리의 빈민가를 배경으로 무슬림 고아 소년 모모를 주인공으로 한다. 매춘부 출신이지만, 어느 새벽에 호출이 되었다가 그 길로 홀로코스트에 끌려가서 가까스로 살아나온 트라우마를 지닌 유대인로자 아줌마는 자신 삶의 부채의식을 의지할 곳 없는 매춘부의 어린아이들을 돌봐준다는 선의로 연명하면서, 다른 아이는 몰라도 모모만큼은 지원이 끊겨도 꼭 돌봐주겠다는 의지가 선명했다. 소설 초반부에는 열 살 소년이라고 나오지만, 실제로 열네 살, 사춘기 소년이었던 모모는, 친아버지가 매춘부와 사랑에 빠져 그를 낳았으나, 의처증으로 친모를 살해한 후, 정신병원 치료를 받다가 심장병으로 인한 죽음을 앞두고 팽개쳐뒀던 아들을 찾으러 오면서 극적으로 만나게 된다. 그러나, 모모를 잃지 않으려던로자 아줌마가 유대인 소년 모세를 친아들이라며 거짓 소개하는 바람에, 독실한 무슬림이었던 친아버지는 종교적 충격으로 인해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시도 때도 없이 엄마를 그리워했으나 끝내 만나지 못한 모모는, 로자 아줌마에게 세상 최고의 사랑을 주며, 두 사람은 서로에게 최상의 위로자가 되어 살아간다. 그러던 로자 아줌마가 늙고 병들어 요양원에 가야 하는 처지가 되었으나, 다른 이들의 주장을 뒤로한 모모는 그녀가 요양원 가기를 죽기보다 싫어했던 점을 잊지 않고, 그녀의 아지트인 지하의 세계로 그녀를 데리고 내려가 그녀와의 약속을 지키면서 끝까지 아름답게 임종을 지켜준다는 것이 책의 줄거리이다. “한 아이를 키우는 데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고 한다. 우리의 삶은 물론 가족이라는 가장 끈끈하고도 기본적인 단위에서 시작되어, 가족들만 잘 먹고 잘살아도 행복할 수 있을 것이지만, 길에서 만난 타자, 완전한 타인으로부터도 더 끈끈한 삶의 원동력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남다른 소소함으로 말해주는 소설이었다. 사회적인 약자로, 매춘을 생계의 수단으로 삼는 이들, 마약, 절도, 상해 등으로 삶이 얼룩져 있지만, 갱생의 삶을 지향하며, 엘리베이터도 없는 7층 건물을 두 발로 오르락거리며 사는 중에도, 이웃들과 진심으로 위로와 사랑을 나누는 소설 속 인물들에게서 언뜻, 혈연관계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으로, 2018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어느 가족’이라는 영화도 오버랩이 됐다. 꼭 가족 간이 아니어도 사랑은 주고받을 수 있는 ‘내 안의 기적’임을 보여주는 공통분모가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살아가면서 멘토로 여기며 많은 인생 질문을 해왔던 동네어른, 하밀 할아버지에게 어느 날 모모가 질문을 한다. “사람이 사랑 없이 살 수 있나요?…” 그때, 부끄러워하며 “사실… 그렇단다.”하고 대답하는 할아버지의 말을 듣자마자, 모모가 울음을 터뜨리며 뛰어나가는 장면이 떠오른다. 작가가 역설적으로 우리 삶의 치명적 실수, ‘사랑의 부재’ 속에서도 부단히 바쁜 척, 별일 없는 척, 잘 살아가는 척 달려가는 우리에게 넌지시 건네주는 메시지가 아닐까… 우리는 정말… 사랑 없이도 잘 살 수 있는 것일까… 박영숙 / 시인이 작품과 만나다 사랑 아자르 로자 아줌마 유대인 소년 대표 소설가
2025.07.15. 18:00
'2025년 밀알 서부지단 연합 사랑의캠프'가 지난 26~28일 캘스테이트 롱비치 캠퍼스에서 성황리에 개최됐다. 올해 사랑의캠프에는 남가주와 북가주, 캐나다 밴쿠버 밀알 가족들과 더불어 ANC온누리교회 GM과 청년 트랙팀 등에서 약 370명의 장애인 참가자들과 자원봉사자, 스태프들이 참석했다. [남가주 밀알선교단 제공]밀알 사랑 밀알 사랑의캠프 남가주 밀알선교단 밀알 서부지단
2025.06.29. 20:34
