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1년 만이다. 신연성(60.사진) 전 LA총영사를 부산 방문 중 만났다. 2011년 3월 LA로 부임한 그는 지난해 4월 이임했다. 재임기간중 2차례 재외국민선거, 한미FTA 발효 등 '최초의 업무'들이 유난히 많았고, 소통에 힘써 한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지난 7월부터 부산시 국제관계대사로 근무중이다. 그는 거창 출생이지만 부산에서 자랐다. 77년 외무고시 11기로 시작한 38년 외교관 경력의 마지막을 제 2의 고향에서 매듭짓고 있다. 소감을 묻자 "부임 첫 주말 영도대교를 걷다가 옛날 생각에 주저앉아 울었다"고 했다. 일식집에서 저녁식사를 하며 인터뷰했다. -한인들에게 인사해달라. "다들 보고 싶다. LA에 있을 때 보기 싫었던 사람들조차 그립다.(웃음)" -직함이 국제관계대사다. "외교부가 1990년부터 부산시에 대사를 파견해 국제 업무를 맡기고 있다. 한마디로 세계에 부산을 알리는 역할이다." -부산은 얼마 만인가. "40년 만에 돌아왔다. 영도대교에서 자갈치시장에서, 어디서든 만감이 교차했다." -어린 시절 생각이 났나. "아직도 기억난다. 수정아파트 13동 202호에 살았다. 지금은 없더라. 말이 아파트지 9평 짜리였고, 공동화장실을 썼다. 산동네여서 연탄배달도 10원이 더 비쌌다. 정말 못살던 때다." -영화 국제시장을 봤겠다. "너무 울까봐 아직 안 봤다. 영화 대사만 들어도 울음이 나왔다. '아버지 이만하면 내 잘 살앗지예, 근데 내 진짜 힘들었거든예'하는 대사 말이다." -부산은 어떤 곳인가. "산과 강과 바다가 만나 인간의 삶에 필요한 절대적 조건을 갖춘 곳이다. 회색빛 과거와 바닷빛 미래가 공존한다." -회색빛 과거란. "시대가 만든 극단적 애환이다. 한국전쟁 당시 피란민들이 살던 달동네 감천마을과 삼복도로를 봐야한다. 산 위와 아래를 연결하는 180여개 계단을 올라가봐야 부산의 뿌리를 알 수 있다." -부산에 왜 와봐야 하나. "한국 사람의 핏속엔 어렵던 시절의 DNA가 흐르고 있다. 그래서 강하고, 생명차다. 부산은 그 DNA로 만들어진 도시다. 경상도 뿐만 아니라 전국팔도 사람들이 모여있다. 부산은 누구에게나 제 2의 고향이다." -앞으로 계획은. "아마도 부산에서 공직 생활은 접게될 듯하다. 내가 있을 동안 부산에 많이들 찾아달라. 그래야 식사대접을 할 수 있을 것 아닌가." 정구현 기자
2015.04.14. 21:43
(1) 부산어묵 한국의 어묵은 일제시대에 들어왔다. 부산의 자존심인 어묵은 '길거리 오뎅'에서 '어묵 베이커리'로 진화하고 있다. 늘푸른바다라는 회사가 부산진구와 해운대해수욕장 입구에 '고래사'라는 대형어묵판매장을 차례로 개설했다. 100% 생선살로만 만든 어묵들을 마치 빵집에서 빵을 고르듯 살 수 있다. 군고구마.깻잎.치즈 옥수수.파프리카.베이컨 어묵 등 종류가 100여 가지다. 또 어묵초밥, 어묵고로케, 어묵버거, 어묵면 등 형태 자체도 바뀌고 있다. (2) 기장 곰장어 1950년대 부산에선 100개도 넘는 포장마차에서 곰장어를 팔았다고 한다. 껍질을 벗겨도 10시간 이상 펄떡대는 생명력 강한 곰장어는 당시 먹고 살기 위해 몸부림치던 부산 사람들의 자화상이었다. 기장 공수마을에선 산 곰장어를 화력 센 짚불에 구워 껍질을 벗겨 먹는 소금구이가 유명하다. (3) 돼지국밥 한국전쟁 당시 설렁탕을 그리워하던 피란민들이 소고기 대신 돼지를 넣고 만든 데서 유래했다. 진한 육수에 돼지고기, 내장, 순대를 넣고 밥을 말아먹는다. 새우젓과 부추를 곁들인다. (4) 밀면 역시 아픈 역사가 녹아있다. 이북에서 내려온 피란민들이 냉면 대신 만들었다. 메밀이 아니라 밀가루로 면을 만든다. 부산에 가면 반드시 먹어봐야 하는 부산 맛이다.
