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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마당] 죽음에도 좋은 점이 있구나

늙었다고 해서   더 늙어지지 않는 게 아니야   이미 늙어버린 것도 슬픔인데   하루 살면 하루 더 늙어진다는 게   그게 늙음의 아픔이야       다 늙어지고 나면   죽어야 하는데   죽음이야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해도   내가 죽고 싶을 때     내 마음대로 죽을 수 없다는 게     그게 또한 늙음의 아픔이야       죽을 때   이삼일 앓다가 죽고 싶은데   어디 죽음이 내 마음대로 되는가   내가 의식을 잃고     이삼일간 혼수상태에 빠져 있으면   여보, 치료를 거부해서   빨리 죽게끔 해줘, 부탁이야       뉴욕정부에 기증한     내 장기(臟器)   내가 죽으면 내 장기는 떼어가겠지     고통 받고 있는 사람을     내 장기로 치유해준다니!   남을 이롭게 해주고 떠나니   죽음에도 좋은 점이 있구나 조성내 / 시인·의사문예마당 이삼일간 혼수상태 어디 죽음

2025.09.18. 18:22

[문예마당] 4월의 봄

강남을 떠나   멀고 먼 여름 고향 집 돌아와   우린 알 수 없는   짝들의 속삭임   둥지 틀었다       고난의 바람과 열의 융합 속에   인내의 둥지 속 작은 생명줄 엮었다   하얀 주둥이 턱을 기대고   처음 보는 신기한 세상을 노래한다   어미는 하루종일 먹이를 잡아 나른다   입 쫙 벌린 주둥이 어미는 순서를 알고 있다       십여일이 지나면 제법 모양새를 갖춘다   이때가 정말 귀엽다   20여일 자라면 날개를 펄럭인다   일가친척 가족들이 모여 잔치를 벌인다   둥지를 요란스럽게 재잘대며 배회하면   자신도 모르게 창공에 날개를 편다   하늘을 정복했다       따가운 여름의 그림자는 어느 날   가을의 들녘을 보면서   처음 가는 강남   새 가족들이 함께 떠날 것이다 오광운 / 시인문예마당 일가친척 가족들 여름 고향 주둥이 어미

2025.09.18. 18:21

[문예마당] 대자연의 위엄

누구나 장엄한 대자연 앞에 서면 자연의 위대함과 인간의 한계를 느낀다. 인간이 얼마나 작고 무력한 존재인지를 깨닫는다. 그래서 겸손해지고, 잠시 멈춰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대자연의 경이로움과 침묵 속에 숨겨진 위엄은 눈부신 햇살마저 그 앞에서 조용히 고개를 숙인다. 하물며 인간이랴!   대자연 앞에선 나를 지키기 위해 높이 쌓아 올린 마음의 벽이 허물어질 수밖에 없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오랜 상처들이 조용히 흘러나온다. 자연은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이 큰 존재이며, 어떤 판단이나 충고도 없이 ‘있는 그대로의 나’를 품어 주기 때문이다.   최근에 KBS2에서 방영된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시청했다. 배우 박원숙을 비롯해 홍진희, 윤다훈과 가수 혜은이가 한집에서 친 남매처럼 ‘같이살이’를 하는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이다. 그들은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연예인들이다. 평균 나이 67세로 각자 아픈 상처를 지니고 혼자 사는 싱글들이다.   지난 6월, 그들 4남매는 스위스에서 일주일 간 해외여행을 했다. ‘가장 스위스다운 도시’로 손꼽히는 루체른에 도착한 그들은 아름다운 호수를 품은 역대급 뷰를 가진 숙소에 감탄했다. 유럽의 숲속 산장 같은 안락한 공간과 알프스산맥으로 둘러싸인 탁 트인 자연 경관을 만끽할 수 있는 장소였다. 그들은 호반의 도시 루체른의 다양한 명소를 돌아보며 유럽의 정취를 만끽했다.   스위스를 떠나기 전 날에는 ‘산의 여왕’이라 불리는 ‘리기산’을 향했다. 리기산은 초록빛 풍경으로 가득 찼고,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였다. 열차가 산을 오를수록 드넓은 초원과 형형색색 꽃밭, 탁 트인 풍광이 순차적으로 펼쳐지며 4남매의 눈과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리기산 정상에 도착한 일행은 알프스산맥과 푸른 호수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장엄한 풍경 앞에서 형언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다.   그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먼저 혜은이가 입을 열었다. “여기 오니까 내가 개미보다도 작은 거 같아. 내 자신이 너무 초라해 보이고 보잘 것 없게 느껴져.”  “아직 풀지 못한 미움들이 남아있고, 한없이 커보였던 번뇌도 있지만, 발 아래 펼쳐진 경이로운 풍경 앞에 서니 그저 모든 것이 부질없어 보여. 이제는 그런 것들 다 버려야겠다고 생각했어.”   박은숙이 뒤를 이었다. “그래, 건강하게 지내면서 여기까지 왔으니 너무 감사해.  따사로운 햇볕, 시원한 공기, 맑은 물, 아름다운 새소리까지, 모든 것에 감사해.  새삼스럽게 남은 시간을 잘 살고 싶어졌어.”   혜은이가 홍진희와 윤다훈을 보며 물었다. “너희도 이곳에서 많은 생각이 들지?” 홍진희는 한동안 조용히 생각에 잠겨 고개를 푹 숙인 채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그녀는 지금 어떤 마음인 걸까.  그녀가 흘린 눈물의 의미는?   한참을 말없이 울고 있던 홍진희가 “그냥 너무 행복하고 감사해서 우는 거예요. 그동안 저는 약한 내 모습을 남들에게 보이기 싫어 오랜 세월 날 포장하며 살았어요. 수십 년을 홀로 버텨오면서 내 주변이나 남에게 마음의 빗장을 걸어 잠근 채, 그렇게 견디면서 살았던 거 같아요. 이 순간, 대자연 앞에서 한없이 작은 ‘나’를 발견하며 조금씩 벽을 허물고 있는 중에 감정이 격해졌어요. 겹겹으로 쌌던 포장이 스르르 풀리면서 너무 자유롭고 감사해서 우는 거예요.”   홍진희는 그동안 강해 보이기 위해 노력했던 인생을 돌아보며 계속 눈물을 흠쳤다.  지난날에 대한 회한이 눈물보를 터지게 한 것이다.   박원숙도 진희의 감정에 깊이 공감하며 말했다. “발 아래 장엄한 풍경을 바라보니 ‘나’라는 사람이 보였어. 눈앞에 닥친 현실에 발버둥쳤던 지난 날들, 고통스러웠던 과거들, 그 과정에서 단단해진 마음의 껍질, 그 껍질 안에 있는 ‘나’라는 사람이 보였어. 세상에 알려졌던 나의 아픔, 사고로 인한 외아들의 죽음이나 경제적인 문제에 대한 상처들을 충분히 위로받고 치료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어. 속마음을 드러내며 치료받을 여유가 없었지. 그래서 트라우마로 남았어. 누가 힘들어 할 땐 그냥 옆에서 손만 잡아줘도 힘이 돼.”   박원숙이 이어서 말했다. “남들이 어쩌구 저쩌구 할 때, 거기에 가세해서 비판하면 안 돼.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들을 비판하지 말아야 돼”라며 지난날의 아픔이 되살아난 듯 눈물을 흘렸다.   혜은이가 문득 생각난 듯, 7년 전 처음 이 프로그램에 합류했을 당시 불편했던 일을 털어 놓았다. 엄청난 빚더미에 시달리고, 이혼 등, 심적으로 너무 힘든 상황이었는데, 웃는 얼굴로 포즈 취할 상황이 아닌데, 박은숙이 자꾸 사진을 찍어줘서 싫었다고 고백했다. 지금와서 생각하니 그게 너무 죄송하다고 했다. 여러가지 생각이 들게 하는 자연이었다.   박은숙은 뜻밖의 그 말을 듣고 몹시 충격을 받았다.  예쁜 순간을 남겨주고 싶어 좋은 마음으로 한 일이 오히려 힘들게 했다니! 가슴이 아팠다. 그러나 어려웠던 혜은이의 과거를 알기에 헤은이를 부둥켜 안고 함께 울었다.   사남매는 대자연이 만든 절경 속에서 요동치는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며 서로의 속마음을 터놓았다. 박원숙이 말했다. “우리가 스위스에 온 게 그냥 관광이 아니었어. 자신을 돌아보고, 뒤를 돌아보는 ‘내면여행’이야!” 사남매는 자연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며 마음이 열리는 경험을 했다. 시청자인 나까지도 같은 경험을 했다.   서로를 토닥이며 단단해진 4남매는 노란 들꽃이 만발한 리기산 언덕에서, 꽃길을 걷고 있었다. 그들에겐 그토록 멀게만 느껴졌던 꽃길이었다. 윤다훈이 말했다. “우리가 각자 인생의 어둡고 긴 터널을 잘 통과했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행복한 거예요.” 혜은이도 “말로만 꽃길을 걷자고 하다가 진짜 꽃길을 걷는 순간을 맞았군. 영영 오지 않을 것 같던 인생의 꽃길을 이제야 걷는다”고 했다. 리기산의 정기를 받은 그들이 앞으론 꽃길만 걷기 바란다.   사남매가 그동안 말 못했던 자신들의 아픈 상처를 터놓는 모습은 자연이 주는 위로와 감정의 해방이었다. 상처난 감정을 치유하고 회복하는 진심의 순간이었다. 그들의 치유과정을 보며 큰 울림을 받았다.   대자연은 인간에게 경외심, 치유, 내면의 평화를 선사한다. 지극히 작은 존재임을 깨닫고 겸손함을 배우게 만든다. 대자연은 침묵 속에서 진심을 끌어내는 가장 진한 힐링 공간이다. 그동안 눌러왔던 감정이 자연스레 흘러나온다. 사남매는 스위스 리기산에서 오래된 침묵을 깼다. 모든 것이 눈물로 흘려 내렸다.   대자연은 언제나 말이 없다. 묵묵히 우리 곁에서 우리를 품어준다. 그렇다고 함부로 대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자연을 파괴하면, 자연은 언젠가 등을 돌릴 것이다. 그리고 그날, 우리는 비로소 우리가 무엇을 잃었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배광자 / 수필가문예마당 대자연 위엄 순간 대자연 홍진희 윤다훈 자연 경관