사랑, 연인이라는 통상적 단어가 이들 사이에서는 금기어가 된다. 브로크백 마운틴(Brokeback Mountain)에서 만난 두 남자의 원초적 시선이 그 사랑의 시작이었다. 2005년 대만 출신의 거장 이안 감독이 애니 프루의 동명 단편 소설을 각색, 영화화한 ‘브로크백 마운틴’이 올해로 20주년을 맞았다. 2006년 아카데미상에 작품상, 남우주연상, 남우조연상, 여우조연상 등 최다 8개 부문 후보에 올랐고 감독상, 각색상, 음악상 3개 부문을 수상했다. 그해 작품상이 ‘브로크백 마운틴’이 아닌, ‘크래쉬(Crash)’로 선정된 것은 역대 아카데미상 최대 오점 중 하나로 거론된다. 영화가 발표된 2005년 당시, 할리우드 주류 영화에서 동성애를 주된 서사로 다룬다는 것은 금기에 가까운 파격적인 시도였다. 특히 ‘서부극’이라는 전통적인 남성성을 상징하는 장르에 동성애 코드를 접목한 것은 보수적 성향의 대중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브로크백 마운틴’은 동성애를 특정 소수자의 문제가 아닌, 보편적인 인간의 사랑과 상실, 그에 따른 고뇌 등 비극적인 감정으로 접근했다. 이는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토론을 촉발했고 관객들을 동성애 커플의 감정선에 깊이 공감하게 하여 동성애에 대한 대중의 편견과 고정관념을 허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영화의 배경이 된 1960년대 와이오밍은 매우 보수적인 사회였고, 동성애 행위가 발각되면 폭력의 대상이 되던 시절이었다. 영화는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통해 두 주인공의 사랑이 얼마나 외롭고 고통스러운 여정이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1960년대 와이오밍의 브로크백 마운틴의 양 떼 방목을 위해 에니스(히스 레저)와 잭(제이크 질렌할)이 채용된다. 이들은 낮에는 초원으로 양들을 몰아 풀을 먹이고 밤에는 방목지 근처 텐트에서 잠을 자며 양을 돌본다. 부족한 음식을 보충하기 위해 사슴을 사냥해서 먹는 등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 지면서 잭과 에니스는 조금씩 서로에게 이끌린다. 이들은 식사를 같이하는 등 하루 종일 함께 지내지만 서로 맡은 일이 달라 밤에는 각자의 텐트에서 따로 잠을 잔다. 둘은 어느 날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다 취해버린다. 양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하는 에니스는 몸을 가눌 수 없어 땅 바닥에 담요를 덮고 누워 동이 트길 기다린다. 모닥불이 꺼지고 추위에 떠는 에니스를 잭은 텐트 안으로 들어오라 한다. 옆자리에 누운 에니스를 뒤에서 포옹하는 잭의 돌발행동에 놀란 에니스는 자리에서 일어나지만 끝내 뿌리치지 못하고 관계를 맺는다. 잠시 동안의 어색한 시간이 지나가고 둘은 서로에게 강하게 끌리며 더욱 친밀해져 간다. 사랑에 빠진 두 남자는 예상보다 일찍 철수하게 되면서 기약 없이 헤어진다. 에니스는 알마(미셸 윌리암스)와, 잭은 루린(앤 해서웨이)과 결혼해 자녀를 낳고 살아간다. 에니스를 잊지 못하는 잭이 4년 만에 찾아온다. 둘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후미진 곳으로 들어가 키스로 재회의 기쁨을 나눈다. 우연히 이 광경을 목격한 알마는 충격에 휩싸이고 두 남자의 관계가 지속하는 것에 절망한다. 이 사실을 모르는 에니스는 평소와 다름없이 행동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받은 알마는 에니스와 이혼한다. 20년 동안 이어진 잭과 에니스의 만남은 잭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끝맺음을 맺는다.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방황하다 끔찍한 최후를 맞은 잭의 본가를 찾아가는 에니스, 가고 없는 잭의 방에 앉아 그를 그리워한다. 평생 자신을 감추고 억압하고 부인하며 살아왔던 에니스의 애처로운 모습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브로크백 마운틴’은 전반적으로 섬세하고 깊이 있는 연출, 두 주연 배우를 포함한 전체 캐스팅의 뛰어난 앙상블 연기, 아름다운 영상미와 음악이 조화를 이룬 명작으로 평가받는다. 