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울어진 달이 내게 손짓한다 하마 하얀 빛깔을 가슴에 숨기며 돌아서 여미는 옷자락에 하얀 달빛 물감이 아직 남아 있는데 저리도록 애틋한 사연들 긴 머리 빗어 내리듯 바람에 흩날려 보내고 돌아서 마주치는 하루 그 시울 속에 하얀 이슬이 맴도는 것을 달빛 속에 남겨둔 이야기들 가슴 깊이 꼬오옥 안아본다 크리스틴 정 / 시인문예마당 달빛 달빛 물감
2025.07.31. 18:14
해질 무렵 사방이 모두 초록으로 뒤덮인 바카빌(Vacaville) 들판 위를 서성인다 산들바람 산들산들 불어와 어린 옥수수 키우고 저 멀리 울타리 미루나무 가지에도 바람은 달려간다 산들산들 불어 오는 산들바람 푸른 하늘 저 하늘엔 새하얀 솜구름 나르고 그 위로 노저어 가는 반달가슴엔 석양의 은빛을 뿌린다 때를 따라 열매맺는 과일 나무 사이로 오늘도 조용히 불어 오는 초저녁 산들바람… 어설픈 농부의 마음에도 평화의 미래를 들려준다 남영한 / 시인문예마당 들판 초저녁 산들바람 미루나무 가지 과일 나무
2025.07.31. 18:13
강릉단오제를 다녀온 지 벌써 1년이 지났다. 지난해 6월, 강릉 남대천을 따라 길게 늘어선 천막들 사이로 흘러나오던 행사의 열기를 잊지 못한다. 음력 5월 5일 단오를 기점으로 8일간 펼쳐진 이 축제는 단오굿, 단오 체험, 민속놀이, 청소년 어울림 한마당, 각종 경연대회 등 총 64개 프로그램으로 구성돼 시민과 방문객을 맞이했다. 단순히 오래된 축제를 넘어, 강릉단오제는 수천 년 이어져 온 우리 민족의 삶의 방식과 정신을 오롯이 담아내는 살아있는 역사이자 문화유산임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단오제 첫날, 신을 맞이하는 영신행차에 이어 펼쳐진 신통대길 길놀이는 축제의 서막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강릉시 읍면동 주민들과 각 기관 단체 34팀이 참여한 이 길놀이는 단순히 행진을 넘어, 각 공동체의 기발한 아이디어와 특색 있는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창의적인 경연장이었다. 단합된 열정으로 뿜어내는 에너지는 축제장을 가득 채웠고, 이는 곧 강릉 지역 주민들의 강한 공동체 의식과 문화적 자긍심을 대변하는 듯했다. 특히 강릉관노가면극의 무언극은 매우 흥미로웠다. 대사 없이 몸짓과 소리로만 이루어진 가면극은 관객들에게 상상력을 자극하고 몰입감을 선사하며, 전통 연희의 깊이 있는 예술성을 느끼게 했다. 또한 강남동 농악대는 오색 복장과 현란한 상모돌리기, 그리고 악기 소리의 완벽한 조화로 눈과 귀를 사로잡는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했다. 어린아이들이 무동을 타고 천진난만하게 춤추는 모습, 부녀자들이 밝은 표정으로 일사불란하게 소고를 두드리는 모습은 단순한 공연을 넘어, 농악이 그들의 삶에 깊이 뿌리내려 기쁨과 단합의 구심점 역할을 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며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처럼 강릉단오제는 세대를 아우르는 모두의 축제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강릉단오제의 핵심 행사인 단오굿은 엿새 동안 단오제단에서 진행됐다. 여러 거리의 굿 중 박혜미 이수자가 진행한 국가무형유산 용왕굿은 특히나 화려했다. 바다를 생업의 터전으로 삼는 강릉 주민들에게 풍어와 만선은 생존과 직결된 문제였기에, 굿판에는 삶의 간절한 염원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또한 거친 파도 속에서 조업하는 가족의 무탈을 빌기 위해 두 손 모아 간절히 기도하는 여인들의 모습은 가족 사랑과 안전에 대한 깊은 기원을 느끼게 했다. 필자 역시 시 「동해안 별신굿」에서 ‘…/만경창파로 떠난 사람들아 / 날뛰는 꽹과리 소리 장구 소리 붙잡아라/ 정신줄 놓지 말거라./ 돌아오소. …’라고 쓴 바 있듯이, 우리 민족에게 굿은 단순한 미신을 넘어 삶의 애환과 희로애락을 담아내는 중요한 의식이었다. 연로한 무녀들이 굿판을 떠나도, 종이꽃 신당 앞에는 무복을 입은 젊은 이수자들이 무구를 흔들며 기나긴 무가를 낭랑하게 읊조리고 있었다. 이들의 목소리에는 전통을 계승하려는 젊은 세대의 책임감과 열정이 느껴졌다. 땀으로 흠뻑 젖은 하얀 모시 적삼을 입은 6명의 악사들은 무아의 경지에서 꽹과리와 징을 두드리고 장구를 치며 혼신의 힘을 다해 반주했다. 이 젊은 이수자들은 인간의 절박함을 신에게 고하는 중재자의 역할뿐만 아니라, 관객과 소통하며 함께 호흡하는 연희자의 모습으로도 비쳐졌다. 이는 굿이 단순히 신을 향한 의식이 아니라, 사람들과 함께 즐기고 공감하는 살아있는 공연 예술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강릉은 태백산과 인접해 있어 단오제 때 산신제를 지내고, 대관령의 국사성황신 내외를 모셔오고 모셔가는 제례와 조전제 등 유교식 제례도 거행한다. 이때 강릉시장을 비롯한 각 기관단체장들이 제관이 되어 주민들의 안녕과 풍농, 풍어를 기원하는 모습은 지역 사회의 리더들이 앞장서서 전통문화를 보전하고 이어가는 모습을 보여주며 깊은 울림을 주었다. 이처럼 단오제가 무속적이고 비과학적 요소를 중심축으로 한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에 무속 행사에 대한 예산 집행 반대와 미신 숭배라는 부정적 관점을 가진 종교 단체들이 단오제 기간 중 열띤 집회를 여는 것 또한 강릉의 현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강릉단오제가 지닌 가치는 흔들림이 없다. 강릉단오제는 단순히 미신을 숭배하는 축제가 아니다. 오늘날 전국적으로 지방자치단체의 특색 있는 행사가 주목받는 가운데, 강릉단오제는 국가 유산(무형문화재 제13호)이자 2005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축제로 인정받고 있다. 이는 강릉단오제가 한국을 넘어 세계적으로 보존하고 계승해야 할 인류 공동의 자산임을 의미한다. 외래 종교가 유입되기 훨씬 이전부터 천 년을 이어온 강릉단오제는 이제 미신 중심의 제의식을 넘어 과거와 현대를 잇는 총체적인 문화 행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강릉시청은 강릉단오제 전수교육관을 운영하며, 강릉단오제 위원회와 강릉단오제전승보존회는 전통 행사의 전승과 보전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축제 사흘째 되는 날, 강릉의 한 성당에서 단오장에 차린 천막 식당에 들러 막국수를 맛봤다. 식당 안을 진두지휘하며 손님들을 안내하던 신부님은 강릉단오제라는 전통 문화를 귀하게 여긴다는 뜻을 잠깐 비치기도 했다. 종교적 신념을 넘어 문화적 가치를 존중하고 이해하려는 이러한 포용적인 태도는 강릉단오제가 지닌 또 다른 중요한 의미를 보여준다. 마지막 날 밤, 찬란한 불꽃놀이로 단오제 행사는 성대하게 막을 내렸고, 언론은 약 70만 명이 다녀갔다고 전했다. 