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머리 위로 하얀 서리가 내려앉은 나이가 되어서야 곁에 있는 사람의 뒷모습을 찬찬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당당했던 젊은 날의 어깨는 어디로 갔는지, 삶의 무게를 버텨내느라 조금은 처진 그의 등을 바라보며 그가 지나온 고단한 시간을 짐작해 본다. 앞만 보며 달려온 시간의 끝자락에서 우리가 도착하게 될 종착지는 과연 어떤 빛깔로 물들어 있을까. 저녁 식사를 마치고 설거지를 끝낸 뒤 작업실로 가려는데, 거실에서 남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같이 보며 시간을 좀 보내야 하지 않을까? 당신 따로, 나 따로 이렇게 쉬는 건 너무 밍밍하다.” 텔레비전이라도 함께 보자는 말이었지만, 우리는 취향이 다르다. 내가 좋아하는 거로 골랐다며 너스레를 떠는 날, 못 이긴 척 옆에 앉아 있어 보지만 남편은 이내 휴대전화를 보거나 잠이 든다. 같이 있어도 각자의 시간이 되는 저녁, 그 풍경은 어느새 우리 부부에게 익숙한 일상이 되었다. 신혼 시절의 나는 마주 앉아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누는 부부를 꿈꿨다. 와인 한 잔을 사이에 두고 하루의 자잘한 일들을 나누며 서로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밤을 상상했다. 하지만 바깥일에 지친 남편에게 집은 오직 쉬는 공간이었고, 나는 그 휴식을 방해하지 않으려 애쓰며 홀로 시간을 채우는 법을 배워야 했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자라는 동안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함께 고민하고 기대며 키우고 싶었지만, 육아의 무게는 늘 엄마의 몫으로 남았다. 어쩌다 꺼낸 마음의 이야기는 종종 서글픈 오해로 끝났고, 서로의 다름을 이해시킬 여유는 점점 사라져 갔다. 그렇게 살아오다 보니 마음을 주고받는 대화는 이제 내 몸에 맞지 않는 옷처럼 어색해졌다. 하고 싶은 말은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는데, 남편은 대화가 무거워지는 걸 조용히 피한다. 이만큼의 시간을 살아오고서도 아직 이런 바람을 품고 있는 내가 철이 없는 건지, 아니면 여전히 꿈꾸고 있는 건지 스스로 묻게 되는 날들이 있다. 때로는 한탄하듯 “늘 그렇지 뭐. 인제 와서 얼마나 알콩달콩 깨를 볶겠다고 애를 쓰는 건지” 하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리기도 한다. 이런 날들이 반복되며 우리는 저녁을 먹고 각자의 자리로 흩어진다. 잠자리에 드는 시간까지 다르니, 같은 공간에 다른 두 사람이 그저 사는 건 아닌지 되돌아보게 된다. 내가 꿈꾸던 부부의 모습은 아니지만 인제 와서 모든 걸 바꿀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제는 발을 맞추려고 애쓰기보다 서로가 다치지 않게 나란히 걷는 방법을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 내기보다 이미 우리 곁에 있던 것들을 정성껏 닦아내는 연습을 하려 한다. 가끔 치는 골프와 피클볼을 하며 땀 흘리고 웃는 그 순간의 생동감, 매일 내 입맛을 살피며 커피를 내려주는 손길에서 행복의 의미를 기억해야겠다. 마음의 소리를 다 꺼내지 않아도 ‘다 알고 있다’ 말하는 듯한 그의 투박한 눈빛 뒤에 남아있는 조용한 언어를 조금 더 읽어보려 한다. 그는 말보다는 행동이 먼저라고 생각하며 곁을 지켜온 사람이었다. 부족함을 채우려 애쓰기보다 이미 가진 것에 더 많은 가치를 두는 일, 그것이 앞으로 내가 더 연습해야 할 마음일지도 모른다. 내 방식대로의 아름다움만을 고집할 게 아니라 눈에 잘 띄지 않아도 작은 것들이 빛나고 있음을 기억하는 것. 그것 또한 사랑의 한 모습 아닐까. ‘이 세상 소풍을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했던 천상병 시인의 말처럼. 서로의 곁을 지켰기에 이 소풍이 외롭지 않았노라고, 함께여서 더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겠다. 그 말을 하기 위해 나는 오늘도 조용히 아름다운 마무리 연습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최경하 / 화가·수필가문예마당 마무리 연습 마무리 연습 시간 이야기 저녁 식사
2026.03.12. 21:20
작년 연말, 카카오톡이 업데이트되면서 내 생일이 1월 1일로 잘못 바뀐 모양이다. 새해 첫날, 신년 인사와 함께 뜻밖의 생일 축하 메시지가 잇따라 도착했다. “새해 첫날 태어났으면 매스컴도 탔겠네요.” 그렇게 말하며 신기해하는 이도 있었다. 내 진짜 생일은 신록이 눈부신 오월이다. “오늘 제 생일 아니에요.” 웃으며 고마운 마음을 담아 일일이 답장을 보냈다. 어느새 나이테가 늘듯, 숫자가 더해지는 것이 그리 달갑지 않은 나이가 되었다. 세월이 쌓일수록 여러 의미를 덧입히게 되니, 예전의 기대와 설렘보다 왠지 서글픔이 먼저 다가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축하 메시지를 읽는 동안만큼은 인연이 남긴 따스함이 잔잔히 퍼져왔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 아직 지워지지 않은 이름으로 남아 있다는 사실, 그 사소한 확인만으로도 희미해졌던 내 존재의 테두리가 또렷해지는 듯했다. 오류가 만들어 낸 엉뚱한 생일 덕분인지, 올해는 축하받을 일이 많으려나 하는 작은 기대만으로도 마음이 몽글해진다. 살다 보면 뜻하지 않은 순간을 마주할 때가 있다. 어떤 날은 황당한 사고로 낭패를 보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전혀 계산되지 않은 감동이 불쑥 다가오기도 한다. 얼마 전, 트레이더 조(Trader Joe's)에서 우유와 치즈 등 유제품 몇 가지를 들고 계산대 앞에 섰을 때였다. 낯선 히스패닉 할머니가 다가오더니 내 물건값을 대신 지불해 주겠다는 것이었다. 