이안 감독은 와이오밍의 거대한 자연을 배경으로 두 남자의 비극적인 사랑을 자극적이거나 선정적으로 그리기보다, 인간의 외로움, 갈망, 그리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비극성을 서정적이고 절제된 방식으로 표현했다. ‘브로크백 마운틴’은 퀴어 영화가 예술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갖추며 주류 영화계에서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준 최초의 영화로 영화사적 가치를 지닌다. 동성애라는 민감한 주제를 인간적 감정으로 승화시켜 대중에게 다가섰고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와 퀴어 영화의 지평을 넓히는 선구자 역할을 했다. 영화의 아카데미상 수상은 동성애 영화가 특정 커뮤니티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대중적으로도 충분히 공감될 수 있는 주제임을 증명하며 이후 퀴어 영화들이 더 넓은 관객층에 어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문라이트’ 등 다양한 퀴어 영화들이 발표되어 아카데미상을 받는 등, 퀴어 영화의 위상은 해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브로크백 마운틴’의 흥행 성공은 사회적 변화와 함께 진화하며 문화적 다양성을 확장하는 동기가 되었다. 최근 동성애 영화는 LGBTQ+ 스펙트럼 전반을 아우르며, 성을 남녀로 구분하지 않는 ‘논바이너리’, 지정받은 성을 스스로 정체화하는 ‘트랜스젠더’, 무성애자를 뜻하는 ‘에이섹슈얼(Asexual)’ 등 이전보다 훨씬 다양한 이슈들을 다루고 있다. 특정 정체성이나 경험에 초점을 맞춘 세분된 이야기도 증가하고 있으며, 아시아 등 비서구권 영화에서도 활발한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히스 레저와 제이크 질렌할의 강렬하고 몰입 적인 연기는 영화를 명작의 반열에 올려놓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레저는 과묵하고 감정을 억누르는 에니스의 고뇌하는 내면을 눈빛과 미세한 표정 변화만으로 완벽하게 표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레저는 2008년 1월 뉴욕의 자택에서 28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는데 다음 해 ‘다크 나이트’의 조커 역으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 사후에 남우조연상을 받은 최초의 배우가 된다. 제이크 질렌할 역시 에니스에 대한 순수한 사랑과 좌절을 동시에 지니고 살아가는 불운한 남자 잭을 탁월하게 그려냈다. 미셸 윌리엄스와 앤 해서웨이 등 조연 배우들의 연기 또한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기여했다. 드넓은 와이오밍의 웅장한 자연 풍광, 그 속에 묻혀 있는 브로크백 마운틴의 고독함은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그 고독함이 없었던 들, 애초에 두 남자의 사랑은 싹트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김정 영화 평론가 ckkim22@gmailcom영화사 사랑 브로크백 마운틴 동성애 행위 동성애 코드
2025.06.25. 19:00
워싱턴통합노인연합회(회장 우태창)와 버지니아한인회(VSOK)는 공동으로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워싱턴지역 6.25참전 유공자와 어려운 독거 어르신들에게 사랑의 쌀을 23일 전달했다. 