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고도 일 때문에 아이는 뒷전 3년만에 첫째 얻은 후 인생 달라져 네 명 챙기려면 하루종일 아둥바둥 남편의 적극적 도움 있었기에 가능 오랜 유학생활의 외로움도 한 원인 "형제 많아 의지하고 살면 좋겠지요"
이처럼 어메이징한 부부라니.
외동도 힘들어 '무자식 상팔자'를 외치는 딩크족(Doble Income, No Kids)들이 늘어만 가는 요즘 같은 시대에 4남매를 낳아 키우는 이들 부부는 분명 조금 희귀해 보이긴 한다. 열심히 산다는 것의 정석을 보여주는 이 남자와 그 여자, 마크(46).제니퍼(45) 김 부부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 부부의 연을 맺고 아이 넷 낳고 살아 온 세월이 어느새 14년. 어디 그 세월이 늘 평탄하고 꽃방석이기만 했겠는가. 때론 폭풍치고 바람에 흩날리는 고단한 시간도 있었을 터이고 그 사이사이 날아갈 듯 기쁜 순간들도 보석처럼 박혀있었으리라. 아마도 그 보석 같은 시간엔 반드시 '하나도 둘도 아닌~ 셋씩이나'도 아닌 4남매의 기억들이 알알이 얽혀 있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리하여 못내 궁금해진다. 이들 다자녀 부모의 일상은 어떠할까. 정신없이 분주한 일상 속, 이들 가족의 행복은 어떤 모습일까. 요즘 보기 드문 다자녀 가족의 살아가는 풍경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하루 24시간이 모자라 발 동동 구르며 시간을 길게길게 늘려 쓰는 이들 부부와 4남매를 이른 주말 아침 LA 행콕파크 자택에서 만나봤다.
#또 다른 세상과 만나다
토요일 이른 아침이었지만 다자녀 김씨네는 그럴 수 없을 만큼 왁자지껄 분주했다. 아이 넷이 한꺼번에 아침 식사를 하고 주말 과외활동을 가려고 준비하는 것만으로도 집안은 북적대고 부산스러웠다. 그래도 그 분주함 속엔 익숙한 질서가, 유쾌한 무질서가 공존하는 듯했다.
그렇다고 이들 부부, 다자녀 가족에 대한 로망이 있어 결혼과 동시에 '할 수만 있다면 힘닿는 데까지 많이 낳자'고 손가락 걸고 맹세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라면 반대라고 할 수 있다. UCLA 졸업과 동시에 재정 관리사로 일해 온 제니퍼씨는 자타공인 '일중독자'다. 커리어에서의 성공이 곧 삶의 성공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이 열혈 아가씨는 2001년 LA카운티 검사인 유머감각 넘치는 청년과 2년 열애 끝 결혼했다. 당시 부부가 다 한창 바쁠 때여서 처음엔 아이를 가질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러다 결혼 후 3년 만에 첫째 스털링을 낳았고 이 부부의 세상은 바뀌었다.
"낳기 전엔 자녀라는 존재는 막연한 부담 그 자체였죠. 그런데 낳아보니 와~ 전혀 다른 세상이 절 기다리고 있더라구요(웃음). 예쁘다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따뜻함과 행복이 그곳에 있었죠."
물론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모든 맞벌이 부부가 그러하듯 갓난아이 하나만으로 일상은 전쟁이었다. 그래도 아이가 주는 그 큰 행복이 너무 좋아 그 뒤로 2년 터울로 아이 셋을 내리 낳아 어느새 스털링(한국명 성현.11), 피오나(소연.9), 설리반(기현.7), 레밍턴(재현.4) 4남매의 엄마가 됐다.
#웬만해선 그녀를 막을 수 없다
그녀의 표현대로라면 키우다 보니 아이도 욕심이 생기더란다.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일밖에 모르고 살던 '철의 여인'을 다자녀 엄마로 변신시킨 이유는.
