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 푸른 생선이 대세라 카믄서요 우린 참 조상님께 감사하지라 시커먼 피부에 눈까지 몰려 그물에 걸렸다가두 퇴출당해 부러버려 우린 욕도 잘 안 얻어 먹어야아 “눈 똑바로 뜨고 시방 뭐 하는 거여” 우린 생전 못 들어 본 소리랑께 작심하지 않아도 요래 겸손한 자태여 태어날 때부터 본시 납작하당께라 어쩌다 잡히면 발광않고 그대 밥상에 조신하게 오르리라 뼈도 발라 먹기 쉽게 생겼지라이 살도 솔찮이 많고 근디 부탁이 쪼깨 있소 지발 눈만 마주치지 말아주소 민망하다니께네 원래 요로코롬 돌아갔어라 그래서이 우리 가훈은 이것이여 “눈은 비뚤어졌어도 말은 바르게” 워메, 겁나 멋져부러 안그러요 눈 때문에 입을 조심하고 살었지라 홍유리 / 시인문예마당 가자미 우리 가훈
2025.10.30. 18:36
잎잎이 나부끼는 나뭇잎들은 가을의 언어 제 하늘 아래 여무는 나무 열매들도 가을의 언어 강물 따라 흘러가는 달빛도 단풍으로 갈아입는 산 빛도 가을로 가는 길 천지의 발걸음이 하나가 되어 가을에서 가을로 이어가는 다스림이다 가을은 오래된 하늘의 언어 저마다 제 하늘의 가을 글을 읽어나가는 소리 외로움과 그리움도 저 혼자 빛이 도는 가을의 언어 유병옥 / 시인문예마당 가을 언어 하늘 아래 나무 열매들
2025.10.30. 18:36
며칠 전 남편과 나는 얼굴도 잘 모르는 분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남편의 친구분의 아내다. 고인과는 10여 년 전 그 집 부친의 장례식에 참석했을 때 처음 만났다. 그러니까 고인은 큰 며느리다. 남편 동창들이 부부동반으로 모여 장례식이 끝나고 점심을 먹는데 그 부인은 우리에게 한 번도 오지 않고 우리가 볼 수 있는 곳에서 누군가하고 이야기에 열중해 있었다. 우리 중의 누구도 인사를 하러 가지 않았다. 흔한 일은 아니었기에 기억에 남았다. 고인의 장례식장이 거리가 가깝고 남편이 젊다면 혼자 가라고 하고 싶었다. 그런데 장소도 멀고 고인의 남편이 직접 부고를 보내와서 성의가 고마워 부부동반으로 참석했다. 장례식장 입구에서 고인의 남편을 만났다. 다소 불안하고 수척해진 얼굴에 흰색 턱시도를 입고 있었다. 별말 없이 고인의 남편과 인사를 나누고 조의금을 내고 고인의 관이 놓인 장례식장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고인의 사진이 양쪽 전면 상단에서 살짝 미소를 띠고 우리를 반겼다. 그 모습은 오래전에 언뜻 봤던 모습과 전혀 달랐다. 단정하면서도 정감가는 모습이었다. 동창 두 분과도 만나 인사 나누고 혼자 오신 동창분과 같이 자리를 잡았다. 장례식이 시작되었다. 고인의 조카인 목사님이 사회를 맡았다. 식순에 따라 기도와 찬송을 부르고 아들 딸 네 명 중 세 명이 엄마를 기리는 얘기를 짧게 이야기했다. 다만 막내 아들만이 엄마와 신앙에 관해 나누었었던 부분을 길게 얘기했다. 평소 가깝게 지냈던 지인들이 고인을 기리는 차례가 되었다. 여러 사람들이 고인과의 관계를 짧게 한마디씩 했다. 대부분 고인의 남편과 같은 의사분들이었다. 그중 어떤 한 분은 몸이 불편한지 앉은 채로 마이크를 잡았다. “여러분, 오늘 이 자리에 오신 것은 고인이나 고인의 가족을 위해 오신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자신을 위한 일입니다. 아무리 교회에 다녀도 거듭나지 않으면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요한복음 3장을 인용한 말이다.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했던 말씀이다. 그분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 모태신앙인 그분은 습관적으로 교회에 봉사하고 착하게 산다고 살며 열심히 교회에 다녔는데 어느 날 고인이 “거듭나셨습니까”하고 질문을 했다고 한다. 너무 갑작스럽고 당혹스런 질문에 기분이 나빴는데 결국은 고인의 그 말이 자기의 신앙생활을 다시 되돌아보게 하고 지금은 거듭남을 체험하고 그 신앙심으로 살고 있다고 고백했다. 장례식장은 어느새 모두 숙연해지며 자기를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곧이어 고인의 남편 차례가 됐다. 고인이 본인을 만나 미국까지 와서 네 자녀를 키우고 본인 뒷바라지 하느라 고생했다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다가 고인과 만나게 된 사연을 회상했다. 의과대학을 갓 졸업하고 바로 군대에 가서 수술 한번 해보지 않았는데 욕창 환자가 생겼다 한다. 부하들 앞에서 체면상 못한다고는 할 수 없기에 용기를 내서 수술을 하고 ‘미제 마이신’을 듬뿍 사용해서 다행히 잘 나았다고 했다. 당시 군대에서는 미국산 약품을 많이 사용했다고 한다. ‘미제’라는 말에 우리는 와르르 웃었다. 우리가 젊었을 때 미제라면 최고로 여기지 않았던가. 아무튼 욕창 환자를 잘 치료한 덕분에 소문이 잘 나서 그 동네 교장선생님이 찾아온 일, 그분의 딸인 고인을 만난 일 등 마지막 아내를 보내며 그 옛날 풋풋했던 젊은 시절이 그리운 듯 고인 앞에서 절절히 지난 세월을 이야기했다. 끝으로 고인에 대한 고마운 에피소드 5개를 이야기하겠다고 했는데 시간이 지연되어 3개로 줄였다. 어찌 3개뿐이겠는가. 고인이 젊은 날 한국에 있을 때 KBS 아나운서 자리를 마다하고 극동방송 아나운서로 활동했다는 것만으로도 그분의 신앙심을 알 수 있었다. 남편 분이 아내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고구마 줄기처럼 줄줄이 따라나온다고 해서 장례식장인데도 웃음바다가 되었다. 참으로 흐뭇한 장례식이었다. 8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고인은 양쪽 정면 상단에서 만족한 듯 처음부터 똑같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한편 어머니를 잃은 두 딸은 장례식이 끝날 때까지 계속 울고 있었다. 이제 어머니를 볼 수 없다는 상실감이 그들을 한없이 슬프게 한 것 같았다. 구약 성서 전도서 7장1절에서 4절까지 말씀을 보면 “죽는 날이 태어난 날보다 좋고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좋다. 산사람은 모름지기 죽는다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지혜로운 사람은 마음이 초상집에 있고 어리석은 사람은 마음이 잔칫집에 있다”고 했다. 그날 장례식에 모인 사람이 거의 기독교 신자들이었을 것이다.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도 마찬가지로 사후의 세계가 있을 것이다. 모두 그 세계에 들어가려면 준비가 필요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죽음 앞에서는 누구도 예외가 없다는 것이다. 하늘이 높아진 이 가을에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조금은 답을 얻은 것 같다. 집에까지 오는 내내 고인의 언니와 가족이 부른 “거기서 거기서 주님과 영원히 살겠네”의 찬송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이영희 / 수필가문예마당 그리스도인 장례식 장례식장 입구 그날 장례식 대부분 고인
2025.10.30. 18:35