손사래를 치며 괜찮다고 거절했지만, 영어를 못하는 그녀와 스페인어를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나는 끝내 소통하지 못했다. 다행히 히스패닉 캐셔가 통역을 도와주었는데, 그녀의 대답은 의외로 단순했다. “이유는 없어요. 그냥 그러고 싶어요.” 내 뒤로 줄 서 있던 손님들도 황당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쩔 줄 몰라 당황하는 나에게 캐셔가 말했다. “기다리는 사람이 많으니 그냥 받으세요.” 더 지체할 수 없어 나는 “그라시아스(Gracias)”라며 감사의 인사를 했다. 그녀는 환한 얼굴로 손을 흔들며 사라졌다. 큰 금액은 아니었지만 그녀가 왜 처음 본 나에게 그런 호의를 베풀었는지는 여전히 물음표로 남아 있다. 혹시 한국 사람에게 크게 신세를 진 적이 있었을까. 그저 짐작만 해 볼 뿐이다. 지인 댁을 방문하러 가던 길이었다. 과일 한 박스를 사서 계산을 마치고 출구를 나서는데, 전도지를 나눠 주던 젊은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예수님을 믿으세요? 저희 교회에 한 번 방문해 주세요.” 건네받은 초대장에 적힌 교회 이름과 위치를 보니, 개척교회 목사님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영혼 구원이라는 사명을 품고 선택한 길이겠지만, 홀로 노방전도를 하고 있는 그를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목사님, 수고가 많으십니다. 저는 교회에 다니고 있어요.” 나는 카트에 실린 과일 박스를 불쑥 내밀었다. 뜻밖의 행동에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감사합니다. 축복합니다.” 하며 마음을 받아 주었다. 그 순간, 몇 달 전 누군가에게 받았던 호의가 문득 떠올랐다. 나 역시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아마도 기독교인으로서 목회자를 향한 존경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관계를 맺는 일에서도 '득과 실'을 먼저 계산한다. 이익이 되지 않거나 감정 소모가 클 것 같은 관계는 애초에 걸러내는 것이 현명하다고 믿었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마음의 문을 닫고, 손해 보지 않기 위해 거리를 조절하는 일은 당연하게 여겼다. 그렇게 효율과 손익의 잣대는 인간의 마음마저 저울 위에 올려놓는다. 이름 모를 히스패닉 할머니의 호의에도, 목사님께 건넨 과일 박스 한 상자에도 어떤 계산도 없었다. 만약 그 순간 서로의 이해관계를 먼저 따졌더라면, 낯선 이가 건넨 손길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이다. 인생은 뜻한 대로 흘러가지 않지만, 계산 없는 마음은 오래도록 빛으로 남는다. 이유 없는 온기가 이 삭막한 세상의 온도를 아주 조금, 1도쯤은 올려놓지 않았을까. 김윤희 / 수필가문예마당 온도 수필 히스패닉 할머니 히스패닉 캐셔 과일 박스
2026.03.12. 21:19
어린 시절 고향 마을 울 엄니 상여 따라가던 날 동네 어귀지날 때 수줍은 듯 다가와 진달래 한 송이 쥐여주곤 도망치듯 달아난 삼월이는 지금 어디에 … 다시 와준 마냥 고운 봄이 밉다 박정일 / 시인문예마당 고향 마을
2026.03.05. 19:12
소식 없던 오랜 친구 양노병원에 문병을 갔다 아~ 여기가 바로 인생의 종착역인가! 호스를 코에 꽂고 산소통 끌고 다니는 사람 휠체어도 밀어줘야 움직이는 사람 꼼짝없이 누워 천정만 보는 사람 긴 시간 앉아서 TV만 보는 사람 힘겹게 목발 짚고 화장실 가는 사람 한때는 일터에서 가족위해 세상위해 성실히 살았을 화려한 이력들 지금은 괴로운 하루가 지옥 같은 사람들 코에 호스 꽂은 사람 안 꽂은 이 부럽고 누워있는 사람 앉아있는 이도 부럽고 휠체어 탄 사람 목발 짚은 이 부럽다 마음대로 두 발로 서서 세상을 누비는 사람들아 더 이상 더 많은 거 바라지마라 그대 걷는 길이 바로 천국인 것을. 강언덕 / 시인문예마당 사람 목발
2026.03.05. 19:11
나의 살던 고향은 경기도 파주시 한 시골 마을. 집 뒤에는 심학산, 앞에는 한강 하구가 있다. 물건너 동네가 강물에 거꾸로 비춰 흐르는 곳에서 해방 두 달 전 태어났다. 비록 일제강점기에 태어나긴 했지만 일본제국의 만행은 자라면서 부모님을 비롯해 주위 어른들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전부다. 초등학생이 되어서야 많은 친척이 있는 것도 알게 되었고 방학이 되면 친척들 방문하는 것 또한 늘 기다려지던 시기다. 아직도 많은 추억이 남아 있는 곳은 큰 고모님 댁. 큰 고모님은 강 건너로 출가하셨다. 그래서 고모님 댁을 가려면 언제나 깊고 푸른 강을 건너야 했다. 어머님은 친척 집 다니러 갈 땐 언제나 보호자요, 가이드 역할을 해주셨다. 그런 탓에 어머님과 함께 하지 않는 고모님 댁 방문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당시 친척집 방문은 지금처럼 전화로 약소을 하고 가는 것이 아니고 대부분 무작정 가는 것이었다. 혹시 큰 일(결혼, 초상, 제사, 사고)로 가는 경우엔 미리 연락을 하거나 어머님의 명석한 기억력에 의존했다. 그러던 어느날 어머님과 함께 법곶 나루터를 향해 십여리 길을 걸어 가니 강을 건너려는 몇몇 사람만 기다릴 뿐, 정작 배와 뱃사공은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기다리니 강 건너편에서 조각배 한 척이 오는 모습이 보였고, 그 후 1시간이나 지나서야 6,7명의 손님을 태운 나룻배가 힘겹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뱃사공은 한잔했는지 구슬픈 노랫가락으로 빠르게 흐르는 강물을 토닥이며 노를 저었다. 그렇게 강을 건너고 다시 십여리를 더 걸어 마침내 고모님 댁에 도착했다. 강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이 땅에 태어나는 모든 사람들이 반드시 건너야 하는 ‘인생의 강(the river of life)’, 혹은 ‘영적 죄의 강(the spiritual sin river)’이다. 불교에서는 고달픈 인생 길을 고해(苦海), 즉 ‘깊은 바다(deep sea)’에 비유한다. 