2025.09.18. 18:20

[문예마당] 향수

그대여     고향에 가면     마음을 비우세요       그 곳은   그리움과   외로움이 만나는 곳       해변을 걸으세요   남산에 오르세요   텅 빈 가슴   그 곳에   놓고 오세요       아픈 가슴에 다리 절며   바닷가 헤메는 나그네   세상 애환 등에 지고   산에 오르는 산객       누군가   문드러진 마음   주워 가겠지요       그 것은   새벽을 밝히는   반짝이는   진주 이슬       너와 나의   치유의 눈물 이강민 / 시인문예마당 향수 진주 이슬 세상 애환

2025.09.11. 18:51

[문예마당] 나는 토마토

알제리 태양보다 강한 햇살이     정수리에 쏟아진다   내 심장 눈부시게 어지럽고     내 몸이 붉게 물들어가자       토마토가 얼굴을 붉힌다   질투하던 붉은 장미   검붉게 화장하고   뒤뜰에 핀 맨드라미   벼슬도 붉게 익어간다       엊그제까지 싱그럽던 연두 세상   서둘러 검푸른 녹음으로 뛰어드니   내 마음 사방으로 꽉 차오르고   질기게 나만 따르던     내 그림자 길게 드러눕는다       젊음을 잃고 시들어가는 내 마음 꺼내   팽팽하게 당기고   눅눅해지는 내 생각   땡볕에 말려보자   늘어지고 휘어진 나   파란 여름 바다에 담가보자       어느새 내 얼굴 토마토보다 붉다 정명숙 / 시인문예마당 토마토 얼굴 토마토 마음 사방 알제리 태양

2025.09.11. 18:50

[문예마당] 귀뚜라미 때문에 가을이 온다

숨이 막힌다. 90도를 웃도는 무더위가 일주일 넘어 계속되고 있다. 요즘 더위는 평년 남가주 날씨가 아니다. 전에는 햇볕은 따가워도 그늘에만 들어가면 시원함을 느낄 수 있었다. 뜨겁고 건조했던 더위가 습하고 끈적거리는 기후로 변해가고 있다. 에어컨을 오래 켜 놓으니 몸이 찌뿌드드하다. 몸살이 날 것 같다.   밤이 되어도 여전히 후덥지근 하지만, 에어컨을 끈 채 창문을 열고 자리에 눕는다. 열린 창문으로 요란한 풀벌레 소리만 들려온다. 그중 으뜸은 귀뚜라미 소리다. 벌써 철이 이렇게 되었나. 찬 바람이 불어야 풀벌레가 우는 줄 알았더니 이 더위에 너희도 잠이 오지 않는 모양이로구나. 안 되겠다.   베개를 들고 거실로 나온다. 마루에 얇은 이불을 깔고 잠을 청한다. 조용한 집안에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귀청을 울린다. 언제부터인가 집안에 동거하는 녀석들이 있었다. 다른 곤충과 달리 귀뚜라미는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 하여 가끔 눈에 띄어도 못 본 척 그냥 두었더니 그 수가 늘어난 모양이다.     하지만, 울음소리가 이렇게 시끄러운지 미처 몰랐다. 너는 어쩌다 내 집에 들어와 오도 가도 못 하는 신세가 되어 주인의 잠까지 방해하며 울어댄단 말이냐.   저 녀석은 수컷이 분명하다. 귀뚜라미는 수컷만 운다고 들었다. 짝짓기할 때가 되면 날개의 돌기를 서로 비벼서 소리를 내는데 그게 바로 우는소리라 했다. 암컷을 부르는 소리다. 멀리 있는 암컷을 부를 때는 큰소리를 내고 가까이 있는 짝과 사랑을 나눌 때는 부드러운 소리를 낸다고 한다. 지금 저 녀석의 소리는 멀리 있는 짝을 부르는 소리임이 분명하다.   어릴 적, 솜씨 좋은 동네 오빠가 여치 집을 만들어주었다. 반들반들 노란빛이 나는 밀짚으로 만든 여치 집은 집안에 걸어두어도 장식품처럼 멋이 있었다. 대청마루 서까래 기둥에 매어 놓은 여치 집에는 해가 지고 어두워지면 귀뚜라미나 여치가 들어가 울어 댔다. ‘또르르르, 치르치르.’     저녁을 마친 식구들은 쑥대로 모깃불을 피워놓고 마루에 누워 더위를 식혔다. 여치 집에서 풀벌레들이 울자 우리는 그것을 흉내 내어 소리를 내었다. 신기하게도 녀석들은 울음을 딱 멈추었다. 우리가 따라 멈추면, 그들은 침묵을 깨고 다시 울어 댔다. 그들이 울면 우리도 울고 멈추면 따라 멈추길 반복하며 귀뚜라미와 돌림노래를 부르며 놀았다. 어서 가을이 오기를 기다리는 노래가 아니었을까.   옛날 풍류를 아는 양반들은 여치 집을 가까이에 걸어두고 벌레 우는 소리를 들으며 즐겼다는데, 아마 그 흉내를 낸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지금 저 소리가 하나도 즐겁지 않다. 무언가로 바닥을 두드리면 귀뚜라미는 일순 소리를 멈춘다. 그러다 조용해지면 다시 울어댄다. 제발 소리를 멈추어 나로 잘 수 있게 해달라고 사정이라도 하고 싶다.     누군가는 반박할지 모른다. 요즘 귀뚜라미나 풀벌레 소리를 저장하여 수면을 유도하는 백색소음이라고 값을 내고 듣는다는데, 대가 없이 울어준다는 녀석을 왜 구박하는가 하고 말이다.   귀뚜라미, 여치, 베짱이, 풀벌레…얼마나 정겨운 이름인가. ‘귀뚜라미 우는 밤’ 유년의 가을을 아련하게 만들었던 동요다. 귀뚜라미 소리를 들으며 휘영청 밝은 달 아래 막막한 밤하늘을 보며 노래를 불렀다. 막연한 무엇을 그리워하면서. 아마도 유년에서 사춘기로 넘어가는 시간 어디쯤이었을 것이다.   이희승 선생은 ‘청추 수제’에서 다섯 가지를 일컬어 가을을 상징하는 소재로 삼았다. 벌레, 달, 이슬, 창공, 독서, 다섯을 불러와 가을이라는 이름을 완성하였다. 그중 첫 번째 소재 벌레를 통해 귀뚜라미를 가을의 전령사로 소개했다. 낭만이 있는 많은 이들도 귀뚜라미를 가을의 손님이니 가을의 소리니 하며 이름을 지어 올렸다.   가수 안치환은 나희덕의 시, ‘귀뚜라미’를 노래로 만들어 불렀다. 그가 노래한 귀뚜라미는 시골집 초가지붕과 싸리로 만든 울타리가 아닌, 도시의 콘크리트 벽 좁은 틈에서 우는 귀뚜라미다. 지금은 매미 소리에 묻혀 그의 울음은 아직 노래가 아니다. 가을이 오는 소리에 매미는 가고 이제는 그의 세상이다. 어둡고 습한 밤이 오면 숨 막히게 울어댄다. 누구의 가슴 하나 울리는 노래이길 바라면서. 때를 기다리는 건 귀뚜라미나 사람이나 매일반이다. 지금은 그의 시간, 모든 것은 한때다.   이 외에도 시를 사랑하고 가슴이 따뜻한 많은 사람이 귀뚜라미를 노래했다. 가을을 부를 때는 녀석도 함께 불러올렸다. 바로 곁에서 요란스럽게 울어대는 그의 소리에 잠은 이미 천리만리 달아나 버렸다. 어느 가슴에 닿으려고 저리 울어대는가. 네가 보내는 타전 소리가 세상에 시달리고 지친 어떤 이에게 다다르기를 기다리는 것이냐.   녀석의 수명은 일 년밖에 되지 않는다. 가을이 오면 짝짓기를 한 암컷은 땅속에 알을 낳고 죽는다. 수컷 역시 힘을 다해 짝짓기하고 추운 겨울에 이르러, 알을 낳고 죽은 암컷처럼 땅속에서 죽는다. 겨우 일 년, 신의 섭리대로 종족 번식에 이바지하고 떠나는 셈이다.   무더위 속에 가을이 숨어있다. 귀뚜라미 때문에 가을이 오는 모양이다. 귀뚜루루 귀뚜루루…. 온 힘 다해 울어대는 저 녀석들 덕택에. 정유환 / 수필가문예마당 귀뚜라미 가을 귀뚜라미 울음소리 귀뚜라미 소리 귀뚜라미 여치