내가 세상에 올 때 나는 울며 왔으나 내 가족들은 웃었습니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날 때 내 가족들은 슬퍼하지만 나는 웃으며 가렵니다 사랑하는 가족들이 남아 있기에 그리고 하늘로 올라가는 길에 천국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끝이 아니고 천국은 기적이 아니며 주신 약속임을 믿습니다 약속 없이 온 이 세상 사랑과 정 주고 받으며 살다가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그날은 모두 다 내려놓고 빈손과 빈 마음으로 천국을 향한 기대로만 가렵니다 한 세월 한 세상 삶은 고달팠고 힘들었던 생애였으나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기에 가족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버텼으며 그래서 보람있는 생애였습니다 이 세상 모든 인연들과 맺어 온 그 아름답고 소중한 추억들이 허락 없이 떠나는 날은 외로움과 슬픔으로 얽매이지 않게 하여 주시옵고 아름다운 이 세상 마지막 소망을 후회 없이 마무리하고 내 삶 다하는 때에는 조용히 미소지으며 자유로움을 느끼게 하여 주시옵소서 내 시간 다하는 그날은 그림자 사라지듯 쉬이 가게 하여 주시옵고 어제 밤 잠자리에 들듯 그렇게 가고 보내는 조용한 이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간절히 바라옵기는 사랑하는 나의 가족들이 슬픔과 외로움을 잊고 이 세상의 삶을 더욱 알고 깨달아 굳건히 살아가는 지혜와 용기를 갖게 하여 주시옵소서 가장 보람된 삶은 힘든 삶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감사를 찾아내며 천국 소망에서 큰 행복이 옴을 믿으며 아무런 조건 없이 서로 베풀고 사랑하는 그런 삶을 누릴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 사랑하는 나의 가족들이 이런 사람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창수 / GMU 목사문예마당 고개 기도 천국 소망 마지막 소망 남아 있기
2025.10.23. 17:35
나는 오늘도 편지를 쓴다. 마음으로 쓰는 편지이다. 숙이, 60년째 내 가슴에 담고 놓지 못하고 있는 이름이다. 꽃샘 추위가 옷깃을 여미게 하던 삼월 어느 날, 산골 초등학교 운동장에 큰 트럭 한 대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들이닥쳤다. 교실에서 공부하던 우리들은 우르르 창가로 몰려가 운동장을 바라보았다. 트럭 안에는 수십 명 아이들이 타고 있었고 한 명 한 명 내려서 운동장에 줄을 서고 있었다. 그들은 거의 맨발이었고, 나중에 보니 발은 동상에 걸린 듯 붉은빛으로 변하여 퉁퉁 부어 있었다. 얼굴은 상처투성이고 몇 날이나 씻지 않았는지 까만 얼굴에 눈만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전쟁고아들이라 했다. 우리 동네 가까운 곳에 있는 고아원에 살게 되었고 우리 학교에 다닐 거라 했다. 무서웠다. 트럭에서 내린 아이 중 하나였던 숙이. 짧은 단발머리 안에 부스럼이 봉긋봉긋 솟아 있고 꼬질꼬질 더러운 옷을 입고 있던 꼬마 아이. 그가 내 짝이 되었다. 초등학교 2학년인 내 인생 첫 시련이었다. 깡마른 몸, 버짐이 피어 있는 얼굴, 땟국물이 흐르는 애가 나는 싫었다. 그렇지만 거부할 수 없었다. 수업 시간 내내 책상에 엎드려 잠만 자는 아이의 모습이 조금은 애처롭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 지역에서 가장 오지였던 우리 마을은 학교에서 십 리도 넘게 떨어져 있었다. 오가는 길에 징검다리가 있는 개울을 두 개나 건너야 했다. 비만 오면 물이 넘쳐 다리가 사라져 버렸기에 자연스레 학교를 쉬었다. 그런 날이면 고학년 언니들은 산을 넘어 학교에 다녔다. 유난히 작고 어린 나에게 학교 가는 길은 고행길이었다. 숙이가 그 길을 동행해 주기 시작했다. 우리 집 가는 길목에 있는 고아원이 숙이의 새 보금자리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숙이의 얼굴에 살이 오르기 시작했고 옷도 깨끗해졌다. 이제는 더 이상 무서운 숙이가 아니라 늘 함께 붙어다니는 짝꿍이었다. 등굣길에 숙이는 내가 올 때까지 징검다리에 앉아 기다려 주었고 하굣길에는 다리를 건너기 전에 헤어졌다. 혼자 집에 갈 때 사람만 나타나도 무서웠던 시골길이 둘이 되자 마냥 웃고 떠드는 즐거운 길이 되었다. 가끔 고아원 남자 아이들이 괴롭히기도 했지만 그런 것쯤은 숙이랑 함께 있을 땐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전쟁의 상흔이 채 아물지 않았던 60년대, 당시 내 고향 영산은 6월이면 보릿고개를 넘어야 했다. 햇보리도 아직 타작을 못했고 쌀은 구경조차 하기 어려웠다. 어머니가 감자 농사를 지어서 그 시기에는 도시락도 주로 감자를 삶아 싸 주었다. 어느 날 청소 시간에 숙이가 다가와 네 도시락 뚜껑이 열려 있다고 말했다. 확인해 보니 도시락이 텅 비어 있었다. 누군가가 점심으로 먹을 하지 감자를 다 먹어버린 것이다. 나는 울음을 터트렸다.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한 친구가 숙이가 가져다 먹는 걸 봤다고 말했다. 나는 설마 하며 숙이를 바라보았다. 숙이는 아니라고 소리 질렀다. 그런데 나는 이미 숙이가 범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떤 변명을 해도 듣지 않고 경멸의 눈으로 바라보며 도둑년이라고 소리 질렀다. 자기가 저질러놓고 나에게 시치미 뚝 떼고 도시락 뚜껑이 열렸다고 말하는 얌체 같은 계집애라고 퍼부어 댔다. 그러자 숙이는 갑자기 돌변하여 나를 때리기 시작했다. 얼마나 맞았는지 그대로 정신을 잃어버렸고 깨어났을 때는 집에 누워있었다. 엄마는 자초지종을 아는 듯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날 이후 3일 동안 나는 학교에 가지 못했다. 다시 학교에 갔다. 숙이는 보이지 않았다. 그 일이 있고 난 다음날부터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학교에서 징계했는지 숙이가 스스로 학교를 그만두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때부터 내 옆자리는 비어 있었다. 날이 갈수록 숙이의 빈자리는 커져만 갔다. 등하굣길에 함께 다니며 조잘대던 친구가 사라졌다. 늘 징검다리에서 기다리다가 나를 보며 환하게 웃어주던 숙이는 더 이상 만나볼 수 없었다. 겨우 3개월 남짓 그녀와 함께했었다. 그동안 날마다 십리 길을 함께 오가며 쌓은 정이 아니든가, 그제야 내가 숙이에게 어떤 상처를 주었는지 실감이 나기 시작하였다. 전쟁고아였던 숙이, 나는 한 번도 그 아이에게 가족 얘기를 묻지 않았다. 그동안 어디서 어떻게 살았느냐고 묻지도 않았다. 세상에서 제일 좋은 엄마도 없이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느냐고 위로해 주지도 못했다. 더럽고 초라한 몰골로 트럭에서 내렸던 아이, 고아원에 사는 불쌍한 아이라는 편견을 짝꿍이며 등 하굣길 함께하는 소중한 친구라는 이유로 덮어 버리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는지 모른다. 