그 강은 어떤 강이고 왜 건너야 하는지, 그리고 그 강을 건너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그 목적지(예수 그리스도)를 기록하고 안내하는 책이 바로 성경이다. 성경이 말하는 ‘인생의 강’ 혹은 ‘영적 죄의 강’ 은 고통과 괴로움의 강, 아픔과 슬픔의 강, 가난과 빈곤의 강, 고뇌와 절망의 강, 탐욕과 탐심의 강, 경쟁심과 이기심의 강, 사망과 죽음의 강 등으로 묘사된다. 그럼 왜 그 강을 건너야 할까? 모든 사람은 본인의 ‘자유의지(free will)’와 상관없이 그 죄의 강에서 태어난다. 아담과 하와는 본인들의 ‘자유의지’로 선악과를 택했다고 하는데 그들의 후손은 자신의 ‘자유의지’와 상관없이 죄악의 강에서 태어나 그 강에서 살다가 죽는다는 것이 성경을 연구하는 많은 이들의 설명이다. 그 강을 건너주겠다고 하는 미국 선교사 한 분을 60여년 전인 1965년 5월 16일, 서울 종로예식장에서 만났다. 그때 들려준 전도설교 내용의 일부를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그는 슬픔과 아픔을 기쁨으로, 궁핍을 부요함으로, 절망을 희망으로, 역경과 수고를 승리로, 탐욕에서 자족함으로, 이기심에서 이타심으로, 사망의 길에서 생명의 길로 또는 영생의 길로 인도해 주실 분(예수 그리스도)을 만나기 위해 그 강을 건너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언제 그 강을 건너 예수 그리스도(목적지)와(에) 상봉(도착)할 수 있을까? 그 미국 선교사는 내가 ‘영적 죄의 강’을 건너는데 도움을 주는 ‘영적 배(the spiritual boat)’의 선장이었다. 그 후 선장이 바뀌어 한국분을 만났다. 그런데 지난 60여년 간 내가 탄 배(교회)의 많은 선장들은 배 위로 승선하는 사람들에게만 관심이 있지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예수(히12:2)”님을 만나기 위해 배에서 내리려는 사람들에겐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많은 교리와 자의적 성경 해석을 통해 배에서 내리면 안된다고 가르치고 심지어 경고까지 한다. 아마도 강을 건너는 목적을 모르고 배를 운영하는 것 같다. 우리 항해의 목적이 ‘영적 배’를 타고 ‘죄의 강’을 건너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일일텐데... 지금 내가 탄 배(교회)의 선장은 나를 그 목적지까지 인도해 줄 수 있을까? 언제,이 고달픈 ‘죄의 강’ 을 건너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을까? 지금이라도 배에서 뛰어내려 니고데모가 그랬던 것처럼 강 건너 저 ‘변화산(The Mount of the Transfiguration)’ 기슭에서 기다리고 있을 예수님을 찾아가 만나고 싶다. 어릴 적 뱃전에 올라 바라보던 강 건너 고향 마을은 아직도 나를 기다고 있을까? 바카빌(Vacaville)의 어둔 밤이 고요히 깊어 간다. 남영한 / 은퇴 치과 의사문예마당 인생 수필 예수 그리스 어느날 어머님과 건너 예수
2026.03.05. 19:10
앞마당에 까마귀 한 쌍 까악까악 타버린 숯 같은 네 몸 저승사자의 반려 조인가 네 눈은 오래된 불씨처럼 빛난다 신대륙으로 끌려오던 검은 사람들 너처럼 검은 옷 입고 있었다 너는 아느냐 노아가 홍수 끝에 첨병으로 날렸고 메마른 땅에 엘리야에게 빵을 물어다 주던 그 길조의 후손이라는 걸 네 조상은 여전히 검은색을 가장 아름다운 색이라 믿고 있다는 것을 윤덕환 / 시인문예마당 까마귀
2026.02.26. 19:00
새 다이어리 첫 장을 열어 봅니다 반들반들 첫 페이지가 빛나며 어서 오라 손짓합니다 1년, 같이 가자며 시작하는 신호를 보내고 있어요 그래그래 뜨겁게 시작해 보자며 첫 장을 펼칩니다 책을 들어라 ! 연필을 들어라 ! 끄적이다 찢더라도 춤을 춰 봐야겠습니다 검은 글씨로 쓰다 싫증이 나면 빨간 글씨로 바꾸어 가며 검은색 빨간색 하얀 노트를 채우렵니다 손 아프고 눈 아프면 잠시 멈춰 기도를 하겠어요 떠오르는 기억 속에 달콤하고 짭짤한 그런 꽃을 피우겠습니다 나를 빚으며 행복하겠습니다 여기는 나만의 철밥통 꿋꿋이 앉아 달리겠습니다 달리다 해동갑 만나면 열망의 도시락 뒤져서 까먹고 예쁘게 멋지게 빚어내겠습니다 엄경춘 / 시인문예마당 다이어리 검은색 빨간색
2026.02.26. 18:59
불과 10년 전만 해도 매주 토요일 새벽 레돈도비치 바닷가를 한 시간 넘도록 달렸다. 숨은 찼지만 몸은 가볍고 즐거웠다. 건강과 삶의 활력을 주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나이를 핑계로 같은 길을 걷고 있지만, 이 바닷가 길은 여전히 내 마음이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이다. 이 길을 걷다 보면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이 마음속에 밀려오지만 파도 소리와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은 세상의 무게를 내려놓게 한다. 바다 앞에서는 누구나 마음이 넓어지나 보다. 달리는 대신 걷다 보니 더 많은 것을 보고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장점도 있다. 지난 토요일 새벽엔 바닷가를 걸으며 문뜩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나이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행복한 삶이란 과연 무엇일까?” 그리고 이 질문은 바다처럼 넓게, 파도처럼 내 마음속에서 출렁였다. 사람에게는 세 가지 나이가 있다고 한다. 첫째는 연대적 나이(Chronological Age)다. 출생일을 기준으로 계산되는 나이로, 누구도 통제할 수 없으며, 결국 받아들일 뿐이다. 둘째는 생물학적 나이(Biological Age)다. 건강한 식습관과 운동, 그리고 긍정적인 생활 습관을 통해 관리되는 나이다. 같은 나이라도 누구는 젊게 살아가고, 누군가는 더 빨리 지치기도 한다. 몸이란 결국 삶의 태도에 반응한다. 셋째는 심리적 나이(Psychological Age)다. 우리가 스스로 느끼고 생각하는 나이다. 