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만큼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경제적인 차이, 신분의 차이, 지역적인 차이 등 인간에게는 어쩔 수 없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시간은 차이가 없다. 누구에게나 같다.
그러나 크리스천에게는 물리적인 시간(chronos) 외에 또 다른 시간이 있다. 하나님의 시간이며 주관적인 시간이라는 카이로스(kairos)다.
그런데 카이로스의 의미를 가장 잘 누려야 하는 기독교인들이 조급하다.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리지 못해 그 시간 가운데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기다리지 못한다. 하나님이 그 일을 주관하셔서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해결하실 것에 대한 믿음이 약해진 것이다.
그러니 교회가 세상의 시간에 의하여 지배되고 세상의 업적을 추구하게 되었다. 교회를 건축하고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심지어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설교조차도 카이로스의 기다림보다는 현세적이고 가시적인 그리고 지극히 물량적인 가치를 추구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당장 세상의 복을 받고 그것을 빨리 소유하여 누리는 것을 대단한 것으로 여기게 하였다.
이것이 당장에는 교회를 찾는 사람들에게 큰 효과가 나타나는 듯하고 복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호감이 가는 듯하지만 결국 자충수가 되어 버렸다.
기독교가 이런 유치한 것에 매몰될 때 세상은 더욱 화려해지고 더욱 높아지고 있으니 교회 내에서 발견하지 못한 아쉬움을 오히려 세상에서 찾고자 하는 발걸음이 교회를 외면하고 떠나는 젊은이들이 많아지게 된 것이다. 교회는 더 이상 그들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교회가 하는 일들이 대부분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일들이고 오히려 세상이 더 빠르고, 더 좋고, 더 많은 것을 주고 있는데 교회에서는 말만 하지 실제적이고 물질적인 것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그들이 알게 된 것이다. 이제 교회는 하나님의 시간인 카이로스를 회복하여야 한다. 영원한 생명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총을 붙들고 살아야 한다. 많은 신앙의 선배들이 하나님의 시간을 살았다. 그래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수 있었고 그러면서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아가고 신앙이 깊어진 것이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여호와의 날'을 기다렸고 신약의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바라보았다.
새해 기도제목이 많을 것이다. 어떤 기도를 해야할까. 또 많은 설교가 선포될 것이다. 어떤 설교를 해야 할까. 하나님의 시간 속에 하나님의 주권을 드러내는 기도와 설교가 교회와 우리의 삶에 채워지기를 소망한다. 당장 조급하여 믿음이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의 섭리가 있음을 믿고 기다리는 믿음이 회복되어야 한다. 세상이 우리에게 보기를 원하는 것은 높은 빌딩과 잘 장식된 교회시설이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구속의 역사가 온전히 성취되는 예배와 성도의 삶일 것이다. 좀 더 멀리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