그 뒤로 나는 숙이의 소식을 듣고 싶어 몇 번이나 고아원에 찾아갔다. 어디로 갔는지 모르니 다시 찾아오지 말라던 아저씨의 눈은 ‘너 때문에 떠났는데 왜 찾아오니’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때부터 내 머릿속 한구석에 화두처럼 박힌 질문이 떠나질 않았다. 감자 몇 개가 뭐라고 그렇게 몰아붙였을까, 숙이가 정말 먹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왜 못했을까, 설사 먹었다 하더라도 배고픈 친구의 마음을 왜 살피지 못했을까. 문득문득 그녀가 보고 싶을 때 같은 내용의 편지를 썼다. 매번 보낼 곳을 알지 못해 허공에 날릴 뿐이었다. 이듬해 우리 가족은 고향을 떠나 도회지로 이사를 했다. 10년 뒤 고향을 찾았을 때 친구들에게 숙이의 소식을 물었다.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떠난 이후 그녀는 고향을 한 번도 찾지 않았던 모양이다. 정말 바람처럼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내 친구 숙이, 그녀는 한 번도 변한 적이 없는 단발머리 소녀로 내 마음속에 남아있다. 지금도 감자를 먹을 때면 숙이가 생각나곤 한다. 어딘가에서 살고 있을 그녀가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기도한다. 유년 시절 짧은 만남 후 아프게 헤어진 한 소녀를 60년 세월 동안 애타게 그리워하는 것은 그녀에게 꼭 할 말이 있기 때문이다. 미안하다고, 정말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정길 / 원불교 교무·수필가문예마당 편지 수필 산골 초등학교 우리 학교 고아원 남자
2025.10.23. 17:34
누군가 내 집에 살고 있다 초대한 적도 허락한 적도 없는데 분명 불청객이 살고 있다 열심히 문단속하며 조심하며 살아왔는데 내 살림보다 더 큰 살림을 차리고 살고 있다 나름 쓸고 닦고 정돈하며 살고 있는데 이 친구는 마치 주인인 양 내 집 전체를 점령하고 있다 이 친구는 세상의 이치를 득도한 양 어떤 교통수단을 이용하지 않고도 어디든 착륙할 수 있다 천장에 매달린 전구 속에도 벽에 걸려있는 액자 안에도 상자 안에 들어있는 선물 세트 안에도 비집고 들어간다 하강밖에 모르는 물보다 재주가 많은 이 친구는 날기도 오르기도 뛰어내리기도 스미기도 풀어 놓기도 하는 초능력자다 지하실 천장에 살림을 차리고 살던 거미가 “너 왜 내 집을 부수고 야단이니?” 나를 노려본다 내 집이 내 집이 아니다 정명숙 / 시인문예마당 불사조 지하실 천장
2025.10.16. 18:45
콩 잎사귀 오그라드는 늦여름 땡볕을 끌어당기는 고추잎들 붉은 숨 몰아쉰다. 먹구름 들이닥치는 마당에 널어둔 곡식 퍼 담듯 병원 유리 창구로 밀어넣을 돈 장만하려고 여인은 붉은 고추 불그스레한 고추들 화급하게 마대에 쓸어담는다 중환자실, 그래프 색깔들이 물결치며 깜빡이던 모니터 화면 수치가 급격히 떨어지고 알람이 울리자 발걸음들 바삐 몰려든다 봄날 굵은 손마디로 연푸르고 가는 모종들 옮겨 심고 농약 은색 분무기 짊어지고 한번 더 들어설까 이랑 따라 머리 뜯긴 채 흐느끼는 고추 줄기들 산발한 잡초들만 발돋음한다 옹달샘 버드나무에서 비명 같이 지르는 매미 소리들 옥수수 대궁들 목이 메어 몸을 트는 밭두렁에 큰 장화 발자국들 흙속에 묻혀 가고 한 뙈기 밭, 두메 산골에 타오르는 통곡 소리들 산비둘기들도 숨어서 운다 권정순 / 시인문예마당 고추밭 마지막 고추밭 고추 줄기들 중환자실 그래프
2025.10.16. 18:44
동네를 산책하다 보면 까마귀를 종종 마주하게 된다. 지붕 위에도 올라가 있고 길바닥에서 뒤뚱거리며 걷기도 한다. 그냥 가만히만 있어도 보기 싫은데 거친 목청으로 “까~악 까~악 깍” 울어 조용한 동네를 시끄럽게 하기 일쑤다. 가끔 쓰레기통을 뒤져 길바닥을 어지럽히기도 하니 더욱 밉다. 우리 동네에 사는 까마귀는 보통 까마귀(Crow)가 아니고 ‘레이븐(Raven)’이라는 큰 까마귀여서 무섭기도 하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온몸이 짙은 검은색으로 덮여 있다. 어딘 가에 눈이 있을 텐데, 그것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더 섬뜩하게 느껴진다. 마주칠 때마다 미워하며 어서 우리 동네를 떠나기 바랐다. 우리 동네에는 반려견을 기르는 사람들이 많다. 평소에는 사람 그림자도 안 보이다가 이른 아침에는 개를 데리고 나와 잔디에다가 변을 보게 한다. 그러는 동안 이웃끼리 서로 잡담도 하고, 코요테가 동네에 나타났다는 등 소식도 전한다. 옆집에는 60대 중반의 백인 여자가 혼자 산다. 웰시 코기 종의 개를 온갖 정성을 다해서 돌본다. 몇 살이냐고 물으니 15살이라며 슬픈듯한 표정을 짓는다. 어느 날 갑자기 까마귀 떼들이 우리집 근처에 몰려들었다. 그날은 평소와 달랐다. 집 담장 밖, 커다란 소나무 부근에서 미친 듯이 울부짖고, 날개를 푸드덕거리며 난동을 부렸다. 마치 누군가를 부르는 듯, 아니면 무언가를 알리는 듯한 소리였다. ‘사고가 났나? 아니면 누가 죽었나?’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날의 광경은 머릿속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불길한 기운과 이상함이 느껴졌다. 혹시 옆집 개가…? 얼마 후, 한동안 보이지 않던 옆집 여자를 만났다. 늘 데리고 다니던 웰시 코기 반려견이 보이지 않았다. 웬일이냐고 물으니 얼마 전에 죽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나이가 많아 죽을 때가 되긴 했지만 더 살기를 바랐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나는 속으로 ‘아! 그 까마귀 떼들이 그래서 그랬었구나!’하고 생각했다. 그날 까마귀 떼의 울음은 어쩌면 옆집 여자를 대신한 애도였는지도 모르겠다. 신기했다. 까마귀는 옆집 개가 죽는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사람은 모르는 감정, 기운, 예감 등을 까마귀는 아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본 그날의 장면은 단순히 까마귀가 이상하게 굴었다는 수준을 넘어서 어쩌면 삶과 죽음 사이의 문턱을 엿본 순간으로 느껴졌다. 그날 일을 계기로 까마귀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갖게 됐고, 문헌을 찾아보고 많은 것을 알게 됐다. 까마귀는 동물의 죽음을 알아차릴 수 있고, 그에 대해 무리 지어 반응할 수 있다고 한다. 단순한 본능이 아니라, 지능적으로 무엇인가 이상하다, 사라졌다, 죽었다는 것을 인식하고 행동한다는 것이다. 까마귀는 여러 문화권에서 불길한 징조로 등장한다. 죽음의 전조, 또는 그 너머 세계와 연결된 존재로 여겨져 왔다. 영화, 문학, 신화 등에서 큰 까마귀는 종종 죽음, 지혜, 예언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애드거 앨런 포의 시 ‘까마귀(The Raven)’에서는 절망과 광기를 상징하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문화에서 항상 나쁜 의미로만 쓰이진 않는다. 북유럽 신화에서는 까마귀는 길조가 되기도 한다. 