연대적 나이는 자연의 흐름 속에서 주어지는 것이지만, 생물학적 그리고 심리적 나이는 본인의 노력과 지혜, 통찰 속에서 얼마든지 더 젊고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다. 그래서 노년의 삶은 단순히 ‘늙어가는 과정’이 아니라 지혜와 통찰 속에서 새롭게 살아갈 수 있는 시간이다. 이러한 삶이 육체와 정신이 맑은 ‘젊은 노년’이라 생각한다. 네덜란드 틸버그(Tilburg)대학 교수이며 조직심리학, 리더십 전문가인 마논 반 스헤핑겐(Manon van Scheppingen)박사는 9110명을 대상으로 ‘사회생활과 직장 생활에서 만족도를 유지하며 행복을 느끼는 사람’을 조사했다. 스레핑겐 박사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다섯 가지의 특정한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 행복을 더 많이 느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즉, 외향적인 사람, 양심적 인 사람,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 유쾌한 사람, 그리고 정서적으로 안정된 사람이다. 고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지혜(Wisdom)와 신중함(Prudence) 같은 지적 능력을 향상해야 하며, 또한 용기, 절제, 정의와 같은 덕목을 단련해 바람직한 행동을 지속함으로써 생활이 안정되고 행복한 삶을 느낀다”고 강조했다. 아침에 눈을 뜰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일이다. 하루를 다시 시작할 수 있고, 즐기고,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큰 축복이다. 또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며 웃고 기쁨을 나누며, 서로 의지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가족과의 따뜻한 시간, 친구와 나누는 대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순간들은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 준다. 다른 사람들을 만나며 그들의 생각과 경험을 통해 시야를 넓힐 수 있고고, 마음도 한층 성숙해진다. 삶 속의 모든 일에 감사할 때, 마음 깊은 곳에서 진정한 행복이 피어난다. 우리 마음은 하나의 정원이다. 그리고 생각은 씨앗이다. 우리는 꽃을 키울 수도 있고, 잡초를 키울 수도 있다. 우리에게 행복은 환경이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태도와 성격, 그리고 생활 습관 속에서 자란다는 중요한 사실을 알려준다. 천재 물리학자인 앨버트 아인슈타인은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다면 사람이나 물건에 인생을 묶지 말고, 목표에 묶어라.(If you want to live happy life, tie it to a goal, not to people or objects)”라는 말을 남겼다. 이 말은 노년의 삶에 특히 중요한 의미를 준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은 잃는 것이 많아지고, 몸은 예전 같지 않으며, 세상은 더 빠르게 변한다. 그럴수록 삶의 중심은 잃지 말아야 한다. 그 중심이 바로 스스로 선택한 삶의 목표이며, 의미이며, 삶의 방향이다. 노년의 생활에서 가장 좋은 점은 여유로운 시간이 많다는 것이다. 그 시간 속에서 취미를 갖고 배우며 살아간다면 삶은 더욱 깊고 아름다워질 수 있다. 하이킹, 걷기, 요리, 독서, 춤, 정원 가꾸기, 골프 같은 활동도 좋고, 그림 그리기나 서예처럼 마음을 담을 수 있는 취미도 노년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든다. 취미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순수한 기쁨을 주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성취감과 평온함을 선물한다. 배움에는 정년이 없고, 취미는 삶의 질을 높이고 행복을 얻는다. 문득 이런 말이 떠오른다. “지성과 애정을 간직하는 한, 늙지 않는다.(As long as we keep intellect and affection, we do not grow old.)” 레돈도비치의 바닷가를 걸으며 노년의 행복은 거창한 성공이나 큰 소유가 아니라, 하루를 감사할 줄 아는 마음, 의미 있는 목표, 그리고 작은 기쁨을 소중히 여기며 사랑을 간직한 삶 속에 존재한다는 생각을 해 본다. 이명렬 / 경영학박사문예마당 행복 노년 취미도 노년 생물학적 나이 연대적 나이
2026.02.26. 18:58
쌍 기역으로 그것도 한밤에 살금살금 기별도 없이 나타나 잠깐 머물다 많은 이야기 남긴 채 희망을 주고 예언까지 조금은 알 것 같아 왜 기억자(記憶字) 인지 처음의 단어 그건 꿈의 시작 씨앗이 땅의 옷을 입는 순간 스스로 습기의 나체가 되듯 작은 꿈 자라면 두고 본 세월의 옷 빛바랜 종이 옷에 적힌 시 추억이라 불러다오 그때 꾼 너 만나 이룬 것 간직한 채 아름답게 필날 손꼽아 기다려 언젠가 배달부 손 빌려 만나겠지 그 꿈 장일하 / 시인문예마당 단어 그것
2026.02.19. 19:13
잎보다 먼저 뛰쳐나와 하얀 가슴 내민다고 헤픈 년 보듯 마세요 ~ 그저 당신께 봄소식 빨리 전하고픈 마음뿐 … 박정일 / 시인문예마당 목련
2026.02.19. 19:12