이 수치는 강릉단오제가 단순히 지역 축제를 넘어 전국적인, 나아가 국제적인 관심을 받고 있음을 증명한다. 강릉단오제의 각종 행사와 퍼포먼스는 어린이와 어르신이 함께 어우러져 공연하고 참여하며 세대 간의 소통과 화합을 도모하고, 이를 통해 공동체 의식을 다지고 삶의 활력을 불어넣는 데 크게 기여했을 것이다. 또한 천막 장터에서 생필품과 먹거리를 사고파는 소상인들과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직접적으로 도움이 됐다. 축제가 단순한 유흥을 넘어 지역 사회의 경제적, 사회적 활력소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축제가 지향해야 할 바람직한 모습이기도 하다. 결국 강릉단오제는 세계화 시대를 맞아 한국적 삶의 원형을 담고 있으며, 우리 민족의 생존 방식과 공동체 정신을 보여줌으로써 민속학적, 인류학적으로도 큰 의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살아있는 전통 문화유산인 강릉단오제가 앞으로도 그 가치를 이어가며 더욱 발전해나가기를 기대한다. 권정순 / 시인문예마당 강릉단오제 숨결 강릉 지역 공동체 의식 강릉 주민들
2025.07.31. 18:12
바다가 그리운 강물은 흐름의 기도를 멈추지 않고 산들은 기도하는 제자리가 외롭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칠월의 밤을 열어놓고 합창하는 풀벌레들의 울음 너머를 짚어보는 나에게 바람의 옷을 입은 산새들이 찾아와 노래로 살아가는 길이 있다고 한다 아직도 배움의 기쁨을 모르는 터에 스승으로 떠오르는 해와 달이 베푸는 계절의 향기 봄, 여름, 가을, 겨울 그 고마움을 알아가는 기쁨이 기도의 시작이라고 한다 헤아려 보니 하나 하나 둘 하나 둘 셋… 따지지 마라 기쁨과 슬픔, 들숨과 날숨도 서로 다른 은총인 것을 유병옥 / 시인문예마당 기도 마음 여름 가을 슬픔 들숨 울음 너머
2025.07.24. 19:22
내 맘 속엔 언제나 아무도 모르는 욕심이 자라나고 있다 안 그런 척하면서도 남에게 빼앗기고 싶지 않은 보석 같은 말 양보하기 싫은 욕심의 싹들이 자란다 집, 밖, 외식자리, 아이들 집 가리지 않고 점잖은 척하면서 소리없이 움켜쥔다 어떤 곳에서 누구와 앉아 있어도 별난 것도 아닌 말들 중요치도 않은 것들이 욕심의 콩고물 묻어져 손에 꼭 쥐고 만다 주야로 돌아가는 생각의 끄나풀 세상에 꼭 필요치도 안은 이야깃거리를 메모하다 보면 맘속 깊은 수렁에 싹트는 것들을 이리 저리 고치고 다듬어 색칠을 한다 버리지 못하고 나 홀로 대화하는 그것들이 매일 싹트고 있다 꽃이 핀다 아침에 피는 나팔꽃이다 그래서 늘 바보인데 빈 재떨이처럼 단단한 그리고 빛나는 삶으로 살고 싶다 엄경춘 / 시인문예마당 수렁속 외식자리 아이들
2025.07.24. 19:21
미주문단에 몸을 담고 살아온 지 어언 이십 년이 넘었다. 오래전 신문기사로 문학단체들이 하나 둘 창간하는 소식을 들으며 깊은 관심을 갖곤 했다. 내 글쓰기는 대학에서 수필을 좋아해 학보신문에 글을 발표하며 시작되었다. 집안에서는 오빠와 언니가 벌써 시를 쓰기 시작했고, 부모님도 늘 무엇인가 쓰셨다. 결혼 후에는 중앙지 신문에 독자투고를 했고, 대구에서는 주부수상에 자주 나왔다. 그런 소중한 인연으로 만난 전모 논설위원님. 우리가 모르는 개개인의 삶의 일정은 묘하기도 신비롭다. 어느 날 직장에 다니던 딸아이가 내가 쉬지 않고 여태 써온 글들 모아보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책 한 권이 될 터인데 출판비를 선물할 테니 출간하시란다.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던 말을 딸이 나에게 툭 던진 것이다. 그러면서 어머니인 나의 일생이 너무 아깝다는 것이다. 미국에 이민 와 파트타임일을 하다 그만두고 전업주부로 사는 내가 늘 안타깝다는 그 애의 생각이었다. 그렇게 나는 책을 출간키로 작정하고 원고를 3년 동안 준비하며 등단을 고려하고 있는데, 두 사람의 인연이 또 나타났던 것이다. 처음 나간 나의 고국방문 길에 곡성 성륜사의 청화스님의 장례식에서 국문과 교수이고 고향 문학지의 편집 주간으로 있는 동창을 우연히 만난 것이다. 만 명이 넘는 사람들 속에서 흐느끼며 땅만 쳐다보고 걷는 나를 바로 앞에서 친구가 내 이름을 불렀다. 여고 졸업 후 보는 친구였다. 또 우연히 샌디에이고에서 만난 정모 시인이 수필가협회의 회장에게 연락해 박모 회장이 회원으로 들어오라고 다정한 전화가 걸려왔기에 협회에 가입했다. 그런 후 LA의 문학회 행사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한 회원이 등단연도를 물어 고국의 친구와 의논했다. 그때야 등단하면 문학지를 사주어야 하는 절차가 있다는 걸 알았다. 그 후 미국에 문학 강사로 온 분이 모임에서 우연히 ‘수필시대’라는 격월간지 책을 선물 받으며 그분을 통해 같은 해에 중앙지로 등단했다. 하지만 주변사람들로부터 들려오는 요구 사항들을 나는 모두 거절했다. 영어회화가 어렵고 문화가 다른 이민생활이 힘들다는 것도 주위의 한국인들을 보며 배워야했다. 교회에 다니지 않으니 사람교류가 거의 없었지만, 라디오, 신문과 방송을 통해 사회를 접했다. 집에서 나름대로 경전을 읽으며 삶의 고통을 이겨내려고 애를 썼다. 취미인 쓰기는 잠을 자는 시간을 줄여서라도 한 번 도 중단하지 않고 공책에 정리하며 발표도 했다. LA에서 열리던 불교행사에도 꼬박꼬박 참석했다. 여러 사람이 내 글을 읽었다며 인사를 건네오기도 했다. 나의 이마에 붙은 재미수필가. 등단한 후로는 한국에서 발행하는 문학지들을 구입해 읽으며 치열하게 수필공부를 했다. 과연 좋은 수필은 어떤 글일까를 고민하면서…. 시인도 소설가도 아무나 모두 덤벼들어 잡탕 글이라며 착각하고 비하하는 사람들의 모욕적인 말들이 정말 나는 싫었다. 문학적인 글에 대하여 무엇인가를 좀 배우고 싶어서 LA의 문학 행사에 다니곤 했다. 때론 먼길 가는 나를 걱정해 남편으로부터 지독한 말로 야단을 맞으면서도 바람난 여자처럼 운전대를 잡았다. 저녁 늦게 행사가 끝나면 자정이 되어서 들어오는 일이 보통이었기에, 종종 그이도 따라나섰다. 평회원으로 회비를 내기도 했지만 후원해주고픈 단체장이 나올 때는 이사로도 잠시 참여했다. 돌아보니 부끄러운 일도 있다. 문학상을 받아본 적이 없는 내가 너무 경력이 없었기에 행여나 기대를 했었나 보다. 수필가협회에서는 상을 만들어 놓고 수년 동안 수상자가 없다는 말에 화가 나 내가 응모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사진과 함께 신문지상에 기사로 나온 심사위원이 상을 받은 것이다. 문학상을 만들어 놓은 회장에게 문의하니 세 사람이 추천을 했기에 주었다는 것이다. 모 씨가 심사위원직을 내려놓고 상을 받은 것이다. 그때까지도 나는 그분을 문학선배라며 존경했는데 허무했다. 또한 회장들의 열정도 계속 이어지지 않고 아예 문단을 떠나버린 사람도 여럿이다. 회장 중에는 공금을 분명하게 밝히지 않고 사용하는 일들도 많아 여기저기 말들이 많았다. 내가 한번 이사회에 참석해 보니 그렇게 느껴졌다. 물론 그런 사람들은 떠나야 마땅하다. 오래전 일이다. 무슨 자기들이 무슨 문학의 대부나 대모처럼 행사하며 등단의 줄을 만들기도 하는 일들도 많아 당한 사람들이 억울해 알려주며 말해주었다. 