2025.09.11. 18:49

[문예마당] 자연 산불

하늘과 가까워     타오르는 땡볕   진한 달빛   수백 년, 수천 년을 거듭하다 보면   천지간의 생명은 서서히 영면에 들고   우주는 침묵에 들어간다   오직 침엽수만 하늘을 찌른다   살아남기 위해   외로운 나무들은 팔을 뻗어   서로를 만지고 끌어안고 비벼댄다   그들의 간절함은 부싯돌을 토해내며   사랑은 불타오른다   불붙은 사랑은 칼바람 타고   번지고 부풀어만 간다   화염보다 강렬했던 사랑도     언젠가 지치면 사그라들고   타고 남은 재     다음 생을 위해 뿌리 위에     살포시 눕는다 정명숙 / 시인문예마당 자연 산불 자연 산불 진한 달빛

2025.09.04. 18:55

[문예마당] 콩콩 팥팥

학생들의 행동 패턴을 보고, 그 부모의 직업을 대략 유추해 볼 수 있다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내가 대학에서 영어과목을 가르칠 때의 일이다. 나는 매학기 첫 주에 A4 용지 1장 분량의 자기 소개서를 영문으로 써내라는 과제를 학생들에게 주었다. 그 과제를 주는 이유는, 첫째, 학생들의 영어 실력을 파악할 수 있고, 둘째, 수업에 임하는 학생들의 성실도를 가늠할 수 있고, 마지막 셋째. 그 두 가지 정보를 바탕으로, 강의 내용의 강도를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여러 학기를 반복하다가, 나는 우연히 의도하지 않은 데이터를 얻게 되었다. 한국의 학생들은 집단주의 문화의 영향으로, 자기 소개서에 본인에 관한 것보다는, 주로 가족이나, 본인이 속한 조직, 친구, 또는 사는 동네에 관해 진술한다. 그래서 자연히 그들의 배경에 대해서 알게 된다.     특히 학생들은 자기 소개서에 부모의 직업에 관해서 꼭 기술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부모의 직업이 자녀의 행동 패턴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기술할 이 내용은 과학적 실험을 토대로 한 것이 아니므로, 그저 한 개인의 재미있는 경험담으로 이해해주면 좋겠다.   학생들 중에 여하간 상냥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모두에게 상냥하고, 여간해선 불쾌감을 드러내지 않는다. 또, 그들은 상대방의 말에 장단을 잘 맞춘다. “아,” “그래?” “정말,” “하하,” 사교계에서 매우 인기 높을 성격들이다. 그들의 부모는 대개 동네 장사를 한다. 예를 들어, 아파트 단지의 마켓이나, 꽃가게, 선물가게, 약국, 문방구, 식당, 등. 동네에서 인심을 잃으면 안 되는 직업이다. 그들의 상냥함은 작은 꽃 같이 참 예뻤다.   학기 내내 지각을 한 번도 안 하고, 먼저 와서 기다리고, 결석은 더더구나 안 하는 학생들이 있다. 그들은 수업이 끝나기 전에 먼저 강의실을 떠나는 법도 없다. 이 학생들에게는 특이한 성실감이 있는데 바로 ‘시간엄수’이다. 일단 그 시간에 그 자리에 와있어야 한다. 그에 덧붙여 노트정리를 잘한다. 이들의 부모들은 대개 공무원이다. 칼 출근, 칼 퇴근. 아주 간혹 연장근무 하는 공무원들에게 감사하며 이 글을 쓴다.   융통성이 좋은 학생들이 있다. 갑자기 예기치 않은 일이 닥치면, 대학 1·2학년 18살짜리들은 대개 경직되거나, 우왕좌왕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전혀 당황하는 기색 없이, 서둘러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를 보이는 학생들이 있다. 뛰어난 임기응변을 보이는 이 학생들은 사업하는 집의 자녀들이다. 사업을 하다 보면, 언제나 불쑥불쑥 변수가 튀어나오게 마련인데, 그때마다 놀라 자빠지면 어떻게 사업을 하겠는가! 돈이 제때에 들어오지 않는 경우도 다반사일 것이고, 엉뚱한 데에서 사고가 나거나, 예기치 않은 비용이 갑자기 발생하는 날도 얼마나 많을까. 사업하는 집의 자녀들은 웬만해선 놀라지 않는다.   학생들이 돈을 쓸 때도, 부모의 직업이 드러난다.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즉흥적인 그룹과 신중한 그룹.     즉흥적인 행동을 보이는 학생들은 자영업을 하는 집들이고, 대부분 현금이 매일 들어오는 비즈니스이다. 이들은 그때 그때 필요한 비용을 그냥 호주머니에서 주먹 꺼내듯이 소비하고, 돈 계산을 뭉치고 합산해서 큰 단위로 한다. 반면, (학생 수준에서의) 목돈을 사용해야 할 때, 작게 잘라서 날짜를 따져가며 쓰는 학생들은 월급받는 집의 자녀다. 이들은 회비를 내야 한다면, 미리 약간씩 몇 번에 나누어 저축해서 내고 특히 충동적인 소비를 하지 않는 편이다.   특이하게도, 기말고사를 준비하는 기간인데, 중간고사 이전 부분에 궁금한 점이 생겨 질문을 하는 학생들이 있다. 누구라고 할 것 없이 기말고사가 코앞인데, 시험 범위에 포함되지도 않는 이미 지나간 부분을 다시 들추어 보는 학생은 매우 드물다.   이 드문 학생들의 부모는 교수이거나 연구원이다. 연구하는 부모를 둔 학생들은, 시험에 상관없이, 자신이 갖고 있던 기존의 지식과 새로 입력되는 지식 사이에서 비교, 대조, 검증하는 습관이 있다.   선생을 어려워하지 않는 학생들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어렸을 때, 선생님들은 화장실도 안 가는 걸로 오해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간혹 선생을 존경은커녕, 그냥 많은 인간들 중의 하나임을 아는 학생들이 있다.   말할 것도 없이 그들의 부모는 교사다. 그 학생들은 어렸을 때부터 선생인 아빠가 집에서 엄마한테 매일 혼나는 것을 보면서 컸을 것이고, 또는 선생인 엄마가 비이성적인 잔소리를 줄곧 하거나 쩨쩨하게 행동하는 것을 목도했을 것이다. 그러니 강단 위에 서 있는 저 선생도 흠 많은 인간 중의 하나라는 것을 아주 일찍 깨달았음에 틀림없다. 그런 학생에게 어설피 위엄을 세우려다가 오히려 아주 우스워질 수 있다.   어느 날, 새로운 종이 나타났다. 못 보던 부류의 학생들이 나타난 것이다. 그들의 특징은 지나치게 당당하다는 것이다. 한국에는 지각하는 학생들이 보여주는 공통된 행동패턴이 있다. 일단 강의실의 뒷문을 빠끔히 열고, 안의 분위기를 확인한다. 예를 들어, 교수가 호통을 치고 있거나, 돌발 시험을 보고 있는 등, 분위기가 경직되어 있는 것 같으면, 아예 포기하고 결석해 버린다. 강의실 분위기가 별문제 없는 것 같으면, 지각생은 일단 빈자리를 파악한다. 그리고 문을 열고 들어와 90도로 인사하고, 등을 숙인 채로 잽싸게 빈자리로 가서 앉는다.   그런데 그런 절차 없이 당당하게 문을 활짝 열고 들어와 시찰하듯 한 바퀴 쭉 둘러본 뒤, 고개를 ‘빳빳이’ 들고 마음에 드는 자리에 가서 착석하는 학생이 어느 날 나타났다. 나는 처음에 참 특이한 ‘싸가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학생들이 이후로 종종 나타났다. 이런 태도의 학생은 다른 학생들의 눈에도 놀라움이었다. 그런 류의 지각 학생이 처음 나타났을 때, 같은 강의실에 앉아 있던 모든 학생들의 뜨악한 표정을 나는 기억 한다: “쟤는 뭐지?”   그들은 군인의 아들딸들이다. 군인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사기가 떨어져서는 안 된다. 당당함은 그들의 생명이다. 비록 적군의 포로가 되더라도, 비굴해서는 안 된다. 