2015.04.14. 21:42
섬은 길 오른쪽 바다에서 마치 하나인 듯 나타났다. 보는 각도에 따라 혹은 물때에 따라 다섯 개나 여섯 개로 보인다. 그래서 오륙도다. 부산의 상징인 섬은 남해와 동해의 분기점이다. 예부터 조류가 빨랐다. 그러니 노래 가사처럼 '연락선마다' '돌아가는' 수밖에 없었단다. 오륙도라는 이름은 1740년 편찬된 동래부지 산천조에서 유래했다. 275년간 섬은 많아졌다가 적어졌다가 감쪽같은 마술을 부려왔다. 사실 섬은 여섯 개다. 뭍에서 가까운 섬부터 방패섬, 솔섬, 수리섬, 송곳섬, 굴섬, 등대섬으로 불린다. 한동안 관광 우선순위에 밀려났던 오륙도는 최근 다시 주목받고 있다. 부산의 해안 트레킹 로드인 '갈맷길' 9개 코스 중 가장 아름답다는 2코스 '이기대' 구간의 출발점이 오륙도다. 게다가 2년 전 유리바닥 전망대인 '스카이워크(Skywalk)'가 생겨 관광객수가 더 늘었다. 그랜드캐년 스카이워크의 축소판이다. 오륙도를 굽어보는 35m 해안 절벽 위에 유리판 24개를 말발굽형으로 15m 붙여놓았다. 투명한 유리 바닥 저 아래로 바다가 아찔하다. 갈맷길은 부산의 마스코트 갈매기와 길의 합성어다. 박현옥 해설사는 "부산 사람을 부산 갈매기라고 한다. 그래서 부산 사람이 걷는 길을 뜻하기도 한다"라고 설명했다. 전체 길은 263.8km다. 남쪽 가덕도에서 동쪽 임량해변까지 바다는 물론 시내 곳곳을 볼 수 있다. 이중 18.3km 길이의 2코스 구간은 부산 바다의 백미다. 남쪽에서 오륙도를 떠나 농바위-이기대-남천동 벚꽃거리-광안리 해수욕장-동백섬-해운대해수욕장까지 위로 올라간다. 절경은 이기대다. 기암절벽 사이 좁은 길이 푸른 바다를 끼고 이어진다. 걷다 보면 장산 달맞이 공원부터 저 멀리 동백섬, 해운대, 광안대교까지 부산의 상징들이 차례로 밀려온다. 이기대(二妓臺)는 술 취한 왜장과 함께 물에 빠져 죽은 두 기생이 묻혀있다해서 이름 붙여졌다. 이기대의 끝자락에서 왼쪽으로 돌면 나타나는 용호만에서는 특별한 체험을 할 수 있다. '상주다이아몬드베이'가 운영하는 92인승 대형요트 '마이다스호'를 타고 바다로 나간다. 요트 유람은 낮보다는 밤에, 겨울보단 여름이 좋다. 빛의 향연, 부산 바다 야경을 볼 수 있어서다. 특히 다이아몬드 브릿지라는 애칭을 가진 광안대교는 장관이다. 광안리해수욕장 전면을 가로지르는 7.4km의 다리에는 세계 최다인 1만6000개의 LED와 54개의 스피커가 설치되어 있다. 시간별, 요일별, 계절별로 10만가지 이상의 색의 향연을 내뿜는다. 요트에서 내리면 광안리로 향한다. 백사장을 걷다 해변 끝자락 민락동횟집거리에서 발길이 잡힌다. "여 아직 안와봤능교? 함 와보소" 식당 아지매들의 웃음이 펄떡이는 회처럼 싱싱했다. 광안리를 지나면 붉은 꽃의 찬란한 무덤을 만난다. '꽃 피는 동백섬'이다. 동백꽃은 두 번 핀다. 나무에서 활짝 피었다가 꽃봉오리째로 떨어져 땅에서 한번 더 핀다. 꽃길을 밟고 가면 바다 위의 구름처럼 아름다운 해운(海雲)대가 나타난다. 바다에서 봄은 잔잔했다. 부산의 마지막 정착지다. 오륙도에서부터 입속에서 맴돌던 노래도 끝났다. 돌아와요, 부산항에. 정구현 기자
2015.04.14. 21:40
