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난 추진력으로 자바 생활 30년 어려울 때마다 새로운 돌파구 모색 한국산 원단 몰려와 힘들자 중국행 2년간 혹독한 수업료 내고 자리잡아 4년만에 대박 내고 자바 금의환향 매년 20%씩 매출 늘리며 고공 성장 2013년부터 자바에 한파 불어닥쳐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 의욕 불태워
타고난 비즈니스맨이지 싶다.
승부근성으로 똘똘 뭉친 데다 한번 결정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가는 추진력까지. 그 타고난 근성으로 그는 지금의 성공신화를 일궈냈다. 그렇다고 그가 걸어 온 길이 항상 넓고 포장된 길이었을 리 만무할 터. 길을 잘못 들어 고생하기도 하고 때론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생채기가 나기도 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그는 지도에도 없는 길을 내가며 여기까지 왔다.
어느새 30년 세월이다. LA 자바에서 잔뼈 굵은지.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을 견딘 이 정도 성공담이라면 적절한 양념 얹어 목소리를 높일 법도 하다. 그러나 웬걸, 그의 어조는 지나치다 싶을 만큼 담담했고 이야기는 밋밋하다 싶을 만큼 담백했다. 어찌 무림의 고수들만이 공력을 쌓을까. 일희일비의 무상함을 이미 깨달은 자의 범접할 수 없는 내공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어느 오후, '보졸로 어패럴' 강일한(59) 대표를 만나 그의 30년 사업 인생을 들어봤다.
#아메리칸 드림을 넘어
고교시절 가족과 함께 하와이로 이민 온 그는 미 육군에서 3년 복무 후 대학에서 회계학을 공부하다 1982년 LA에 왔다. 처음 LA에 와 시작한 비즈니스는 가발 가게. 그러다 본격적으로 자바 비즈니스를 구상하며 바닥부터 배우겠다는 각오로 1986년 원단 회사에 입사해 3년간 의류 사업 전반을 익혔다. 그 뒤 1989년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 10년간 의류도매와 원단 수입업체를 운영했다. 원단 수입업체를 운영하면서는 호경기를 맞아 적잖은 돈을 벌기도 했지만 1997년부터 한국산 수입 원단이 들어오면서 고전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 힘든 시기의 돌파구를 중국에서 찾았다. 중국의 저렴한 원단과 인건비가 의류사업의 물꼬를 터줄 것이라 판단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LA 사업기반을 정리하고 2001년 중국 광저우행 비행기에 올랐다.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미지의 땅에서 맨손으로 의류 제작 사업에 도전하게 된다.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이 시작된 것이다.
당연히 중국에서의 첫 걸음은 쉽지 않았다. 아니 피를 말리는 전쟁이었다. 철썩 같이 믿었던 중국내 에이전트에게 사기를 당하기도 했고 중국 물정 모르고 언어도 익숙지 않아 현지 공장과의 마찰도 부지기수였다. 그 결과 2년여 동안 중국 사업은 그의 표현대로 '박살'이 났다. 그렇다고 그대로 사업을 접을 수도 없는 노릇. 그럴수록 그는 더 열심히 사업에 매달렸다. 주말도 없이 오전 6시부터 공장과 사무실에 살다시피 했고 퇴근 후 저녁시간엔 중국어 공부에 매달렸다. 덕분에 2003년부터는 그의 이런 노력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성공신화를 쓰다
"비즈니스도 결국은 사람 장사인 셈이죠. 2년 넘게 그 나라 사람들과 부대끼고 일하다보니 신뢰가 생기고 그러면서 믿고 거래하는 공장도 생겼습니다. 직접 부딪치며 배운 사업 노하우들이 하나둘 쌓이면서 사업도 자리 잡아 가기 시작했죠."
그의 표현대로라면 중국 정착 1~2년 동안은 '중국에서 이렇게 사업하면 망한다'를 배웠고 그 후 1~2년은 '중국에서 이렇게 사업하면 성공한다'를 배웠다고.
"이렇게 맨땅에 헤딩하며 얻은 교훈은 무엇보다 현지 언어 습득이 최우선이고 그 다음은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중국인들에게 서두르지 않고 믿음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당시 LA 지인들이 저를 보고 외모도 중국사람 같다고 놀릴 만큼 현지화에 성공했죠.(웃음)"
결국 그는 해냈다. 2년간의 값비싼 수업료를 치른 후 2003년부터는 저렴한 원가를 앞세워 미국으로 의류 수출을 시작했고 그 결과는 대박이었다. 그동안 까먹었던 원금 회수는 물론이고 돈도 벌만큼 벌었다.
2005년 그는 LA로 금의환향 해 보졸로 전신인 선라이즈 어패럴을 오픈했다. 중국에서 만든 옷을 직접 팔 계획이었다. 원단에서 판매까지 자바에서 잔뼈가 굵은 터라 더 이상의 연습게임은 필요 없었다. 무엇보다 중국산 의류가 당시 시가보다 50%나 싼 터라 가격만 놓고 봐도 경쟁력은 충분했다. 덕분에 선라이즈 어패럴은 매년 20%씩 매출을 늘리며 승승장구했다. 처음 직원 10여명으로 출발한 회사는 창립 4년 만에 90여명으로 늘었고 2009년엔 지금의 자체 사옥을 매입해 이전 할 만큼 눈부신 성장을 거듭했다.
#위기를 기회 삼아 나의 길을 간다
그러나 인생사 새옹지마라 했던가. 인생도 사업도 어디 늘 호시절만 있을 수 있겠는가.
미국 경기 침체와 자바 불황에서 그 역시 자유로울 수 없는 법. 2013년부터 승승장구하던 비즈니스가 조금씩 주춤하더니 지난해 주 거래처인 대형 의류업체 몇 곳이 문을 닫으면서 그에게도 위기가 찾아왔다. 그래서 그는 그동안 선라이즈 어패럴의 주 종목인 베이식 아이템뿐 아니라 영 캐주얼로도 품목 다양화를 꾀하고 회사 살림살이 허리띠도 졸라매고 폭풍우를 피하고 있는 중이다.
"아마 내년 말까지 자바의 빙하기는 계속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그래왔듯 힘들다고 포기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어려운 시기를 잘 극복하기 위해서는 동종업종끼리 서로 뭉쳐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그는 지난해부터 LA한인회 이사장을 비롯해 한인의류협회와 LA한인상공회의소 이사라는 감투를 쓰고 동분서주하고 있다. 경기가 힘들수록 안으로 움츠러들기보다는 밖으로 눈을 돌려 업계 동향도 파악하고 힘들 때 서로 버팀목도 돼주면서 이 시기를 잘 넘겨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30년 세월 산전수전 다 겪었다곤 하지만 적잖은 회사 식구들을 이끌고 가야할 수장으로서 그의 어깨는 무거워 보였다. 그러나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그는 위기를 기회로 바꾸기 위해 어제와 다름없이 길을 나선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오늘도 묵묵히 그에게 주어진 길을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