잘못해서 벌을 받을지언정, 군인은 주눅 들어서는 안 된다. 바로 학교 근처로 육해공 삼사의 대학원과 군 시설이 옮겨왔고, 군인의 자녀들이 내가 근무하던 학교에 입학했던 해였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희귀한 종이 있었다. 처음에는 나도 종잡을 수 없었는데, 매우 희귀한 직업군이라 숫자가 많지 않아서였다.     학생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교수에게 작은 선물을 하곤 한다. 커피 한 잔일 수도 있고, 시집이나, 예쁜 책갈피, 또는 초콜릿, 꽃 한 송이 등이다. 그런 선물을 줄 때는 강의 시간 전에 몰래 교탁 위에 올려놓거나, 아니면 강의 끝나고 수줍게 ‘바치는’ 모습으로 주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마치 ‘하사하듯이’ 주는 학생들이 있다. 나는 요거트 한 개나 커피 캔 하나를 ‘의문의 권위’를 가진 학생으로부터 하사받았다. 그들은 성직자의 자녀이다. 신도 아닌 것이 인간도 아닌 것이, 하늘과 땅 사이 어느 중간에서 살면서, 인간을 계도하느라 몸에 밴 태도인 것 같았다.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하기를!   이 글을 마칠 즈음, 갑자기 도둑의 자녀는 어떤 태도를 갖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러고 보니, 나는 도둑의 자녀를 만나 본 적이 없다. 아, 하나가 빠졌다. 농부의 자녀! 그들은 대단히 정직하다. 그들의 뚝심은 쉬이 흔들리지 않는다. 농부의 아들이 한 번 아니라고 하면 그것은 진짜 아닌 것이다. 콩 심은데 팥 안 나는 것 맞다.   이 세상, 각자의 직업에서 열심인 모든 젊은이들, ‘화이팅!’ 마리 송 / 시인문예마당 수필 지각 학생 학생 수준 강의실 분위기

2025.09.04. 18:52

[문예마당] 90세 이모의 사랑 이야기

이모는 14세 때인 중학교 2학년 때 6.25 전쟁을 겪었다. 온 가족이 군산으로 피난을 갔는데 그곳에서 이모에게 홀딱 반한 한 남학생을 만났다. 그도 서울에서 피난 온 중 3년생이었다.     이모가 여고 2학년 때부터 일기 형식으로 된 남학생의 사랑의 메시지가 그의 여동생을 통하여 거의 매일 같이 이모에게 전달되었다. 그러나 이모는 관심 밖의 일이었고 다른 학생에 비해 키가 크다는 것, 이외는 아무런 호감이 없었다.     이모가 여고 2학년 때 ‘마의 태자’란 연극을 극장에서 일주일 간 공연했는데 이모가 마의 태자비로 출연하였다. 그 학생은 수업도 거른 채 연극 장면을 사진을 찍어 이모에게 주었지만 이모는 그가 보는 앞에서 그동안 받은 러브레터와 사진을 불살라 버렸다.     그 남학생의 이모를 향한 집념은 참으로 집요한 것이었다. 그는 늘 이모 주위를 맴돌았다. 그는 자신의 어머니와 반대되는 성격의 여성과 결혼할 것이라고 했다. 자신의 어머니는 5남매를 두었는데 남편이 전쟁 중 납치되어 북으로 끌려가 홀로 자식을 키우느라고 성격이 거칠고 사나웠든가 보다.   이모는 성격이 내성적이었고 가냘픈 아리따운 소녀였다. 그는 이모와 10년 내에 결혼하게 될 것이라고 굳센 결의를 보였다. 두 사람은 장학생이어서 이모는 E대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고등학교 역사 담당 교사가 되었고 그 청년은 S대 경제학과 재학 중 군 복무를 마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외국인 회사에 취직했다.   하루는 그가 할 말이 많은데 교외선을 타고 바람 쐬러 가자고 졸라서 더 이상 거절할 수 없어 승낙했는데 그 기차는 교외선이 아니라 장항선이었다. 이모를 속인 것이었다. 열차가 삽교역에 정차했을 때 이모는 기차에서 내렸는데 그 청년도 쫓아 내렸다. 인근에 있는 덕산 온천에 강제로 끌려가다시피 했는데 거기서 청혼을 수락해 줄 것을 요구하였다. 이모가 단호하게 거절하니까 뺨을 한 대 후려갈겼다. 이모는 기절하여 서산병원으로 실려가 응급조치를 받고 하루 지나 의식을 회복하였다. 그 당시 일간지 1면에 ‘여고 교사 납치’라는 제목의 기사로 실렸다. 형사들이 그의 집에서 잠복하고 있다가 경찰서로 연행해 갔다.     외삼촌과 이모가 경찰서를 찾아가 “우리는 피해 본 것이 없으니 선처를 바란다”고 호소하여 풀려났다. 외삼촌은 이모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청년의 가정이 가난한 것이 흠이지만 인간성이 정직하고 진실되며 건전한 사람이니 결혼해라. 만일, 결혼 생활에 하자가 생긴다면 이 오빠가 책임지겠노라”고 타일렀다.     이모를 달래어 결국 두 사람은 결혼했다. 결혼 후 이모부는 20대1 이라는 치열한 경쟁을 뚫고 공무원 교육원 교수로 채용되어 경제학을 강의했다. 박정희 대통령의 군사정권에서 정부 고위 관료들이 의무적으로 등록되어 수강했는데 낙제자는 진급은 물론 자신의 직위가 위태로웠다. 그러다 보니   뇌물이 성행하고 부정비리가 비일비재했다. 이모부의 상관들은 모두 군 장성들이었는데 노골적인 회유와 압력이 가해졌다.     이모부는 청렴하고 강직한 교육 공무원이었다. 그는 부정 청탁에 환멸을 느꼈다. 차라리 미국으로 이민 가서 막노동을 할 망정 교수 생활을 포기한다는 각오로 사직하고 누이의 초청으로 미국 생활을 시작했다.   이민 온 후 대학 3학년으로 편입해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 대기업에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근무하던 중 그 회사가 멕시코로 사업 진출을 하는 바람에 멕시코 행을 포기하고 이모와 세탁소를 운영했다.     부촌에서 세탁소를 오랫동안 운영하여 부를 쌓게 됐다. 그러던 중 이모부가 날로 수척해지고 엉덩이뼈에 통증이 있어 정밀 검사를 받은 결과 간암 말기로 판명되었고 암세포가 골수로 전이되어 수습 불가능 단계로 진행되었다.     간은 침묵의 장기라고 하지 않던가, 때는 이미 늦은 것이었다. 항암치료를 받다가 식도장애가 생겨 음식을 삼키지 못하고 영양 주사로 연명해야 했다. 이모부는 이모가 연약하고 여리어 세상 풍파를 견디지 못할 것 같으니 같이 죽자고 제의하였다.     이모는 아들이 아직 결혼을 못했으니 5년 후에 결혼 시키고 뒤를 따르겠노라 약조했다. 이모부는 그 5년 만이라도 남자 친구를 사귀어 행복하게 살다가 오라고 했다. 남자 친구를 사귀려면 자동차가 좋아야 한다며 이모를 딜러로 데리고 가 BMW를 사 주었다.   이모는 이모부와 40년 이상을 동고동락했지만 그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오늘 밤을 넘기기 어렵겠다는 의료진들의 판단으로 딸 집에서 임종을 맞게 되었다. 이모는 의식이 없는 이모부의 손등을 어루만지며 “여보! 사랑해요”라고 애정 어린 말을 연거푸 했다.     이모부는 향년 62세로 이 세상을 마감하였다. 이모는 내년 4월이면 만 90세가 된다. 이모는 이제 이 세상을 떠날 준비가 되었단다. 자신이 평생 살아오면서 남의 가슴을 아프게 하거나 섭섭하게 해 준 것을 뉘우치고 있고 또 용서받았단다. 남편의 시신은 화장하여 이모의 방 유골함에 보관하고 있다. 자신이 사망하면 화장하여 남편과 함께 수목장을 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이진용 / 수필가문예마당 이야기 이모 이모 주위 마의 태자비 만일 결혼

