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에게는 여러 명의 절친이 있다. 고등학교 시절 만나 사십 년을 함께해 온 친구들이다. 그중 한 명이 나의 작은 오빠다. 친구가 매제가 되었으니 두 사람의 인연은 더욱 각별해졌다. 무엇보다 미국에 사는 우리를 대신해 남편의 빈자리를 살뜰히 채워 주는 오래된 벗이자 든든한 버팀목이다. 지난 주말, 한국에서 걸려온 오빠의 전화에 남편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한 채 눈가가 붉어졌다. 놀라 다가서자, 수화기 너머로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조용히 새어 나왔다.
“ㅇㅇ야, 지난달에 ㅇㅇ 사십구재 지냈어.”
믿기 어려운 비보였다. 고교 시절부터 우리 집을 드나들던 그였기에 나 또한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넉넉지 않은 형편 속에서도 부모님께 공부로 보답하겠다던 그는, 고교 삼 년 내내 전교 최상위권을 지켜냈다. 누구보다 반듯하고 성실한 사람이었다.
작년 가을, 남편과 함께 한국을 방문했을 때 처음 그의 투병 소식을 들었다. 몇 해 전 대장암이 발견되었지만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한때 건강을 되찾는 듯했다. 삶에 대한 의지가 강했던 그는 힘겨운 항암 치료를 열두 차례나 견뎌냈고, 회사 복직을 준비하던 중 암세포가 폐로 전이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미국에서 온 친구들에게 아픈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며,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자며 다음을 기약했었다. 그러나 결국 더 이상의 치료가 어렵다는 의사의 소견 앞에서 그는 손을 놓았고, 그 약속이 이렇게 끝날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세속을 벗어나 마지막을 스스로 정리하고 싶었던 걸까. 그는 지리산의 한 사찰에 머물며 템플스테이로 시간을 보냈다. 바쁜 와중에도 오빠는 사흘 내내 그의 곁을 지켰다. 놀라울 만큼 담담했고, 죽음을 앞둔 사람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평온했다고 한다. 어쩌면 운명을 밀어내기보다 받아들이는 쪽을 택했는지도 모른다. 모든 것을 내려놓은 자리에서, 비로소 평안을 얻은 사람처럼 보였다. 그리고 끝내, 자기 삶의 방향을 스스로 정한 듯했다.
지리산에서 돌아온 뒤, 그는 조용히 이별을 준비했다. 삶의 흔적을 하나둘 덜어낸 뒤 그가 향한 곳은 스위스였다. 가족과 함께한 마지막 여행. 특별할 것 없는 하루들이었지만 그에게는 무엇보다 소중했을 것이다. 사랑하는 이들이 곁에 있는 자리에서 삶의 마침표를 찍었다. 남겨질 사람들을 뒤로한 채 걸어야 했던 길, 그 발걸음의 무게를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을까. 어쩌면 그것은 그가 선택한 가장 고독한 사랑이었을지도 모른다.
유해는 스위스 어딘가에 뿌려졌다. 정확한 지명 대신 위도와 경도만이 기록처럼 전해졌다. 우리는 오랫동안 그의 선택을 이해하려 애썼다. 머리로는 이해한다고 말하면서도, 가슴은 끝내 따라오지 못했다.
존엄한 죽음이란 무엇일까.
살아 있음은 끝까지 붙들어야 하는 것인가.
고통을 멈추는 선택은 과연 비인간적인가.
그 질문들 앞에서 누구도 쉽게 답할 수 없다. 다만 남겨진 사람들의 슬픔만은 어떤 논쟁으로도 쉽게 위로 되지 않는다.
친구들이 마음을 모았다. 그가 가장 좋아하던 백일홍을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지리산 사찰 앞마당에 심기로 했다. 차가운 좌표로만 남겨 둘 수 없어, 고국의 흙과 계절 속에 다시 피워 두고 싶어서다. 뜨거운 햇살에도 쉬이 시들지 않는 백일홍처럼, 그는 오래도록 친구들 곁에 머물 것이다. 예순을 채우지 못한 그의 시간은 해마다 돌아오는 꽃잎이 되어, 못다 한 우정을 다시 피우리라.
바람이 스치면 꽃잎이 가볍게 흔들리겠지. 그때마다 그가 보내온 안부가 풍경 소리처럼 우리 곁을 맴돌 것만 같다. 떠난다는 것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모습으로 머무는 일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서로를 오래 기억하며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