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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읽는 기독교] 주례사 비평

정요석 목사 / 세움교회

한국에는 신학을 다루는 학회가 몇 개 되지 않는다. 필자는 조나단 에드워즈의 삼위일체와 언약을 전공하였는데 에드워즈를 전공하고 학회에서 활동하는 신학자가 손으로 꼽을 정도이다.

내가 신랄하게 논평한 논문의 저자가 몇 년 후에는 다시 내 논문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논평자가 될 수 있으므로 서로 주례사 비평에 머무는 논평을 하고 싶은 유혹을 강하게 받는다.

노회에서 안건을 논의할 때 노회원들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무엇이 옳은지를 판단해야 한다.

하지만 오랜 기간 같은 노회에 있으며 친해진 노회원에게 불리한 발언과 결정을 하기가 쉽지 않다.

또 그 목사가 겪은 일을 바로 자신이 겪을 수 있으므로 명백한 잘못임에도 하나님의 말씀과 노회의 규칙보다 대강 얼버무려 처리하려는 유혹을 강하게 받는다.

황우석 사태를 한국 사회가 겪은 것도 애국심과 효율과 생산성에 취한 비평가들이 날카롭게 그에 대하여 메스를 들이대지 않았기 때문이다.

황우석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 그에 대한 언론의 비평은 용비어천가 수준이었다. 올바른 비평가가 되기 위해서는 낭만적인 감정과 잘못된 애국심도 벗어나야 하는 것이다.

훌륭한 비평가가 되기 위해서는 돈과 권력의 유혹에서도 자유로워야 한다.

주례사 비평은 출판자본의 영향력에 문학이 포섭된 결과이기도 하다. 한 권의 문학 책이 나오면 출판자본의 영향을 받는 비평가들이 마치 새로운 시도와 시대정신을 담은 양 시끄럽게 떠들어댄다. 언론은 그것을 그대로 받아쓰고 독자들은 새로운 시도와 시대정신이란 평론에 유혹되어 지갑을 열게 된다.

교회자본의 영향력도 무시할 수 없다. 초청받은 교회의 단점과 담임목사를 날카롭게 비평하는 목사들을 어느 교회에서 강사로 불러주겠는가. 부르는 교회가 듣고 싶어하는 소리를 해주는 목사를 부르지 않겠는가. 또 자기가 칭찬을 해야 그 교회의 목사도 자기 교회에 와서 자기를 칭찬해주지 않을 건가. 서로 주례사 비평으로 품앗이하는 것이다.

엘리야는 아합 왕이 모은 바알의 선지자 450명에 대해 "이세벨의 상에서 먹는"이란 표현을 사용했다. 그들은 상의 음식을 주는 주인이 듣고자 하는 소리만을 전하는 거짓 선지자이고 짓기를 그친 개이다. 선지자는 함부로 누구의 상에서 먹으면 안 된다. 선지자와 목사는 때로는 진리를 위하여 배고픈 배와 다수의 지지를 참아야 하는 고독하고 쓸쓸한 직업인 것이다.

돈은 권사의 지갑에서도 흘러나온다. 목사가 권사들로부터 흘러나오는 봉투에 길들여지면 그들의 가려운 귀를 간지럽게 해주는 사욕의 스승에 지나지 않는다. 돈 많은 욕정의 성도들에게 영적이란 영역에서 즐거움을 선사하는 엔터테이너로 전락하는 것이다.

기독교인의 비평은 날 서지 않고 소금으로 고르게 되어야 한다. 날선 배추가 소금을 뿌려 놓으면 숨이 죽으며 김치를 만들기에 적합하게 푹 늘어지고 맛이 밴다.

주례사 비평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잔혹하고 신랄한 비평도 아니고 소금으로 고르게 된 비평을 기독교인은 지향한다. 옳음과 배려와 사랑이 소금처럼 깃드는 비평이 교계에 넘쳐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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