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급히 출근하려고 허둥지둥 자동차 키를 찾았지만,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알고 보니 아내가 내 차 키까지 갖고 출근한 것이었다. 잠시 화가 나기도 했지만 다행히 잃어버리지 않았다는 기쁨이 더 컸다.
라스베이거스에 살다 보니 종종 카지노 호텔을 가게 된다. 그런데 돌산 기슭 동네 한가운데 있는 한 카지노에는 유독 시니어들이 많이 모여든다. 그러다 보니 지팡이를 짚고 오는 사람, 쓰러질 듯 비틀대며 걸어 오는 사람, 휠체어를 이용하는 사람, 심지어는 산소통을 달고 오는 사람도 있다. 고독을 해소하고 병마도 잊기 위해 식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게임도 즐기는 것 같다. 건강한 사람들이야 어찌 그들의 속마음을 이해 하겠는가.
게임을 하다 보면 어쩌다 약간의 공짜 돈이 생긴다.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다. 누구나 비슷할 것이다. 잃어버린 것은 생각지 않고 한동안 기분 좋은 시간을 맛본다는 사실을 누가 부정하겠는가. 잃어버렸던 돈을 되찾았다는 기분일지 모르지만 되찾는다는 것은 기쁜 일이 아닐 수 없고, 소중함도 깨우쳐 주는 계기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이른 새벽 수술을 위해 딸 내외의 보호를 받으며 자동차로 라스베이거스 집을 출발해 애리조나 피닉스 소재 ‘메이어 크리닉’ 병원으로 향했다. 창밖을 내다보며 머릿속은 이런저런 생각에 착잡했지만 모든 것을 잊으려고 애를 썼다. 스치고 지나가는 창밖을 내다보니 모든 것이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하지만 수술이 끝나면 내몸의 중요한 장기 하나가 사라진다는 생각을 하니 왠지 불안하고 기분이 언짢았다.
사라진 물건을 다시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기대 속에서 지낼 수가 있겠고, 다시 찾는 기쁨을 느낄 기회가 있겠건만 영원히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한 가지 공포를 버리기 위해 한 가지 중요한 것을 버리는 거야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만 정말 아쉬운 일이었다. 두 가지 다 갖겠다는 것이 욕심이니 한 가지는 버리라는 주님의 뜻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잡념에 싸여 병원 약속 시간을 맞추려고 한참 달리다 보니 속도위반을 한 모양이었다. 경찰 신호에 정차 후 잠시 대화를 나눴지만 어김없이 속도위반 티켓을 주겠다고 했다. 사정을 설명했더니 그나마 가장 벌금이 가벼운 티켓을 받았다.
남의 초조한 마음을 알겠는가. 그것도 다행이라 생각하고 계속 달렸다. 애리조나 피닉스는 라스베이거스보다 1시간이 빠르다. 이른 새벽에 출발했는데도 시간이 촉박했다.
한가로운 피닉스 프리웨이를 달렸다. 양쪽 길가는 낮은 건물들이 옹기종기 있으나 인적은 드물고 자동차만 붐볐다. 길가 건물들 뒤편은 넓고 넓은 들이 한없이 펼쳐져 마음이 확 트이는 기분이었다.
수술은 잘 진행됐다. 깨어나 보니 모든 것이 잘 되었다고 했다. 운전과 안내, 수술 후 일주일간 병원에서 간호까지 한 딸과 사위가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르겠다.
병원 퇴원 후 집에 돌아왔는데 선글라스를 찾을 길이 없었다. 퇴원할 때 짐을 꼼꼼히 챙겼고 선글라스는 쓰고 돌아온 기억도 나는데….
가방을 샅샅이 뒤져봐도 없고 차 안을 두세 번 찾아봐도 없고, 입고간 재킷 주머니에도 없다.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 행방불명이다.
선글라스는 두 달 동안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다른 물건을 찾다 탁자 조그만 박스에서 우연히 발견됐다. 세상에, 언제 여기다 넣었는지 전혀 생각이 안난다. 이럴 수가 있나.
그동안 행방이 묘연한 선글라스 때문에 마음 한편으로 허전하고 섭섭했는데 찾고 보니 얼마나 반가운지 모르겠다. 잃어 버렸을 때의 허전함과 불안한 마음이 한순간에 사라지면서 잃었던 물건에 대한 소중함을 느꼈다.
그렇다. 가진 것들에 대해 늘 곁에 있을 때 그 가치를 모르고 잃어 버린 후에야 그 물건의 중요성과 그 의미를 깨닫는 것이 우리의 삶이 아닌가 생각한다
가수 오승근씨의 노래를 흥얼거려 본다. ‘있을 때 잘해 후회하지 말고. 있을 때 잘해 흔들리지 말고…’ 사랑하는 사람이나 가족이 곁에 있을 때 잘해주지 못하면 후회하니 지금 잘하고 소중히 여기라는 메시지가 아닌가. ‘잃어버림과 되찾음’을 통해 소중함을 아는 법을 체득하게 됐으니 감사한 일이다.
나는 몸의 장기 하나를 잃었다. 그러나 슬퍼하지 않는다. 또 후회하지도 않는다. 다만 내 몸과 내 이웃이, 그리고 주님이 주신 모든 사물에 대해 ‘잃어버림과 되찾음’을 통해 소중함을 깨닫고 감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