새벽은 아름답다. 캄캄하고 신비스럽다. 내가 사는 로스앤젤레스의 겨울 새벽은 춥지 않고 선선하다. 정적을 깨는 아침 새들의 대화가 시작되려면 어둠이 얇아진 후까지 좀 기다려야 한다. 물론 야밤에 노래하는 부엉이도 있고, 신경질적으로 소리 질러 소견을 전달하는 새가 있기는 하지만, 새벽은 침묵하고 있다. 오늘 아침의 하늘은 어둠 속에 짙푸른 가운데, 반달과 오리온 좌가 총기(聰氣) 바랜 흐린 빛을 보내준다. 나는 새벽에 관한 것들에 익숙하다. 새벽 시간, 새벽 소리, 새벽바람, 새벽하늘, 새벽 별자리, 새벽을 열며 일하러 가는 사람들, 그들의 헤드라이트 행렬, 새벽에 올리는 분심(分心)으로 갈리어진 나의 묵주기도까지…. 그리고 새벽에 일하는 나 자신에도 익숙하다. 나는 새벽에 글을 쓰고 많은 행정적인 일도 한다. 글을 쓰기 전에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앞마당을 걸으면서 묵주기도 (?珠祈禱, Rosary)를 하는 것이다. 묵주기도란 불교에서 염주를 돌리며 하는 기도처럼 구슬을 이용해서 예수의 생애를 기억하며 주의 기도, 성모송, 영광송을 반복하면서 묵상하는 방식의 기도이다. 되풀이하는 기도라, 잡념이 들기 십상이다. 이 기도는 가톨릭 신자들이 많이 애호하는 기도이다. 이 기도 방식의 원천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가장 많이 믿고 있는 내용은 이렇다. 글을 읽을 줄 모르던 초기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성서를 읽지 못했고, 따라서 성서에 준 한 기도를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단순하고 간단한 기도를 반복해서 하는 방식을 전수하게 되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묵주기도를 ‘구슬을 굴리면서 묵상하는 기도’라는 뜻에서 그리 부르고, 서구권에서는 ‘로자리(rosary), 글쓴이 주: rosarium(장미라는 뜻의 라틴어)’이라고 한다. 이 ‘로자리’에 대한 설도 많다. 예수의 생모인 성모 마리아를 아름답고 순수한 장미로 표현한 것에서 나왔다는 설이 있다. 또 종교탄압으로 그리스도교인들을 공공장소, 주로 콜로세움 같은 운동장에서 처형하면서 생기게 된 것이라고도 한다. 굶은 사자를 풀어 신자들이 잡혀서 먹히도록 했는데, 그들은 머리에 장미로 만든 화관을 쓰고 광장으로 행진했다고 한다. 인체는 먹히고 장미 화관은 남겼다는 것이다. 새벽에 일을 많이 하지만, 나보다 더 일찍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주위에 많다. 새벽에 일터로 향해 가는 사람들도 그들 중 하나다. 우리 집 앞마당에서는 캘리포니아의 중요한 동맥 역할을 하는 405번 프리웨이가 약 반 마일 정도 보인다. 405 프리웨이는 5번에서 파생한 고속도로로, 북서쪽을 커버해 주는 약 72마일 구간이다. 미국 내에서 가장 많은 차가 오가는 고속도로로 북쪽 실마(Sylmar)와 남쪽 엘토로 와이(El Toro Y) 사이를 연결한다. 이 길을 따라 깜깜한 새벽에, 남쪽으로, 북쪽으로 헤드라이트, 백라이트들이 줄지어 움직인다. 일터를 향해 가는 새벽 사람들이다. 또 앞마당에는 이미 신문들이 도착해 있다. 신문 배달원은 도대체 몇 시에 우리 집에 다녀간 것일까? 그는 신문을 배달하고 또 다른 직장을 향해 서둘러 갔을지도 모른다. 신문 배달로 버는 돈만으로는 생활이 어렵다는 걸 누구나 안다. 신문 배달원뿐만 아니라, 나와 남편이 젊었을 때 그랬던 것처럼, 큰딸도 어둠을 헤치고 환자를 돌보러 병원으로 향한다. 또 이런 시간에, 한국어 진흥재단 사무총장은 교회에 가서 새벽기도를 올리고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를 위해서. 철이 없고 세상을 몰랐던 나는 처음으로 ‘산다는 것은, 일(노동)이나 공부를 떠나서 엄숙한 것이다…’라는 삶의 심오한 뜻을 깨달았던 때가 있었다. 나를 일깨웠던 것은 가난도 아니고, 전쟁의 상흔도 아니었다. 당시 나는 10대 끄트머리의 소녀시기를 지나 여성으로 성숙해지는 길에 첫발을 내디뎠던 때였다. 사르트르, 톨스토이, 카뮈 등등의 꽤 어두운 작가들의 글을 읽고 친구들과 ‘개똥철학’을 토론하던 때이기도 했다. 사회의 부조리함, 어두움을 논하던 나의 눈에 강의실 곳곳을 열심히, 성실하게 닦고 있던 청소부 아저씨의 맑고, 진지하고, 겸손하고 평화로운 얼굴이 들어왔다. 그리고 그 아저씨의 존재가 나를 일깨웠던 것이었다. 가난과 노동과 그로부터 받는 엄청난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대가는 우리의 행복이나 희망과는 별 개라는 것을 깨달았다고나 할까? 나는 ‘노동의 숭고함’이라는 사치스럽고 아이러니한 문구를 기억한다. ‘일’과 ‘노동’을 구분하는 현대 사회이다. 산업혁명 (18세기 후반)이후, 당시 6억이었던 세계 인구는 2024년에 82억으로 늘었고, 세계 총생산은 199배가 늘어난 173조 달러라고 한다. 빈부의 차이는 극(極)에 이르렀다. 그 중년의 청소부 아저씨는 노동의 숭고함에 신경을 쓰며 일했을까? 자식들을 키우느라 수고하셨던 아버지, 어머니들은 그 ‘노동의 숭고함’이라는 이상을 갖고 일을 하고, 품을 팔지는 않으셨을 것이다. 누군가의 말대로, 우리는 노동을 정당화하고 미화하고 있을지 모른다. 새벽을 가르는 현대인들처럼. 류모니카, M.D. 미국 종양방사선학 전문의·미국 한국어진흥재단 명예이사장문예마당 새벽 수필 소리 새벽바람 새벽 시간 새벽 별자리
2026.02.19. 19:10
매년 이맘때가 되면 풍성한 과일 오렌지가 주렁주렁 노란 춤으로 바람에 일렁인다 다른 나무 잎은 다 떨어져 겨울잠 자는데 짙은 녹색 오렌지 나무 사시사철이 없는가 보다 그래도 다른 나무처럼 어느 봄날 사철 잎 속에서 꽃은 하얗게 피어나고 벌들은 그 향기 따러 달려온다 묵은 가지에 가려 보이지 않게 매달린 새 열매 뜨거운 여름 숨어지내더니... 먼저 달린 오디, 자두, 살구, 복숭아, 무화과, 석류 제치고 주먹 쥔 아기 손만큼 커간다 그리고 아침저녁 서늘한 가을바람 따라 여름내 준비해 둔 황금색 물감 열매마다 물들이고... 오렌지 나무도 기원이 있다 창조주 하나님이 지구 창조 셋째 날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그 후 많은 나라 여러 지역으로 다니면서 황금색 열매 맺는 오렌지 나무 지금도 그 셋째 날 창조의 신비를 말하고 있다! 남영한 / 시인문예마당 오렌지 나무 오렌지 나무 창조주 하나님 황금색 물감
2026.02.12. 18:16
