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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강한교회] 개신교에 프란치스코가 없는 건

'프란치스코 신드롬'이 일고 있다.

베르고글리오는 교황으로 선출되자 13세기 이탈리아의 청빈과 겸손의 성자 '프란치스코'를 즉위명으로 택했다. 검은 구두, 철제 십자가 그리고 서민 자동차까지 즉위명에 걸맞는 삶으로 교황은 천주교뿐 아니라 온 지구촌의 존경과 희망의 메시지가 되고 있다.

'명량 신드롬'이 극장가를 휩쓸고 있다. 표를 예매하지 않으면 볼 수 없을 정도로 선전하고 있다. 매체마다 명량의 뜨거운 국민적 반응을 '모범적 리더십에 대한 갈망'이라 분석하고 있다. 리더의 부재, 영웅의 부재를 심각하게 겪고 있는 한국 국민의 갈증을 대리만족 시켜주고 있는 것이다.

이래저래 가장 혼란스러워하는 부류가 바로 개신교다. "개신교에 어른이 없다"는 소리를 들은 지 오래다.

정말 기독교에는 교황만한 인물이 없을까. 기독교의 이순신장군은 다 어디로 사라졌나.

근래 개신교에서 존경받던 수많은 목사들의 사생활이 밝혀지면서 하나둘씩 나락으로 곤두박질쳤다.

분명 그런 높은 위치는 '하나님이 신실하게 여겨주시고 앉히신 자리'(딤전1:12)인데 자릿값을 못한 것이다. 왜일까.

요즘 소위 잘나가는 사람들의 간증을 들어보면 수련회 부흥회 혹은 대형집회를 통해 하나님의 특별한 음성을 듣고 헌신했다고 한다.

어느덧 한국 교인들의 회심이나 영적 성숙은 주로 대형집회나 큰 모임을 통해서 이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주로 집회를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흐름은 이 시대만의 특별한 성령의 역사방법이거나 아니면 뭔가 잘못된 것이다.

신구약의 인물들은 모두 세상과 차단된 외로운 골방과 모래바람 흩날리는 광야에서 하나님의 깊은 임재를 체험한 흔적을 흔히 볼 수 있다.

예수님은 사역 도중 자주 '한적한 곳'을 찾으셨다. 영적 성숙은 수백 혹은 수천의 사람들이 모인 집회장소에서 생겨나고 성숙되지 않는다. 어두침침한 골방 고독한 광야에서 생겨난다.

대형집회와 크루세이드에 익숙해진 현대 기독교인은 집회에 앉아만 있으면 저절로 성숙의 길로 접어드는 것으로 착각한다. 그래서 수련회 끝나면 부흥회, 부흥회가 끝나면 사경회를 기다리면서 이벤트로만 신앙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또한, 그런 환경에서 사역자들이 탄생하고 길러지다 보니 담임목사가 되어서도 이벤트와 프로그램이 곧 사역인 줄 아는 것이다.

개신교에 프란치스코와 이순신장군이 없는 이유는 모두 골방과 광야에서 실패했기 때문이다. 사역이 조금만 커지면 골방에 들어갈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어진다. 높은 자리가 주는 편함과 화려함에 익숙해져 광야로 내모시는 성령의 음성을 거부한다.

이 시대의 참 그리스도인은 넓고 큰 예배당을 사모하지 않는다.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대형집회를 흠모하지 않는다. 다니엘처럼 골방에서 모세처럼 광야에서 다윗처럼 벌판에서 하나님 그분만을 갈망한다.

권태산 목사 / 하나님의꿈의교회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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