2025.08.28. 19:54

[문예마당] 잠 못 드는 괴로움

이 집 이 빌딩, 높이 솟은 청솔가지가   쓸쓸히 움직이는 밤       둘레 둘레 심어 놓은 화초들이 예뻐서   살피고 살폈던 날들 그 즐거움, 행복도 잊은 채   이젠 어지러움에 헛구역질까지 생겼다       꽃길 산책길이 좋아서 산책이란 단어를 많이도 썼다       성경 말씀을 들으며 걷고, 흘러간 노래   흥얼거리며 행복했었지 헌데 요즘 왜 그럴까       911 차 소리가 무섭고 덜컹 내려앉는 가슴   이곳에서 십 년 넘게 살다 보니 나도 팔순으로 달려가는데   벨 누르며 도움을 청하고   카톡은 날아와 “잠깐 도와 줄래?” 찾기도 하지       내 삶이 값지게 걸어 가고 있는 것일까   늦은 밤잠 못 든다는 것이 최상의 괴로움이다   더위와 함께 꿈 속을 달리는   아픔의 끄나풀 다 비워 내고 싶다       박하 사탕 같은 삶을 찾아내고 싶다 엄경춘 / 시인문예마당 괴로움 꽃길 산책길 성경 말씀 박하 사탕

2025.08.28. 19:52

[문예마당] 광복절 아침에

이른 아침 성조기를 기둥에 꽂았다   가슴이 뭉클, 감사합니다. 한 마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그대들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은   세계지도에 자취를 감추었으리라         1945년 8월 14일   조국은 메말라 껍질만 남았다   죽을 고생 지은 농사 일본 군량미로   살강 위 놓인 놋그릇 일본군 포탄 원료로   초등학교 2학년생 내 여름방학 숙제는   목화대껍질 칡넝쿨 껍질 3킬로그램 갖다 바치는 것   자원이 모자란 일본군 군복을 짓기 위해서   학교선 한국말 하면 회초리 매질   우리 고유의 성씨도 일본어로 다 바뀌고   민족 말살정책이었다   긴긴 여름 매미들도 배가 고픈지   하루 종일 끈질기게 울어대고   배고픈 아기는 크게 울 힘도 없었다         생각할수록 아슬아슬하다   백척간두에 한 발 차이로 살아남은 기적   수천 년간 강대국에 시달려 온 민족   강인한 끈기로 지켜온 희망의 나라   오늘따라 힘겹게 살다간 조상들이   우릴 지켜준 미국 국민들이   감사하고 자랑스럽다 강언덕 / 시인문예마당 광복절 광복절 아침 목화대껍질 칡넝쿨 여름방학 숙제

2025.08.28. 19:49

[문예마당] 기차역 주차장

포트 워싱톤 기차 정거장 주차장   수 백 대의  차들이 땡볕 더위에 서 있다   주인은 차를 걱정하지 않는다   저녁에 돌아갈 때까지 무사할 것이다       고된 몸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면     기쁜 얼굴로 맞으며 집에 데려다 줄 것이다   차와 사람은 소중한 인연을 맺은 지 벌써 수년이 되었다       차는 가끔  졸면서도 고령의  주인 걱정을 한다   더운 날씨에 넘어지지 않게 조심하세요   맨해튼은 항상 복잡하니 사람과 부딪치지 않도록 하세요   남하고 다투면 혈압이 올라가요   마음 상하는 일이 생기더라도 참으세요   하나님 우리 주인을 보살펴 주세요       저녁이 되자 기차는 기적을 울리며 종점에 도착한다   차는 두리번거리며  주인을 찾는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보내셨군요   주인을 잃은 차는 너무 슬퍼서 눈물도 안 나와요   기도의 응답이 있었군요 최복림 / 시인문예마당 기차역 주차장 기차역 주차장 정거장 주차장 포트 워싱톤

2025.08.21. 18:48

[문예마당] Statue Of Liberty

물과 바람은   아니라고 말하지 않는다       여기 뉴욕에   한 여인이 서 있다       물 같이     바람 같이       그녀는   아니라고 말하지 않는다       물과 함께 바람과 함께     서 있는 여인       아니라고 말 하지 않는 여인   자유를 숨 쉬는 여인       어제 그리고 오늘   또 내일 이강민 / 시인문예마당 liberty statue 여기 뉴욕