햇볕이 따뜻하여 마당에 나가 지난 가을에 떨어져 수북히 쌓인 감나무 낙엽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헤쳐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낙엽더미 속에서 가녀린 연두색 잎과 꽃대가 연한 보라색 꽃망울을 달고 여기 저기서 나오고 있었다. 겨울동안 움츠렸던 몸과 마음이 기쁨으로 차올랐다. 햇볕을 받을 수 있게 낙엽들을 걷어 주었다.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가 지나면 우리 집 작은 마당에는 가장 먼저 봄을 알려 주는 꽃이 있다. 보라색 히야신스다. 오래전에 지인이 들고 온 화분이다. 꽃을 실컷 보고 구근을 감나무 밑에 심었더니 해마다 더 번져가며 꽃을 피우고 봄을 알려준다. 난초와 비슷하게 양옆으로 실한 초록 잎이 나오고 가운데로 꽃대가 꽃망울을 달고 올라온다. 수십 개의 꽃이 질서 정연하게 꽃대에 붙어, 말고 올라가 한 봉오리 꽃을 만든다. 아침마다 다르게 여기저기서 쑥쑥 꽃대가 올라와 보라색 꽃봉오리의 향연을 이룬다. 너무 아름다워 화폭에도 담아보는데 어디 실물에다 댈까! 꽃말을 찾아보았다. 영원한 사랑이란다. 거기에 얽힌 애틋한 전설까지 있었다. 그리스 신화에 아폴론의 태양신과 봄을 몰고 오는 서풍의 신 제피로스가 히아킨토스라는 소년을 동시에 사랑하게 되었다. 그 소년은 빼어난 미남에다 운동도 잘하고 전쟁터에서도 용맹을 떨쳤다. 결국 태양신인 아폴론과 소년 히아킨토스가 사랑하게 되었다. 하루는 둘이 들판에서 원반을 누가 더 멀리 던지나 시합을 했다. 히아킨토스가 멋지게 던진 원반을 아폴론이 받아 다시 히아킨토스에게 하늘 높이 던지는데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제피로스가 질투심에 바람을 불게 해 원반이 소년의 이마를 맞추는 바람에 소년은 죽고 말았다. 아폴론은 소년을 끓어 안고 슬퍼하며 머리에서 나는 피를 잔디에 뿌리고 울부짖으며 다시 생명을 불어넣어 아름다운 꽃으로 태어나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자 피로 물든 풀이 자라나 한 송이 꽃을 피웠는데 그 꽃이 바로 보라색 히야신스라고 한다. 색깔별로 여러 꽃말이 있는데 사랑에 관한 말이다. 보라색은 영원한 사랑과 슬픈 사랑, 붉은색은 당신의 사랑이 나의 마음에 머물다, 노란색은 용기와 승부, 파란색은 사랑의 기쁨, 흰색은 마음 편안하게 당신을 사랑하는 기쁨, 분홍색은 귀여움 등이다. 이런 표현들이 각기 다른 것 같지만 사실 누구를 사랑할 때면 모두 느끼는 감정이 아니겠는가. 한바탕 히야신스가 피고 난 후엔 심지도 않은 사랑초가 화단을 덮는다. 못다 한 사랑의 여운일까? 이제 감나무가 새잎을 틔우고, 대추나무의 어린잎이 고개를 내밀고, 장미가 몽우리를 내비치면 우리 집 마당은 완연한 봄이다. 이들을 바라보노라면 내 몸과 마음도 빨간색, 분홍색, 보라색, 하얀색들로 피어올라 선한 것들로 채워짐을 느낀다. 꽃과 풀과 나무는 봄이 되면 최선을 다해서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운다. 그렇게 해서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게 하고 사랑을 받는다. 그들에겐 필요한 것이 많지도 않다. 며칠 만에 한 번씩 물을 주고 생각나면 몇 톨의 비료를 뿌려준다. 비료는 일 년 내내 한 번도 안 줄 때도 많다. 그래도 그들은 봄만 되면 약속을 지키려는 듯 매일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기쁨을 준다.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기쁨과 아름다움을 우리도 누군가에게 갚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 화단의 꽃과 나무들처럼 누군가에게 꽃을 피우고 싹을 틔워야 하지 않을까? 그건 어렵지 않다. 먼저 꽃처럼 화사하게 인사하고 마켙에서 줄을 서서 계산 할 때도 물건이 적은 사람에게 양보하고 남의 것과 비교하지 않으며 욕심부리지 않고 상대를 얕보지 않으면 된다. 꽃을 피우는데 어떤 대단한 영양분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우리도 조금만 노력하면 되는 일이다. AI(인공지능) 시대라고 사람 대신 컴퓨터에만 의존해 살아서는 안 되는 것 같다. 컴퓨터로 아무리 꽃을 예쁘게 만든다 해도 그것은 꽃이 아니다. AI 로봇을 아무리 잘 만든다 해도 어찌 인간과 같겠는가! 아무리 악한 사람에게도 눈물이 있지 않은가! 앞으로만 달려서는 안 되는 때가 있다. 앞에 무서운 절벽이 있는데 계속 달리다 보면 떨어져 변을 당할 수가 있다. 모든 분야에서 AI가 판을 치는 세상을 보면 18세기 프랑스의 계몽주의 사상가 장 자크 루소가 생각난다. 그는 문명, 학문, 예술의 지나친 발달이 인간을 위험하게 만들고 타락시키고 불평등을 야기한다고 주장했다. 다시 한번 새겨봄 직한 이론이다. 우리처럼 점점 느려져야 하는 시니어들엔 인공지능을 이용하는 시대가 되는 것이 왠지 걱정스럽다. 루소의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말은 우리에게 경고라고 생각한다. 인간 본연의 순수성과 자율성, 도덕적 직관을 회복하자는 외침이다. 악한 로봇이 나와 인간을 해칠까 봐 겁이 난다. 우리 인간에겐 지구를 지켜야 하는 의무가 있다. 하느님은 우주에서 지구라는 에덴동산을 주셨다. 꽃들이 저마다 특징이 있듯이 인간도 개성과 특성을 발휘해서 아름다운 낙원을 만들어야겠다. 이영희 / 수필가문예마당 히야신스 봄꽃 봄꽃 히야신스 사랑초가 화단 소년 히아킨토스
2026.02.12. 18:15
꽃 보고 있으니 꼭 보고 싶고나 본 지도 만난 적도 없는 널 … 박정일 / 시인문예마당
2026.02.05. 18:20
햇살이 반짝반짝 일렁이는 빙의 저 구름 바라본다 바람 타고 날아온 매화꽃 향기가 알려 주네요 이월에 생일 동그라미 그려 놓은 달력 천억은 되리라 이 넓은 정원 속을 즐기며 만끽하는데 보너스로 즐거운 날들이 밀려온다 오리 세 마리가 그려진 그이의 생일이 바로바로 나의 생일, 무슨 인연으로 우린 같은 날인지 고요한 책상 앞에 앉아 그날의 프로그램 궁리하다 저녁 산책길을 나서 본다. 떨어진 하얀 꽃잎 사이 톡톡 튀는 다람쥐, 나뭇가지 손에 들고 장난을 치다 불 켜진 케이크 떠올라 손뼉 치며 환하게 웃는다 아 - 난 행복한 거야 외쳐본다 살아나는 미소 띠며, 매화꽃 만발한 나무 아래 손 높이 들고 만세 부른다 이제 남은 생 “타오르는 촛불처럼 따사롭게 지내요” 우리--- 엄경춘 / 시인문예마당 생일 매화꽃 향기 저녁 산책길 나무 아래
