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피해 이민자들 도움주고 싶어 2010년 가주법원의 차별 실태 신고 주 사법위 언어지원 위원 위촉 계기 이민국 등 모든 관공서로 확대 계획 LA KYCC 인턴때 '돕는 재미' 즐겨 "아이들에 항상 미안" 워캉맘 고충도
이 여자 참 한결같지 않은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긴 생머리하며, 웃을 때 살짝 들어가는 양 볼의 보조개가 그러하고 무엇보다 결코 목소리 높이는 법 없이 한결같은 톤으로 조곤조곤 이야기를 풀어가는 본새가 그렇다. 한인사회 법률관련 행사에 가면 이처럼 늘 한결같은 표정으로 자신의 자리를 지켜온 여자. LA 법률보조재단(LAFLA) 디렉터 조앤 이(41) 변호사다. 일반 로펌도 아닌 크고 작은 민원과 정치적, 사회적으로 예민한 문제들이 산적한 비영리재단에서 잔뼈 굵은지 어느새 15년 세월이 훌쩍 넘었으니 보통 내공은 아니지 싶다. 그런 그녀가 최근 가주 사법위원회 산하 언어지원대책 특별위원회 위원으로 위촉됐다. 5년 전부터 그녀가 추진해온 영어 미숙자들을 위한 법원 내 다중언어 통역 서비스 확장을 위한 노력이 드디어 결실을 맺은 것이다. 하루 24시간이 모자라는 조앤 이 변호사를 그녀의 사무실에서 만나봤다.
▶LA 한인사회에서 길을 찾다
미국에서 나고 자란 그녀의 고향은 메릴랜드 주. 평범한 유년시절을 보내고 대학에 진학한 그녀가 한인사회에 보다 더 깊은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94년 LA KYCC에 석 달간 인턴십을 하게 되면서부터.
"당시 주로 영어가 힘든 한인들을 위해 융자 서류 작성 등을 도와줬는데 제 그런 작은 역할이 한인들에게 도움이 된 것 같아 뿌듯했죠. 그때 아마 결심했던 것 같아요. 변호사가 돼서 LA 한인사회에 다시 돌아와 더 큰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이죠."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그녀는 조지 워싱턴 법대에 진학했고 1998년 가주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다. 변호사 합격 후 그녀는 워싱턴 DC 소재 아태계 비영리센터 본부에서 1년간 근무했다. 주로 아태계 커뮤니티를 위한 법안을 상정하고 이를 위한 리서치를 하는 것이 그녀의 주업무였다. 그러나 그녀는 그곳을 1년 만에 정리하고 2000년 1월 LA 법률보조재단으로 근무지를 옮겼다.
"현장에 있고 싶었어요. 법안을 마련하는 것도 좋지만 제 도움이 필요한 이들과 직접 얼굴 맞대고 도와주고 싶었어요. 책상 위에서 고민만 하는 것이 아닌, 직접 현장에서 부딪치며 사람들을 만나면서 배우고 싶었죠."
▶하루 24시간이 모자라는 여자
LA법률보조재단에서 그녀는 주업무는 이민법과 가정법. 가정폭력 피해여성들에게 법률적인 자문과 실질적인 도움을 줬다. 또 추방 위기에 내몰린 불법체류자들의 인권을 위해서도 싸웠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밤늦은 퇴근이 다반사였고 일거리를 집까지 싸들고 가기도 일쑤. 어디 이뿐인가. 가정 폭력 피해 여성을 도와주다 보면 상대 배우자가 사무실까지 쳐들어와 소리를 지르고 억지를 쓰는 경우도 다반사. 그래도 피곤한 줄 모르고 달려온 길이었다. 너무 힘들어 그만두고 싶다는 혹은 일반 로펌으로 이직하고 싶었던 적은 없었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단호히 고개를 젓는다.
"어려서부터 누군가를 도와주는 것을 업으로 삼고 싶었고 이렇게 제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서 오히려 제가 더 행복하죠."
현재 그녀는 부동산 투자전문가인 남편 댄 이(40)씨와 사이에 태린(5).태규(3) 남매를 두고 있는 워킹맘이다. 일밖에 모르고 십 수년을 달려왔지만 그녀의 육아 고민 역시 여느 워킹맘들과 다르지 않다.
"아이들이 점점 자라면서 엄마 손길을 더 필요로 하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일은 일대로 양육은 양육대로 소홀해지는 것 같아 지난 5년은 직장과 가족 모두에게 죄책감을 느끼며 살아왔던 것 같아요. 결국 워킹맘으로서 제대로 된 균형을 찾는 게 제일 중요하지 싶어요(웃음)."
▶나는 걷는다. 나의 길을
최근 그녀는 5년 전부터 추진해온 일의 결실을 맺었다. 바로 민사소송에서도 영어미숙자들에게 무료 통역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한 것이다.
"10년 넘게 일을 하면서 한인들을 비롯해 많은 이민자가 언어의 한계로 법정에서 제대로 보호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됐죠. 그래서 2010년 연방법무부에 한인 의뢰인 2명을 대리해 가주 법무부의 언어차별 실태를 신고하면서 이 일을 시작하게 됐죠."
그때부터 그녀의 길고 외로운 싸움은 시작됐다. 신고 후 근 1년이 지나서야 연방사법부에서 조사위원회가 꾸려졌고 그리고 조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된 된 2013년 연방법무부가 가주 사법부에 합의안을 제시해 특별조사팀이 조직됐다. 그리고 다시 2년이 흐른 올해 초 가주 사법부가 공식적인 가주 법원의 언어접근 전략계획을 발표했다. 그리고 지난달 이를 진행하기 위한 특별위원회가 꾸려졌고 이 변호사가 한인으론 유일하게 특별위원으로 위촉됐다.
"단순히 법정통역만의 문제가 아니죠. 영어가 부족한 한인들의 경우 법원에 들어서면서부터 언어 때문에 곤란을 겪고 있는 것이 현실이니까요. 서류 하나를 보려고 해도, 웹사이트를 보려 해도 언어문제로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안타깝죠. 그래서 이번 특별위원회를 통해 법정 통역뿐 아니라 법원 내 어디서라도 실질적인 무료 통역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추진할 계획입니다."
이뿐 아니다. 이 변호사는 단순히 법원뿐 아니라 이민국, 경찰국 등 관공서를 이용하는 데 있어 이중 언어 서비스를 확대하고 싶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다.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고개를 든 순간, 눈에 들어온 그녀의 사무실은 정글 같았다. 책상을 중심으로 산더미처럼 쌓인 서류들이며, 빼곡한 자료들이 그간 그녀가 보낸 세월이 얼마나 정신없고 치열했는지 보여주고 있었다. 단순히 바빴다는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그녀의 청춘이 그 작은 사무실에 고스란히 쌓여 있었다. 앞으로의 여정 역시 그리 만만하지는 않을 터. 그래도 믿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처럼 우회 없는 직진을 외칠 그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