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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역사는 산에서 흐른다

Los Angeles

2015.04.07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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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 당시 피란민 판자촌 '감천마을'
168개 계단마다 땀과 애환 '고스란히'
부산은 산에 있다.

바다만 봐온 시선을 등 뒤로 돌리면 어디든 산이다. 금정산, 백양산, 황령산, 장산, 봉래산 등 500m 높이 내외의 야트막한 산들이 바다 턱밑까지 뻗어있다.

부산 안내를 담당한 박현옥 해설사는 "산지 비율이 47%로 부산 인구 370만 명의 1/3이 산에 산다"면서 "부산의 역사는 산에 있다"고 했다. 천마산(324m) 기슭에서 고된 시간의 단면은 아직도 생생하다. 달동네 감천문화마을이 거기 있다.

집들은 산자락을 계단식으로 만든 터전에 성냥갑처럼 다닥다닥 붙어있다. 한국전쟁 당시 피란민들이 만든 판자촌이다. 감추고 싶었던 가난의 흔적들은 2009년'도시재생 사업' 덕분에 문화마을로 변신했다.

집들이 파스텔톤의 새옷을 입고 마을 곳곳에 예술작품들이 생겨났다. 아름다운 전경과 사연 많은 골목길로 '한국의 마추픽추'라는 별명을 얻었다. 지난해에만 79만 명이 다녀갈 정도로 관심이 높다. 사람들의 발걸음을 잡는 건 해설사들이 전하는 골목의 역사다.

전쟁이 끝나고 부산 인구는 110만 명이었다. 최대수용인구의 3배였다. 평지에 살 곳을 찾지 못한 피란민들은 산으로 올라갔다. 거적을 깔고, 판자를 주워 집을 지었다. '루삥(아스팔트 기름을 바른 장판지)' 지붕 5평 집에 식구 10여 명이 포개서 자야 했다.

마을 입구에서 만난 김현숙 안내사는 "우물 맛이 달다고 감천이라 했던 곳이지만 사람들은 삶의 쓴맛을 삼켜야했다"고 말했다.

마을 길은 좁다. 어른 한 명이 지날 정도의 실핏줄 같은 길을 따라 집들은 일정한 선과 간격으로 들어서 있다. 집을 지을 때 원칙이 있었다. 앞집은 뒷집보다 낮게 짓고, 계단과 골목은 서로 통하도록 했다. 덕분에 집들은 모두 햇볕을 향해 있다. 4500세대 모든 집들에 햇볕은 하루종일 고르게 내리 쐰다.

김 안내사는 "피란민들은 어렵게 살았지만 오히려 더 이웃을 배려했다"고 했다.

감천마을은 걷기 힘들다. 계단들은 수직처럼 가파르다. 계단 이름은 숫자로 불린다. 40계단, 148계단, 189계단, 192계단…. 계단들에는 지난 60여년간 고달픈 삶들이 쏟은 눈물의 짠내가 배어있다.

148계단은 '별 보러 가는 계단'이라고도 한다. 박 해설사는 "무거운 짐을 지고 가파른 계단을 한참 오르다 뒤돌아 보면 현기증이 나서 눈앞에 별이 보인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아직도 이 동네 어르신들은 매일 이 계단을 오르내린다.

힘겹게 어르신들 뒤를 따라다니다 보면 동네의 예술품들을 하나씩 만난다. 예전 목욕탕을 개조한 주민회관, 집 지붕 위에 만든 전망대, 어린 왕자 전망대, 사람 머리에 새 몸을 가진 사람새 등 볼거리가 많다. 골목 벽마다 붙어있는 물고기 모양의 이정표는 마을의 상징으로 동네 어르신들이 손수 만든 작품이다.

감천마을의 재생사업은 '산복도로 르네상스' 사업의 일환이었다. 산복도로는 '산 허리를 지나는 도로'지만 부산에서는 '달동네 길'과 같은 뜻이다. 감천마을은 이 산복도로에 접한 달동네 마을 중 하나다. 산복도로는 동구-중구-사하구를 연결하는 35.5km의 길로 1960년대 만들어졌다.

르네상스 사업에 대해 의견은 반반으로 갈린다. 어떤 이들은 "사람이 모이고, 돈을 쓰니 마을 살림살이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성공"이라고 한다. 반면 "동네 원주민들이 집을 팔고 빠져나가 마을 살리기라는 애초 취지가 무색해지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한 문화비평가는 "르네상스가 과거의 영광을 재현한다는 의미라면 아픈 역사를 가진 산복도로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어르신들의 생각은 다르다. 매일 용두산 공원에서 장기를 두는 구신범(85) 할아버지는 말했다.

"르네상스? 낸 몰라 몬배워서. 그래도 부산은 대한민국에서 최고아이요. 우린 대학은 몬나와도 그기는 안다. 근데 요즘 아들은 세상 좋아도 모리데."

많이 배웠지만, 몰랐던 진실. 산의 뱃속을 가로질러 난 168개 계단 마다 매일 땀과 눈물을 쏟았던 그들의 이야기가 지금의 '부산'이다.

정구현 기자

알고 다니자

▶다닐 때 크게 떠들지 말자. 일반 관광지가 아니라 사람 사는 동네다.

▶마을정보센터 '하늘마루'에서 안내사와 동행하자. 알아야 보인다.

▶감천마을에선 팸플릿을 반드시 구입하자. 그 수입은 동네 어르신들을 위해 쓰인다. 2000원이다.

▶감천(甘川)이라는 로고가 찍힌 식당에서 밥을 먹자. 어르신들이 직접 만들어 파는 동네기업이다.

부산은?

■ 지명 유래: 원래 부자 부(富)자를 쓰다가 15세기 말쯤부터 가마 부(釜)로 일반화됐다. 현재 동구 좌천동 금성초등학교 뒷산인 증산의 모양이 가마꼴과 같다해서 붙여졌다.

■ 위치: 한반도 남동단에 있는 광역시. 대한민국 제2의 도시이자, 제1의 무역항

■ 면적: 769.82㎢ (LA시의 60%)

■ 행정구분: 15구 1개군

■ 인구: 356만1526명(2015년 2월 현재)

■ 시장: 서병수(63, 초선 2014.07~)

■ 시정 목표: 사람과 기술, 문화로 융성하는 부산

■ 특산물 : 기장 멸치, 기장 미역, 기장 배, 구포 국수, 멍게, 해삼, 미나리, 장안흑미, 곰장어, 붕장어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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