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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오디세이] 사회정의 관심 많은 독서광…30년전 이미 경영전산화

Los Angeles

2015.08.23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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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 매출 2억5000만 달러 수산물 도매업체 '팹코' 피터 허 대표
직접 개발한 프로그램 지금도 사용
남다른 예지력으로 사업 수완 발휘

일찍부터 외국으로 눈돌려 직거래
서부 2위 수산업체 고속성장 일궈
요즘 관심은 반조리·즉석식품
'미래의 먹거리' 로 선택 집중 투자


성공한 사업가의 카리스마 얼핏 스치기도 하나 그의 첫인상은 대학 강단 혹은 병원 연구실에서나 마주칠 법한 학자풍이다. 낮고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정작 사업 얘기보다 최근 읽고 있다는 진화인류학 얘기에 더 눈을 반짝이는 이 남자 어쩐지 직업을 잘못 찾아 들어 온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연 매출액 2억5000만 달러 서부지역 2위 규모의 수산물 유통업체를 이끌고 있는 퍼시픽 아메리칸 피시 컴퍼니(PAFCO.이하 팹코) 피터 허(55. 한국명 허윤)대표. 이쯤 되면 그를 두고 타고난 사업가나 천부적 사업수완이라는 수식어가 나올 법도 하지만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그는 타고났다기보다는 성실한 노력으로 천부적 수완이라기보다는 빈틈없는 과학적 사고로 지금의 팹코를 성장시켜 왔다는 것을 눈치 챌 수 있다.

이야기를 나눌수록 반전 매력이 터지는 피터 허 대표를 한낮의 태양이 작열하는 오후 버논(Vernon)시에 위치한 팹코 본사에서 만나 봤다.

#수재소년 생선가게 주인이 되다

삼형제 중 장남인 그는 열 살 때 부친과 함께 LA로 왔다. 1970년 당시 부친은 한인타운 칼스 마켓 생선부에서 일하다 1975년 다운타운에 수산물 도매상을 개업했다.

열여섯 살이 되던 해 운전면허를 따자 마자 그는 부친을 도와 가게 일을 시작했다. 방과 후면 가게로 나와 배달은 물론 회계 업무까지 도맡아 했다.

밤 11시가 돼서야 집으로 돌아가는 피곤한 일상이었다. 이러다 보니 학교 공부는 뒷전이 될 수 밖에. 계속 LA에 남아있다간 대학에 못갈 것 같아 겁이 나더란다. 그래서 성당 신부님의 도움을 얻어 북가주에 있는 사립학교로 전학을 해 기숙사 생활을 했다. 덕분에 2년간은 장사 걱정 없이 오직 공부에만 매달렸고 결국 수석졸업을 거머쥐고 명문 앰허스트 칼리지 화학과에 입학하게 된다.

졸업 후 의대 진학이 목표였다. 그렇게 의학도의 꿈을 안고 대학생활을 시작했지만 장남으로서 LA에 있는 부친 걱정은 어쩔 수 없는 노릇. 결국 그는 1년 대학생활 1년 휴학을 반복하며 학업과 사업을 병행했다. 덕분에 7년 만에 대학을 마치긴 했지만 대학을 졸업하던 1985년 팹코는 연매출 2000만 달러의 번듯한 수산물 도매업체로 성장하게 됐다. 부친이 LA다운타운에 작은 점포를 낸 지 딱 10년만의 일이다.

#사업은 과학이다

대학 졸업 후 LA에 오자마자 그는 물류관리부터 회계업무까지 가능한 경영관리 프로그램 개발에 직접 나섰다. 컴퓨터도 희귀하던 그 시절 일반인이 프로그램을 구축하다니 좀 당황스럽긴 하다.

"대학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밍도 공부도 했던 터라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어요. 10년 20년 앞을 내다보면 꼭 필요한 시스템이라 생각했기에 구축한 것뿐이죠."

이 관리 프로그램은 지금까지도 팹코에서 사용되고 있다고 하니 그야말로 수 십 년 앞을 내다본 신의 한수였다. 또 그는 경영기초를 쌓기 위해 LACC 야간대학에 등록해 회계학도 공부했다. 무엇하나 허투루 하지 않는 그의 치밀하고 꼼꼼한 성격이 한눈에 보이는 대목이다.

이런 탄탄한 기초를 바탕으로 8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까지 팹코는 남미 일본 인도 유럽 등과 직거래를 시작하고 미국 내 중국 베트남 일본 커뮤니티를 비롯 주류 시장까지 거래처를 늘려가며 고속 성장을 일궈냈다. 그리고 2005년 버논 시에 부지를 매입 허 대표가 직접 설계에 참여한 총 2000만 달러가 투입된 건평 10만6000스퀘어피트에 이르는 최첨단 사옥을 건립하기에 이른다. 사옥 건립 후 10년간 성장에 성장을 거듭한 팹코는 현재 생물 냉동 완제품 등 총 3000여 제품을 판매하는 연매출 2억5000만 달러 종업원 270명의 명실상부 서부지역 2위의 수산물 유통업체로 자리매김했다. 그리고 팹코는 지난 달 LA 비즈니스 저널이 매년 선정하는 '아시안 비즈니스 어워드' 개인기업 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미래를 경영하다

지금껏 그가 팹코를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었던 것은 미래를 내다보는 탁월한 선견지명 때문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카네기나 록펠러 같은 위대한 사업가들은 세상이 어떻게 변할 것인지에 관심이 많죠. 그 흐름을 읽지 못하면 사업도 언젠가는 끝이 보일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래서 허 대표는 지금 당장 수익을 내진 않더라도 미래를 위한 투자와 연구를 아끼지 않는다. 현재 그가 관심 갖고 집중 투자하는 것은 간편식. 즉 오븐에 데워 먹을 수 있는 반조리(ready to cook)제품에서부터 즉석식품(ready to eat) 등이 그것이다. 이 제품들은 현재 주문자생산방식(OEM) 방식으로 겔슨이나 홀푸드 등 마켓에 납품되기도 하고 자체 브랜드로 판매되기도 한다. 아직까지 이 제품들의 판매량은 총매출의 10% 수준이지만 미래를 내다보면 유망주가 될 것이라 판단하고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또 지난해부터는 아마존을 통해 온라인 판매도 시작하는 등 미래경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독서광이 꿈꾸는 세상

그는 독서광이다.

한국역사에서부터 자연과학 인문학 사회학 건축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전문분야를 넘나드는 오랜 독서 내공은 열혈 청년 과학도이자 인문학도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이뿐만 아니다. 그는 정치 사회문제에도 폭넓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4.29 LA폭동을 겪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죠. 우리 스스로 정치력을 강화해야 미국 사회에서도 힘을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해요. 또 이방인이 아닌 진정한 이 나라 사람으로 살기 위해서는 사회와 사회 구성원을 돕는 데도 노력을 해야 하고요."

특히 그는 일본의 역사왜곡 바로잡기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어 위안부 결의안 통과를 위해 혼다 의원 등 관련 정치인들과 연계해 직접 봉사활동에 나설 만큼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지금도 관련 단체를 지원하고 있다. 이외에도 오랫동안 유니셰프 KPCC 칠드런스 호스피털 등 비영리단체들의 후원을 통해 사회정의와 소수계 인권 사회적 약자를 돕는 데도 묵묵히 앞장서 왔다.

사업에 있어 그는 세상의 변화를 읽기 위해 노력한다지만 삶의 영역에 있어서만큼은 그 변화를 적극적으로 만들어 가기 위해 오늘도 고군분투 중이다. 느리지만 단호하고 보이지 않는 듯싶지만 강렬하게.

이주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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