2025.08.21. 18:47

[문예마당] 이 나라 주인마님인 양

미국에 산 지 40년이다. 그동안 특별한 인종차별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왔다. 그런데 며칠 전 집 앞에서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했다. 이웃을 소중히 여기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주저 없이 마음을 내주던 미국인들은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내가 사는 곳은 캘리포니아 사이프리스라는 작은 동네다. 베드타운(bed town)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큰 쇼핑몰도 없고 상업화가 덜 된 주택가라는 뜻이다. 15년 전, 살고 있던 2층 타운 홈이 늙은이에게 불편해 지리라는 것을 예감했다. 그래서 이 동네의 나지막한 단층 주택으로 이사 왔다.     그때만 해도 이 골목은 거의 백인들이 살고 있었다. 그 후 골목으로 이사 오는 사람들은 한인, 아니면 인도계 사람들이었다. 교육열이 높은 이민자들이 학군을 찾아 이사를 왔던 것이다.   그날도, 여느 아침처럼 고요한 동네 길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코너를 도니 어느 집 앞에 초등학생이 탈 만한 크기의 자전거가 가로등에 비스듬히 기대어 있었다. ‘FREE’ 라고 쓴 사인이 붙어 있었다. 손녀 녀석에게 주면 좋아할 것 같았다. 차에서 내려 자전거를 들여다보았다. 멀쩡하고 튼튼해 보이기까지 했다.   자전거는 생각보다 커서 트렁크에 들어가지 않았다. 뒷좌석에 싣기로 했다. 차문을 열기 위해 자전거를 세우려 하다가 지지대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길바닥에 자전거를 눕혀 놓고 뒷좌석 문을 열었다. 다시 자전거를 세우려하니 아이들이 들어 세우기에는 보통 무거운 것이 아니었다.     아하, 그래서 멀쩡한 것을 버리려고 한 것이었구나. 나는 자전거를 도로 있던 자리에 세워두고 차로 돌아왔다.   그때 뚱뚱한 백인 여자가 나타났다. 바로 근처에 살고 있는 성싶었다. 자전거를 손으로 가리키며 내 차로 다가오기에 그녀도 자전거에 관심이 있나보다 싶었다. 차에서 다시 내렸다. 내가 가져가려고 했더니 이런저런 문제가 있더라고 얘기해 줄 참이었다.   “You don't live around here, do you?(당신 이 동네 사는 사람 아니지?)”   “I do(여기 사는데요)”라고 대답도 하기 전에 그녀는 “You don’t live at this house, or that house, or there.(당신은 이집 저집 저쪽 집에도 살지 않잖아)” 라며 이집 저집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 동네 사람들은 내가 다 아는데 너는 분명 이 동네 살지 않아”라는 그녀의 말이 “너 같은 사람이 왜 이 동네에 있느냐”는 뜻이라는 걸 알아차리는데 어찌 그리 오래 걸렸는지 모르겠다.   “너희 집 앞에 버릴 것이지….” 그녀는 계속 걸어가며 남의 집 앞에 왜 자전거를 놔두고 가느냐고 말하고 있었다.   “그게 아니고…” 하다가 그녀의 입에서 쏟아지는 속사포 같은 영어에 말문이 막혔다. 그녀가 비아냥거리며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속 시원하게 욕이라도 해 주고 싶은데 습관이 안 된 한국 욕지거리도, 영어도 제대로 안 나오니 혈압이 정수리로 몰려드는 듯했다. 벙어리가 가슴앓이를 하다가 넘어갈 판이었다. 내 차는 아직 시동이 걸린 채였다.   “It's none of your business, I know what I’m doing. Don't worry about me!(너나 잘해, 나는 내가 뭘 하고 있는지 잘 알아. 네가 걱정하지 않아도 돼!)”하고 그녀의 뒤통수를 향해 소리쳤다. 내 목소리는 힘없이 허공을 날았고 그녀의 뒷모습은 의기양양해 보였다.   내가 자전거를 갖다 놓는 것을 네가 봤니? 그 소리를 놓쳐버린 것이, 네까짓 것이 이 나라 주인이기라도 한 거니? 라고 못한 것이 생각할수록 분했다. 이 동네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사람은 바로 그녀였다.   '너 아직도 여기 있니?' 하도록, 자주 그녀와 마주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리를 굴리며 평소 운동하는 곳으로 핸들을 틀었다.   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자전거가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이 출근을 하고 아이들은 모두 학교에 갔는지 골목이 고요했다. 자전거가 기대어 있던 전봇대가 홀로 서 있었다.   갑자기 작은 자전거가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해 진 이유가 무엇일까. 혹시라도 그녀가 내가 갖다 놓은 물건이라며 질겁한 듯 어디 내던져 버리지는 않았을까. 어떤 아이를 충분히 기쁘게 해 주었을 자전거는 어디로 갔을까. 어디서 누구에게 멸시와 천대를 받고 있지나 않을까.   꼭 필요한 사람 눈에 들기 위해 자전거는 눈에 잘 띄는 곳에 있어야 했다. 누군가의 집 앞에 어떤 것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억지 같다. 분란의 소지가 된 작은 자전거는 요즈음 매일 이민국에서 벌이고 있는 불시 단속을 떠올리게 한다. 그녀도 내게 이 나라 주인마님인 양 굴었다.   미국에 도착한 지 며칠 안 돼 길에서 만난 미국사람이 내게 “Hello!” 해서 깜짝 놀랐다. '모르는 사람이 왜 말을 걸지?' 의아했다. 처음 본 사람에게 인사는 물론 말도 붙이지 않았던 풍습을 가진 나라에서 건너온 나였다. 이런 이상적인 사회가 있다는 것을 알고 안도했다.   “Good morning!” 그들의 정겨운 아침 인사는 좋은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 내지 않았는가. 그렇게 한 발자국씩 걸어 온 세월이 무색해져 버렸다. 동네 골목은 요즈음 예측할 수 없는 이민자의 미래처럼 우울하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긴다는 말이 있다. 집에 돌아와 괜히 미국인 남편에게 화풀이를 해버렸다. 갑자기 인종차별주의자 취급을 당해버린 남편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마야 정 / 수필가문예마당 주인마님 나라 동네 골목 동네 사람들 나라 주인