그래서 고국에 사시던 나의 국어 선생님께서 오래전부터 예술계(음악, 문학, 미술)가 너무 썩어 문드러졌으니, 등단하지 말라고 하셨던가. 늘 평소의 맑은 마음에서 좋은 글이 우러난다며 격려해주시던 은사님. 솔직히 나는 학창시절 워낙 뛰어난 시인 친구들이 여럿이라 문학이라는 말을 음미해 본 적도 없었다. 영양가 있는 끼니도 어려웠던 환경에서 도서실에 가 겨우 책들을 읽어보던 지난날이었다. 성인이 되어 수필을 쓰며 문학과를 나온 친구들이 한 때는 부러웠었다. 그런 친구들 중에 여고에서 영어교사로 정년퇴직한 송옥은 지금도 내 수필을 좋아해 내가 글을 계속 쓸 수 있도록 힘이 나게 해주는 몇 마디를 자주 보내주곤 한다. 한 번도 뵌 적 없는 기자님의 초청으로 10년 넘게 칼럼을 쓰며 태평양 건너 원고를 띄워 보낸다. 자랑스러워 했던 나라도 시끄럽지만, 양심도 없는 문인들의 다양한 추태를 종종 보면서 글쓰기를 그만 둘까하고 망설이다가 또 세월을 보낸다. 뭐 그리 경력이 중요하다고 문학상 기웃거리며 응모했던 부끄러운 지난날의 일도 후회한다. 인생 마감하는 날 아무 가치도 없는 일인데 말이다. 문인이야말로 정말 가슴에 손을 얹고 올바르게 살면서 우리 사회에 맑은 목탁소리의 울림으로 남아야 할 것이 아닐지. 참으로 내 자신이 부끄러운 일이다. 최미자 / 수필가문예마당 후회 수필 문학회 행사 문학 행사 오래전 신문기사
2025.07.24. 19:20
125회 US오픈이 열린 펜실베이니아의 오크몬트 컨트리클럽 3번 홀, 4번 홀 중간에 전설적인 기도석 벙커가 있다 공을 기도석에 떨어뜨리면 안 된다 깊은 벙커에서 허우적대야 하고 벙커 사이의 러프에 빠지면 몸의 평형을 유지하기 힘들다 선수들은 제발 기도석에 앉게 하지 말아주십사고 빈다 기도는 게임 전에 벙커에 앉아 올려야 한다 이 골프장은 난해하기로 유명하다 허허벌판에 길고 험한 코스를 만들었다 힘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다 인내와 지혜가 요구된다 Par는 좋은 스코어, 보기도 나쁘지 않다 애초 설계자인 Henry Fownes는 1903년 왜 코스 한가운데에 교회를 설립했을까 골프 애호가들을 벌주기 위해서는 아니었을 것이다 하늘을 무서워하고 자연을 존중하라고 했을 것이다 오만하면 지옥의 벙커에 빠지기 쉬우니 자신을 낮추고 항상 기도하라고 했을 것이다 최복림 / 시인문예마당 골프 기도석 기도석 벙커 벙커 사이 코스 한가운데
2025.07.17. 18:01
요즘 부쩍 악몽을 꿉니다 검정입니다 눈에 거슬리는 것도 마음에 걸리는 것도 많은 나는 분명 검정입니다 미움받을 용기도 없이 속으로만 까맣게 타들어 가는 검정입니다 평생 고운 색만 찾아 열렬하게 나선 순례길 보이지 않는 그윽한 색을 찾아 나선 고고한 길 낮과 밤을 수천 번 수만 번 겪는 사이 하양이 검정으로 퇴색되어가는 중입니다 어떻게 하면 악몽을 멈출 수 있을까요 색은 섞을수록 탁해지니 날마다 빛만 가득 먹어볼까요 맑은 하늘만 마셔볼까요 빛으로 가득 채워진 내 몸이 투명해질 때까지 검정이 얇아질 때까지 악몽이 희석될 때까지 네가 좋아 네가 참 좋아 반복하며 나는 정화 중입니다 정명숙 / 시인문예마당 정화
2025.07.17. 18:00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49주년 독립기념일인 지난 4일에 ‘크고 아름다운 법안(One Big Beautiful Bill Act)’에 서명했다. 상원에서 통과되고 하원에서 통과된 법안이다. 이 법안에 불법 이민자 추방 계획이 들어있다. 그가 2기 집권을 시작하자 미국에서 불법 이민자 추방 계획을 선포하고 대대적인 추방 작전을 펼치고 있다. 체포된 불법 이민자들을 임시 수용할 수 있는 장소를 플로리다 마이애미에서 60km 떨어진 외딴 아열대 습지에 있는 에버글레이즈에 설정했다. 이름은 ‘앨리게이터 알카트라즈’라고 불린다. 주변에 악어가 득실대 주변에 한 번 들어오면 못 빠져나가는, 전설적인 감옥 알카트라즈에 빗댄 이름이다. 나는 알카트라즈를 관광했기 때문에 알카트라즈가 어떤 곳이란 것을 족히 알고 있어서 ‘악어 알카트라즈’란 이름이 무엇을 상징하는지 넉넉히 짐작할 수가 있다. 알카트라즈를 한 번 더 상고해 본다. 샌프란시스코 앞바다 태평양에 알카트라즈섬이 있고 이 섬 안에 알카트라즈 교도소가 있다. 주위가 온통 바위로 둘러싸여 있어서 ‘바위섬’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무수한 죄수가 이 교도소를 도망치려 탈옥을 시도해 보았지만,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자가 없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절벽 같은 바위로 섬이 둘러싸여 있는 데다 바닷물이 너무 차서 체온을 지탱하기 어렵고 파고가 높아 아무도 육지까지 헤엄쳐 살아 나올 수가 없다고 한다. 시체들이 바다에 떠 있어서 그들의 죽음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소수의 죄수는 시체도 발견되지 않고 육지에 상륙하여 살아남았다는 기록이 없어 그들의 생사가 아직도 미궁에 빠져 있다고 한다. 영화 ‘더 록(The Rock)’은 이 섬의 다른 별명으로 영화 제목이 되었다. 이 영화는 이 섬을 배경으로 전개된다. 이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가 숀 코너리, 니콜라스 케이지, 에드 해리스로 더욱 유명해졌다. 딸과 함께 샌프란시스코에 갔다가 폐허가 된 교도소가 있는 이 알카트라즈섬을 페리를 타고 관광하게 되었다. 섬에 내려서 섬에 들어가 관광하지 않고 배를 타고 섬 주위를 돌면서 폐허가 된 교도소를 골고루 구경할 수가 있었다. 허물어진 채 버려진 이 교도소는 명소가 되어 많은 관광객이 찾아 온다. 미국의 유명한 갱단의 두목이었던 알 카포네(1899~1947)가 체포되어 11년의 형기를 이곳에서 보냈다. 출소했지만 이미 폐인이 되어 매독 합병증으로, 심장마비로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알 카포네뿐만 아니라 악명을 떨치던 다른 흉악범들도 최후에 보내지는 교도소여서 이곳이 유명하게 되었다. 죄수들이 탈옥하여 도망을 쳐도 살아남을 수 없는 입지적 조건을 이 섬은 갖추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 섬은 육지와 멀리 떨어져 있어서 마실 수 있는 물을 공급하기가 어려웠다. 전기도 자가 발전해서 사용했는데 겨울에 난방하기가 어려웠다. 식량을 일일이 배로 운반하기도 어려웠고 여러 가지 사정상 교도소를 운영할 수 없어 1963년에 문을 닫게 되었다. 알 카포네는 가난한 이탈리아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나 초등학교 6학년 때 갱 조직의 일원으로 범죄에 가담하게 되었다. 1920년대와 1930년대 미국 금주법 시대에 밀주와 도박, 매춘 등의 불법성 수입 등으로 거액을 만지게 되었다. 그는 자기의 불법 사업을 유지하기 위하여 정계와 경찰에 정치 자금과 뇌물을 살포하여 법망을 교묘히 피해 나가며 시카고 암흑가의 제왕으로 군림했다. 청년 시절 홍등가의 뒷일을 보다가 입은 얼굴에 석 줄의 흉터로 그의 별명은 ‘스카 페이스(Scar Face)’였다. 