다리 밑에는 점집이 많았다. '돈을 언제쯤 벌 수 있냐'거나 '결혼 기일은 언제가 좋으냐'는 질문은 다리 밑 점집들에서 들을 수 없었다. 손님들이 애타게 물었던 질문은 하나다. '언제쯤 헤어진 가족과 만날 수 있느냐'였다. 한국 전쟁 당시 영도 대교는 '피란 도중 헤어지면 영도 다리에서 만나자'고 했던 약속의 장소였다. 그래서 박현옥 해설사는 "부산의 한을 품은 다리"라고 했다. 다리는 1934년 일제 강점기에 큰 배들이 왕래하도록 상판을 들어올릴 수 있게 한 '도개교'다. 부산 최초의 다리로 준공식에 구경꾼 6만 명이 모였다고 한다. 당시 부산 인구가 16만 명이던 때다. 이후 1966년 도개 기능을 멈췄던 다리는 47년만인 2013년 다시 도개교로 재건되면서 랜드마크의 명성을 되찾았다. 박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면서 영도 대교를 내려다볼 수 있는 반도 건설 옥상에 올라갔다. 정오가 되자 건물 아래 수백 명의 군중이 반갑게 웅성거렸다. "올라간다! 올라간다!" '띵띵띵'하는 기차역 소리가 들리고 다리 위엔 차량 통행을 중단하는 정지대가 내려졌다. 곧 '굳세어라 금순아' 노래가 흘러나오고 다리 한쪽이 서서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박 해설사는 "건물 위에서 내려다보면 새까맣게 모인 인파가 전쟁 당시 다리에 나와 가족을 기다리던 피란민들을 연상케한다"고 했다. 최근 부산에는 영도 대교를 비롯해 '아픔이 추억으로, 추억이 상품으로' 만들어진 관광자원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영도다리는 '부산원도심 근대역사 골목투어'에 포함된 볼거리다. 투어는 '영도다리를 건너다', '용두산을 올라 부산포를 바라보다', '이바구길을 걷다', '국제시장을 기웃거리다'로 이름지어진 4개 코스로 부산의 명물들을 빼놓지 않고 볼 수 있다. 특히 이바구길 코스는 이야기의 보물창고다. 최초의 근대식 개인종합병원인 옛 백제병원에서 남선창고터, 초량교회, 김민부 전망대, 산복도로의 '168계단'도 이 코스로 간다. '눈물의 계단'으로도 불린다. 박 해설사는 "이 계단은 산 기슭에서 부산항까지 가장 빨리 내려갈 수 있는 지름길이었다"면서 "부산항에 배가 들어오면 산기슭에 살던 지게꾼들이 서로 짐을 빨리 받으려 다투며 내려가다 넘어져 구르고 다쳐 눈물 범벅이 됐다"고 말했다. 부산시는 이 계단을 오르내리는 어르신들의 편의와 관광객들을 위해 31억 원을 들여 길이 60m 모노레일을 설치중이다. 8월부터 운행한다. 최근 영화 '국제시장'의 흥행으로 새롭게 만들어진 국제시장 코스는 부산 시장 종합선물세트다.시장의 길안내는 모자에 부산의 상징인 동백꽃을 단 '이야기 할배, 할매'들이 2인 1조로 골목 설명과 관광객관리자 역할을 맡는다. 안내를 따라가면 자갈치 시장에 들어선다. '오이소, 보이소, 사이소'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유명한 부산의 상징이자, 한국 최대의 수산물 시장이다. 