2025.08.21. 18:46

[문예마당] 다 쓰고 죽기

배우 선우용여가 최근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매일 아침 벤츠차를 직접 운전해 호텔로 가서 조식 뷔페를 먹는 모습을 공개해 화제가 됐다. 그녀의 나이는 81세다.     그녀는 “돈 아끼면 뭐해. 집에서 혼자 궁상맞게 있는 것보다 아침 먹으러 가면서 화장도 하고 옷도 차려 입고 나서면 스스로 힐링이 된다. 식당에 있는 사람들과 눈인사를 나누는 것이 너무 즐겁다”고 했다.   그녀는 아침 식사로 호텔 조식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남편이 있을 땐 가족들 밥을 해줘야 했다. 남편이 돌아가시고 애들은 다 시집 장가 가고, 이제는 내 자신을 위해 살아야 한다. 내 몸을 위한 돈을 아끼면 뭐 하나.  남은 돈, 이고 지고 가나?  그래서 나를 위해 투자를 한다”고 했다.   요즘 나를 위해 지갑을 여는 중장년층이 늘어난다고 한다. 인생 2막을 당당하고 즐겁게 살기 위해 자신에게 투자하는 것이다. 그런 세태에 맞춰 ‘액티브 시니어’ 산업이 뜨고 있다. 액티브 시니어란 빠른 고령화와 함께 건강하고 활동적인 중장년층을 칭한다.   액티브 시니어 세대는 이전 부모 세대와는 마음 가짐 자체가 다르다. ‘아끼면 뭐해, 즐겁게 살자’ 이런 마인드로 바뀌고 있다. 돈은 다시 벌면 되지만, 오늘은 다시 오지 않는다. 오늘 하루, 커피 한 잔이라도 내가 즐겁게 마신다면 충분히 가치가 있다. 자신에 충실한 삶을 살자는 것이다.   노년에 돈은 많이 벌어 놨지만 건강을 잃고, 살날이 얼마 남지 않다면 인생이 너무 허망하지 않은가. 평생 안 먹고 안 쓰며 모은 돈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 가.   내 대학 동기 중에는 젊어서 미국 와, 부부가 열심히 일한 덕에 쇼핑 몰을 몇 개나 갖고 있고 여러 개의 비즈니스를 운영하는 친구가 있었다. 그러나 비즈니스에 매여 여행 한 번 제대로 못해보고 일만 했다. 집 안의 소파와 안락의자는 단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가구일 뿐, 평소에는 그것들이 닳지 않도록 커버를 씌워 놓았다가 손님이 와야만 벗겼다.   은퇴 후 좋아하는 골프도 치며 인생을 즐기려던 차에 당뇨 합병증으로 눈이 안 보이게 됐다. 나중에는 병원 침대에 누어서 오랜 세월 남편과 간호하는 분의 도움이 없이는 자기 몸도 가누지 못하다가 세상을 떴다. 얼마나 허무한 인생인가.   돈을 버는 이유가 삶을 즐기기 위해서였는데, 정작 그걸 제대로 누려보지 못하고 가다니. 쇼핑몰이 여러 개인들 그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 가.   최근에 출간된 베스트셀러 한 권을 읽었다. 미국의 투자자 빌 퍼킨스가 쓴 책으로 원제는 ‘Die With Zero’ 인데 한글 제목은 ‘역전하는 법’이다. 이 책의 핵심은 ‘우리의 삶이란 우리가 경험하는 것들의 총합이다. 즐겁고 의미 있는 경험을 위해 죽을 때 통장의 잔고가 제로가 되게 하라’로 요약된다. 즉 ‘가진 돈을 다 쓰고 죽어라’다.   인생의 진정한 가치를 경험과 추억을 통해 찾아라. 그러기 위해 ‘다 쓰고 죽기’를 목표로 삼으라. 평생 하고 싶었지만 생업에 매여 못했던 것들을 생전에 원없이 해보라고 권한다.   “그럼 자식들은요” “그렇게 살면 너무 이기적이지 않냐요”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다 쓰고 죽으라는 말은 자녀들에게 남겨줄 돈 한푼 없이 전부 쓰고, 빈털터리로 죽으라는 뜻이 아니다.  다 쓰고 죽기를 위한 계획에는 자녀도 포함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생전에 자녀 몫으로 떼어 놓고 당신이 가진 돈을 죽기 전에 전부 쓰라는 것이다.  자녀들에게 유산을 물려주는 일도, 기부도 살아생전에 해서 그 감동을 맛볼 것을 작가는 조언한다.   자신의 시간과 돈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타이밍이 중요하다. 오직 특정 시기에만 즐길 수 있는 경험도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늙어서 할 수 없는 경험들이 많다. 돈 낭비라는 두려움 때문에 시기를 놓치면 인생이 헐값 된다. 돈이 아까워서 끌어안고 있다가 죽음을 맞는 어리석음을 피하라고 한다.   요즘 세대와 달리 우리 때는 결혼 전에 돈에 대해서 너무 순진했다. 결혼 전에 오빠가 남편의 가족 사항 등 이것저것 물어보더니 “너희들은 연애하며 셰익스피어만 얘기하니?”라고 핀잔을 줬다.   당시 아버님은 경제 활동이 없으셨고 남편은 말단 기자였다. 게다가 부모님에, 여동생 넷, 남동생 하나, 미국에 계신 손위 누님이 맡긴 조카까지 대가족의 맏아들이었다. 오빠가 보기에 결혼 후 우리가 경제적으로 힘들 것은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었다.   결혼 후, 장로님이신 아버님께서 걱정말라는 의미인지는 몰라도 성경 책을 펼쳐 놓으시고 ‘공중의 새와 들의 백합’ 비유를 말씀해 주셨다. 아버님의 말씀처럼, 또 ‘사람은 다 자기 먹을 것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속담처럼 하나님께서 내게 맏며느리 역할을 잘 감당하게 해 주셨다. 지금은 그때의 힘들었던 상황을 훈장처럼 가슴에 달고 산다.   석인성시(惜吝成屎)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아끼고 아끼다가 똥이 된다는 말이다.  돈이 아무리 중요해도 돈은 써야 가치가 있는 법이다.   열심히 노력해서 번 돈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일에 써야 한다.   젊은 시절, 미국 와서 주위 여자들과 예쁘고 값비싼 그릇 모으기에 열을 올렸다.  너무 아까워서 나중에 귀한 손님이 올 때 쓰려고 진열장에 넣어두고 평소에는 저렴한 그릇만 썼다. 나이 먹어 자식들에게 물려주려 하나 그런 그릇 불편해서 거저 줘도 싫다고 한다. 이런 애물단지가 없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다.  그때 그때 즐겨야 한다. “나중에, 나중에”하다 보면 그 나중은 오지 않을 수도 있다. 지금 누리지 못한 오늘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잘 산 삶은 은행잔고가 아니라 경험이 결정한다. 심리학 연구를 통해 ‘물질에 돈을 쓸 때보다 경험에 돈을 쓸 때 더 행복감을 느낀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경험은 추억을 남긴다. 사람은 인생에서 은퇴하면 추억을 연금처럼 받게 된다. 다른 것들은 대체할 수 있지만 추억은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소중하다. 더 늦기 전에 즐겁고 의미 있는 경험을 많이 해봐야겠다.   우리는 늘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배웠다. 하지만 열심히 사는 것과 제대로 사는 것의 간극, 그 틈은 때때로 전 생애를 갈라 놓기도 한다. 돈  버는 것 못지않게 지혜롭게 잘 쓰는 걸 익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 계산 그만하고 가진 돈을 최대한 잘 쓸 계획을 세워야겠다. 배광자 / 수필가문예마당 수필 액티브 시니어 인생 2막 세월 남편

2025.08.14. 19:11

[문예마당] 봄 향기

화창한 중가주의 아침   까마득한 지평선 꽃밭에   복숭아꽃 배꽃 만개하고   한 송이 장미꽃   자기가 제일 예쁘다고   아롱대는 아지랑이 가득히   종달새 어데 갔나   꽃잎만 휘날리네       버얼건 동녘 하늘   양귀비 얼굴   산수가 넘은   장미꽃 한 송이   뽀오얀 골짜기에   봉우리 두 개   봄 향기 즐기려   꽃밭에 나왔나봐 이일배 / 시인문예마당 향기 지평선 꽃밭 복숭아꽃 배꽃 양귀비 얼굴

2025.08.14. 19:10

[문예마당] 조국의 새 아침에

나라를 사랑하는 뜨거운 가슴마다   태극기를 휘날리며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며   총칼에 쓰러져 간 넋들의 고귀한 생명   아 어찌 잊을쏘냐!       그들의 희생의 씨앗이 동토에 싹을 트고   무성히 자라 빼어난 금수강산에   그들의 혼불이 태극기처럼 나부끼네       아! 아름다운 조국의 여명이 밝아온다   살을 에는 시베리아의 삭풍이   뼛속을 녹여도 견디어낸 우리의 조국   새 아침이 밝아온다       찬란한 태양아 높이 솟아라   어두움을 사르고 광명의 빛으로   온 누리를 환하게 골고루 비추어라   아름다워라! 우리 조국의 새 아침이여!       열조의 눈물 어린 기도와 이 백성의 뼈를 깎는 노고   세계 열방에 우뚝 선 경제 대국 대한민국이   한없이 자랑스럽구나   열방의 등불로 우뚝 서리라       우리 민족의 염원인 남북통일이 머지않아 이루어지면   이산가족의 뼈아픈 통한을 씻어 줄 그날이 분명히 오리라       조국의 새 아침의 문은 활짝 열리고 부푼 소망에 꿈을 싣고   우리 모두 손에 손을 맞잡고 힘찬 애국가를   드높이 부르리라   자자손손 하나님의 축복으로 길이길이 넘치리라 김수영 / 시인문예마당 조국 우리 조국 자자손손 하나님 대한독립 만세

2025.08.14. 19:09

[문예마당] 세월과 나

낙엽은 바람 없이 떨어지고   세월은 침묵으로 흘러만 가네   내 마음 세월과  구름에 얹혀   알 수 없는 목적지로 두둥실 떠나 가네   레드락 산기슭 적막 속을 거닐면   들려오는 고독의 소리   고독은 그렇게 파르르 떠네   평생을 소음 속에 살아온 나   흐르는 개울가에 물망초 피고   조약돌 옹기종기 속삭이건만   냉정한 세월은 째깍째깍   초점에 매달려 넘어가네 백인호 / 시인문예마당 세월 마음 세월 레드락 산기슭

