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 4학년 재학 중 교통사고 전신 55% 화상…기적적 소생 2005년 유학…수술·학업 병행 UCLA서 사회복지학 박사 취득
9월 귀국해 책 출간·강연 계획 장애인들 복지에 도움 주고파 "지독한 상황 속 웃을 수 있는 진정한 자유 깨달아 행복해"
어쩜 이럴 수 있을까 싶다.
꽃다운 나이, 아니 정말 목련 꽃처럼 예뻤던 스물셋 여대생이 음주운전자가 낸 7중 추돌사고로 전신에 55% 3도 중화상을 입고 7개월간 30번이 넘는 수술을 견디며, 양손 8마디의 손가락을 잘라내고도, 동물원 원숭이 보듯 쑤군대는 사람들의 동정어린 시선 속에서도 어쩌면 이처럼 밝고 쾌활하고 유머러스할 수 있을까. 삶을 비관하고, 신을 원망하고, 비탄에 빠져 허우적댄다 해도 하나 전혀 이상할 것 없는 시간들이었다. 그러나 그녀, 이미 신이 수 천 년간 이 땅 위에 인간들에게 알려주려 고군분투한 삶의 비밀들을 꿰뚫어 버렸다. 사랑과 감사, 용기와 희망, 용서와 위로. 그리하여 그녀는 지극히 평화로웠고 아름다웠다. 감히.
지난달 UCLA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며 12년이란 긴 유학생활을 마친 이지선(38)씨를 LA한인타운 한 카페에서 만났다.
#고난 속 진짜 행복을 깨닫다
그녀의 끝을 모르는 긍정과 감사는 가족내력인 듯싶다. 노동부 공무원이었던 건실한 부친과 연대 경영학과에 재학 중인 듬직한 오빠, 이대 유아교육학과 졸업반인 미모의 그녀까지. 2000년 7월 사고 이전까지 이들 가정은 남부러울 것 없이 완벽했다. 그러니 드라마라면, 아니 보통사람들이라면 이 느닷없이 닥친 불행에 울고불고 참담한 시간 속을 헤맸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부친은 의연했고, 엄마는 살아있는 게 더 고통인 그녀에게 하루 한 가지씩 감사할 거리를 찾아보자고 했단다. 이처럼 의연하고 든든한 가족이 있었기에 지금의 그녀를 있게 한 2003년 출간된 '지선아 사랑해'라는 책도, 같은 해 방송된 KBS 인간극장 '지선아 사랑해' 편도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방송과 책이 출간되고 그녀는 일약 '전국 스타'로 등극했다. 그건 그녀의 눈길 끄는 외모가 아닌 20대 중반의 어린 그녀가 던진 묵직한 희망과 용기, 긍정의 메시지 때문이었다. 그리고 다시 16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녀는 말한다. 그 시간 동안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은 인생에서 지독한 운명과 화해하는 법과 행복의 비밀을 알게 됐다고.
"좋은 일이 있기 때문에 웃는 것이 아니라 지독한 상황 속에서도 웃을 수 있는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됐어요. 그 자유는 가지지 못한 것에 조바심내지 않고 주어진 것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갖게 해주었죠."
#새로운 시작
그녀가 미국 유학길에 오른 것은 2004년 온누리교회 고 하용조 목사와의 우연한 만남을 통해서다. 그녀가 공부를 더 하고 싶다는 것을 들은 하 목사가 교회 장학위원회를 통해 그녀에게 시애틀 어학연수 기회를 제공한 것이다. 1년간의 어학연수 기간 동안 본격적인 유학을 준비해 2005년 보스턴 유니버시티 대학원에 진학, 재활상담 석사과정에 돌입했다. "미국에서 장애인들의 재활은 주로 직업을 찾아주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제가 생각했던 재활상담과는 거리가 좀 있었어요. 대신 장애인들을 위한 복지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는 것을 보면서 미국의 사회복지를 공부해 이를 한국에 적용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전공을 바꿨죠." 그래서 2008년 BU에서 석사학위 취득 후 다시 컬럼비아대 대학원에 진학, 사회복지학 석사과정을 밞게 된다. 그리고 2010년 UCLA에서 사회복지학 박사과정을 시작했다.