미국 갱단의 대명사격인 알 카포네는 시카고의 다른 범죄 조직원들을 대량으로 살해하였던 성 밸런타인 데이 날 사건으로 일약 미 전역에 그 악명을 떨치게 되었다. 당시 그의 범죄행각을 희대의 보기 드문 사회의 악으로 미국 정부는 지목하였다. 어떻게든 그를 사회에서 격리하기 위하여 그의 범죄사실을 증명하려고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보복을 두려워한 나머지 피해를 본 피해자들이 모두 증인으로 법정에 출두하지 않았던 관계로 그를 쉽사리 법정에 세울 수가 없었다. 그러한 상황에도 미국 정부는 알 카포네에게 범죄 피해를 봤던 증인들을 협박하다시피 하여 알 카포네 범죄사실의 증거를 마련하게 되었다. 그 후 결국 그를 알카트라즈 교도소에 수용시켰다. 시카고 알 카포네 갱단원을 주제로 제작된 할리우드 영화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갱단원 영화 중 제일 대표작으로 잘 알려진 ‘대부’를 비롯하여 ‘언터쳐블’,‘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등이 있으며 그의 별명을 제목으로 제작되었던 알 파치노 주연의 갱영화 ‘스카페이스’가 있다. 이 영화 중에 1960년대 TV 드라마로 방영되었던 ‘언터쳐블’을 시청했는데 무시무시한 범죄를 저지르는 알 카포네 악당들과 FBI의 눈부신 추격전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이 영화의 주인공이었던 알 카포네가 살았던 이 교도소를 관광하게 되어 슬픈 감회에 젖으면서도 그가 최후로 살았던 교도소라 씁쓸한 입맛을 다시게 했다. 한 세대를 폭력과 살인과 불법으로 풍미하던 갱단의 두목이 마지막 생의 발자취를 거뒀던 암울한 교도소의 잔영이 몰락해 간 한 인간의 일생을 조명해 주었다. ‘호랑이는 죽으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으면 이름을 남긴다’란 우리나라 속담이 생각나지만, 사람은 죽어 명예로운 이름을 남겨야지 알 카포네처럼 악명을 남기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다시는 이러한 갱단의 범죄 조직이 있어서는 아니 되겠다 생각해 보지만 알 카에다 같은 테러범 조직이 대신 판치는 세대가 되어 사뭇 가슴을 무겁게 짓누른다. 그 외에도 마약 범죄와 도박 범죄 등 사회악이 뿌리 뽑히지 않고 잡초처럼 무성히 이 사회에 자라고 있음을 본다. 인간이 살아가는 동 안 범죄는 근절되지 않고 끊임없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음을 보고 가슴이 아팠다. ‘악어 알카트라즈’는 섬 주위에 악어가 득실거려 어떠한 죄수도 탈출할 수 없는 입지 조건을 갖추고 있어서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알카트라즈와 유사하다. 지난 2일부터 약 5000명의 구금자를 수용할 수 있는 이 구금센터에는 주 방위군 100명이 파견됐다. 불법 이민자를 근절하겠다는 트럼프의 의지가 투영된 상징적 공간이다. 김수영 / 수필가문예마당 알카트라즈 alligator 알카트라즈 교도소 악어 알카트라즈 앨리게이터 알카트라즈
2025.07.17. 17:59
기울어진 달이 내게 손짓한다 하마 하얀 빛깔을 가슴에 숨기며 돌아서 여미는 옷자락에 하얀 달빛 물감이 아직 남아 있는데 저리도록 애틋한 사연들 긴 머리 빗어 내리듯 바람에 흩날려 보내고 돌아서 마주치는 하루 그 시울 속에 하얀 이슬이 맴도는 것을 달빛 속에 남겨둔 이야기들 가슴 깊이 꼬오옥 안아본다 크리스틴 정 / 시인문예마당 달빛 달빛 물감
2025.07.10. 18:39
먼 곳 소리도 아주 크게 가까운 소리는 더 크게 알 수 없는 합성어 되어 낡은 고막을 두드린다 정다운 이야기도 변질되어 세상에 없는 언어가 되고 갑자기 톤이 높아진 아내소리에 때론 경기를 일으키지만 참으면 복이 온다는 어릴적 어머니 말씀을 떠올린다 그러나 보청기를 빼면 세상이 확 달라진다 갑자기 찾아온 천년의 고요 깊은 산 암자의 뒤뜰 같다 돌아보면 독립기념일 밤도 섣달 그믐밤 총소리 폭죽소리 요란했던 깊은 밤 고이 잠든 것도 보청기를 뺀 덕이었다 눈만 뜨면 세상은 시끄러워 상품선전 정치선전 이곳저곳 사건 사고 소식들 귀가 아파 보청기를 뽑으면 잠시 편안한 휴식이 찾아온다 이만큼 세월 지내고 보니 들으려 애쓴 보청기 시간보다 뽑아버린 답답한 자유시간이 더 아늑하고 소중했던 것 같다 외로운 내 영혼과 만날 수도 있어서 강언덕 / 시인문예마당 보청기 보청기 시간 상품선전 정치선전 어머니 말씀
2025.07.10. 18:38
서른아홉 살 노총각 조카가 드디어 장가를 간다. 연애 10년 만의 결실이다. 예비 시어머니인 큰언니의 반대로 이별과 재회를 반복했던 연인이었지만, 마침내 결혼 승낙을 받았다며 조카에게서 연락이 왔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가 제일 예쁘다’는 말처럼, 부모가 자식을 최고로 여기는 마음은 본능이다. 재력, 학벌, 직업, 외모까지 두루 갖춘 조카는 누가 봐도 손색없는 일등 신랑감이다. 아들에 비해 아가씨의 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언니는 그녀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형을 제치고 네 살 아래 남동생이 먼저 결혼식을 올렸다. 사랑과 이별의 갈림길에서 오랜 시간을 힘겹게 버틴 두 사람은 어느덧 결혼 적령기도 지나버렸다. 평소 온순하고 효자로 소문난 조카가 처음으로 부모에게 반기를들었다. “어머니가 주선한 여자와 맞선도 보고, 새로운 인연을 만나보려 노력해 봤지만, 전혀 마음이 움직이질 않네요. 그냥 혼자 살겠습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더니, 조카의 진심 앞에 언니는 결국 백기를 들었다. 어느 날, 딸아이가 조심스럽게 귀띔해 주었다. “오빠에게 여자친구가 생겼는데 일본 아가씨야.” 아들의 연애사는 거의 다 알고 있을 만큼 비밀이 없는 모자였기에 말을 안 한 이유가 궁금하긴 했지만 짐작은 갔다. “친구는 다양할수록 좋지만, 배우자만큼은 한국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평소에 자주 했기에, 아들도 고민이 많았던 모양이다. 우리 아이들은 법적으론 미국인이지만, 그들이 민족의 뿌리를 잊지 않기를 바랐다. 문화가 다르면 함께 살아가는 일상에서 부딪히는 일이 많을 것 같았다. 명절 풍습, 집안 행사, 식습관처럼 사소한 것들이 때로는 결혼 생활에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 그래서 그 연애가 조용히 끝나기를, 은근히 바라며 나는 모른 척하고 있었다. 어느 주말 저녁 , 아들이 빨간 장미꽃 한 다발과 케이크를 사들고 왔다. “오늘 사귄 지 1년 되는 날이에요.” 처음으로 여자 친구 이야기를 꺼냈다. 궁금한 건 산더미였지만, 다 묻기도 전에 데이트 약속이 있다며 들뜬 얼굴로 집을 나서는 아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는데, 마음 한켠이 허전해졌다. 결혼 얘기를 한 것도 아닌데, 왠지 모르게 서운한 감정이 밀려왔다. 