시장에서 박 해설사가 귀띔했다. "자갈치 시장에서는 바가지를 쓰지 않도록 반드시 부산 사람과 같이 동행해 식당에 가라"고 했다. 타지 사람들에겐 6만 원 짜리 회 한접시의 계산서가 8만 원이 될 수도 있다. '없는 것 빼고 다 있다'는 국제시장은 최근 자갈치 시장의 명성을 넘어서고 있다. 650개 업체, 1500칸의 점포가 빼곡하다. 영화로 주목받고 있는 업소는 '꽃분이네'다. 사람들이 많이 찾고 있지만 정작 꽃분이네와 주변 상인들은 불편하다. 이해의 충돌 때문이다. 꽃분이네로 관광객들이 몰려들면서 주변 상인들은 장사가 힘들어졌다. 한 주변 상인은 "해결 방법이 없어 더 문제다. 꽃분이네 입장에서나 우리나 먹고 사는 문제라서 양보하기 어렵다"고 했다. '관광객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주변 상점에도 들러 물건을 함께 사주는 것'이 현재 유일한 대안이다. 정구현 기자
2015.04.07. 22:38
부산은 산에 있다. 바다만 봐온 시선을 등 뒤로 돌리면 어디든 산이다. 금정산, 백양산, 황령산, 장산, 봉래산 등 500m 높이 내외의 야트막한 산들이 바다 턱밑까지 뻗어있다. 부산 안내를 담당한 박현옥 해설사는 "산지 비율이 47%로 부산 인구 370만 명의 1/3이 산에 산다"면서 "부산의 역사는 산에 있다"고 했다. 천마산(324m) 기슭에서 고된 시간의 단면은 아직도 생생하다. 달동네 감천문화마을이 거기 있다. 집들은 산자락을 계단식으로 만든 터전에 성냥갑처럼 다닥다닥 붙어있다. 한국전쟁 당시 피란민들이 만든 판자촌이다. 감추고 싶었던 가난의 흔적들은 2009년'도시재생 사업' 덕분에 문화마을로 변신했다. 집들이 파스텔톤의 새옷을 입고 마을 곳곳에 예술작품들이 생겨났다. 아름다운 전경과 사연 많은 골목길로 '한국의 마추픽추'라는 별명을 얻었다. 지난해에만 79만 명이 다녀갈 정도로 관심이 높다. 사람들의 발걸음을 잡는 건 해설사들이 전하는 골목의 역사다. 전쟁이 끝나고 부산 인구는 110만 명이었다. 최대수용인구의 3배였다. 평지에 살 곳을 찾지 못한 피란민들은 산으로 올라갔다. 거적을 깔고, 판자를 주워 집을 지었다. '루삥(아스팔트 기름을 바른 장판지)' 지붕 5평 집에 식구 10여 명이 포개서 자야 했다. 마을 입구에서 만난 김현숙 안내사는 "우물 맛이 달다고 감천이라 했던 곳이지만 사람들은 삶의 쓴맛을 삼켜야했다"고 말했다. 마을 길은 좁다. 어른 한 명이 지날 정도의 실핏줄 같은 길을 따라 집들은 일정한 선과 간격으로 들어서 있다. 집을 지을 때 원칙이 있었다. 앞집은 뒷집보다 낮게 짓고, 계단과 골목은 서로 통하도록 했다. 덕분에 집들은 모두 햇볕을 향해 있다. 4500세대 모든 집들에 햇볕은 하루종일 고르게 내리 쐰다. 김 안내사는 "피란민들은 어렵게 살았지만 오히려 더 이웃을 배려했다"고 했다. 감천마을은 걷기 힘들다. 계단들은 수직처럼 가파르다. 계단 이름은 숫자로 불린다. 40계단, 148계단, 189계단, 192계단…. 계단들에는 지난 60여년간 고달픈 삶들이 쏟은 눈물의 짠내가 배어있다. 148계단은 '별 보러 가는 계단'이라고도 한다. 