지혜와 예지의 상징으로 세상을 날아다니며 정보를 가져오는 존재로 등장한다. 또한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의 설화에서는 하늘과 인간 세계를 잇는 ‘삼족오’ 라는, 태양과 관련된 신화적 존재이다. 어떤 문화냐에 따라 까마귀의 상징이 달라진다. 성경에서도 까마귀가 나온다. 선지자 엘리야와 까마귀 이야기다. 하나님은 선지자 엘리야에게 아합 왕의 죄악을 꾸짖게 하시고, 이후 그를 숨기기 위해 요단 동쪽의 그릿 시냇가로 보내신다. 그곳은 물 한 모금 마시기도 어려운 광야다. 엘리야를 챙겨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끼니때마다 놀랍게도 어디선가 까마귀가 떡과 고기를 입에 물고 날아왔다. 엘리야는 광야에 혼자 있으면서 까마귀를 통해 하나님을 더욱 깊이 신뢰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어릴 적부터 듣던 말이 있다. “까마귀 고기를 먹었나?” 뭔가를 잊어버릴 때마다 어른들은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까마귀는 오히려 잊지 않는 새라는 것을 알게 됐다. 어쩌면 까마귀는 인간보다 더 많이 기억하는 새인지도 모른다. 조류 학자들 얘기로는 까마귀는 새 중에서 가장 똑똑한 측에 속한다. 기억력이 좋고,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며, 의사소통 능력까지 인정받고 있다. 실험실에서는 퍼즐도 풀고 문제 해결 능력이 뛰어나다. 무리를 지어 생활하며 협동하는 행동을 보인다. 또한 사람 얼굴을 기억하고, 매우 적응력 있는 동물이라 인간 사회에 깊이 섞여 살고 있는 존재라고 한다. 우리는 까마귀의 모습을 흉하게 여기고 까마귀를 재수없는 존재쯤으로 넘겨버린다. 그러나 사람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죽음을 마주한 까마귀는 더 이상 단순한 새가 아니다. 그 순간, 무언가를 알고 있는 영험한 존재가 된다고 한다. 그들은 ‘죽음’ 그 자체에 반응한다. 죽은 동료를 보면 소리치며 모여든다. 어떤 이는 이를 ‘경고’라고 해석하고 어떤 이는 ‘장례’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의미는 아무도 정확히 모른다. 그렇게 모여든 후 죽은 동료를 바라보며 긴 침묵에 잠긴다. 그 자리에 남아 지키며 떠나지 않는다. 우리 인간은 알 수 없다. 그 침묵이 애도인지, 혹은 의식인지. 나는 까마귀의 생김새나, 시끄러운 울음 소리, 그리고 나쁜 이미지 때문에 미워하고 싫어했다. 그러나 까마귀에 대해 알고 난 후로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는 우리 동내 까마귀들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모든 새는 나름대로 생존의 의미가 있고, 권리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농부는 참새를 미워하지 않는다. 다만 수확기에 내쫓을 뿐이다. 중국에서 곡식을 축내는 참새떼를 거국적으로 박멸에 나섰더니 오히려 해충의 피해가 더 많았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 세상 모든 새들은 독수리나 갈매기나 참새나 까마귀나 그들 나름대로 가치 있는 생명이다. 지금 산책 길에 보이는 까마귀는, 예전 같으면 그냥 지나쳤을 존재들이지만 그날 이후로 까마귀를 예사로이 볼 수 없다. 까마귀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달라졌다. 이제는 동네 까마귀를 좋은 이웃처럼 대하고 더불어 살기로 했다. 배광자 / 수필가문예마당 수필 까마귀 고기 보통 까마귀 까마귀 떼들
2025.10.16. 18:43
깊게 내려간 햇살 딴 세상에 머물고 있는 듯 적막의 숨소리만 곁에 있다 누구랑도 같이 가고픈 옛날의 밤 초저녁인가 깊은 밤인가 새벽 인가 숨어 있었던 숨 막힌 표류의 젊음은 사랑의 강물로 노도의 절정에서 한 획을 그었지만 이젠 그 별이 낮과 밤 창밖의 그리운 곳에 아무렇게나 모른 척 아는 척 한구석에서 웃음도 울음도 없는 길에 서 있다 오광운 / 시인문예마당 표류 새벽 인가
2025.10.02. 18:58
함부로 말하지 마라 세상에 아름다운 게 어떤 건지 내 가슴 깊은 곳 눈여겨보기 전엔 긴긴 여름 눈부신 햇빛 밤이면 찾아오던 달과 별들 때론 바람에 실려 오는 다정한 연인들 사랑의 속삭임까지 빠짐없이 꿈으로 잉태하여 남몰래 길러온 보석들 늦가을 찬바람에 더는 주체할 수 없어 활짝 열어 보이는 선홍빛 루비 알들 값은 묻지 마라 바라보기도 송구한 신의 솜씨 순결의 극치 빨간 보석알 가을이 깊어지면 나도 가슴을 열어 감추어 길러온 루비 빛 사랑의 열매 당신께만 살며시 보여주고 싶다 강언덕 / 시인문예마당 석류 늦가을 찬바람 선홍빛 루비
2025.10.02. 18:57
요즘, 목걸이 하기가 싫어졌다는 친구가 있다. 눈만 뜨면 매스컴에서 목걸이 얘기고, 똑같은 목걸이 사진을 하도 많이 봐서 그렇단다. “좋은 말도 세 번이면 듣기 싫고, 아무리 예뻐도 자꾸 보면 질리는데, 뭔 좋은 거라고….” 친구는 피곤하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목걸이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반짝임과 우아함이다. 여성의 얼굴과 옷차림을 더 섬세하고 눈에 띄게 한다. 작은 물건이지만, 거기에는 욕망, 허영심, 계급의식 등이 응축되어 있다. 또한 목걸이는 단순한 장신구를 넘어서, 많은 이야기와 상징 등 생각할 거리가 담겨있어 문학 작품에서도 사랑받는 소재가 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모파상의 단편 〈목걸이〉에서는 단순한 목걸이 하나가 한 여인의 인생을 완전히 망가뜨린다. 주인공 마틸드는 매우 사치스럽고 허영심이 많은 여자이다. 항상 상류층의 삶을 동경했고, 그들처럼 폼나게 살아보고 싶었으나 그녀의 남편은 하급 공무원이었으므로 그녀의 욕망을 채워줄 수 없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남편이 무도회 초대장을 들고 온다. 뛸 듯이 기쁘지만 입을 옷과 장신구가 없어 괴로워한다, 예쁘게 치장하고 갈 형편이 안 되는 그녀는 친구에게 값비싸 보이는 목걸이를 빌려 무도회에 참석해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 목걸이를 잃어버리고 만다. 결국 많은 빚을 내어 잃어버린 목걸이와 비슷한 것을 사서 친구에게 돌려준다. 그녀는 빚을 갚기 위해 10년간 극심한 노동과 절약을 하며 살아간다. 그 과정에서 그녀의 손은 거칠어지고, 외모도 몰라보게 변한다. 10년 후, 마틸드는 우연히 그 친구를 만나 사실을 털어놓았더니, 그 친구가 하는 말이 “그 목걸이는 가짜였어.” 순간 마틸드는 10년의 삶 전체가 무너지는 충격을 받는다. 허영심과 외면적인 허세가 가져온 비극이다. 서머셋 몸의 〈진주 목걸이〉도 있다. 가정부 미스 로빈슨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녀가 모조품인 줄 알고 싼값에 산 목걸이가 실은 수만 파운드에 달하는 진품 진주라는 보석 감정사의 말에 그녀의 인생이 역전한다. 우연히 귀중한 목걸이를 소유하게 된 사실 하나로, 사회는 그녀를 다르게 대하기 시작한다. 