헤어지라고 말하자니 납득할 만한 이유가 없고, 모른 척하자니 서글픔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제야 큰언니가 조카의 결혼을 반대했던 심정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부모가 자녀의 결혼 상대의 조건을 따지는 이유는 자식이 조금이라도 더 안정적이고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하지만 그 조건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부모도 자식도 정답을 알지 못한 채 서로 마음을 아프게 할 때가 있다. 지나친 사랑은 오해로 번지고 자식과의 갈등이 되어 가슴 깊은 골로 남기도 한다. 답답한 마음에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털어놨다. “며느릿감으로 일본 여자도 괜찮아. 한국과 문화도 비슷해서 큰 문제는 없을 거야.” “모든 의사소통은 영어로 해야 하는데 내 실력으로 속깊은 대화는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그러자 친구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게 더 좋은 거지! 며느리와 말이 안 통하면 괜한 고부갈등도 안 생길거잖아.” 시어머니와 나는 속 깊은 대화를 자주 하는 편이다. 내가 한국을 방문하거나, 어머님이 미국에 오시면 늘 같은 방을 쓰며 밤늦도록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남편 흉을 보거나, 고쳐줬으면 하는 생활 습관, 살면서 나에게 서운했던 일들을 어머님께 고자질하듯 털어놓는다. 다음날, 어김없이 어머님은 내 편이 되어 주신다. 아들을 따끔하게 꾸짖으시고, 고쳐야 할 점은 분명히 짚어주신다. 신혼 초부터 지금까지 시어머니는 늘 든든한 지원군이셨고, 가장 확실한 내 편이셨다. 나도 그런 시어머니가 되고 싶다. 며느리의 말에 먼저 귀 기울이고, 마음의 여백을 함께 채워주는 어른.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하는 감정들까지도 안아주는, 따뜻한 존재가 되고 싶다. 누군가의 편이 된다는 건 단순한 감정을 넘어서, 깊은 이해와 용기가 필요한 일임을 이제야 조금씩 깨닫는다. 아들이 어떤 여자의 손을 잡고 결혼식장에 입장할지는 아직 모르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아들의 선택을 존중하고, 그 만남을 진심으로 축복해 주기로 마음을 굳혔다. 한평생 함께할 반려자인 만큼, 본인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살아가는 것이 가장 올바른 선택일 것이다. 화사한 봄날 야외에서 찍은 사진 몇 장이 담긴 조카의 모바일 청첩장이 도착했다. 반대를 딛고 이룬 사랑이라 더욱 고귀하게 느껴진다. 두 사람이 앞으로 살아가며 맞닥뜨릴 어려운 순간마다, 지금의 이 마음을 떠올리며 잘 이겨내리라 믿는다. 눈부신 조카 부부가 함께 걸어갈 꽃길을 생각하다 나도 모르게 입고 갈 하객 옷차림을 고민하게 된다. 가을 초입의 결혼식, 따사로운 햇살 아래서 웃고 있을 그들을 상상하니, 마음이 따뜻해진다. 나의 편이 되어 주셨던 시어머니처럼, 언젠가는 나도 그렇게 누군가의 마음을 안아줄 수 있을까. 그렇게 나는 또 하나의 삶을 배워간다. 김윤희 / 수필가문예마당 수필 마음 한켠 노총각 조카 여자 친구
2025.07.10. 18:37
초여름 날씨가 예사롭지 않다 계절의 변화와 발맞춰 자라나는 열매의 빛깔이 푸른 하늘을 떠다닌다 이른 봄 쌀쌀한 밤하늘 별들 바라보며 피어난 여리고 어린 꽃망울들 그 속에서 잉태된 작은 열매 잎사귀에 가려 새들도 모르게 커갔다 태고적 정해진 종류대로 땅에 씨 덮고 뿌리내려 계절 따라 잎 피고 꽃피어 향기 발하니 벌들의 행렬이 이어지고 역할 다한 꽃잎 떨어져 깨알보다 작은 열매 봄을 맞는다 왕성하게 자란 나뭇잎 하늘 가리고 낮에 모은 태양열 모으고 모아 저녁 되자 나뭇잎 속 세포들 분주해진다 태양 열에너지 공기 중 탄산가스 뿌리로 뽑아 올린 물로 탄수화물 포도당 지방 단백질 소리없이 만들고... 우리집 살구나무 풍성한 열매로 6월의 푸른 들판 흔들어 갈 때 어린 열매 우수수 떨어져 나뭇가지 볼 때마다 안타깝던 그 바람 또 불어 온다 점점 더워지는 햇볕 따라 초록색 살구 먹음직 스럽게 커가더니 어느새 분홍으로 바뀌어 볼그스름 14살 소녀의 볼이 여기저기 걸려있다 남영한 / 시인문예마당 과일 계절 나뭇잎 하늘 우리집 살구나무 밤하늘 별들
2025.07.03. 17:50
미주지역 교무들이 뉴욕 원달마 센터에 모여 일주일 동안 모임을 가졌다. 마치던 날 훈련 모습을 동영상에 담아 보여주었다. 만남의 순간부터 과정 과정을 찍어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었다. 기록을 위한 사진도 있었지만 대부분 찍힌 지도 모르는 순간 포착된 사진들이 다양하게 들어있었다. 웃고 울며 함께했던 시간이 되살아나 춤을 추는 그 영상에는 우리 모두가 주인공이었다. 삼십 중반에 나는 TV 프로에 주인공으로 출연한 적이 있다. ‘인간시대’라는 MBC 교양프로그램이었다. 1986년 강원도 동해시 작은 바닷가 마을에서 개척교화를 하고 있을 때였다. 여름이 시작되는 어느 날 서울에서 손님이 왔다. MBC 방송국 PD라고 소개하며 머리 좀 식힐 겸 놀러 왔다면서 우리 교당에서 머물게 해 달라고 했다. 오는 손님 마다할 수 있겠는가, 그는 며칠 동안 교당스태이를 했다. 우리 교당 청년들은 법회를 마치고 깊은 밤까지 교당 잔디밭에 앉아 기타치고 노래하는 게 일상이었다. 그 청소년들의 맑은 모습에 자신의 영혼도 맑아진다며 행복해하던 그가 돌아가겠다고 하면서 나에게 고백을 했다. 당시 월요일마다 방영 중이던 교양프로 인간시대 제작 PD였던 그는 우연히 기차 안에서 원불교 교무를 만나 얘기를 나누게 되었단다. 조금은 생소한 교무의 삶을 인간시대를 통해 조명해 보고 싶어졌다고 했다. 교단에서는 공영방송의 출연 제안에 수락하고 수백 명의 교무 중에서 열 명의 교무를 추천해 주었다. 그중 막내였고 바닷가 마을에서 ‘등대’라는 불우이웃 돕기 모임을 이끌며 청소년 교화를 하고 있는 내가 선정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미리 상황파악을 하기 위해 손님인 척 교당 스태이를 자처하여 나의 삶을 지켜보았노라고 털어놓으며 계면쩍은 미소를 지었다. 도저히 수락할 수 없었다. 내가 TV출연이라니, 더군다나 원불교 교무라는 상징성을 띠고 공영방송에 출연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나는 새내기 교화자이며 초급 수행자인 설익은 과일 같은 존재였다. 예쁘지도 않고 내어놓을 것도 없는 사람이었다. 있는 그대로 내 삶의 모습을 촬영한다 해도 불특정 다수에게 보여주는 프로가 아닌가, 연기력도 없고 아주 평범한 교무인 내가 인간시대 주인공이라니 안될 일이었다. 두려움도 컸다. 완강한 나를 설득하지 못하고 그는 떠났다. 며칠 뒤, 여섯 명 촬영팀이 다시 찾아왔다. 포기한 줄 알았던 그는 교단 본부에 요청했고 공식적인 교단의 명을 거부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인간시대 주인공이 되었다. 