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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오디세이] '위생 담배 케이스' 개발 25년…멈출 줄 모르는 70대 정계순 씨

Los Angeles

2015.06.18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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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연가들 건강에 도움 될 생각하면 가슴 뛰죠"
햄버거 가게 종업원들 비위생적 흡연
걱정하던 큰 딸 때문에 연구 시작
2009년 디자인 저작권 등록해 알려져
현재 미국·한국 등 32국 특허 출원
연방보건국. WTO 등에 필요성 알리기
지금도 밤샘 자료 수집. 이메일 보내


젊기 때문에 도전할 수 있는 것은 아닐 터. 나이불문, 도전하는 모든 이들은 젊다. 바로 이 명제를 증명하는 이가 정계순(76)씨다. '위생 담배 케이스'라는 조금은 생소한 제품을 개발한 그는 1989년 처음으로 이 제품을 창안한 이래 수십 번의 디자인 수정을 거치고, 상용화를 위해 고군분투해왔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25년 세월이 속절없이 흘러갔다. 왜 아니겠는가. 이민 1세대 가장으로 먹고 사는 것도 쉽지 않은 세월 속, 전업 발명가도 아닌 중년의 아마추어 발명가가 새로운 제품을 세상에 내놓는 것이 그리 만만치는 않았을 테니 말이다. 물론 아직도 이 제품은 시중에서 찾아 볼 수 없지만 여전히 그는 지치지 않고 흡연자들이 보다 더 위생적으로 담배를 피울 수 있도록 동분서주하고 있다. 생업 전선에선 은퇴했지만 그는 다시 제 2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스무 살 청년 정신을 가지고 있는 고희의 발명가를 그의 자택에서 만나봤다.

#일터에서 발견한 아이디어

1980년, 아내 정홍자(71)씨와 4남매를 데리고 LA로 이민 온 정씨는 LA다운타운에서 햄버거 가게를 운영했다. 당시 어린 자녀들을 맡길 데가 마땅치 않아 4남매를 모두 가게에 데리고 출퇴근을 했다. 열두 살이던 맏딸 수은씨는 가게 종업원들이 지저분한 손으로 담배 필터를 꺼낸 뒤 이를 다시 입에 무는 것을 보고 걱정이 한 가득이었다고.

"어느 날 수은이가 사람들이 지저분한 손으로 담배를 꺼내고 그것을 입에 무는데 괜찮은 거냐며 걱정스런 눈빛으로 질문을 했죠. 전 비흡연자였지만 어른들에게는 너무 익숙해 대수롭지 않은 풍경이 어린 아이에게는 충격일 수 있겠다 싶어 저 역시 그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정씨의 위생담배 케이스의 출발은 수은 양의 걱정에서부터 시작된 셈이다. 게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담배를 달고 살았던 젊은 종업원이 폐암으로 사망하자 수은 양의 충격은 컸다. 이 사건을 계기로 수은 양은 아버지와 함께 본격적인 위생담배 케이스 발명에 들어갔다. 물론 만만한 일은 아니었다.

발명이라는 것에 대한 사전 지식도 없었고, 전문 디자이너도 아닌 이들 부녀가 무에서 유를 창조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 그러나 1년 뒤인 1989년 부녀는 케이스 윗부분이 아닌 옆면이 통째로 열리는 획기적인 위생 담배 케이스를 디자인하는 데 성공한다.

이 디자인은 담배케이스를 열면 담배가 통째로 나와 입이 닿는 필터가 아닌 담배 몸통을 집을 수 있도록 디자인 돼 위생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당시 아는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등 유럽 국가에서 특허를 받기에 이른다. "당시엔 이 제품으로 사업을 해야 한다든지 하는 생각은 없었어요. 그저 수은이에게도 보람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고 언젠가는 좋은 일에 쓰이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감 정도였죠."

#아이디어를 현실로 불러들이다

그래서 그는 모국에서도 자신이 개발한 제품이 좋은 역할을 해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특허가 나자마자 당시 한국담배공사에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편지는 흡연자들을 위한 위생을 정부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해결해 줬으면 좋겠다고 하는 요지였고 담배공사 측에서도 감사의 표시를 담은 회신을 받기도 했다.  

특허에 대한 반향은 생각보다 컸다. 가게에 담배를 대주던 미국인 도매상이 이 특허 소식을 듣고 평소 친분이 있던 미국 굴지의 제지회사 관계자에게 이를 알린 것이다. 얼마지 않아 그 제지회사 관계자는 멤피스에서 비행기를 타고 한달음에 달려왔고 정씨의 담배케이스에 큰 관심을 나타냈다. 그러나 이런저런 이유로 계약은 불발됐고 시간이 흐르면서 그 담배 케이스는 자연스레 이들의 뇌리 속에서도 사라지는 듯했다. 먹고 사느라 바쁜 10년 세월이 흐른 2000년대 들어서면서 정씨의 마음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특허를 받은 뒤 시간만 보내면서 아이디어를 창고 안에 썩혀 둘 수만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때 마침 장성한 자녀들도 본격적으로 위생 담배 케이스에 큰 도움을 주기 시작했다.

"당시 버클리대 대학원에서 미생물학을 전공하고 있는 큰 아들이 비위생적 흡연으로 인한 피해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알리는데 큰 도움을 줬습니다. 그리고 자녀들의 도움으로 미 공공기관에 편지를 보내 비위행적 흡연의 폐해를 알리기도 했죠. 성심성의껏 도와준 아이들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올 수 없었을 겁니다."

#가족들이 함께 일군 쾌거

그러다 본격적으로 위생 담배 케이스를 세상에 알리게 된 것은 2009년 미국 저작권청에 디자인 저작권 등록을 마치면서부터다. 이를 위해 그는 1년여를 다시 담배 케이스와 씨름을 해야 했다. 직접 담배 케이스를 사서 이를 해체, 재구성하기를 수 백 번 끝에 그는 케이스의 가운데 부분이 열리는 지금의 위생 담배 케이스를 완성시킬 수 있었다.

디자인 도면은 셋째 며느리가 맡았고 담배 케이스의 중요성에 대한 이론적 토대는 장남 원식(41)씨가 큰 도움을 줬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 2009년 9월 미국 저작권청에 등록을 마쳤다. 그 뒤 그는 2010년 미국 특허출원을 필두로 2011년엔 한국 특허청을 비롯해 중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총 32개국에 특허 출원을 했다.

현재 그는 위생 담배 케이스의 필요성을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연방 보건국, 질병통제예방센터, WHO산하 흡연관련 국제기구인 FCTC등에 다각도로 접촉을 시도하고 있다. 특히 2012년엔 연방 보건국에 '세계 12억 흡연자들을 위한 위생흡연문화 프로젝트' 제안서를 보내 보건국으로부터 사업을 검토해보겠다는 긍정적인 답변을 받기도 했다.

"이제 보다 본격적인 상용화를 위해 노력중 입니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실생활에 반영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제품 상용화로 창출될 수익금을 흡연피해 절감과 예방을 위한 공익사업에 쓰고 싶은 것이 제 마지막 꿈입니다."

그래서 그는 여전히 고희를 넘긴 나이에도 밤을 새며 자료를 수집하고 관계 당국에 이메일을 보내고 있다. 이제 지칠 법도 한데 그는 여전히 자신의 발명품이 세계 흡연자들을 위해 유익하게 쓰이길 고대하고 있다. 이민 1세대 가장으로 그간의 세월이 녹록치 않았을 터인데도 그의 위생 담배 케이스에 대한 애정과 열정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주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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