진주가 갑자기 빛나기 시작한 것이 아니라 세상이 그녀를 새로운 눈으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진짜 진주 목걸이로 인해 그녀는 완전히 다른 신분이 된다. 그리고 또 하나의 문학 작품,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가 생각난다. 개츠비와 데이지는 과거 사랑했던 사이다. 개츠비가 전쟁에 나가면서 이별했고 그 사이 데이지는 부유한 남자 톰 브캐넌과 결혼하기로 한다. 결혼식 전날 밤 데이지는 개츠비에게서 받은 편지를 읽고 큰 혼란에 빠진다. 그녀는 술에 취해 울면서, 톰에게서 받은 진주 목걸이를 집어던지며 그 결혼을 망설인다. 하지만 결국엔 다음날 톰과 결혼한다. 데이지는 사랑보다는 부와 안정, 그 상징으로서 비싼 진주 목걸이를 택한 것이다. 개츠비는 오직 데이지를 다시 만나기 위해 부를 쌓는다. 그녀의 집 근처에 집을 짓고, 그녀가 나타나길 기다리며 호화로운 파티를 자주 연다. 드디어 개츠비는 데이지와 재회를 하고 가까워진다. 어느 날 데이지가 개츠비의 차를 운전하다 여자를 치어죽이는 큰 사고를 낸다. 개츠비는 데이지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이 운전했다고 거짓말을 한다. 개츠비는 죽은 여인의 남편 총격에 의해 허망하게 죽는다. 그러나 데이지는 개츠비의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않고,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남편 팔짱을 끼고 그 도시를 떠난다. 개츠비는 사랑할 가치도 없는 여자를 위해, 또 과거에 집착한 나머지 현실을 망치고 만 것이다. 모파상의 마틸드는 가짜 목걸이로 진짜 인생을 잃었고, 서머셋 몸의 가정부는 진짜 목걸이로 가짜 인생을 얻었다. 그리고 위대한 개츠비의 데이지는 사랑보다 무거운 목걸이를 택했다. 현실로 돌아와 다시 목걸이 앞에 서 있다. 2022년 6월, 스페인 마드리드의 왕궁 만찬장에 윤석열 전 대통령과 함께 나토(NATO) 정상회의에 참석한 김건희 씨의 목에서 클로버 문양의 목걸이가 반짝이는 자태를 뽐냈다. 이 목걸이는 프랑스 명풍 ‘반 클리프 아펠’의 ‘알함브라’ 컬렉션으로 한국내에서 시가가 6000만원을 호가하는 제품이다. 3년 뒤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기폭제가 됐고, 김건희씨 구속 사유 중 하나로 주목받았다. 한때 우아함과 고급스러움을 상징하던 목걸이가 이제는 진품이니, 모조품이니, 뇌물이니 하는 부정적인 상징물로 전락했다. 그리고 그 목걸이에서 사람들은 수많은 이야기들을 뽑아내고 있다. 마치 목걸이 하나로 그녀의 삶을, 가치관을, 정치적 위치를 대변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언론에는 연일 그 목걸이에 관한 보도가 이어졌다. 어떤 날은 그 가격이, 어떤 날은 브랜드가 어디였는지, 또 어떤 날은 과연 그것이 적절했는지, 영부인답지 않다는 비판이 줄을 이었다. 목걸이 하나가 이토록 많은 말을 낳는다는 게 기이하면서도, 어쩐지 익숙할 정도였다. 우리는 김건희씨가 착용한 그 목걸이에 왜 이토록 민감한가. 그것이 비싼 것이라서? 그것이 권력의 손에 쥐여졌기 때문에? 아니면, 그 목걸이 뒤에 숨겨진 어떤 의미를, 어떤 속내를 읽어내고 싶어서일까? 이 모든 질문은 목걸이 자체가 아니라, 그 목걸이를 보는 우리의 시선을 말해 주는 것 같다. 문득 ‘목걸이는 무슨 죄가 있을까?’는 생각이 든다. 장신구는 말이 없다.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시선이 때로는 탐욕이 되며, 미움이 되고, 비판이 되기도 한다. 도대체 왜 사람들은 죄를 물건에 덮어씌우는 것일까. 목걸이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 목걸이가 비난받는 이유는 단지 그것이 비싼 다이아몬드이어서가 아니라, 그것을 누가, 언제, 어떤 상황에서 걸었느냐 때문이다. 목걸이를 보는 우리의 시선이야말로 의미를 결정한다. 모든 여인은 인생에서 한 번쯤 목걸이를 두른다. 그것이 진주이든, 유리이든, 감추고 싶은 상처이든, 드러내고 싶은 존재이든. 오늘도 사람들 사이에서 빛나는 목걸이를 본다. 이름 모를 여인이 착용한 진주 목걸이를, SNS 속 셀럽이 드러낸 목의 윤곽과 금줄, 쇼윈도에 놓여 누군가를 기다리는 아름다운 목걸이를. 만약 김건희씨가 당당하게 우리 전통 장신구를 착용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리고 요즘 목걸이 하기가 싫어졌다는 친구에게 말한다. “친구야, 목걸이는 죄가 없다. 죄가 있다면 그걸 그렇게 사용한 사람이다”라고. 배광자 / 수필가문예마당 목걸이 수필 가짜 목걸이로 진주 목걸이 진짜 목걸이로
2025.10.02. 18:56
잡히지 않는 시냇물 같이 울리지 않는 조용한 모습으로 늙고 싶었지 헌데, 달려드는 아픔에 휘청거려야 했어 동그라진 채 눈가 귀퉁이가 찢겨 핏물로 앞이 캄캄했지 먹먹한 가슴으로 앰뷸런스에 실려갔던 날 걱정 한 움큼 집에 던져 놓고 무서운 꿈속을 헤매었어 즐겨 치던 골프장 갈꽃 날리며 뛰던 날 푸른 초원 서성거리던 언저리 조잘거리던 새들이 한없이 예뻤는데 신음소리 토하며 쓰러짐으로 새들도 놀랐겠지 푸름 안고 살길 원했는데 흘린 핏물에 당혹했을 거야 두고 온 발자취 더듬으며 내가 난 멋진 인생이었다 생각했던 자만 종횡무진 달려온 나의 역사가 움츠릴 때도 있었지만 만조의강은 흘러도 잔주름 건져내려 했던 것을 애끊는 심정으로 반추해 본다 생 엄지 손톱이 빠져나갔던 고통 늙은 얼굴 열세 바늘 꿰매야 했던 슬픔 바닐라 커피 한잔 따라 놓고, 검은 탄을 나르던 광부처럼 몇 주가 지나도 안부 전화 한번 안 하는 염치없는 사람 떠올라 괴로워할 사람 쓸쓸한 가을 길목 바라보며 앉았을 친구 생각하며 내가 왜 슬픈지 아시나요 길을 걸으며 큰 한숨을 날린다 엄경춘 / 시인문예마당 눈가 귀퉁이가 바닐라 커피 엄지 손톱
2025.09.25. 18:21
굽이굽이 산언덕 천고의 잠들이 누운 길 산새는 어딜 갔나 이슬만 영롱하네 생전에 불효함이 억장이 무너지어 어머니 무덤 위에 풀꽃 꺾어 꽂으면 혹시나 눈비비고 벌떡 일어나시려나 다정하던 그 음성 하늘가에 나릴까 바람은 두 손 벌려 맨발로 반기는데 풀잎 덥고 누운 분 모른 채 야속하네 김명선 / 시인문예마당 어머니 성묘 어머니 성묘 어머니 무덤
2025.09.25. 18:20