새벽 5시, 기도로 시작하는 나의 일상을 담기 위해 4시부터 카메라를 설치하고 일거수일투족을 찍기 시작했다. 원불교 교무로서의 나의 삶이 적나라하게 필름 속으로 흘러들어 갔다. PD는 어떤 요구도 하지 않았다. 늘 해오던 원불교 교무로서 교화하며 사는 삶, 등대의 리더로서 청년 회원들과 어려운 곳 찾아다니며 도와드리는 일들, 짬이 나면 도반들과 바닷가에 나가 담소도 나누고 참선을 하는 모습을 소리없이 따라다니며 카메라에 담을 뿐이었다. 하루하루 지나면서 그의 얼굴에 난색이 드리워지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교무님, 우리는 지금 원불교 홍보 영상을 찍는 게 아닙니다. 자연스럽게 교무님의 일상이 찍혀야 대중이 공감하고 그 안에 원불교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지금쯤은 교무라는 생각을 놓을 때도 되지 않았습니까 언제까지 교무라는 생각에 갇혀 있을 겁니까. 이러면 작품이 되지 않습니다.” 대개 사람은 이틀 정도 찍으면 자연스럽게 동화되어 인간 본래 모습 그대로 나오게 된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종교인이라는 틀에 갇혀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내 의지로 어찌할 수 없는 것이었다. 나는 원불교 교무가 아닌가. 좋은 모습 훌륭한 일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은 인지상정 아니겠는가, 그러니 한순간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항변도 해보았지만 은근히 걱정되기도 했다. 시간은 흘러 촬영은 종반을 달리고 있었다.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통으로 노출하며 순간을 이어가던 나는 급기야 쓰러져 버렸다. 덕분에 하루를 쉬면서 영양주사까지 맞게 되었다. 교양프로를 시청률 1위로 끌어올리는 명 PD였던 그는 나의 개인 정보도 찾아내어 가족들까지 촬영에 동참시켰다. 그때부터 그의 얼굴에 끼었던 어둠의 그림자가 서서히 걷히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교단 산업기관 교무로 재직하던 아버지를 도와 복숭아 재배를 하고 있었다. 마침 수확철이 되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던 중이었다. 제작진들이 어머니를 찍겠다고 했을 때 걱정이 되었다. 유난히 꾸밈도 없고 소박한 시골 아낙네인 어머니가 감당하실 수 있을까, 그것은 기우였다. 촬영팀들이 들이닥쳤을 때 어머니는 늘 밭일하러 다니던 그 모습이었다. 웃음이 나왔다 내가 뭘 기대했던가. “엄마, 텔레비전에 나올 건 게 이쁘게 준비하고 계셔.” “오메 벨소리 다 듣것네 생긴 대로 허제 뭔 준비를 한다냐, 글고 지금 나 무지 바빠야 그럴 시간 없는디 안 오면 안 되것냐.” “꼭 가야 된다는디 어떡혀 그럼 낼 보게.” 이렇게 전화로 연락을 했으니 미장원에라도 다녀오지 않을까 내심 기대를 했었다. 꿈도 야무졌다. 어머니를 만난 제작진들은 가뭄에 단비 만난 듯했다. 어머니는 옥색 티셔츠에 꽃무늬 몸뻬를 입고 챙 넓은 모자를 쓴 채 이 나무 저 나무로 옮겨다니며 복숭아 따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연신 카메라를 들이대며 모습을 찍었지만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PD는 순박하고 가식 없는 어머니의 모습을 따라다니며 끊임없이 질문을 했고 솔직 담백한 어머니의 응수에 빠져 들어가는 듯했다. 출가하여 교무로 살아가는 딸이 당신 최고의 선물이며 행복이라고 주저 없이 말하는 어머니가 진정한 인간시대 주인공이라고 그는 말하였다. 열흘 동안의 촬영을 마친 몇 주 후 내 이야기는 MBC 인간시대 프로에 ‘출가’라는 제목으로 55분 동안 방영되었다. 사람들의 관심은 상상 이상이었다. 하얀 저고리 까만 치마 쪽진 머리를 한 신생 종교 성직자의 삶이 세상에 드러났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떤 모습을 하고 있어도 알아보고 아는 체를 하였다. 그런데 사람들은 꼭 어머니의 안부를 물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스스로 동영상을 만들어 유튜브에 올리기도 하고 저장해 놓고 보기도 한다. 모두가 주인공인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격세지감을 느낀다.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하고 노래 부르던 그 시절에 나는 인간시대 주인공으로서 내 삶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었다. 모두가 주인공으로 살 수 있는 이 세상! 나는 어떤 삶의 주인공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이정길 / 원불교 교무·수필가문예마당 주인공 수필 인간시대 주인공 원불교 교무 교양프로 인간시대
2025.07.03. 17:49
그대여, 묻노니 무명의 별 아래 잠든 그 소년의 이름을 아는가 그는 먼 땅, 지도에도 낯선 나라 그 이름 ‘코리아’를 듣고서 조용히 부츠 끈을 당겼다 “어머니, 기도는 나를 위해 하지 마세요. 제 옆에 선 참전 용사들 그들의 무사 귀환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 지미, 너는 그렇게 말했지 그리고 돌아오지 못했지…. 전장의 흙을 안은 편지 한 장 눈물로 번진 글씨 속 그대의 사랑이, 피 흘린 자유가 이 땅에 뿌리 내려 민주의 꽃으로 피어났다 아이젠하워의 아들 워커 장군의 아들 그 많은 참전 용사들이 하늘로 난 길 위에서 그들은 더 이상 ‘누구의 아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자유의 형제’였다 한 송이 십자가 아래 어머니는 무릎을 꿇고 아들의 군복을 끌어안는다 그 입술이 속삭이는 건 한 마디 사랑한다, 그리고 보고 싶다 그 희생이 없었다면 어찌 우리가 오늘 이 봄 햇살 아래 웃을 수 있었겠느냐 그들의 참전, 자유의 승리를 부정하는 자 그 피를 잊는 사람이여! 너는 결코 평화를 말해서는 안 된다 지금도 울린다 태평양을 넘어 자유를 위해 울던 어머니의 기도 그 기도는 들판을 적시고 산천을 감싸안아 이 나라를 지켜낸다 오, 자유여 그대는 피로 쓰인 시 그대는 어머니의 눈물과 기도로 피어난 꽃 우리 후세는 맹세하노니 그대를 영원히 잊지 않으리 조성우 / 시인문예마당 어머니 자유 어머니 기도 참전 자유 참전 용사들
2025.06.26. 20:59
