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직업도 ‘성직’ 입니다”…목회와 일 병행하는 목사님
운전 교육하면서 복음 전해
피아노 조율하며 성경도 가르쳐
이발하면서 인생 및 신앙 상담도
최근 월간‘디 애틀랜틱(The Atlantic)’은 “직업을 갖고 일하는 생계형 목회자가 점점 많아진다”고 보도했다. 이 기사는 “교세가 점점 줄어들고 경기침체가 이어지면서 교회가 재정적 어려움을 겪게 되자 전임 사역자 자리가 감소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성직자로 헌신하기 전부터 상당한 빚을 안고 목회 현장으로 뛰어드는 것도 원인중 하나다. 미국노동부에 따르면 목회학 석사 학위자(2011년 기준) 중 졸업생의 약 25%는 학비로 인해 평균 4만 달러의 빚을 진다. 4명 중 1명이 사역지를 구하기 전부터 생계에 쫓기는 셈이다.
이처럼 목회자들은 각자 상황에 따라 생활 전선으로 내몰리고 있지만 이를 부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 일을 하는 것은 삶의 영역에서 신이 허락한 노동의 아름다움을 표출하는 기회이자 또 다른 사역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직업을 갖고 삶의 터전을 가꾸는 사역자들을 만나봤다.
"프로가 돼야 합니다"
재능을 살리면 '자비량' 목회가 가능하다.
제임스 한 목사(47)는 '절대 음감'을 갖고 있다. 미주한인예수교장로회(KAPC) 교단 소속인 그는 평신도 신앙강좌, 성경 스터디 그룹 등을 통해 성경을 가르치면서 일상에서는 8년째 전문 피아노 조율사로 일한다.
한 목사는 "크리스천에게는 모든 직업이 성직이다. 일터가 있다면 그곳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얼마든지 일할 수 있다"고 말했다.
총신대학교 입학 전 영창피아노에서 근무했던 경험을 살린 그는 '프로페셔널 직업인'이다. 남가주 지역 한인교회부터 일반 가정, 음악 스튜디오까지 피아노가 있는 곳에는 항상 그가 있다. 피아노 사이즈에 따라 80달러~200달러까지 조율비는 다르게 책정된다.
그는 본인의 직업에 대해 생계가 유지되고, 스케줄 조절이 자유로운 점, 육체적으로 힘들지 않아 목회에 지장을 받지 않는 것을 장점으로 꼽았다.
한 목사는 "나는 성경을 가르치고 설교하는 일이 가장 행복하고 소중한 사명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전임 사역자로 활동할 수 있는 기회도 올 것"이라고 말했다
일터의 현장은 "준비된 목회자로 세워지는 또 하나의 과정"이라고 전했다.
그는 "만약 목회자가 전임 사역을 맡기 전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본인의 재능과 적성을 잘 파악해서 그 직종이 주변에 덕이 되는지를 살펴보고, 그 분야의 프로가 되어 자신있게 일할 것"을 조언했다.
"일하면 삶을 이해합니다"
직업이 자연스레 '사역'으로 연결된다.
가디나둘로스교회 담임인 서보천 목사(46)는 14년 경력의 운전학교 강사다. 미국 생활 정착 도우미로도 활동하는 그는 10여 년 동안 인터넷 카페 등에 답변을 해준 것 만도 8000개가 넘는다. 그는 두시간에 80달러의 교육비를 받는다.
서보천 목사는 "1992년 미국에 처음 공부하러 왔는데 택시운전, 신문배달 등을 하면서 힘겹게 학업을 마쳤다"며 "당시 어렵게 정착해서인지 미국에 처음 오는 한인들의 상황이 더 공감이 됐고, 그들을 돕는 일을 직업으로 삼게됐다"고 말했다.
일상의 직업은 곧 목회다. 교회에 다니지 않는 운전 교습생에겐 전도도 전한다. 직업이 있기에 목회가 소홀할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서 목사는 "목회가 가장 우선이므로 새벽기도도 인도하고 설교준비나 심방도 해야 하는데 남들보다 두 배는 더 부지런해야 한다"며 "오히려 일을 하면 목사로서 성도의 어려운 형편을 더욱 이해하게 되고 삶의 현실적 부분을 체감할 수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된다"고 전했다.
"사역의 범위는 넓다"
LA지역 시온마켓내 위치한 팔레스뷰티 미용실에는 '전도사'가 근무한다.