지난 여름, 7월 28일에 무차별 총기 난사 사건이 뉴욕주 맨해튼 고층 빌딩에서 생겼다. 세 명의 민간인과 한 명의 경찰이 목숨을 잃었다. 총격을 가한 젊은이가 자살함으로써 사건은 마무리되었다. 한 명은 심한 상처를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4월 플로리다 주립대학과 5월 라스베이거스 공공 체육관에서 있었던 사건에 이어서, 30살 미만의 청년들이 저지른 세 번째 총기 난사 사건이었다. 에릭 애덤스 뉴욕시장은 가해자가 미식축구대회(내셔널 풋볼 리그) 본부를 잘못 찾아가서, 옆의 빌딩을 침범했고, 본인이 계획하지 않았던 사람들을 살해한 것 같다고 발표했다. 그는 ‘CTE 증후군’ 환자일 확률이 높고, 그로 인해서 살해를 저질렀을 것으로도 보았다. 이 글을 쓰는 오늘은 사건이 일어난 지 두 달 반쯤 된다. 당시에 희생된 경찰의 세 번째 아이가 사건 삼 주 후에 태어났다는 뉴스를 보았다. 그 경찰은 비번일 때, 생계에 보태려고 고층 건물에서 경비원으로 일하다가 참변을 당하였다. 36세인 경찰은 방글라데시 출신의 이민자이었다. 20대 젊은 남성 범인·총기 소지·대도시 집단살해·‘CTE 증후군’… 몹시 불편한 상황이 얽혀 있다. ‘CTE 증후군’ 때문에 저지른 일이라고, 타당하다고, 용서해 주어야 한다고 그냥 넘어가기에는 잃은 목숨들이 너무나 아깝고 또 억울하다. 미국은 일반 시민들이 총기 소유 등록을 하고 총기를 소유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나라가 크니까 총기 소유자도 많고, 총기 사건도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국민 15명 중 한 명이 총기 난사 광경을 목격한다는 이 미국에는 2014년부터 10년 동안 5000여 건의 무차별 총격 사건이 있었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이다. 매해 약 500건이 있었던 셈이다. 이 통계에서 보이는 숫자를 확인하려고 다른 집계를 보았더니, 상충되는 점들이 있었다. 그것은 총격 사건에 관한 정의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번에 알게 되었다. 미국 연방정부도 분석, 집계, 보고의 기준이 없는 것을 인지하고, ‘상원 연구 서비스(Congressional Research Service)’를 통해서 연구하도록 하였다. 그 결과를 2024년 11월에 보고했다. 왜 귀찮게 ‘무차별 총격’과 ‘대량 살해’의 차이점을 분석해야 하는지, 궁금할 수 있겠다. 차이점을 이해해야, 사건 예방에 도움이 되고, 사건이 터졌을 때 적절한 부서에서, 사건이 더 커지지 않도록 조처를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FBI(연방수사국)은 무차별 총격이 일어나고 있다는 실시간 정보가 경찰에 보고되고, 한 장소에서 같은 시간대에 무기를 써서, 3명 이상을 죽이는 경우를 ‘대량 살해’이라고 정의한다. 이미 살해 행위가 끝난 경우나, 자기방어, 갱이나 마약 관련, 가정불화 또는 인질 범죄 등의 이유로 생긴 사건들은 제외된다. 가해자인 범인은 이 숫자에 넣지 않는다. 그렇다면 무기 공격은 있었지만 죽지 않고 다치기만 하였다면 어떤 카테고리에 넣어서 통계를 내어야 할까. 상원 연구팀도 고민을 많이 한 것 같다. 그들은 같은 그룹을 놓고, 다른 정의에 따라서 분석한 데이터를 보여주었다. 엄청난 숫자적 차이가 있었다. 그와 달리, 일반 대중과 미디어는 살해된 사람 수를 따지지 않고도 공공장소에서 총기 난사가 있는 경우에 특별한 구별 없이 ‘대량 살해’라고 부르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의 특이한 점은 용의자들이 30대 미만으로, 남성이었다. 그들이 만성 뇌 손상을 당한 ‘CTE 증후군’ 환자일 가능성이 있다고 추측하였다. ‘CTE’란 ‘Chronic Traumatic Encephalopathy’라는 의학 용어의 준말로 ‘만성(慢性) 외상(外傷)으로 인한 뇌 손상(損傷)’ 이라 부른다. 우리가 자주 들어왔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는 다른 병이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좋은 예는 월남전이나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여했던 군인들이 전쟁 때 받았던 상처의 후유증을 앓는 경우인데, 정신적, 감성적 타격으로 환상이나 우울증에 시달리어 생긴다. 자살로 삶을 마감 하거나, 데자뷰 현상으로 상대편에 대한 착시 현상을 일으키어서 상대편을 해치거나, 살해하는 경우이다. ‘CTE 증후군’ 환자들은 참전이나 큰 트라우마의 이력이 없고, 주로 20대 젊은이들로서, 어렸을 때 스포츠 팀에서 종합 선수 생활을 했던 젊은이들이었다. ‘CTE’ 증후군은 의료계에서도 죽은 후에 부검을 통해서 배워, 알게 되었다. 그 젊은이들은 살아 있을 때, 자주 우울해 하고, 주의력이 부족하고, 과잉행동을 하거나, 행동장애가 있다. 사회는 단순한 사건으로 넘기기 쉽다. 일반 대중들은 젊은이들이, 그저 단명해서 일찍 죽었거니 하고 넘기기 쉽다. 뒤돌아보았을 때, 유명 선수들이 오래 살지 못하고 단명했던 경우가 많았다. 그들은 ‘CTE’ 증후군을 앓고 있었다고 추측한다. USA투데이의 잭 맥케씨(Jack McKessy) 기자는 이 사건을 보도하면서 이 질병 때문에 단명했던 세계적 젊은 운동선수들의 이름을 잡지에 올렸다. 파킨슨병으로 앓던 세계 헤비급 챔피언인 모하메드 알리 선수는 어쩌면 ‘만성 외상으로 인한 뇌 손상 증후군’을 오랫동안 앓다가 타계한 것이 아니었을까 추측하기도 한다. 접촉이나 충돌 운동에는 권투, 축구, 태권도, 럭비 등이 있다. 운동 시합 때, 선수들의 모습을 떠올려 보면, 그들은 크게, 작게, 반복해서 부딪친다. 크게 다친 경우는, 경기장에서 쓰러지고, 구급차가 오고, 응급실로 선수는 이동되겠지만, 가벼운 접촉 사고가 있을 때는 그저 툭툭 털고 일어나서 경기를 계속하고, 그냥 지나가기 십상이다. 라스베이거스 권투 중에 14라운드 때, 쓰러지어 목숨을 잃었던 한국의 김득구 선수는 심한 접촉 충돌 사고를 당한 것으로 보면 된다. 그 비극적 사건은 그 후, 더 많은 비극으로 이어지었다. 김득구 선수와 챔피언십을 다툰 레이 만씨니 선수는 우울증에 걸렸고, 그의 모친은 3개월 후에, 심판은 7개월 후에 자살하였다고 한다. 권투는 의도적으로 상대방을 향해서 타격을 주는 스포츠이다. 김득구 선수 사망 후에 권투 경기 규칙이 바뀌었다. 라운드 후 휴식 시간을 60초에서 90초로 늘리고, 세계권투평의회는 챔피언 경기를 15라운드에서 12라운드로 단축했다. KO 때 선 시간은 8(여덟)을 도입하고, KO 승 이후에, 선수들의 안정을 위해서 최소한 45일 동안 경기에 나가는 것을 금한다는 법칙이 세워졌다. 작은 트라우마가 반복해서 뇌를 다친다면, 뇌는 퇴행 하게 될 것이다. 퇴행 부위에 따라서 증상이 다르겠지만, 접촉과 충돌 스포츠 경우에는 전두엽 손상이 제일 흔하다. 뇌는 그 안에 무한한 교차로를 갖고 있어 이해하기 어려운 몸의 한 기관이다. 학교 스포츠에 활발한 학생들은 교육과정에서 이러한 상황에 대해서 배우고, 학교나 가정은 이에 관심을 두고, 빠른 진단과 치료에 응해야 할 것이다. 그들이 우울해지고, 주의력이 부족하고, 산만하며, 과잉행동이나 행동장애를 일으키기 전에, 그리고 그들이 자살하거나, 타살에 연루되기 전에 말이다. 모니카 류 / 종양방사선학 전문의·한국어진흥재단 이사장문예마당 단명 운동선수 총기 소유자 무차별 총기 총기 난사
2025.09.25. 18:19
늙었다고 해서 더 늙어지지 않는 게 아니야 이미 늙어버린 것도 슬픔인데 하루 살면 하루 더 늙어진다는 게 그게 늙음의 아픔이야 다 늙어지고 나면 죽어야 하는데 죽음이야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해도 내가 죽고 싶을 때 내 마음대로 죽을 수 없다는 게 그게 또한 늙음의 아픔이야 죽을 때 이삼일 앓다가 죽고 싶은데 어디 죽음이 내 마음대로 되는가 내가 의식을 잃고 이삼일간 혼수상태에 빠져 있으면 여보, 치료를 거부해서 빨리 죽게끔 해줘, 부탁이야 뉴욕정부에 기증한 내 장기(臟器) 내가 죽으면 내 장기는 떼어가겠지 고통 받고 있는 사람을 내 장기로 치유해준다니! 남을 이롭게 해주고 떠나니 죽음에도 좋은 점이 있구나 조성내 / 시인·의사문예마당 이삼일간 혼수상태 어디 죽음
2025.09.18. 18:22