‘좋은 약을 먹는 것보다는 좋은 음식이 낫고, 음식을 먹는 것보다는 걷기가 더 낫다.’ -허준 노인들의 최대 관심사는 건강이다. 하루에도 몇 개씩이나 건강에 대한 정보를 문자로 받는다. 특히 ‘걸으면 살고, 누우면 죽는다. 최고의 약은 걷는 것이다’ 등 걷기에 대한 좋은 말이 많다. 걷기가 건강에 좋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머리로는 알지만. 막상 몸을 움직이기가 쉽지 않다. 걸으려고 하면 핑계가 많아진다. 피곤하고 기운이 없을 땐 더더욱 그렇다. 그럴 때면 스스로 ‘나는 왜 이렇게 의지가 약할까’하고 심하게 자책하게 된다. 이런 버릇은 집 밖에 나가기 싫어하는 오랜 습관에서 비롯됐다. 어려서부터 집에서 조용히 혼자 있기를 좋아했다. 학교 다닐 때는 방학이 30일이면, 30일 동안 거의 신발 신을 기회가 없을 정도로 집안에만 있었다. 대학교 3학년 방학 때였다. 집에서 꼼짝 않고 있는 나를 답답하게 여긴 친구가 강제로 ‘대학생 근로 봉사대’에 참여시켰다. 지도교수 1명에 각 대학에서 한두 명씩 모인 남녀 학생 수가 30여 명이 됐다. 북제주군 애월면에 가서 30일간 봉사활동을 하고 온 적이 있다. 배를 타고 제주도로 떠난 지 보름쯤 되던 어느 날, 전체 봉사자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한 짓궂은 남학생이 나를 지적하며 “홍광자씨, 혹시 말이라는 것을 할 줄 아십니까?” 라고 하니 모든 봉사자들의 시선이 나에게 쏠렸다. 부끄러움에 얼굴이 새빨개져 어쩔 줄 몰라 했다. 몸을 움직이기 싫어할 뿐만 아니라 먹을 때 외에는 입도 잘 안 열 때의 일이었다. 봉사활동을 마치고 이틀에 걸쳐 제주에서 시작해서 한라산을 넘어 서귀포로 내려왔던 기억이 새롭다. 힘들었지만 지금 생각하니 그때가 아련한 추억으로 남았다. 대학 졸업 후 직장에 다니고, 결혼하고, 미국에 오게 되고 하는 수십 년 동안 운동은 생각도 못하고 어영부영 지냈다. 그러다 다 늦게 동네 친구를 따라 일주일에 세 번 가까운 곳에 있는 커뮤니티 센터에 가서 에어로빅과 타이치도 했는데, 팬데믹 시기 문을 닫는 바람에 3년 쉬었다. 동네 친구도 남편이 돌아 가신 후 딸네 근처로 이사를 했다. 그 후로 운동과는 또 거리가 멀어졌다. 남편은 한번 TV앞에 앉으면 하루 종일 꼼짝 않는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나중에 운동부족으로 여러 가지 건강문제를 일으킨다며 제발 걸으라고 성화다. 성화를 넘어 애원을 하다가, 최근엔 고집불통이라며 화까지 낸다. 그래도 나는 요지부동이다.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나 마음 한 켠에는 ‘걸어야지’ 라는 생각이 늘 머물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큰아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부모에게 꼭 안부 전화를 한다. 그때마다 남편은 “엄마는 집에서 늘 TV만 보고, 컴퓨터만 한다”며 아들에게 하소연한다. 아들은 엄마를 바꿔 달라며 “어머니, 아버지가 엄마 요즘 안 걷는다고 하시는데 걸으셔야 돼요. 나가서 꼭 걸으세요” 라고 부탁 아닌 부탁을 한다. 그럴 때마다 “그래, 걸을 게”라고 말한 다음 “엄마는 TV를 보면서도 도리도리 목운동도 하고, 가끔 일어나 까치발도 들고 때로는 스쿼드도 한다. 그런데 너는 살 좀 뺐니?”라고 물으면 “빼야죠, 그런데 잘 안 빠져요” 라고 말하며 겸연쩍게 웃는다. 아들이 젊은 나이에 배까지 나왔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유쾌하지 않은 대화가 남편과 아들과 나의 일상이 됐다. 지난 5월 초 남편이 한국으로 떠나며 신신 당부했다. 밤 늦게까지 TV 보지 말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 걸어야 한다고. 규칙적인 생활을 해야지 그러다 큰일난다고 했다. “그럴게요” 대답은 쉽게 했지만 걷지 못했다. 남편이 한국 간 후 큰아들이 남편보다 더 심하게 걸으라는 잔소리를 해댄다. 자식이 장성하니 어려워서 함부로 신경질도 못 부린다. 과체중의 아들은 나로부터 체중을 줄이라는 잔소리를 늘 들어왔고, 컴퓨터 앞에서 꼼짝 않는 나는 남편과 아들로부터 걸으라는 잔소리를 끊임없이 들어왔다. 서로에 대한 잔소리가 임계점에 도달했을 때 아들이 전화로 또 같은 잔소리를 해왔다. 비위 거스르지 않으려고 조심스럽게 말하다가 “너나 살 좀 빼라” 고 반격을 했다. 아들이 “그럼 우리 약속해요. 엄마가 하루에 30분 걸으면, 저도 한 달에 3파운드씩 뺄게요.” “그래, 약속하자.” 아들이 전화할 때가 다가왔다. 약속 안 지키는 엄마가 되기는 싫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주섬주섬 채비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집을 나서자 싱그러운 공기와 부드러운 햇빛, 티없이 맑은 파란 하늘이 나를 반겨줬다. 새소리가 들리고, 눈앞에서 다람쥐가 분주하게 왔다갔다, 차를 타고다닐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아, 이렇게 좋을 수가! 걷는 동안 조용히 스치는 바람과 햇살이 말을 걸어왔다. “잘하고 있다”고. 동네 주변을 둘러보며 30분간 걸었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화사하게 피었던 핑크 레이디 분홍 꽃은 어느새 지고, 곳곳에 탐스러운 새하얀 백장미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은은한 향기가 온 동네에 퍼졌다. 붉은 장미, 노랑 장미와 달리 백장미는 흔하지 않아 귀해 보인다. 붉은 장미가 화려하고 유혹적인데 비해 백장미는 순수하고, 품위 있고 고상해 보인다. 그래서인지 꽃말이 ‘존경과 순결’이란다. 상쾌한 기분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시작이 반이라더니, 정말 그런 것 같다. 한 번 걸어보니 기분도 좋고 앞으로도 자연스럽게 걷게 될 것 같은 느낌이다. 이제는 몸도 마음도 조금씩 그 리듬에 익숙해질 것 같다. 나는 무슨 일을 시작하기 전 뜸들이는 시간이 너무 길다. 막상 마음먹고 시작하면 의외로 오래 지속한다. 발동이 걸리는데 시간이 걸리는 만큼 일단 시작하면 꾸준하게 이어간다. 오후에 큰아들한테서 전화가 왔다. “어머니, 걸으셨어요?” “그럼, 걸었지” 당당하게 말했다. “너는?” “저도 식사량을 좀 줄이고, 노력했어요.” 남편에게도 전화로 “오늘 동네 세 바퀴 돌았어요”라고 자랑을 했다. “자~알 했어. 꾀부리지 말고 계속 해요.” 전과 달리 이렇게 화기애애한 대화가 우리 가족 사이에 이어졌다. 그게 뭐라고! 걷기가 노년의 건강을 돕고 하루의 리듬을 좋게 만들어 준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안다. 느리게 시작해도 괜찮다. 시작만 하면 이미 반은 성공이다. 중요한 건,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 아닐까. 나에게 ‘걷기’란, 남편 말을 듣는 것이고 아들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며, 가족간의 정서적인 유대감을 이어가는 길이다. 더구나 치매예방에 무엇보다 좋은 것은 걷기운동이라고 한다. 결국 아들과의 약속은 나와의 약속이었고 나를 위한 약속이었다. “아들아, 너의 체중 줄이기, 성공 바란다.” 배광자 / 수필가문예마당 아들 약속 동네 친구 대학생 근로 안부 전화
2025.06.26. 20:58