"중학생 때 혼자 미국에 와 유학생활을 해서 외로웠던 것 같아요. 결혼 전이야 워낙 바쁘게 살아서 외롭다는 것도 몰랐지만 스털링을 낳고 가족이 늘어나면서 그 행복을 알게 된 거죠. 그래서 내 아이들도 형제가 많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그녀가 다자녀 엄마가 됐다고 일을 줄이거나 소홀히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출산 후 일주일 만에 '좀이 쑤셔' 직장에 복귀했다고 하니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엄마 노릇에 소홀 하느냐. 천부당만부당한 말씀. 전업 주부도 쫓아가기 힘든 그녀의 에너지와 열정은 듣고 있노라면 입이 딱 벌어질 지경이다.
아이들의 10여 개가 넘는 방과 후 스케줄을 모조리 암기하고 있다 매일 아침마다 남편에게 문자로 보내 라이드 계획을 세운다. 어디 이뿐인가. 아이들 학교 행사도 빠지지 않고 참가해 이미 학교에서도 열혈 엄마로 소문이 파다하다. 걸스카우트에 관심 있어 하는 피오나를 위해 학교 걸스카우트를 직접 조직하기까지 했다고 하니 정말이지 그녀의 하루는 24시간이 아니라 48시간이 아닐지 못내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어려서 아이들에게 그냥 많은 경험을 하게 해주고 싶어요. 돈요? 당연히 많이 들죠. 많은 집이 그렇듯 저 역시 다른 데 씀씀이를 줄이고 허리가 휘어도 아이들에게 올인하고 있죠(웃음)."
#육아의 8할은 수퍼맨 아빠 덕분
그러나 무엇보다 다자녀 남매를 지금껏 잘 키울 수 있었던 것은 남편 마크씨 덕분이다. 밤늦게까지 고객을 만나고 상담해야 하는 일이 많은 제니퍼씨의 퇴근 시간은 밤 9시를 훌쩍 넘기기 일쑤. 결국 저녁시간 육아의 대부분은 퇴근 시간이 일정한 남편 마크씨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덕분에 마크씨에게 퇴근은 또 다른 출근을 의미한다.
"일 할 때가 훨씬 더 편하죠(웃음). 퇴근과 동시에 집으로 출근하는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어요. 퇴근 후 아이 넷 저녁식사 챙겨주고, 학원 보내고, 씻기고, 재우는 일을 해야 하는 집이 결코 쉬운 직장은 아니죠. 덕분에 초창기엔 육아 우울증이 생길 지경이었다니까요(웃음)."
그러나 이젠 한국 TV프로 '수퍼맨이 돌아왔다'의 삼둥이 아빠로 유명한 탤런트 송일국은 명함도 못 내밀 지경이다. 아침에 일어나 아이들 아침 식사를 챙기고, 퇴근과 동시에 파스타나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인 후 방과 후 활동을 데려다 주고, 숙제까지 봐주는 진정한 수퍼맨 아빠이기 때문이다.
#서로의 울타리가 되어주는 아이들
이들 부부 가 이렇게 4남매를 키울 수 있는 것은 옛 어르신 말씀처럼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아이들이 서로서로를 챙기며 돌봐주기 때문이란다. 4남매 중 가장 어른스럽다는 피오나는 막내 동생 식사부터 공부도 봐주고 심지어 오빠 스털링의 숙제도 감시(?)한다고. 그리고 무엇보다 위로 형제가 있다 보니 셋째, 넷째는 특별히 뭘 가르치지 않아도 형과 누나가 하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저절로 공부가 된다고 한다. 거기다 형제들 틈바구니에서 크다보니 사회성과 협동심은 덤으로 얻어진다고.
아마도 외동자녀를 둔 부모들의 마음 속 묻어둔 미안함은 나 죽고 나면 세상 한 켠 어디에도 의지가지없을 것이라는 애잔함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이들 부부, 아이들에게 살아가며 서로 의지될 형제라는 든든한 울타리를 만들어 준 것만으로도 자식농사에 있어 절반의 성공을 이룬 셈이 아닐까. 그것도 꽤 특별한 성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