"LA 오니까 너무 좋더라고요. 한인들도 많고, 한식당도 많고. 다들 반겨주시고 격려해줘서 즐겁게 유학생활을 할 수 있었어요. 식당에서 식사 후 계산하려 하면 벌써 어떤 분이 계산했다는 일이 비일비재했죠. 한국보다 LA에서 절 더 많이 알아보시더라고요.(웃음)"
학업만으로도 바빴지만 방학마다 그녀는 한국으로 돌아와 피부이식술을 받아야 했다. 시간이 지나면 이전에 이식한 피부가 수축하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다시 이식수술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사고 후 지난해 11월까지 그녀는 40여 차례의 수술을 받아야 했고 이처럼 학업과 수술을 병행하며 박사과정을 끝내는 데 6년이 걸렸다. 12년간의 유학생활이었다. 당연히 학비도 만만치 않았을 터.
"최근 박사학위 취득 기사가 나간 뒤 저희 집이 엄청 부자인가보다 라는 댓글을 본 적이 있어요. 그건 절대 아니고요.(웃음) 석사과정까지는 온누리교회에서, 박사과정은 학교 장학금으로 상당부분을 충당했고 나머지는 책 인세가 큰 역할을 했죠.(웃음)"
#내 삶이 알려준 비밀
그녀의 박사학위 논문 제목은 '지적발달 장애인들을 접하고 난 뒤 일반인들의 인식변화'. 한 장애인 선교단체 캠프에 자원봉사자로 참석한 14~30세 사이의 청장년들이 캠프에서 장애인들과 생활한 후 장애인에 대한 선입견이 얼마나 변화했는지를 연구 조사한 논문이다.
"비장애인들에게 장애인들에 대한 선입견이란 함께 있는 것 자체가 불편하다는 감정인 것 같아요. 그런데 막상 장애인들과 어울려 생활하다 보면 이런 불편함이 없어지는 걸 이번 연구를 통해 알 수 있었죠. 그래서 한국도 학교나 복지관, 지역정부 등에서 비장애인들 특히 청소년들과 장애인들이 함께 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회를 제공해주면 좋겠어요."
박사논문이 말해주고 있듯 그녀의 오랜 소망은 결국 장애인들도 똑같은 사람이고 비장애인들과 똑같이 행복과 권리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다.
'저러고도 살 수 있을까. 네 이러고도 삽니다. 몸은 이렇지만 누구보다 건강한 마음임을 자부하며 이 몸이라도 전혀 부끄럽게 여기지 않도록 사랑해준 가족들에게 감사하며.(중략) 네 저는 이러고도 삽니다. 이러고도 날마다 새로운 꿈을 꾸며 누구보다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지선아 사랑해' 中에서)
그녀는 9월쯤 한국에 돌아갈 예정이다. 돌아가면 새 에세이집과 '지선아 사랑해' 동화책 출간에 매진할 예정이다. 또 기회가 닿으면 지금껏처럼 청소년들을 위한 강연도 계속 하고 싶다고.
"남들은 박사학위 받고 귀국 전에 취직자리도 다 정해 놓던데 저는 현재 아무런 대책이 없어요.(웃음) 그래서 불안한 것도 사실이지만 이렇게 한 발자국씩 걸어가다 보면 분명 저를 필요로 하는 곳에 가 닿을 거라 믿습니다."
그녀는 말한다. 희망이란 그저 막연한 기대라고. 오늘의 고통이 전부가 아닐 거라는 기대, 바닥을 치고 나면 결국은 다시 올라 갈 것이라는 기대. 그리하여 고난은 동굴이 아닌 터널이어서 하루하루 포기하지 않고 걸어가다 보면 어둠이 끝나는 그곳에 반드시 밝은 빛이 기다리고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