2025.08.07. 18:28

[문예마당] 태풍 루사, 스무 해를 넘으며

네가 천국이라는 나라로 근무지를 옮긴 후     비행기에서 창밖 구름 밭을 속속들이     들여다보는  버릇이 생겼다       국군의 날 기념식 앞두고     여의도에서 만날 때와는 달리     TV 속에서 기관총을 맨 너는     북녘 하늘 임진강 철책을 지나는 데     군복 색깔과 견장은 다르지만     헌칠한 키의 뒤 태가 같구나       또 언젠가는 유럽 어느 공항에서     잠깐 마주치고는 커다란 가방을 끌고     마드리드쪽 게이트로 급히 가더구나         다시 청년이 되어     누나들 이제 울지 말라고     언뜻언뜻 근황을 비춰주고 가는구나       *태풍 루사: 2002년 8월31일 한반도에 상륙하여 사망·실종 246명과 5조 원이 넘는 피해를 낸 태풍 권정순 / 시인문예마당 태풍 루사 북녘 하늘 군복 색깔 실종 246명

2025.08.07. 18:27

[문예마당]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

안정이 되지 않는 오후다.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집안을 서성거리다가, 일찌감치 저녁 준비나 해야 하겠다고 부엌에 들어섰다. ‘알렉사’ 설치가 되어 있어서, “알렉사야, 바흐의 샤콘 틀어줘” 했더니, 친절하게 작곡한 해, 악보 넘버랑, 바이올린 연주자 이름을 가르쳐 주고, 이어서 샤콘 곡이 흘러나왔다.   이 곡을 쓸 때, 바흐가 지금의 나같이 어수선하고 좀 아프고, 화나는 마음이었을까? 어떻든 내 기분은 꿀꿀하다. 어쩌면 세기적인 작곡가 바흐의 슬픔은 세기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질 것 같은데, 여기에 감히 내가 편승하는 것은 무례할 것이다. 그래도 왠지 나의 이 찜찜하고, 슬픔에 가까운 아픔과 정리되지 않는 분노를 그는 그리고 세상 사람들은 용서해 줄 것 같다.   증명된 이야기는 아니지만, 바흐는 18세기 초에 레오폴드 왕자와 타지로 며칠 출장을 갔다고 한다. 귀가했을 때, 그는 일곱 명 아이의 엄마인 그의 아내가 죽었고, 이미 땅에 묻혔다는 비보를 접했다고 한다. 급작스러운 죽음이 실제로 이해되지 않았을 것이고 슬퍼하거나 그립다는 정서적 세계에 있지 않았을 것 같다. 시간이 걸리면서 차츰 상황을 이해하고, 아플 능력도 생겼을 것이다. 어쩌면 그는 하느님을 원망하였을지도 모른다.   샤콘은 바흐가 1717년부터 작곡을 시작해서 1720년에 완성했던 바로크 춤곡, ‘바이올린을 위한 파티다 2번’ 다섯 곡 중 제일 마지막 것으로, 아내 마리아 바버라 바흐의 죽음을 접한 후에 썼다고 한다.     바흐의 샤콘의 초입 부분은 그의 영적인 갈등, 감성적인 아픔과 분노를 느끼게 한다. 그런데 이 음악의 마지막 부분에 도달하면 평화로움, 인간이 줄 수 없는 평안을 허락하는 것이 의아스럽다. 바흐에게는 공평하지 않았을 마리아 바버라 바흐의 죽음이었다.   그렇다,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 나에게 세상이 공평하다고 가르친 사람은 없다. 내가 어렸을 때, 밥상머리에서 부모님과 형제들은 세상사를 놓고, 여러 가지 토론을 하곤 하셨다. 어렸던 나는 의견을 내세울 처지는 아니었지만,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는 것, 그래서 전쟁도 나고, 시스템의 실패로 쿠데타도 일어날 수 있고, 숱한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게 된다는 것을 이해했었다. 어쩌면, 그 철학은 지금의 나를 만드는 데 한 역할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세상이 공평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누구에게나 있다. 역으로 말하자면, 사회는 공평하지 못하다는 것을 암시한다. 지난 두 달 반 동안, 세상이 불공평하고, 사회정의는 빛 좋은 개살구같이 화려하게 장식되는 단어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나는 배심원 의무를 이행하고 있었던 터였다. 배심원 의무는 영주권자가 아닌 시민권자에게만 주어지는 것이다. 미국 시민이나 영주권자들은 납세, 국방, 법률 준수의 공동의무가 있다.   이 사건은 아동 학대에서 시작하여 살해까지 도달한 범죄의 형사재판이었다. 피고인은 아이의 생모와 생모의 남자 친구로 두 명이었다. 양측의 변호인단으로는 캘리포니아 주민을 대표한 검사 두 명과 피고인 측은 피고인 한 명에 관선 변호사 2명씩 종합 4명이었다.     배심원 후보들은 개인 신상 조사서를 문서로 작성하였다. 자신의 ID를 오픈하지 않는 요즘, 생물학적 정보 이외에도 소속기관, 학력, 경력, 관심 분야 등의 내용을 기재하고, 은퇴하였다면 어떤 직종을 어디에서 몇 년 종사하였는지를 써야 했다. 배우자나 자식들에 관해서도 같은 질문에 답해야 했다. 이 과정은, 배심원들이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공정할 수 있는가를 가늠하는 중심적인 분석의 시작이자 끝이라 보였다.   이 과정에서 법치 국가의 의미를 확인했다. 제출된 부검(剖檢) 내용 사진과 영상, 그리고 퍼킨스 에이전트를 이용해서, 범인으로 검거된 아이 엄마의 자백을 녹취한 내용, 증인들의 협력으로 배심원 전원이 범행의 심각성과 그들이 범한 여러 가지의 죄목을 이해하였다.     증거자료로 제출된 것 중에는 전화 통화 내용뿐 아니라, 전화를 건 시간, 통화가 오간 지역 등도 모두 제출되었다. 세상에 비밀은 없다. 모든 것은 시간이 걸리지만, 그 흔적을 찾을 수가 있다.   이 아이가 세상을 하직하는 데 7년이 걸렸다. 죽음의 문턱을 넘는 마지막 반년 동안, 아이는 사회와의 철저한 격리 중에, 수갑이 발목에 채워진 채 감금되어서, 정신적 육체적 학대를 받았던 것이었다. 주위 사람들은 뭘 했을까? 학교 교사, 동네 사람들, 친척들, 소셜 워커는 어디에 있었나?     나는 지금도 밤잠을 설친다. 미국 의협 소아학 저널(Vol 177, No 2)은 1999년부터 2020년까지 2년 동안 집계된 아동 살해 통계를 분석하여 발표하였다. 통계는 미국 질병 통제 예방 센터(US Centers for Disease Control & Prevention)의 레베카 윌슨 박사 보고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신생아부터 17세까지 살해된 3만8362명 중 눈에 띄는 숫자는 70%가 남자아이, 신생아부터 다섯 살까지가 40%, 흑인 아동이 46%, 남부지역에서 42%가 살해되었다는 것이다.   누가 죽였을까? 친부모가 죽인 경우가 42%나 되고, 생모의 남자 친구가 죽인 경우가 15.5%이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 한국의 국가통계포털 (KOSIS) 2022년 통계에 의하면, 2만7971명의 학대가 접수됐다. 약 1/3이 중복적 학대이었고, 10% 정도는 방임하여 돌보지 않은 종류의 학대이었다고 한다. 2023년 검찰청은 801건의 살인 범죄를 보고했다. 그중 아동 학대 살인, 영아 살인이 각각 0.6%로 총 1.2%(9.6명)이었다고 한다.   아이를 포기하고, 기관에 보내거나 친척에게 맡기어도 될 일을, 장시간에 걸쳐, 학대하고 살해에 이르는 우매하고 아프고 부당한 처사가 어디 있겠느냐 싶다.     세상 사람들 누구도 자기 뜻에 따라 태어난 예는 없다. 그렇게 세상에 도달한 우리들은 집 밖에서 공평을 이룩하려 애쓰기 전에, 나 자신과 가족, 주위 친구들에게 공평한, 정의로운 대우를 해 주고 있는지 숙고해 보자. 공평하지 않은 세상을 알기에, 공평하도록 노력해 보는 것이다. 모니카 류 / 종양방사선학전문의·미국한국어진흥재단이사장문예마당 공평 수필 작곡가 바흐 아동 학대 배심원 의무

2025.08.07.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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