강남을 떠나 멀고 먼 여름 고향 집 돌아와 우린 알 수 없는 짝들의 속삭임 둥지 틀었다 고난의 바람과 열의 융합 속에 인내의 둥지 속 작은 생명줄 엮었다 하얀 주둥이 턱을 기대고 처음 보는 신기한 세상을 노래한다 어미는 하루종일 먹이를 잡아 나른다 입 쫙 벌린 주둥이 어미는 순서를 알고 있다 십여일이 지나면 제법 모양새를 갖춘다 이때가 정말 귀엽다 20여일 자라면 날개를 펄럭인다 일가친척 가족들이 모여 잔치를 벌인다 둥지를 요란스럽게 재잘대며 배회하면 자신도 모르게 창공에 날개를 편다 하늘을 정복했다 따가운 여름의 그림자는 어느 날 가을의 들녘을 보면서 처음 가는 강남 새 가족들이 함께 떠날 것이다 오광운 / 시인문예마당 일가친척 가족들 여름 고향 주둥이 어미
2025.09.18. 18:21
누구나 장엄한 대자연 앞에 서면 자연의 위대함과 인간의 한계를 느낀다. 인간이 얼마나 작고 무력한 존재인지를 깨닫는다. 그래서 겸손해지고, 잠시 멈춰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대자연의 경이로움과 침묵 속에 숨겨진 위엄은 눈부신 햇살마저 그 앞에서 조용히 고개를 숙인다. 하물며 인간이랴! 대자연 앞에선 나를 지키기 위해 높이 쌓아 올린 마음의 벽이 허물어질 수밖에 없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오랜 상처들이 조용히 흘러나온다. 자연은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이 큰 존재이며, 어떤 판단이나 충고도 없이 ‘있는 그대로의 나’를 품어 주기 때문이다. 최근에 KBS2에서 방영된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시청했다. 배우 박원숙을 비롯해 홍진희, 윤다훈과 가수 혜은이가 한집에서 친 남매처럼 ‘같이살이’를 하는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이다. 그들은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연예인들이다. 평균 나이 67세로 각자 아픈 상처를 지니고 혼자 사는 싱글들이다. 지난 6월, 그들 4남매는 스위스에서 일주일 간 해외여행을 했다. ‘가장 스위스다운 도시’로 손꼽히는 루체른에 도착한 그들은 아름다운 호수를 품은 역대급 뷰를 가진 숙소에 감탄했다. 유럽의 숲속 산장 같은 안락한 공간과 알프스산맥으로 둘러싸인 탁 트인 자연 경관을 만끽할 수 있는 장소였다. 그들은 호반의 도시 루체른의 다양한 명소를 돌아보며 유럽의 정취를 만끽했다. 스위스를 떠나기 전 날에는 ‘산의 여왕’이라 불리는 ‘리기산’을 향했다. 리기산은 초록빛 풍경으로 가득 찼고,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였다. 열차가 산을 오를수록 드넓은 초원과 형형색색 꽃밭, 탁 트인 풍광이 순차적으로 펼쳐지며 4남매의 눈과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리기산 정상에 도착한 일행은 알프스산맥과 푸른 호수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장엄한 풍경 앞에서 형언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다. 그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먼저 혜은이가 입을 열었다. “여기 오니까 내가 개미보다도 작은 거 같아. 내 자신이 너무 초라해 보이고 보잘 것 없게 느껴져.” “아직 풀지 못한 미움들이 남아있고, 한없이 커보였던 번뇌도 있지만, 발 아래 펼쳐진 경이로운 풍경 앞에 서니 그저 모든 것이 부질없어 보여. 이제는 그런 것들 다 버려야겠다고 생각했어.” 박은숙이 뒤를 이었다. “그래, 건강하게 지내면서 여기까지 왔으니 너무 감사해. 따사로운 햇볕, 시원한 공기, 맑은 물, 아름다운 새소리까지, 모든 것에 감사해. 새삼스럽게 남은 시간을 잘 살고 싶어졌어.” 혜은이가 홍진희와 윤다훈을 보며 물었다. “너희도 이곳에서 많은 생각이 들지?” 홍진희는 한동안 조용히 생각에 잠겨 고개를 푹 숙인 채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그녀는 지금 어떤 마음인 걸까. 그녀가 흘린 눈물의 의미는? 한참을 말없이 울고 있던 홍진희가 “그냥 너무 행복하고 감사해서 우는 거예요. 그동안 저는 약한 내 모습을 남들에게 보이기 싫어 오랜 세월 날 포장하며 살았어요. 수십 년을 홀로 버텨오면서 내 주변이나 남에게 마음의 빗장을 걸어 잠근 채, 그렇게 견디면서 살았던 거 같아요. 이 순간, 대자연 앞에서 한없이 작은 ‘나’를 발견하며 조금씩 벽을 허물고 있는 중에 감정이 격해졌어요. 겹겹으로 쌌던 포장이 스르르 풀리면서 너무 자유롭고 감사해서 우는 거예요.” 홍진희는 그동안 강해 보이기 위해 노력했던 인생을 돌아보며 계속 눈물을 흠쳤다. 지난날에 대한 회한이 눈물보를 터지게 한 것이다. 박원숙도 진희의 감정에 깊이 공감하며 말했다. “발 아래 장엄한 풍경을 바라보니 ‘나’라는 사람이 보였어. 눈앞에 닥친 현실에 발버둥쳤던 지난 날들, 고통스러웠던 과거들, 그 과정에서 단단해진 마음의 껍질, 그 껍질 안에 있는 ‘나’라는 사람이 보였어. 세상에 알려졌던 나의 아픔, 사고로 인한 외아들의 죽음이나 경제적인 문제에 대한 상처들을 충분히 위로받고 치료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어. 속마음을 드러내며 치료받을 여유가 없었지. 그래서 트라우마로 남았어. 누가 힘들어 할 땐 그냥 옆에서 손만 잡아줘도 힘이 돼.” 박원숙이 이어서 말했다. “남들이 어쩌구 저쩌구 할 때, 거기에 가세해서 비판하면 안 돼.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들을 비판하지 말아야 돼”라며 지난날의 아픔이 되살아난 듯 눈물을 흘렸다. 혜은이가 문득 생각난 듯, 7년 전 처음 이 프로그램에 합류했을 당시 불편했던 일을 털어 놓았다. 엄청난 빚더미에 시달리고, 이혼 등, 심적으로 너무 힘든 상황이었는데, 웃는 얼굴로 포즈 취할 상황이 아닌데, 박은숙이 자꾸 사진을 찍어줘서 싫었다고 고백했다. 지금와서 생각하니 그게 너무 죄송하다고 했다. 여러가지 생각이 들게 하는 자연이었다. 박은숙은 뜻밖의 그 말을 듣고 몹시 충격을 받았다. 예쁜 순간을 남겨주고 싶어 좋은 마음으로 한 일이 오히려 힘들게 했다니! 가슴이 아팠다. 그러나 어려웠던 혜은이의 과거를 알기에 헤은이를 부둥켜 안고 함께 울었다. 사남매는 대자연이 만든 절경 속에서 요동치는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며 서로의 속마음을 터놓았다. 박원숙이 말했다. “우리가 스위스에 온 게 그냥 관광이 아니었어. 자신을 돌아보고, 뒤를 돌아보는 ‘내면여행’이야!” 사남매는 자연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며 마음이 열리는 경험을 했다. 시청자인 나까지도 같은 경험을 했다. 서로를 토닥이며 단단해진 4남매는 노란 들꽃이 만발한 리기산 언덕에서, 꽃길을 걷고 있었다. 그들에겐 그토록 멀게만 느껴졌던 꽃길이었다. 윤다훈이 말했다. “우리가 각자 인생의 어둡고 긴 터널을 잘 통과했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행복한 거예요.” 혜은이도 “말로만 꽃길을 걷자고 하다가 진짜 꽃길을 걷는 순간을 맞았군. 영영 오지 않을 것 같던 인생의 꽃길을 이제야 걷는다”고 했다. 리기산의 정기를 받은 그들이 앞으론 꽃길만 걷기 바란다. 사남매가 그동안 말 못했던 자신들의 아픈 상처를 터놓는 모습은 자연이 주는 위로와 감정의 해방이었다. 상처난 감정을 치유하고 회복하는 진심의 순간이었다. 그들의 치유과정을 보며 큰 울림을 받았다. 대자연은 인간에게 경외심, 치유, 내면의 평화를 선사한다. 지극히 작은 존재임을 깨닫고 겸손함을 배우게 만든다. 대자연은 침묵 속에서 진심을 끌어내는 가장 진한 힐링 공간이다. 그동안 눌러왔던 감정이 자연스레 흘러나온다. 사남매는 스위스 리기산에서 오래된 침묵을 깼다. 모든 것이 눈물로 흘려 내렸다. 대자연은 언제나 말이 없다. 묵묵히 우리 곁에서 우리를 품어준다. 그렇다고 함부로 대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자연을 파괴하면, 자연은 언젠가 등을 돌릴 것이다. 그리고 그날, 우리는 비로소 우리가 무엇을 잃었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배광자 / 수필가문예마당 대자연 위엄 순간 대자연 홍진희 윤다훈 자연 경관