2026.02.05. 18:19
멕시코의 국경 도시인 티후아나를 지나 두어 시간 남쪽으로 더 내려가면 항구 도시 엔시나다를 만나게 된다. 항구 도시라지만 컨테이너 하역 시설, 크레인이 즐비한 곳은 아니다. 그렇다고 한국의 어항처럼 고기잡이배들이 잡아 온 생선을 판매하는 어시장이 있고 해산물 식당이 즐비한 모습도 아니다. 관광객 대상의 허름한 모텔, 식당, 선술집, 낚시 용품점 등이 있는 조그만 어촌이라 부르는 것이 타당할지 모른다. 이곳은 미국의 강태공들이 규정이 까다로운 미국을 피해 낚싯배를 타고 바다 낚시를 즐기던 곳이다. 낚시꾼은 거짓말을 밥 먹듯 한다는 말도 있지만 낚시에 나섰다가 입질조차 받지 못하고 공치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면 인근 어시장에서 커다란 민어를 단돈 10달러에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이곳도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자연이 훼손되고 아름답던 해변에는 천박한 거물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자본주의의 거센 물결을 피해 갈 수 없었다. 세월을 따라 이곳도 많이 변했다. 주민들의 순박한 미소를 더는 볼 수 없게 됐다. 이곳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30여분, 차로 달리면 나타나는 곳이 카보 푼타 밴드(Cabo Punta Band)로 외곽 지역에는 저소득층이 모여 사는 마을이 있다. 한 사람, 두 사람 모여들어 자생적으로 형성된 마을이다. 이곳은 그 옛날 서울의 청계천 쪽방촌을 닮았다. 6·25 한국전쟁 이후 많은 피난민에게 임시 주거지가 되어 주기도 했던 빈민가다. 청계천 개발을 위해 그곳에 거주하는 주민들을 강제 이주시키고자 만든 곳이 경기도 성남시다. 지금 청계천 쪽방촌을 기억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한국의 젊은 세대는 기억조차 못 하겠지만 청계천의 역사는 대한민국의 역사를 닮았다. 가난과 설움, 피할 수 없는 운명의 굴레가 끊임없이 되풀이되던 곳이었다. 하수처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던 시절, 청계천은 지저분하고 악취가 진동했다. 그리고 삶에 지친 사람들의 욕설과 다툼이 일상이던 곳이었다. 그러나 가난으로 인해 사람들이 거칠기는 했어도 이웃의 얼굴과 이름을 기억하고 저녁이면 밥 짓는 연기가 그림 같았던 곳 역시 청계천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청계천은 비록 인위적인 구조물이긴 하지만 도심의 숨통을 터주는 명소로 변모했다. 그 옛날 쪽방촌의 기억은 이제 완벽하게 지워졌다. 나무 한 그루 없고 흙 먼지 날리는 언덕에 형성된 작은 마을에 우리가 지원하는 교회가 있다. 그곳 교인들을 잊지 않고 작은 정성을 모으는 사람들이 있어 성탄절에는 교회를 찾는다. 전해 줄 성탄절 선물이라야 학용품, 담요, 옷가지 그리고 그 날 함께 할 점심 정도지만 연례행사가 되었다. 우리는 굳이 선교라는 이름은 쓰지 않는다. 그저 우리가 가진 작은 것들을 나눌 뿐이다. 때때로 그들의 어려운 형편이 전해지면 금전적 지원도 하지만 성탄절에 먼 길을 재촉하는 이유는 마음을 전하고 싶은 까닭이다. 물론 그들의 반가운 미소로 인해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받아오는 여정이 되기는 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며 이런 행사를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이들은 혹 내 주머니에 있는 것들을 선뜻 남을 위해 내어주기 싫어하기 때문이 아닐까.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 작은 선행도 때를 놓치면 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선행 과정에서 얻게 되는 새로운 열정을 느낄 수 없음도 알아야 한다. 누구에게 무엇인가 줄 수 있을 때 주고, 나눌 수 있을 때 나누면 된다. 일행이 멕시코 교회로 출발하기로 한 날 겨울 폭풍이 다가왔다. 새벽 5시,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폭우가 쏟아지니 걱정이 앞섰다. 나는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이번에는 따라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대신 우비와 뜨거운 커피를 챙겨 먼 길 떠나는 이들을 배웅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집을 나섰다. 많은 비로 도로에 물이 넘치고 건널목을 지날 때마다 커다란 파도가 차 양 옆에 생기며 차가 흔들렸지만 마음은 한결 가벼웠다. 송병길 / 건축가문예마당 겨울 폭풍 겨울 폭풍 청계천 쪽방촌 청계천 개발
2026.02.05. 18:18
병오년 새해를 맞이하여 말처럼 뛰어다니는 올 한 해가 된다면 참 좋겠습니다 88 미수를 맞이하여 꿈도 많고 감회가 벅차지만 마음처럼 몸이 따라주지 않을 것 같아 걱정이 앞섭니다 팔팔하게 살자는 구호처럼 신나고 씩씩하게 살 수만 있다면 내 생애 최고의 해가 될 것 같습니다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고 새해 벽두에 비를 맞으며 집으로 왔습니다 주룩주룩 하염없이 내리는 비가 잔잔한 호수 같은 내 마음에 파문을 그리며 찾아와 나를 술렁이게 하고 돌아가신 큰 오라버니의 해맑은 얼굴을 떠올리게 합니다 주저앉지 말고 말처럼 일어서서 뛰어 보라는 그의 음성이 귓전을 두드립니다 오라버니는 말띠여서 평생 뛰어다니며 우리나라 항결핵 사업에 평생을 바치신 거인 하나님께서 그에게 새 힘을 주셨듯 내 마음 밭에도 꽃씨를 심어주시고 꽃피울 꿈을 환히 안겨다 줄 봄을 이만치 성큼 다가오게 해 주셔요. 김수영 / 시인문예마당 겨울비 새해 새해 설날 새해 벽두 송구영신 예배
2026.01.29. 18:30