이날 정오 H마트 버크점에서 가진 전달식에는 대한민국 6.25참전 유공자회 워싱턴지회 신진균 회장 대행을 비롯해 김용하 메릴랜드 몽고메리 한인회장, 김영태 H마트 버크점장 등 주요 인사들과 노인아파트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신진균 회장 대행은 “노인연합회가 제75주년 6.25를 맞아 한국전쟁 참전 용사들을 잊지 않고 예우를 해준데 대해 깊이 감사를 드린다”며 “참전용사들을 기리는 마음이 한인사회 전체로 확산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우태창 노인회장은 “호국보훈의 달과 6.25를 맞이하여 국가와 한인커뮤니티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봉사하신 어르신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쌀 나눔 행사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15파운드짜리 100포대는 한국전쟁 참전 유공자를 포함 에버그린, 앰우드, 락우드, 타이슨타워, 알렉산드리아 노인아파트 등에 있는 독거노인들에게 전달된다. 워싱턴통합노인연합회는 지역사회 봉사활동을 지속적으로 진행하는 등 단체로서의 책임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김성한 기자 [email protected]호국보훈 사랑 25참전 유공자회 한인회장 김영태 한국전쟁 참전
2025.06.23. 12:08
이른 아침, 어둠을 밀어내는 이슬을 밟는다. 담벼락을 따라 번져가는 햇살이 눈 부시다. 그 사이로 커피잔을 든 채 전화를 받으며 자동차로 향하는 사람이 보이고, 신문을 든 채 뛰어가는 이, 시동을 걸어 놓고 물건을 찾느라 소리치는 이도 눈에 들어온다. 그렇게 어제와 다르지 않은 하루가 시작된다. 분주한 하루가 저물고 어둠이 내릴 즈음, 나직이 되뇌어 본다. “그래도 하나님은 나를 잊지 않으시지.” 나는 잊고 있었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약속을 지키시며 나와 동행해 주셨다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그러나 그 하나님과 함께 걷는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나는 내 일, 내 감정, 내 필요에만 얼마나 매달려 있었던가. 하나님은 그저 아플 때는 의사가 되어 주시고, 속상하면 위로자가 되어 주시며, 부족하면 채워 주는 분이라고만 믿었다. 어릴 적, 붐비는 장터에는 늘 어묵 가게가 있었다. 좁은 가게 틈에 어깨를 밀어 넣고는 10원어치 어묵을 참 맛있게도 먹었다. 찌그러진 양은 사발에 담겨 나온 어묵 두 개를 다 먹고 나면 대나무 꼬치만 남았고, 가게 바닥에는 어묵 없는 꼬치들이 한가득 널려 있었다. 문득 그 꼬치들 속에서 하나님이 겹쳐 보인다. 나는 하나님을 그렇게 대해 온 것이 아닐까. 정작 가장 어리석은 것은, 그런 대접을 받으시면서도 여전히 나와 함께하시는 이유조차 묻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토록 내 곁에 있고 싶어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보지 못했다. 어묵 없이 팽개쳐진 꼬치가 되더라도, 사랑하는 이의 배를 채우려는 그 마음을 외면했던 것이다. 나는 보지 못했다. 하나뿐인 아들의 목숨을 나에게 주셨을 때조차 그 사랑을 깨닫지 못했다. 어찌 이리 어리석고 무딜 수 있는가. 그런데도 하나님은 오늘도 나와 함께 걸으신다. 내가 좋아서, 나를 보고 싶으셔서 그러하신다. 나와 말하고 싶으셔서 내 안에 오신다. 함께 숨 쉬고, 함께 고통받고, 함께 눈물 흘리신다. 이 바쁜 세상에서, 아무도 나를 생각하지 못하는 그 순간에도 하나님은 나를 생각하신다. 그 사랑 앞에서 나는 오늘도 질문을 받는다. 너는 그 사랑을 사랑하고 있느냐고. 그 사랑에, 너의 심장은 어떻게 뛰고 있느냐고. [email protected] 한성윤 / 목사·나성남포교회등불 아래서 오뎅 사랑 어묵 가게 대나무 꼬치 어치 오뎅
2025.06.02. 17:47
