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불 아래서] 다시 온 새해
일어나 눈을 뜨면 오늘도 원하지 않던 일에 시달리기 위해 집을 나서야 했습니다.아버지의 아버지, 그 아버지의 아버지로부터 내려오던 말로는 이곳이 자신들의 집이 아니며 동쪽 어딘가에 하나님이 주신 그들의 땅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먼 예전에는 좋은 시절이 있었다고 합니다. 여기 사람들과 어울리며 나름의 대우도 받았기에 어느덧 고향으로 삼아 살아왔습니다. 그 시절은 몰라도 이제는 이곳이 그들의 터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도 주어진 벽돌 할당량을 위해 부역을 나가야 합니다. 그들은 이곳에서 이방인입니다. 기가 막힐 일은 이제 자유라는 말은 잊힌 지 너무나 오래된 단어일 뿐, 이러한 삶이 당연해져 버렸다는 사실입니다.
이곳에도 아침이면 해가 떴고, 달이 차고 기울었습니다. 한 해가 지났고 새로운 봄이 왔습니다. 그러나 마음과 발이 묶여버린 사람들에게 새해는 또 다른 부역의 날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절대 흔들리지도 움직이지도 않을 것 같았던 그 하루가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거대한 세력으로 세상을 지배하던 이곳에 그보다 더 큰 소용돌이가 쳤습니다. 그리고 기대와 희망이란 말을 땅에 묻고 살던 이들에게 들려왔습니다. "가라. 너희의 땅으로"
그리고 그들이 떠나던 그날은 어느 날이 아니라 그들에게 첫 달이 되었습니다. 지금껏 금을 긋고 세어나가던 부역의 달력은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건지신 하나님의 사랑이 새겨진 새로운 달력을 시작합니다.
이제 그들은 어제처럼 살 수 없고 살지도 않습니다. 바다가 앞을 막고 거친 사막이 발길을 잡아도 그들은 이제 돌아가지 않습니다. 한 해가 지나면 그날이 다시 올 것이고 그들은 다시 감격하겠지요.
책상 위에 놓인 새 달력을 바라봅니다. 오늘도 어느 사이에 하루가 뒤로 물러가고 다른 하루가 다가올 것입니다. 그러다 달이 넘어가고 숫자가 바뀌겠지요.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혹시 나는 세상 속에서 모양만 다른 부역을 살고 있지는 않은가.
일어나 일하고 사람을 만나고 그렇게 잠자리에 드는, 어제와 별로 다르지 않은 오늘이 익숙해져서 하나님이 주신 이 하루 속에서 소망이 아니라 그저 할당량을 채우지는 않는가
눈앞에 달력에는 '2014'가 아니라 선명하게 '2015'라고 찍혀 있습니다. 갑자기 마음속에서 울컥했습니다. 새로운 날을 무심히 지나가는 우리에게 달력이 오히려 말하기 때문입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새것이 되었다."
하나님을 아는 이들에게 새해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인생을 새롭게 했다는 사실로 다시 감격하는 날입니다. 다시는 세상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기에 오늘 우리의 일은 부역이 아닙니다. 비록 광야일지라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내고 있는 자유의 하루이기 때문입니다. 부족하기 그지없지만 내 삶은 이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기에 나는 이제 예전과 같이 살 수 없습니다.
새해가 다시 왔기 때문입니다.
한성윤 목사 / 나성남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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