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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소, 보이소, 사이소"…아픔이 추억으로, 추억이 상품으로

Los Angeles

2015.04.07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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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밑에는 점집이 많았다.

'돈을 언제쯤 벌 수 있냐'거나 '결혼 기일은 언제가 좋으냐'는 질문은 다리 밑 점집들에서 들을 수 없었다. 손님들이 애타게 물었던 질문은 하나다. '언제쯤 헤어진 가족과 만날 수 있느냐'였다.

한국 전쟁 당시 영도 대교는 '피란 도중 헤어지면 영도 다리에서 만나자'고 했던 약속의 장소였다. 그래서 박현옥 해설사는 "부산의 한을 품은 다리"라고 했다.

다리는 1934년 일제 강점기에 큰 배들이 왕래하도록 상판을 들어올릴 수 있게 한 '도개교'다. 부산 최초의 다리로 준공식에 구경꾼 6만 명이 모였다고 한다. 당시 부산 인구가 16만 명이던 때다.

이후 1966년 도개 기능을 멈췄던 다리는 47년만인 2013년 다시 도개교로 재건되면서 랜드마크의 명성을 되찾았다. 박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면서 영도 대교를 내려다볼 수 있는 반도 건설 옥상에 올라갔다. 정오가 되자 건물 아래 수백 명의 군중이 반갑게 웅성거렸다.

"올라간다! 올라간다!"

'띵띵띵'하는 기차역 소리가 들리고 다리 위엔 차량 통행을 중단하는 정지대가 내려졌다. 곧 '굳세어라 금순아' 노래가 흘러나오고 다리 한쪽이 서서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박 해설사는 "건물 위에서 내려다보면 새까맣게 모인 인파가 전쟁 당시 다리에 나와 가족을 기다리던 피란민들을 연상케한다"고 했다.

최근 부산에는 영도 대교를 비롯해 '아픔이 추억으로, 추억이 상품으로' 만들어진 관광자원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영도다리는 '부산원도심 근대역사 골목투어'에 포함된 볼거리다.

투어는 '영도다리를 건너다', '용두산을 올라 부산포를 바라보다', '이바구길을 걷다', '국제시장을 기웃거리다'로 이름지어진 4개 코스로 부산의 명물들을 빼놓지 않고 볼 수 있다.

특히 이바구길 코스는 이야기의 보물창고다. 최초의 근대식 개인종합병원인 옛 백제병원에서 남선창고터, 초량교회, 김민부 전망대, 산복도로의 '168계단'도 이 코스로 간다. '눈물의 계단'으로도 불린다.

박 해설사는 "이 계단은 산 기슭에서 부산항까지 가장 빨리 내려갈 수 있는 지름길이었다"면서 "부산항에 배가 들어오면 산기슭에 살던 지게꾼들이 서로 짐을 빨리 받으려 다투며 내려가다 넘어져 구르고 다쳐 눈물 범벅이 됐다"고 말했다.

부산시는 이 계단을 오르내리는 어르신들의 편의와 관광객들을 위해 31억 원을 들여 길이 60m 모노레일을 설치중이다. 8월부터 운행한다. 최근 영화 '국제시장'의 흥행으로 새롭게 만들어진 국제시장 코스는 부산 시장 종합선물세트다.시장의 길안내는 모자에 부산의 상징인 동백꽃을 단 '이야기 할배, 할매'들이 2인 1조로 골목 설명과 관광객관리자 역할을 맡는다.

안내를 따라가면 자갈치 시장에 들어선다. '오이소, 보이소, 사이소'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유명한 부산의 상징이자, 한국 최대의 수산물 시장이다.

시장에서 박 해설사가 귀띔했다. "자갈치 시장에서는 바가지를 쓰지 않도록 반드시 부산 사람과 같이 동행해 식당에 가라"고 했다. 타지 사람들에겐 6만 원 짜리 회 한접시의 계산서가 8만 원이 될 수도 있다. '없는 것 빼고 다 있다'는 국제시장은 최근 자갈치 시장의 명성을 넘어서고 있다. 650개 업체, 1500칸의 점포가 빼곡하다. 영화로 주목받고 있는 업소는 '꽃분이네'다. 사람들이 많이 찾고 있지만 정작 꽃분이네와 주변 상인들은 불편하다. 이해의 충돌 때문이다.

꽃분이네로 관광객들이 몰려들면서 주변 상인들은 장사가 힘들어졌다. 한 주변 상인은 "해결 방법이 없어 더 문제다. 꽃분이네 입장에서나 우리나 먹고 사는 문제라서 양보하기 어렵다"고 했다. '관광객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주변 상점에도 들러 물건을 함께 사주는 것'이 현재 유일한 대안이다.

정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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