최근에 영성가 헨리 나우엔 신부님의 책 ‘예수의 길’을 읽으면서 유카리스티어란 단어에 대한 묵상 부분에 많은 공감을 했다. 감사는 단순한 기분이 아니다. 우리는 흔히 감사를 감정이나 태도로 이해한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았을 때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감사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성경 속 헬라어 유카리스티어, 곧 ‘감사’는 훨씬 더 깊고 실천적인 개념이다. 이 단어는 헬라어에서 ‘eu(좋은)’와 ‘charis“(은혜, 은총)’가 합쳐져 ‘선한 은혜에 대한 응답’을 의미한다. 이는 단지 말로 표현되는 감사가 아니라, 받은 은혜에 대한 전인격적이고 능동적인 응답이다. 예수께서 최후의 만찬에서 떡과 포도주를 들고 감사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나눠주신 장면은 유카리스티어의 본질을 드러낸다. 그 감사는 단순한 감사기도가 아니라, 자신의 몸을 세상을 위한 생명의 떡으로 내어주는 행위로 이어지는 감사였다. 즉, 진정한 감사는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의 실천으로 나타난다. 유카리스티어는 세상을 위한 축제다. 유카리스티어는 성찬의 또 다른 이름이다. 그러나 성찬은 단순한 교회 안의 의식이 아니다. 세상을 위한 축제요, 공동체가 다시 세상으로 파송되는 출발점이다. 성찬을 통해 우리는 ‘이것은 너희를 위한 내 몸이다’라는 예수의 선언을 기억하며, 동시에 ‘이제 너희가 세상을 위해 나의 몸이 되라’는 부르심을 함께 듣는다. 감사하는 공동체는 더 이상 자기 자신만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은혜를 받았기에, 그 은혜를 흘려보내야 한다. 성찬의 떡을 나누는 손은 세상의 고통 속에 있는 자들을 향해 뻗어져야 하며, 포도주의 잔은 위로와 소망이 필요한 이들과 함께 나누어야 한다. 유카리스티어는 세상을 섬기는 삶의 시작점이며, 섬김은 감사를 실현하는 방식이다. 감사는 정의와 평화의 씨앗이다. 오늘날 세상은 고통과 분열, 무관심과 탐욕으로 얼룩져 있다. 그러나 유카리스티어적 삶은 그 반대의 길을 걷는다. 그것은 은혜에 감사하며, 받은 것을 움켜쥐기보다 나누고, 세상과의 연대를 선택하는 삶이다. 참된 감사는 나만 잘 사는 것이 아니라 함께 잘 살 수 있도록 행동하게 만든다. 그래서 유카리스티어는 단순한 종교 행위가 아니라, 정의와 평화를 심는 혁명적 행위이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은 결국 이웃에게 책임지는 사람이다. 감사는 머리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손발로, 시간과 재정으로, 친절과 봉사로 드러나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예배다. 유카리스티어, 감사는 단지 말이나 감정이 아니다. 그것은 받은 은혜에 대한 삶 전체의 응답이며, 그 응답은 세상을 향한 사랑과 섬김으로 나타난다. 우리는 매일의 삶 속에서 유카리스티어적 존재로 살아갈 수 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교회와 사회에서 우리는 모두 세상을 위한 떡이 되어야 한다. 또한 한인들이 이 미국땅에서 받은 은혜를 갚을 시기이다. [email protected] 이종찬 / J&B푸드컨설팅 대표종교와 트렌드 감사 사랑 유카리스티어 감사 헬라어 유카리스티어 은혜 은총
2025.05.26. 14:27
5월은 흔히 ‘가정의 달’이라 불리지만, 그 중심에 있는 날을 꼽으라면 단연 어머니날입니다. 해마다 돌아오는 이날은 우리의 가장 깊은 감정과 기억을 자극합니다. 이 시기마다 저는 『논어(論語)』 안연(顔淵)편의 한 구절을 떠올리곤 합니다. ‘사랑하면 그가 살기를 바라고, 미워하면 죽기를 바란다(愛之欲其生, 惡之欲其死).’ 공자는 이 말을 통해 인간 감정의 간사함, 그리고 애정이 증오로 뒤바뀌는 마음의 허약함을 경계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말에서 앞 부분만을 떼어내어 곱씹고 싶습니다. 사랑하면, 그가 살기를 바란다고 합니다. 사랑이란 결국, 누군가가 잘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닐까요. 저는 그 사랑의 가장 높은 형태가 ‘효(孝)’라고 믿습니다. 효는 단순히 부모를 공경하는 윤리적 행위가 아니라, 부모님께서 이 세상에 건강히 살아 계시기를 기원하는 간절한 정성입니다. 