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프드트럭 경연 우승 유명세 웨스트LA서 개업과 동시 대박 행진 잦은 트럭 고장·헬스 인스펙션 등 시간 지나자 각종 문제로 마음 고생 동업자끼리 의견 충돌도 좋은 경험 문제 해결에 대한 자신감 키워나가 이번에 개발한 양꼬치·떡볶이 메뉴 홍대·강남 길거리 음식이 모티브
어르신들이 말하듯 인생이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햇볕 드는 날 있으면 바람 불고 비 오는 날도 있는 걸까.
과연 이 명제는 성공스토리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내건 이들에게도 해당사항 있는 걸까. 신데렐라와 왕자의 결혼 이후가 못내 궁금했듯 성공신화 거머쥔 이들의 햇볕 쨍한 날 이후를 궁금해 하는 걸 부디 사적인 관음증이라 타박하지는 말길.
3년 전 우리 앞에 혜성처럼 나타난 서울소시지 청년들의 인터뷰도 그렇게 시작됐다. 2012년 케이블TV 푸드 네트워크에서 제작한 푸드트럭 경연대회에서 당당하게 1등을 차지한 뒤 미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얻은 그들이 최근 LA다운타운에 2호점을 오픈한 것을 보고 문득 그들의 성공스토리 이후의 시간이 궁금해졌다. 병이 도진 것이다. 그 동안 얼마나 더 번 것일까. '오픈 발' 이후 이들의 가게는 여전히 핫할까. 이 지극히 속물적인 질문에 그들은 또 무어라 답할 것인가.
바쁜 시간 쪼개 만난 이들에게서 이 우문은 밝고 경쾌한 현답이 돼 돌아왔다. 이 에너지 넘치는 청년들은 그 사이 경영 노하우만 는 것이 아니었다. 인생에 대해 훨씬 더 많이 깊어지고, 이전보다 더 낙천적이고 유쾌해졌다. 세월은 사업만 키워놓은 것이 아니었나 보다. 이 아름다운 문제적 청년들을 최근 오픈한 LA다운타운 리틀도쿄점에서 만나봤다.
#저 무지개 너머엔 무엇이 있을까
잘 나가는 광고회사에서 인정받던 직장인 테드(34.한국명 태웅).영(32.한국명 영웅김 형제와 크리스 오(36)셰프의 의기투합은 어쩌면 필연일지도 모르겠다. 샌프란시스코 출신인 이들은 애플본사가 있는 쿠퍼티노 시에서 중.고등학교 시절을 함께 보낸 죽마고우들이다. 그런 그들이 LA에서 뭉치게 된 계기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잘나가던 부동산 운영을 접고 어려서부터의 꿈인 셰프가 되기 위해 LA로 와 유명 레스토랑에서 일하던 오셰프가 2010년 여름 김씨 형제에게 푸드 페스티벌에 함께 참가해보자는 제안을 하면서부터다. 당시 이들이 개발한 메뉴가 바로 소시지. 당시엔 돼지불고기와 소불고기 소시지 딱 2종류만 판매했다.
"국가와 인종을 막론하고 소시지는 누구나 좋아한다는 사실에 착안해서 한국식 양념을 한 고기를 이용해 소시지를 만들기로 한 거죠. 첫 페스티벌에서 만들어간 소시지가 2시간 만에 동이 날 만큼 대박이 나서 저희도 신기했어요.(웃음)"(크리스)
그렇게 이들의 사업은 계약서도 없이, 그럴듯한 창업식도 없이 은근 슬쩍 시작됐다. 주중엔 직장에 다니고 주말엔 아파트에 모여 케이터링 주문을 받거나 푸드 페스티벌에 참석하면서 서울 소시지의 이름을 알려갔다. 덕분에 식당도 없던 2011년 '베스트 오브 옐프(Yelp)'에 이름을 올렸고 그 여세를 몰아 2012년엔 직장도 때려치우고 웨스트LA에 점포를 얻어 본격적인 창업 준비에 돌입했다. 그렇게 창업 준비가 한창이던 2012년 여름, 우연히 알게 된 푸드트럭 경연대회(Great Food Truck Race)를 보고 오픈까지는 시간이 있겠다 싶어 별 생각 없이 참가 신청을 했는데 웬걸, LA에서 뉴욕까지 폭발적인 인기를 등에 업고 파죽지세로 본선까지 진출, 7주 뒤 1등의 영예를 거머쥐었다. 당시 상금 5만 달러와 함께 부상으로 푸드트럭까지 받아 그해 10월 서울소시지 공식 오픈과 동시에 푸드트럭까지 운영하게 된다. 당연하게도 TV 출연 유명세 덕에 서울 소시지는 오픈과 동시에 문전성시를 이뤘다.
