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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밑, 누군가에게는 거기도 따뜻한 ‘지붕’

연말 르포 ‘다리 밑에서 사는 사람들’

교량 아래 작은 틈에 사는 그들
샌타애나 강 주변에 100여 명 거주

자동차 지나갈 때마다 굉음 울려
차가운 강바람 이불 하나로 막아

기독교 단체 1년째 꾸준히 찾아가
이름 불러주며 닫힌 마음 열어


성탄 분위기가 무르익는 12월. 크리스마스 트리와 캐럴은 겨울만이 전할 수 있는 포근한 온기다. 하지만, 노숙자들에게 12월은 냉혹한 계절일 뿐이다. 현실은 너무나 춥다. 국립기상청(NWS)은 올 겨울 엘니뇨 현상으로 인한 폭우까지 우려한다. 그래서일까. 다리 밑은 노숙자에게 있어 12월의 차디찬 현실을 조금이라도 피할 수 있는 지붕이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기독교 구제 사역 단체인 '베레카홈리스미니스트리(이하 베레카선교회)'와 함께 다리 밑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가봤다. 그들에게 꺼져가는 희망의 불씨를 다시 지피는 건 기독교의 사랑이다.

글·사진=장열 기자

[email protected]

12일 오전 9시, 샌타애나 지역 1가와 하버 불러바드 인근. 샌타애나 강을 잇는 한 작은 다리 옆에 자동차를 세웠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매섭고 쌀쌀한 강바람이 곧장 몸을 움츠리게 만든다. 휴대폰으로 기온을 보니 47도다.

베레카선교회 최명균 목사를 따라 교량 밑으로 내려갔다.

최 목사는 "이 다리 밑에만 대여섯 명의 노숙자가 살고 있다"며 "샌타애나 강에는 10여 개의 다리가 있다. 다리 밑에 사는 노숙자를 전부 합하면 100여 명은 족히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량 밑과 강둑 사이에는 작은 틈이 있다. 틈 사이 높이는 50인치(약 130cm)도 안 되는 것 같다. 다리 위에서 자동차가 지나갈 때마다 굉음이 귓가를 때린다. 그렇게 협소한 곳에서 노숙자들이 겨울을 보내고 있었다.

노숙자들이 사는 곳을 보려면 무릎을 땅에 대고 몸을 한껏 숙여야 했다. 다리 밑을 보니 낡은 이불 등을 이용해 만든 임시 텐트 서너 개가 보였다. 주변에는 일회용 그릇, 세숫대야 등이 널브러져 있었다.

"헤이~로베르토"

최 목사가 몸을 숙여 친숙하게 한 노숙자의 이름을 불렀다. 돌아오는 답은 없다.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 때문일까.

함께 동행했던 베레카선교회 디케이 간사는 "노숙자들은 오랜 시간을 혼자 외롭게 지내기 때문에 타인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 멀쩡해보여도 대개 정신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도 많다"며 "특히 경찰의 단속 때문에 한 장소에 오래 머무르지 못하고 거처를 자주 옮기다 보니 낯선 사람은 자꾸 피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전했다.

최 목사가 "나 폴(paul) 목사에요"라고 몇 번이고 말하자 한 임시텐트 안에서 노숙자가 "지금 로베르토는 없다. 잠깐 일하러 간 것 같다"고 말했다. 다리 밑 노숙자이지만 이웃으로서 서로에게 관심이 있는 듯했다.

노숙자들은 외부인을 꺼렸다. 대화를 나누고 싶어하지 않았다. 열악한 환경이 몇 마디라도 나눌 여유조차 막는 것일까. 한 노숙자의 텐트 안을 들여다봤다.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 깔린 건 박스와 얇은 이불 하나가 전부다.

한 노숙자는 "하루종일 캔이나 빈병을 주워 생계를 겨우 유지한다. 수입이라고 해봤자 하루에 5~6달러가 전부"라고 말했다.

현재 베레카선교회 회원들은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샌타애나 강 다리 밑의 노숙자들을 찾아간다. 기부받은 양말, 침낭, 빵 등을 나눠주기 위해서다. 하지만, 물품을 나눠주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친구가 되어주는 것이다. 꾸준히 찾아가서 얼굴을 익히고 이름을 불러주다 보면 그들의 닫힌 마음은 조금씩 열린다. 그렇게 찾아 간지 벌써 1년째다.

베레카선교회 회원 피터 최씨는 "샌타애나 다리 밑에는 임신을 한 여성 노숙자도 있는데 마음이 너무 아프다"며 "나는 종종 이곳에 내 아들을 데리고 온다. 그들도 한때 가족이 있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가족'이란 의미를 전해주기 위해서다. 노숙자들도 그들의 가족을 떠올리면서 그리워한다"고 말했다.

이날 베레카선교회는 마켓 등으로부터 기부받은 식료품을 노숙자들 몰래 다리 밑에 두고 왔다. 그건 단순히 다녀갔다는 흔적이 아니다. 외로운 그들에게 계속 관심이 있다는 무언의 따뜻한 메시지다.