박 해설사는 "무거운 짐을 지고 가파른 계단을 한참 오르다 뒤돌아 보면 현기증이 나서 눈앞에 별이 보인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아직도 이 동네 어르신들은 매일 이 계단을 오르내린다. 힘겹게 어르신들 뒤를 따라다니다 보면 동네의 예술품들을 하나씩 만난다. 예전 목욕탕을 개조한 주민회관, 집 지붕 위에 만든 전망대, 어린 왕자 전망대, 사람 머리에 새 몸을 가진 사람새 등 볼거리가 많다. 골목 벽마다 붙어있는 물고기 모양의 이정표는 마을의 상징으로 동네 어르신들이 손수 만든 작품이다. 감천마을의 재생사업은 '산복도로 르네상스' 사업의 일환이었다. 산복도로는 '산 허리를 지나는 도로'지만 부산에서는 '달동네 길'과 같은 뜻이다. 감천마을은 이 산복도로에 접한 달동네 마을 중 하나다. 산복도로는 동구-중구-사하구를 연결하는 35.5km의 길로 1960년대 만들어졌다. 르네상스 사업에 대해 의견은 반반으로 갈린다. 어떤 이들은 "사람이 모이고, 돈을 쓰니 마을 살림살이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성공"이라고 한다. 반면 "동네 원주민들이 집을 팔고 빠져나가 마을 살리기라는 애초 취지가 무색해지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한 문화비평가는 "르네상스가 과거의 영광을 재현한다는 의미라면 아픈 역사를 가진 산복도로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어르신들의 생각은 다르다. 매일 용두산 공원에서 장기를 두는 구신범(85) 할아버지는 말했다. "르네상스? 낸 몰라 몬배워서. 그래도 부산은 대한민국에서 최고아이요. 우린 대학은 몬나와도 그기는 안다. 근데 요즘 아들은 세상 좋아도 모리데." 많이 배웠지만, 몰랐던 진실. 산의 뱃속을 가로질러 난 168개 계단 마다 매일 땀과 눈물을 쏟았던 그들의 이야기가 지금의 '부산'이다. 정구현 기자 알고 다니자 ▶다닐 때 크게 떠들지 말자. 일반 관광지가 아니라 사람 사는 동네다. ▶마을정보센터 '하늘마루'에서 안내사와 동행하자. 알아야 보인다. ▶감천마을에선 팸플릿을 반드시 구입하자. 그 수입은 동네 어르신들을 위해 쓰인다. 2000원이다. ▶감천(甘川)이라는 로고가 찍힌 식당에서 밥을 먹자. 어르신들이 직접 만들어 파는 동네기업이다. 부산은? ■ 지명 유래: 원래 부자 부(富)자를 쓰다가 15세기 말쯤부터 가마 부(釜)로 일반화됐다. 현재 동구 좌천동 금성초등학교 뒷산인 증산의 모양이 가마꼴과 같다해서 붙여졌다. ■ 위치: 한반도 남동단에 있는 광역시. 대한민국 제2의 도시이자, 제1의 무역항 ■ 면적: 769.82㎢ (LA시의 60%) ■ 행정구분: 15구 1개군 ■ 인구: 356만1526명(2015년 2월 현재) ■ 시장: 서병수(63, 초선 2014.07~) ■ 시정 목표: 사람과 기술, 문화로 융성하는 부산 ■ 특산물 : 기장 멸치, 기장 미역, 기장 배, 구포 국수, 멍게, 해삼, 미나리, 장안흑미, 곰장어, 붕장어 등
2015.04.07. 22: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