우린 저 하늘에 그려진 청춘의 색 붉음도 푸름도 아닌 보랏빛 노을입니다 검은 나무들이 새 옷 입은 5월! 마을 회관 잔치 마당에 보랏빛 노을이 한 가득 이네요 떠난 지 오랜 고향 생각일랑 버리시고 웃음 바다에 빠져 봅시다 깃털 하얀 잔디가 손짓하는 길에서 사랑에 굶주린 낙엽들 주름을 펴세요 예쁘고 행복하라고 만들어진 설레는 잔치 아픔 고통 잊으시고 덩실덩실 흐르는 음악 소리 맞추어 손 흔들어 춤을 추세요 삶을 마음껏 즐기세요 다이아몬드가 뚝 뚝 떨어지는 오동나무 그늘 아래 예쁜 꽃들이 우리들인 걸 잊지 마세요 때 이른 코스모스가 손짓하는 5월 아픔일랑 털어내시고 크게 웃으세요 외로움의 소굴을 탈출하세요 광옥 같던 얼굴에 검 버섯도 좋아서 웃을 겁니다 파랑새 뛰노는 길에서 보랏빛 노을들! 모여 모여 크게 웃으며 살아요 우리 엄경춘 / 시인문예마당 보랏빛 노을 보랏빛 노을들 오동나무 그늘 아픔 고통
2025.06.19. 19:00
노란 유채 보랏빛 수많은 들꽃 갈대숲 이루고 마태호수 지나서 비포장 길 산 능선 뾰족 뾰족 울퉁불퉁 솟아나 돌기둥 이루고 석양에 뭉클한 선율에 놀라움 착한 행실 하아얀 박 속에도 마음 보석 담겨 있다 베풂에 손 내미는 사랑 어찌 말하리 내딛는 발자국 애틋한 물결 이루어 앞 뒷산 호박돌 집성촌 만든다 거친 돌 되지말고 디딤돌이 되리라 권온자 / 시인문예마당 흥부 유채 보랏빛 들꽃 갈대숲 뒷산 호박돌
2025.06.19. 19:00
샌타애나 리버 오솔길을 따라 남편과 함께 걸었다. 우리가 걷는 왼쪽은 아스팔트 길인데 유모차, 자전거, 롤러스케이트, 스쿠터가 달린다. 오른쪽은 아주 작은 돌 섞인 모래가 깔려 있는데 그곳은 승마를 위한 길로 말이 다닌다. 그 길 너머는 깊은 숲 속이다. 그 아래로는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숲 속과 모래길 사이에 기다란 사각형 모양의 하얀 플라스틱 울타리가 두 줄로 처져 있다. 그 울타리 바로 밑 모래땅에 물방울무늬가 같은 간격으로 둥근 도장을 찍어 놓은 것처럼 새겨져 있다. 자세히 보니 양옆에 밤새 매달려 있던 이슬방울이 모래땅을 뚫었나 보다. 자연 현상은 인간의 생각이 미치지 못할 만큼 정교하다. 울타리에 전력을 다해 매달렸던 방울들. 그것이 모래땅에 뛰어내려 남긴 가지런한 무늬처럼 나의 일상도 그렇게 정돈되고 평온해지기를 희망해 본다. 커다란 사냥개 목줄을 잡고 달리기를 하는 사람, 햇빛 가리개가 있는 유모차를 미는 젊은 여인, 무언가를 적으면서 주위를 살피며 걷는 젊은이, 세발자전거를 타는 손자 뒤를 힘겹게 따라가는 노부부,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춤추듯이 미끄러지는 학생, 스쿠터를 타고 날쌔게 달리는 청년을 보았다. 모두가 나름대로 목표가 있어서 노력하는 중이었다. 나는 당뇨가 있는 남편을 위해 정해진 시간에 나가 함께 걸었다. 그곳에 나온 사람들은 운동하며 몸을 단련했다. 우리는 신선한 공기를 가슴 깊이 들이마시며 자연의 숨결을 온몸으로 느꼈다. 매일 걷는 산책로에서 모서리를 돌면 늪지대가 있다. 그곳에 청둥오리 한 쌍이 보였다.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 이곳까지 날아왔나 보다. 우리처럼 둘이 꼭 붙어다닌다. 수컷이 암컷을 졸졸 따라다닌다. 암컷은 지푸라기 같은 수초들 사이에서 잘 보이지 않는다. 수컷은 둥근 머리에 녹색 광택이 번쩍거려 한눈에 들어온다. 그 윤기가 빛 물결처럼 흘러 녹색 입자가 떠간다. 놀라지 않게 살그머니 손을 뻗어 사진을 찍었다. 수컷은 노란 부리와 짙은 녹색의 머리, 하얀 줄이 목걸이처럼 둘러 있다. 암컷은 어두운 황색이 섞인 부리를 가졌고 몸은 갈색과 베이지색이 섞인 얼룩무늬다. 이 얼룩무늬가 보호색 역할을 한다고 남편이 알려준다. 둘이 물 위를 떠다니며 가끔 고개를 돌리고 한 마리가 방향을 바꾸면 그 길을 주저 없이 따른다. 오랜 세월을 함께 살아온 한 쌍의 모습 같다. 청둥오리는 대부분 평생을 짝과 함께한다. 봄이 되면 그 짝을 찾아 서로 지켜 주고 가을이 되어 떠날 때도 함께 떠나겠지. 이 청둥오리 한 쌍의 인연이 강물처럼 오래도록 흐르고 고요한 평화 속에 머물기를 빌어본다. 청둥오리 앞에 머물러 한참을 바라보다가 다시 남편 손을 잡고 걷는다. 그는 이십 대 후반에 나를 만나 가정을 꾸리고 무역회사에 다니면서 온 세계를 누비고 다녔다. 유럽, 중동, 인도, 남아메리카 등 곳곳에 자수 원단을 팔러 샘플을 들고나갔다. 출장에서 돌아온 후, 늦은 퇴근길 교통사고로 목발 짚고 집으로 들어와 나를 놀라게 했던 적이 있었다. 지금도 그날 밤의 기억이 선명하다. 자기 일에 묵묵히 분투하며 가족을 보살피느라 온 힘을 다했던 시절이 아련히 떠오른다. 자수 무역회사를 그만두고 이민 길에 올라 낯선 이국 땅에서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허물고자 안간힘을 썼다. 이곳에서 남편은 다시 원단 장사를 시작하였다. 한편, 이곳에 정착하기 위해 우체국 시험을 치르고, 의료기구 만드는 회사에서 납땜 연기를 맡으며 케이블을 연결하던 내 모습도 떠올랐다. 캘리포니아주 교사 자격증을 받으려 여러 번 영작문 시험에 도전하며 조마조마했던 그 시절도 생각났다. 우리 부부는 새로운 삶을 일구며 자리 잡았다. 그 후에 남편에게 갑자기 찾아온 갑상선암으로 수술 후 방사선 치료를 받으며 힘든 시기를 잘 견디고 은퇴했다. 남편은 은퇴 후 텃밭을 가꾸며 농사를 짓는다. 그는 부엌 창문 앞에 난초, 납풀, 장미꽃, 금불초, 제라늄, 부겐빌레아를 심어 내 마음과 눈을 즐겁게 해준다. 나를 위해 부엌 창문 앞에 다양한 꽃을 심는다. 흰 꽃, 보라색 꽃, 빨강 꽃, 노랑 꽃, 연분홍 꽃이 어우러져 창밖을 내다볼 때마다 눈과 마음을 환하게 밝힌다. 바람에 살랑이는 꽃잎을 보고 있으면 기분까지 가벼워진다. 그는 사시사철 나에게 변함없는 마음을 보내고 있다. 물 위를 나란히 떠가는 청둥오리를 바라보며 세월 속에 흘러온 우리 부부를 떠올린다. 물 위를 미끄러지듯 유유히 떠도는 청둥오리 모습이 평화롭다. 자연의 품 안에서 조화롭게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이 우리 삶과 겹쳐 보인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 깨닫는다. 남은 세월도 한결같은 사랑으로 감싸안으며 함께 나아가길 소망해 본다. 이현인 / 수필가문예마당 자연 부부 노부부 롤러스케이트 자연 현상 자수 무역회사
2025.06.19. 19:00
나는 은연중 보랏빛만 떠오르면 가슴이 설렌다 알듯 모를 듯 슬픔이 일렁이고 애잔한 무언가가 눈물 주위를 서성거리는 것은 보랏빛 그 아득한 여운 때문인지 요즈음 길에 나서면 5월의 융단바닥을 눈부시게 뒤덮고 있는 자카란다 보석 꽃잎이 나를 설레게 한다 좀더 머물러 있지않고 왜 서둘러 가려는지 바닥에 처연히 누워있는 그 모습은 애틋하다 보랏빛 자카란다 꽃잎이여 어찌하다 떨어져 슬피 우는가 나도 같이 통곡이라도 해야할 것 같은 자카란다 내년 이맘때까지 그리움 한 섶을 가슴에 안고 자카란다 꽃 이제 이별과 마주한 채로 보랏빛 눈부신 자태는 영영히 내 안에 서성대고 있는데… 장정자 / 시인문예마당 보랏빛 연가 보석 꽃잎 내년 이맘때 눈물 주위
2025.06.12. 1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