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가 이야기] 사랑의 치유력
기억력이 좋은 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기억력이 나쁘다고 다 안 좋은 것도 아니다. 기억을 해야 할 일도 많지만 기억 안 해서 좋을 일도 얼마든 있기 때문이다.실제 삶에선 좋은 기억보다는 실패, 상실, 수모, 좌절 등 아픈 기억들이 훨씬 더 많다. 그런데 그게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좋은 기억보다 아픈 기억이 더 오래가게 마련이다. 아무리 기쁜 일이나 멋진 자랑거리도 시간이 지나면 시들해지는데 떠올리기도 싫은 아픈 기억들은 갈수록 그 뿌리가 깊어진다. 심하게는 뽑힐 줄 모르게 깊이 박혀서 마음을 병들게까지 한다. 우린 그 심각성을 자각하고 있는가. 어쩔 수 없는 일로 여기고 있진 않나.
작은 바이러스가 컴퓨터를 통째로 망쳐버리듯 쓰린 기억 하나가 삶 전체를 망칠 수도 있다. 환경오염을 대수롭잖게 여겼던 게 그리 오래전 일은 아닌데 어느새 생태계가 실제로 파괴되는 것을 체험한다. 아픈 기억들로 인한 마음의 오염도 그렇게 우리 존재와 삶을 파괴해간다. 그 사실을 간과하다가 수많은 현대인들이 자신도 모르는 새 우울증과 정신질환에 빠져가고 있다.
컴퓨터 메모리 지우듯 기억할 것만 기억하고 안 좋은 것들은 없앨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꿈같은 일이다. 세월이 해결해줄 수 있는 일도 아니고 이런저런 심리적 수단들이 있긴 해도 근본적인 치유는 아니다. 우리가 겪는 모든 고통의 근원이 '연약함'이라는 인간의 바탕 자체에 있기 때문이다. 유일한 길은 우리를 친히 지으신 하나님께 있다.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자신의 아픔을 누군가가 진지하게 들어주기만 해도 아픈 마음이 위로받는다. 그 고통을 실제 겪어본 사람이 공감해줄 때는 위로 정도를 넘어 아픔이 누그러진다. 그것이 사랑의 치유력이다. 예수께서 우리의 죄성과 연약함을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일은 세상의 어떤 괴로움, 슬픔, 억울함과도 비교하지 못한다. 그를 통해 보여주신 놀라운 사랑이 우리 아픈 기억의 뿌리들을 녹여버리는 능력이다.
그 예수께서 살아계셔서 우리 곁에 계신다는 사실은 개념이나 추상이 아닌 실제다. 우리의 모든 어려움을 낱낱이 아시며 어떤 고통이나 괴로움도 실제로 함께 아파하시는 둘도 없는 친구시다. 그분이 우리의 바탕인 연약함을 십자가와 부활로 완전히 정복하셨다. 그리고 우리 연약함을 치유하시려 지금 우리 곁에 계신다. 그 사실을 구체적으로 매일의 삶에 적용해야 한다. 주님을 바라보며 그 사랑 안에 잠길 때 어떠한 아픈 기억도 치유된다.
신앙생활에서의 중대 관건은 주님께서 실제로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다. 믿음을 가진다는 사실은 영생이나 구원의 조건으로만이 아니다. 실제 이 땅의 삶에서 인간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상황들을 주를 힘입어 극복해내는 데까지다. 연약한 우리가 날마다 더 강해지고 온전해져 간다. 결코, 뽑히지 않을 그 아픈 기억의 뿌리도 진정한 사랑의 힘이면 우리 기억 속에서 힘을 잃고 만다. 그렇게도 어려운 용서함도, 실은 그 아픈 기억들을 지우는 일이다, 십자가 앞에서…
신승호 목사 / USC찬양선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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