2025.09.18. 18:20
그대여 고향에 가면 마음을 비우세요 그 곳은 그리움과 외로움이 만나는 곳 해변을 걸으세요 남산에 오르세요 텅 빈 가슴 그 곳에 놓고 오세요 아픈 가슴에 다리 절며 바닷가 헤메는 나그네 세상 애환 등에 지고 산에 오르는 산객 누군가 문드러진 마음 주워 가겠지요 그 것은 새벽을 밝히는 반짝이는 진주 이슬 너와 나의 치유의 눈물 이강민 / 시인문예마당 향수 진주 이슬 세상 애환
2025.09.11. 18:51
알제리 태양보다 강한 햇살이 정수리에 쏟아진다 내 심장 눈부시게 어지럽고 내 몸이 붉게 물들어가자 토마토가 얼굴을 붉힌다 질투하던 붉은 장미 검붉게 화장하고 뒤뜰에 핀 맨드라미 벼슬도 붉게 익어간다 엊그제까지 싱그럽던 연두 세상 서둘러 검푸른 녹음으로 뛰어드니 내 마음 사방으로 꽉 차오르고 질기게 나만 따르던 내 그림자 길게 드러눕는다 젊음을 잃고 시들어가는 내 마음 꺼내 팽팽하게 당기고 눅눅해지는 내 생각 땡볕에 말려보자 늘어지고 휘어진 나 파란 여름 바다에 담가보자 어느새 내 얼굴 토마토보다 붉다 정명숙 / 시인문예마당 토마토 얼굴 토마토 마음 사방 알제리 태양
2025.09.11. 18:50
숨이 막힌다. 90도를 웃도는 무더위가 일주일 넘어 계속되고 있다. 요즘 더위는 평년 남가주 날씨가 아니다. 전에는 햇볕은 따가워도 그늘에만 들어가면 시원함을 느낄 수 있었다. 뜨겁고 건조했던 더위가 습하고 끈적거리는 기후로 변해가고 있다. 에어컨을 오래 켜 놓으니 몸이 찌뿌드드하다. 몸살이 날 것 같다. 밤이 되어도 여전히 후덥지근 하지만, 에어컨을 끈 채 창문을 열고 자리에 눕는다. 열린 창문으로 요란한 풀벌레 소리만 들려온다. 그중 으뜸은 귀뚜라미 소리다. 벌써 철이 이렇게 되었나. 찬 바람이 불어야 풀벌레가 우는 줄 알았더니 이 더위에 너희도 잠이 오지 않는 모양이로구나. 안 되겠다. 베개를 들고 거실로 나온다. 마루에 얇은 이불을 깔고 잠을 청한다. 조용한 집안에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귀청을 울린다. 언제부터인가 집안에 동거하는 녀석들이 있었다. 다른 곤충과 달리 귀뚜라미는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 하여 가끔 눈에 띄어도 못 본 척 그냥 두었더니 그 수가 늘어난 모양이다. 하지만, 울음소리가 이렇게 시끄러운지 미처 몰랐다. 너는 어쩌다 내 집에 들어와 오도 가도 못 하는 신세가 되어 주인의 잠까지 방해하며 울어댄단 말이냐. 저 녀석은 수컷이 분명하다. 귀뚜라미는 수컷만 운다고 들었다. 짝짓기할 때가 되면 날개의 돌기를 서로 비벼서 소리를 내는데 그게 바로 우는소리라 했다. 암컷을 부르는 소리다. 멀리 있는 암컷을 부를 때는 큰소리를 내고 가까이 있는 짝과 사랑을 나눌 때는 부드러운 소리를 낸다고 한다. 지금 저 녀석의 소리는 멀리 있는 짝을 부르는 소리임이 분명하다. 어릴 적, 솜씨 좋은 동네 오빠가 여치 집을 만들어주었다. 반들반들 노란빛이 나는 밀짚으로 만든 여치 집은 집안에 걸어두어도 장식품처럼 멋이 있었다. 대청마루 서까래 기둥에 매어 놓은 여치 집에는 해가 지고 어두워지면 귀뚜라미나 여치가 들어가 울어 댔다. ‘또르르르, 치르치르.’ 저녁을 마친 식구들은 쑥대로 모깃불을 피워놓고 마루에 누워 더위를 식혔다. 여치 집에서 풀벌레들이 울자 우리는 그것을 흉내 내어 소리를 내었다. 신기하게도 녀석들은 울음을 딱 멈추었다. 우리가 따라 멈추면, 그들은 침묵을 깨고 다시 울어 댔다. 그들이 울면 우리도 울고 멈추면 따라 멈추길 반복하며 귀뚜라미와 돌림노래를 부르며 놀았다. 어서 가을이 오기를 기다리는 노래가 아니었을까. 옛날 풍류를 아는 양반들은 여치 집을 가까이에 걸어두고 벌레 우는 소리를 들으며 즐겼다는데, 아마 그 흉내를 낸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지금 저 소리가 하나도 즐겁지 않다. 무언가로 바닥을 두드리면 귀뚜라미는 일순 소리를 멈춘다. 그러다 조용해지면 다시 울어댄다. 제발 소리를 멈추어 나로 잘 수 있게 해달라고 사정이라도 하고 싶다. 누군가는 반박할지 모른다. 요즘 귀뚜라미나 풀벌레 소리를 저장하여 수면을 유도하는 백색소음이라고 값을 내고 듣는다는데, 대가 없이 울어준다는 녀석을 왜 구박하는가 하고 말이다. 귀뚜라미, 여치, 베짱이, 풀벌레…얼마나 정겨운 이름인가. ‘귀뚜라미 우는 밤’ 유년의 가을을 아련하게 만들었던 동요다. 귀뚜라미 소리를 들으며 휘영청 밝은 달 아래 막막한 밤하늘을 보며 노래를 불렀다. 막연한 무엇을 그리워하면서. 아마도 유년에서 사춘기로 넘어가는 시간 어디쯤이었을 것이다. 이희승 선생은 ‘청추 수제’에서 다섯 가지를 일컬어 가을을 상징하는 소재로 삼았다. 벌레, 달, 이슬, 창공, 독서, 다섯을 불러와 가을이라는 이름을 완성하였다. 그중 첫 번째 소재 벌레를 통해 귀뚜라미를 가을의 전령사로 소개했다. 낭만이 있는 많은 이들도 귀뚜라미를 가을의 손님이니 가을의 소리니 하며 이름을 지어 올렸다. 가수 안치환은 나희덕의 시, ‘귀뚜라미’를 노래로 만들어 불렀다. 그가 노래한 귀뚜라미는 시골집 초가지붕과 싸리로 만든 울타리가 아닌, 도시의 콘크리트 벽 좁은 틈에서 우는 귀뚜라미다. 지금은 매미 소리에 묻혀 그의 울음은 아직 노래가 아니다. 가을이 오는 소리에 매미는 가고 이제는 그의 세상이다. 어둡고 습한 밤이 오면 숨 막히게 울어댄다. 누구의 가슴 하나 울리는 노래이길 바라면서. 때를 기다리는 건 귀뚜라미나 사람이나 매일반이다. 지금은 그의 시간, 모든 것은 한때다. 이 외에도 시를 사랑하고 가슴이 따뜻한 많은 사람이 귀뚜라미를 노래했다. 가을을 부를 때는 녀석도 함께 불러올렸다. 바로 곁에서 요란스럽게 울어대는 그의 소리에 잠은 이미 천리만리 달아나 버렸다. 어느 가슴에 닿으려고 저리 울어대는가. 네가 보내는 타전 소리가 세상에 시달리고 지친 어떤 이에게 다다르기를 기다리는 것이냐. 녀석의 수명은 일 년밖에 되지 않는다. 가을이 오면 짝짓기를 한 암컷은 땅속에 알을 낳고 죽는다. 수컷 역시 힘을 다해 짝짓기하고 추운 겨울에 이르러, 알을 낳고 죽은 암컷처럼 땅속에서 죽는다. 겨우 일 년, 신의 섭리대로 종족 번식에 이바지하고 떠나는 셈이다. 무더위 속에 가을이 숨어있다. 귀뚜라미 때문에 가을이 오는 모양이다. 귀뚜루루 귀뚜루루…. 온 힘 다해 울어대는 저 녀석들 덕택에. 정유환 / 수필가문예마당 귀뚜라미 가을 귀뚜라미 울음소리 귀뚜라미 소리 귀뚜라미 여치
2025.09.11. 18: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