효(孝)라는 글자의 기원을 살펴보면 그 의미는 더욱 깊어집니다. 일반적으로는 ‘늙을 로(老)’와 ‘아들 자(子)’의 합자로 알려져 있지만, 어머니가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모습을 본뜬 상형문자에서 유래하였다고도 합니다. 생명을 잇는 행위 자체가 효이며, 그것은 곧 ‘살기를 바라는 사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진료실에서 자주 보는 장면이 있습니다. 진료를 기다리시는 어머님께서 조용히 휴대전화를 들어 전화를 거십니다. “어~ 에미냐? 잘 지내니? 그냥 한번 걸어봤다.” 그리 길지 않은 이 짧은 통화는,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깊은 마음을 담고 있는 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식의 일상에 방해가 될까 염려되어 “그냥”이라는 말을 덧붙이시는 것이지요. 그 안부는 결코 심심해서 걸린 전화가 아닙니다. “네가 괜찮은지만 확인하고 싶다”는, 말 없는 사랑이 그 안에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이런 부모님의 마음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그 마음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소리없이 전해지는 사랑이기에 더욱 묵직하고 따뜻합니다. 그 전화 한 통, “그냥 한번 걸어봤다”는 그 말 속에는 “그저 너는 걱정없이 잘 살아만 있어다오”라는 간절함이 스며 있는 것입니다. 어릴 적, 어버이날이면 학교에서 카네이션을 만들고, “나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로 시작하는 노래를 불렀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이 노래는 불교 경전 『부모은중경』의 구절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 감내하는 열 가지 은혜를 노래한 이 경전은 종교를 떠나 사람이라면 누구나 되새겨볼 만한 귀한 가르침입니다. 이즈음 저는 ‘고황(膏?)’이라는 혈자리를 떠올립니다. 고황혈은 등 뒤 견갑골 아래쪽, 방광경 위에 위치하며 목과 어깨, 등 주변의 근육들과 연관된 자리입니다. 근육의 긴장이나 만성적인 통증 치료에 자주 활용됩니다. 이 혈자리의 의미는 매우 특별합니다. 왜냐하면 이 자리는 누구나 스스로는 손이 닿지 않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누군가의 따뜻한 손길 없이는 닿을 수 없는 지점이 생긴다는 사실, 이 고황혈이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셈입니다. 그래서 고황은 단순한 치료점이 아니라, ‘타인의 정성과 관심이 꼭 필요한 곳’입니다. 어머니날 즈음, 멀리 계신 부모님께 “그냥 한번 걸어봤다”고 전화가 오시기 전에 먼저 전화 한 통 드려보시고, 가까이 계시다면 직접 찾아뵙고 고황혈 부위를 손으로 부드럽게 문질러 드려보시길 권합니다. 그리고 그때, 이렇게 말씀드려보시지요. “엄마, 폭삭 속았수다.” 제주도 사투리로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라는 뜻으로 요즘 넷플릭스에서 가장 인기있는 한국드라마 제목입니다. 평소에 차마 표현하지 못했던 감사와 사랑이, 이 말 한마디에 그동안의 소원했던 마음이 다 담길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어머니날, 그저 꽃 한 송이와 형식적인 선물로 지나치셨다면 이제라도 “사랑하면 그가 살기를 바란다(愛之欲其生)”는 마음을 행동으로 보여드리는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어머니의 고황에 닿는 손끝이 곧 여러분의 사랑이고, 효(孝)입니다. 강병선 / 침뜸병원 원장혈자리로 보는 세상만사 어머니 사랑 윤리적 행위 불교 경전 견갑골 아래쪽
2025.05.12. 18: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