이순교(53·LA둘로스선교교회) 전도사는 미용사 경력 30년째인 베테랑이다. 교회에서는 아동부 및 주일학교 부장으로 8년째 섬기고 있다. 선교에 필요한 미용 기술 등을 가르치기 위해 나성순복음교회의 미용교실에서 강사로도 활동중이다.
이 전도사는 "크리스천 미용사로서 수십 년간 수많은 손님을 만나왔는데 종교적 얘기를 나누다 보면 때론 심도있는 다양한 질문을 받게 된다"며 "이야기를 들어주고 상담을 하며, 그들이 갖는 의문에 최대한 이해하기 쉽도록 답해주기 위해 신학을 공부했다"고 말했다.
그는 세속 직업도 얼마든지 사역으로 활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상이 사역이기 때문이다. 일터에서는 손님과 만나고 사역의 현장에서는 선교의 일꾼을 키워낸다.
이 전도사는 "사역자로서 사회 생활을 해보니 사고의 폭과 사역의 지경이 넓어지는 것 같다"며 "사역은 얼마든지 폭 넓게 할 수 있는 방법이 많기 때문에 목회자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쓰임 받았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장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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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직 목회는 ‘현실’
목사 절반 이상 최저생계비
한국선 ‘이중직’ 이슈 공론화
한인교계에서 목회자의 ‘이중직’은 보편적이다. 다만, 목사가 일을 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많다는 게 교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목회자=성직’이라는 고정관념 때문이다.
LA지역 한 미자립 교회에서 시무중인 유정근(59) 장로는 “현실적으로 이민교회내 70~80%의 목사나 사모가 생계 때문에 일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한인교계 정서상 성직자가 직업을 갖는 걸 부자연스럽게 보는 인식이 있어 사모가 대신 일을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한국의 경우 최근 ‘목회자의 이중직’이 공론의 주제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 내 주요교단들은 실제로 규제를 하진 않지만 교단 법을 통해 이를 직·간접적으로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로회신학대학교 한국일 교수는 “목회자의 이중직은 한국교회가 한창 부흥하고 성장할 때는 논의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며 “하지만 90년대 이후 교세가 약해지고 목회자 수가 포화상태가 되면서 목사가 다른 직업을 겸직하는 사례가 발생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예외적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월간지 ‘목회와 신학’은 지난 4월 한국 내 목회자 904명(신뢰도 95%)을 대상으로 ‘목회자 이중직’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73.9%가 이중직을 찬성했다. 또 응답자의 절반 이상인 66.7%의 목회자는 보건복지부가 규정한 월최저생계비(4인 가족 기준163만 원)에도 못 미치는 사례비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장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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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도 텐트 메이커였다”
직업 있으면 오히려 당당해
현 교계 상황에선 장려해야
성직자로 부름 받은 목사는 ‘세속 직업’을 가지면 안될까.
미국 내 유명 목회자인 존 맥아더 목사에게 의견을 물었다.
존 맥아더 목사는 “성경을 보면 사도바울도 ‘텐트 메이커’로 일하며 복음을 전했는데 목회자가 직업을 갖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말했다.
맥아더 목사는 “궁극적으로는 목사가 목회만 전념할 수 있도록 교회가 지원을 해야겠지만, 그런 환경이 안 된다면 목사도 일을 할 수 있다”며 “요즘 미국 교계도 자기만의 전문직업을 가진 상태에서 목회를 하는 사례가 많은데, 오늘날 교계 상황에서는 매우 필요하고 장려할 부분”이라고 전했다.
직업이 있으면 오히려 사역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미국교회에서 파트타임 사역자로 활동하는 존 김(32) 전도사는 “현재 회계사(CPA) 공부를 병행하고 있는데 오히려 사역에만 본질적으로 전념하기 위해 직업을 가지려 한다”며 “생계 등의 현실적 문제에 시달리다 보면 오히려 사역에 집중하기 어려울 수 있고, 특히 미자립 교회 같은 경우는 재정 상황이 부담될 수 있기에 직업을 갖고 당당히 목회를 하려 한다”고 말했다.
LA한인타운내 S여행사를 운영하며 목회자로 활동중인 김모 대표는 “목사가 직업을 갖는 것을 세속적이거나 ‘물질(돈)’을 쫓는 것처럼 보거나, 마치 소명을 잃은 것처럼 오해하는 시각도 있다”며 “목사라는 직분은 초월적인 자리나, 후원을 받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닌 소명에 따라 복음을 전하기 위해 있는 직분임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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