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등불 아래서] "하~수도 뚫어"

한성윤 목사/나성남포교회

가랑비가 내려앉아 개진개진해진 잔디밭 위로 찬란한 연보라빛 자카란다가 카펫처럼 깔린 것을 보니 정말 봄이 가려나 봅니다.

남가주에서야 지금을 여름이라 해도 눈을 치켜뜨며 아니라고 딴지를 놓는 이는 없겠지만 그래도 이 비는 봄비라고 우기고 싶습니다. 가려는 봄은 아쉬움에 눈물을 쏟고 문턱 밟은 여름은 반가움에 눈물을 글썽이는듯해서 말이지요.

그토록 기다리던 비여서인지 하수구를 따라 바다로 그냥 나가기가 싫었던 모양입니다. 빗물이 주춤하며 갈 곳을 못 찾는 듯하더니 나가지 못한 빗물이 찻길이며 사람 다니는 길에 넘쳐 났습니다. 오랜만에 온 비에 잡동사니들이 쓸려가 물길이 막힌 게지요.

집에서나 길에서나 막힌다는 것은 불편하고 답답한 일입니다. 과거에는 서울도 하수도나 시궁이 막혀 물이 집 안까지 들어 오곤 했습니다. 여름 장마는 물론이지만, 봄비에도 집 안으로 물이 거꾸로 올라올 때가 많았습니다. 요즘처럼 약품이 없던 시절이라 양잿물을 하수구에 붓기도 하고 수챗구멍을 막대기로 헤집기도 했지만, 효험이 없는지 하수구는 입을 다물고 대답이 없었습니다.

오물과 냄새로 진동하는 집 안에서 난감했던 시절, "하~수도 뚤허어~" 라는 구성진 소리가 담장을 넘어서 들려오면 이젠 살았다 하며 아저씨를 불렀습니다. 뚫린 물길은 시원스럽게 흘러 내려 갔습니다.

하수도는 썩은 물과 함께 달리고, 오물과 함께 흐릅니다. 시인의 말처럼 이 썩은 세상을 뒤집어쓰고 하수도는 흐릅니다. (안도현ㆍ하수도는 흐른다) 우리의 오물과 더러운 냄새는 하수도에 실리고 그래서 우리는 깨끗해집니다. 하수도는 낮은 길입니다.

우리 삶 속에서도 하수도는 달립니다. 그러다 생각 없는 우리는 녹지도 않을 잡동사니를 하수구에 버립니다. 막고 또 돌려막아서 쌓이는 거짓말, 물길 앞에 떡 버티고 막아서는 구겨진 돈뭉치, 화려하지만 책상만 지켰던 명패들, 하나님도 한 수 접어줘야 하는 명함들, 거창한 건물 위로 하늘에 걸어만 놓은 십자가로 하수도는 달리지 못합니다.

서로 눈치만 보는 사이 쓰레기로 숨이 막힌 하수도는 집 안으로 흐릅니다. 뚫어야 한다고 소리치며 우리의 민낯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오늘은 어쩔 줄 모를 때가 아니라 뚫어야 할 날입니다.

우리가 모두 함께 버렸던 잡동사니를 치워야 하는 날입니다. 대충 물 좀 내려간다고 넘어가면 금방 또 막힙니다.

잘못을 인정하고 돌이키고 바로 잡아야 합니다. 뚫었다고 다가 아닙니다. 새는 곳이 있다면 고쳐야 합니다. 상처 나고 망가지고 아팠던 곳이 고쳐지고 회복되는 날이 다 고친 날입니다.

아직도 멸시 천대 십자가는 주님만 지시는 것 같습니다. 오욕을 데리고 아픔을 지고, 눈물을 삼키며 흐르는 이는 주님뿐인가 봅니다. 이제는 쓰레기만 버리면서 또 물길을 막지 말고, 예수와 함께하는 이들이 낮은 길이 되어 흐를 때입니다.

오늘이 낮은 길을 뚫는 날이요, 낮은 길을 달리는 날입니다.

[email protected]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