빛이 사라졌다. 동네는 숨을 죽인 듯, 순식간에 어둠 속으로 잠겼다. 다행히 낮 동안 햇빛을 머금은 썬라이트가 현관 앞을 은은히 밝힌다. 집 안의 불빛과 기계음이 모두 멎자 고요가 스며들고, 주변은 깊은 정적 속으로 가라앉았다. 문명에 기대어 살아온 우리의 일상은 전기가 멈추는 순간 속절없이 무너졌다. 조금 전까지 열기를 내뿜던 히터가 꺼지자 찬 공기가 집 안 구석까지 파고든다. 휴대폰 배터리가 바닥을 드러내자 마음도 덩달아 불안해졌다 갑작스러운 정전 속에서 가족들은 본능처럼 한곳으로 모였다. “다들 괜찮아? 조심해.” 짧게 오가는 말 한마디가 어둠 속에서 작은 등불처럼 마음을 밝혔다. 빛이 사라지자 손으로 주변을 더듬고 귀를 기울이다 보니, 청각과 촉각은 한층 더 예민해졌다. 빛 한 점 남지 않은 집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손전등과 초를 찾아 작은 불빛을 밝히는 것뿐이었다. 전류가 멈추자 집 안의 전자제품들도 일제히 침묵했다. 가사를 도와주던 청소기와 세탁기, 나의 메신저가 되어 주던 컴퓨터,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전해주던 TV까지 모두 무용지물이 되었다. 익숙하던 생활의 소리가 사라진 자리에 묵직한 정적만이 감돈다. 그 틈으로 창밖에서 그동안 들리지 않던 생명의 숨결이 흘러들어왔다. 이름 모를 풀벌레의 울음, 스치는 나뭇잎의 속삭임, 멀리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까지. 기계음에 가려 잊고 있던 소리들이 조용히 귓가에 스며든다. 서너 개의 촛불이 가까스로 어둠을 밀어낸다. 거실에 희미한 불빛이 번지자 벽에는 아련한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불꽃이 흔들릴 때마다 그림자는 춤을 추고, 그곳은 작은 극장이 된다. 아들과 딸은 손으로 새와 나비를 만들어 벽과 천장에 날려 보내고, 작은 불꽃은 벽을 캔버스 삼아 이야기를 그려낸다. 어둠은 반드시 불편함만을 남기지는 않았다. 빛이 사라진 공간은 오히려 마음이 모이는 자리로 바뀌었고, 각자의 일상을 잠시 내려놓은 우리는 한곳에 모여 예고 없이 찾아온 시간을 또 하나의 소중한 추억으로 새겼다. 어린 시절, 정전은 낯설지 않았다. 온 동네에 어둠이 내려앉으면 아버지는 마당에 모닥불을 피우셨고, 우리 형제들은 평상에 둘러앉아 아버지가 가리키는 별자리를 바라보며 그 유래와 전설을 듣곤 했다. 둥근 달을 올려다보며 달 속에서 토끼가 방아를 찧고 있는 형체를 발견하고는 정말 그곳에 토끼가 살고 있다고 믿었던 시절이었다. 어머니가 토끼에게 소원을 말하면 들어준다고 하자 언니들 따라 “부모님이 오래오래 건강하시길” 빌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윙― 하는 소리와 함께 캄캄했던 집안이 다시 빛으로 채워졌다. 냉장고는 낮은 숨을 고르고, 시계는 잃었던 박동을 되찾았다. 그러나 일상으로 돌아온 안도감 속에서도 어둠이 남긴 여운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환해진 거실의 물건들은 하나같이 낯설게 다가왔다. 잠시 멈춰 섰던 시간은 내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당연히 여기며 살아왔는지를 돌아보게 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곁에 있는 것들의 소중함을 자주 잊는다. 늘 옆에 머물러 주는 사람들, 영원할 것만 같던 건강과 시간, 그리고 아무 일 없어 보이던 일상까지도. 누릴 때는 미처 깨닫지 못하다가 사라지고 나서야 비로소 그 가치를 알게 된다. 어쩌면 우리에게도 잠시 멈춰 서서 삶을 돌아볼 시간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쉼 없이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어디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 아침, 그날의 어둠을 떠올리며 평범했던 하루를 다시 마음에 담아본다. 김윤희 / 수필가문예마당 불빛 마음 불빛과 기계음 휴대폰 배터리 시절 정전
2026.01.29. 18:30
여기선 애타게 봄을 기다릴 일 없다 겨울이 없는 이곳에선 늦가을인 듯 초봄인 듯 그렇게 한 계절이 바뀐다 지구촌 북반구가 온통 눈과 얼음으로 뒤덮여도 여긴 떨어지지 않은 단풍잎 사이로 새 꽃들이 얼굴을 내민다 멀지 않은 마운트 볼디 산정엔 하얀 눈빛 모자 선명한데 돌배 꽃 가로수는 참지 못하고 돌아서서 하얀 웃음 터뜨린다 아직 1월이 한참 남았는데 아침 산책길 철쭉꽃 자목련 빵긋 웃고 인사를 한다 일 년 내내 골프 칠 수 있는 곳 거위털자켓 필요 없는 곳 눈 속에 파묻힌 마을들 빙판길 갇힌 차 행렬 뉴스 시간에 보면서 남쪽 캘리포니아 주민인 우리 남몰래 행복의 가슴 쓸어내린다. 강언덕 / 시인문예마당 캘리포니아 남쪽 남쪽 캘리포니아 지구촌 북반구가 뉴스 시간
2026.01.29. 18:30
새해엔 이런 계획을..... 숲 속 새들조차 새벽길로 나를 유혹하는데 굿모닝 인사하는 맑음의 요정들 여윈 잠 털어내며 요술 부리는 동쪽 붉은 하늘 바라보면서 걷는 활기찬 사람들 웃으며 손짓하는 곳 이것은 빛을 품어내는 만남입니다 풀어지듯 흩어지는 구름 바라보며 이마를 간지르는 바람 속을 난 행복해 하며 내 삶을 키워봅니다 하늘빛 빙하 물인 저 하늘 보며 개발하는 중이지요 아픔이 없는 세상 슬픔이 없는 세상이기를 읊조리며 간구합니다 기분 좋은 약속 받아 쥐고 고난의 짐 짊어진 채 층계를 오르고 자갈길을 걸으며 나만의 전설을 만드는 중입니다 손을 높이 들고 만끽해 보는 일 이 골목 저 골목 들여다 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수렁으로 내려가는 걸 막아야 하지 않을까요 세속의 고민을 싹 다 잊을 것 같습니다 푸르게 일어서는 솔 향기 듬뿍 마시며 구불구불 언덕을 넘고 꼬부랑 길 돌아 시름을 모두 씻어주는 자연의 소리 벗 삼아 오롯이 즐기며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 맘 안고 바람과 햇살 새소리로 단련하면서 갈색 낙엽 길을 맹약관화 라지만 동산 바치로 살자 다짐합니다 엄경춘 / 시인문예마당 새해 설계 새해 설계 하늘빛 빙하 햇살 새소리
2026.01.22. 18: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