#문제를 벗 삼아 성장하다
그러나 인생도 사업도 항상 호시절만 있을 수는 없는 법. 시간이 흐르면서 그동안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던 매출은 제자리걸음을 하기도 했고 때론 하락세를 보이기도 했다. 서울소시지 유명세의 1등 공신이었던 푸드트럭 역시 운영이 쉽지 않았다. 잦은 고장으로 적잖은 돈이 들어가는 것은 물론 프리웨이에서 서기도 일쑤. 프리웨이에서 푸드트럭이 서는 바람에 갓길에 임시정차 해놓고 그곳에서 요리를 한 뒤 다른 차로 픽업해 케이터링 한 적도 부지기수라고.
"매일 매일이 문제와의 싸움이었고 현재도 그렇죠. 음료수 기계가 고장 나는가하면 어떤 날은 헬스 인스펙션 시 문제가 생기기도 하고 어제까지 멀쩡하던 냉장고가 망가지도하고 푸드트럭 엔진이 고장 나 예상치 않은 목돈이 들어가기도 하고… 그래서 식당에서 전화가 오는 날이면 덜컥 겁부터 나요.(웃음)"(영)
그러나 이처럼 매일 발생하는 문제야말로 가장 큰 스승이었다고 그들은 입을 모은다.
"사업을 하면서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이죠. 그보다는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이를 해결하고, 이를 통해 교훈을 얻고, 또 그러면서 문제해결에 대한 자신감을 성장시켜 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테드)
그렇다고 이들이 항상 호흡이 척척 맞는 것만은 아니다.
"왜 안 싸우겠어요. 한 고집하는 한국 사람들인데요.(웃음) 그러나 싸우면서 더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기 때문에 의견충돌을 피하진 않아요. 오히려 함께 모여 사업하는데 의견충돌이 없다면 그건 매너리즘에 빠진 게 아닐까요?"(영)
#한식에 개성을 입히다
최근 2호점을 오픈하면서 개발한 메뉴들을 보면 한눈에도 한국식 길거리 음식 문화가 아기자기하게 녹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올 봄 한국 케이블TV가 기획한 프로그램 촬영차 3주 정도 한국에 머문 이들은 홍대, 이태원, 강남 등 서울의 핫 플레이스에서 맛본 다양한 길거리 음식을 이번 2호점 신 메뉴에 접목 시킨 것이다. 양푼 냄비에 나오는 떡볶이가 그러하고 최근 한국 젊은이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양꼬치에서 창안한 양고기 소시지가 그러하다. 여기에 한국 소주와 맥주까지 구비, 제대로 한국식 흥을 더했다. 이외에도 미국, 멕시코, 베트남 등 다양한 나라들의 음식문화에서 영감을 받은 특색 있는 메뉴들을 2호점에 가면 만나 볼 수 있다.
둥근 달 휘영청 떠오른 가을 밤, 이 열혈 청년들이 내오는 유쾌.상쾌한 접시와 마주 앉아 있노라면 어느새 하루의 고단함은 잊은 채 소주 한잔 은근 절실해진다. 그렇게 한잔 두잔 기울이다 보면 강릉 경포대에만 뜬다는 다섯 개의 달 중 한 개는 어느새 당신의 잔속에서, 또 한 개는 내님의 눈동자에서 아련히 흔들리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빛바랜 노스탤지어 물안개처럼 번지는 어느 늦은 밤, 이 곳에서라면 어쩐지 그런 동화 같은 일이 생길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