“연말뿐 아니라 지속적인 관심이 중요”

10여 개 기독 구제 단체 활동 중
단체·교회·한인들 힘 모아야


현재 노숙자 사역은 주로 기독교 단체 등이 주도한다.

한인 단체의 경우 베레카선교회를 비롯한 오병이어, 예수사랑선교회, 울타리선교회 등 10여 개가 활동중이다.

LA지역의 경우 기독교 구제 단체는 대부분 다운타운 인근 노숙자 거리인 ‘스키드로(Skid Row)’를 중심으로 몰려있다.

반면 오렌지카운티의 경우는 LA지역에 비해 한인 구제 사역 단체가 적은 편이다. 노숙자 분포 지역이 워낙 넓기 때문에 LA스키드로와 같이 한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사역을 펼치기가 어렵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노숙자 사역은 기독교 구제 단체 외에도 각 지역 교회들이 직접 봉사팀을 구성해 돕거나, 교회들이 구제 단체와 연계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구제 사역의 상황이나 환경은 아직도 열악한 편이다. 지속적인 사역이 어려울 뿐더러, 재정적인 지원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LA지역 한 구제단체 관계자는 “아무래도 정부나 지역교회로부터 사역의 당위성을 알려 재정을 지원받아야 하기 때문에 구제 단체간의 보이지 않는 경쟁의식도 있는 게 사실”이라며 “또, 가난과 추위 등 노숙자들의 현실 자체가 워낙 어려운 상황이다 보니 사역 자체가 체계적으로 운영되기보다는 임시 방편적인 구제일 수밖에 없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노숙자에 대한 관심이 특정 계절에만 쏠리는 것도 문제다.

기독교 단체를 도와 구제사역을 하는 유니스 조(51ㆍLA)씨는 “사실 노숙자는 1년 내내 우리 주변에 있는데 지역 교회나 언론도 유독 연말에만 그들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 같아 씁쓸하다”며 “이맘때면 일회성 이벤트나, 전시성 행사가 넘쳐나지만 정작 지속적으로 노숙자를 도우려는 이들은 많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베레카선교회의 경우 현재 오렌지카운티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중이다. 이 단체는 노숙자들이 조금이나마 겨울 추위를 피할 수 있도록 침낭을 기부받아 음식과 함께 전달하고 있다. 또, 공원이나 다리 밑을 다니면서 노숙자를 위한 기도는 물론 그들에게 성경공부도 해준다.

베레카선교회 최명균 목사는 “노숙자들에게는 생존을 위해 당장 필요한 것들이 있다. 1차적으로 그런 부분에 대한 시급함이 있기 때문에 한인들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며 “하지만 노숙자 사역을 지금까지 펼쳐오면서 확실하게 느끼는 것은 결국 복음을 통한 본질적인 변화가 없으면 잠시의 배고픔은 잊을 수 있어도 영혼 치유와 회복은 쉽지 않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노숙자 사역은 절대로 단기간에 일회성이나 전시성 구제 등으로 열매를 맺는 게 어렵다. 구제 단체와 지역교회, 한인들이 오랜 시간 다함께 꾸준하게 펼쳐야 하는 장기적인 사역”이라고 덧붙였다.

장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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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의 손길은 부족한데
노숙자는 계속 늘고 있어


거리의 노숙자들은 계속 늘고 있다.

LA홈리스서비스국(LAHSA)에 따르면 올해 LA카운티 지역 노숙자 숫자는 4만4359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2013년(3만9463명)보다 더 늘어난 수치다. LA카운티 지역 노숙자 중 절반에 가까운 2만5686명이 LA시에 살고 있다.

오렌지카운티 지역 노숙자도 늘었다. 오렌지카운티 지역의 올해 노숙자 수는 4452명이다. 2013년(4251명)과 비교하면 200여 명이 더 늘어난 셈이다.

노숙자가 늘어난 주요 원인으로는 ▶렌트비 상승 ▶높은 실업률 ▶저소득층 아파트 건설 지원금 감소 등이 꼽힌다.

노숙자에 대해서는 늘 두 가지의 불편한 시선이 공존한다.

노숙자 단속을 강화하자는 목소리와 노숙자에 대한 인권과 구제의 중요성 등을 강조하는 주장이 끊임없이 대립한다.

최근에는 노숙 인구가 늘면서 노숙자들은 주택가나 상가 등 일반 거주지역으로까지 퍼지고 있다.

노숙자 분포 지역이 늘어나면 경찰의 단속은 강화될 수밖에 없다. 치안 문제를 야기하고 주거환경이 악화된다는 우려 때문에 주민들의 불만이 거세지기 때문이다.

반면, 인권 단체와 구제 단체 등은 노숙자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 없이 무작정 그들을 내쫓기만 하는 건 당국의 무책임한 행동이라는 목소리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최근 정부도 노숙자 문제에 대한 대책 마련에 나섰다.

지난 11월 LA시의회는 올 겨울 엘니뇨 현상 등으로 잦은 폭우가 예상되자 공공건물 주차장 등을 임시쉼터로 개방한다는 내용의 법안을 만장일치로 승인한 바 있다.

장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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