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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설교만 원하는 교인들도 문제"

Los Angeles

2017.05.29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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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교계 목회자 설교 표절 논란 (하)
유명 목사 설교만 원하는 인식
때론 목사들에게 압박감 작용
사회에선 표절은 범죄로 인식
대통령도 표절 때문에 물러나
표절 드러나면 철저한 자숙 필요
징계 이전에 근본 원인 찾아야


설교 표절 문제는 아이러니한 질문들을 낳는다. 만약 타인의 설교를 일부 표절했다면 그 설교는 메시지로서 전혀 '가치'가 없을까. 표절 사실이 드러났을 경우 목회자에게 적당한 징계는 어느 수준이어야 할까. 설교 표절의 기준과 경계선은 어디일까. 설교 표절은 암암리에 교계에서 깊이 뿌리 내리고 있는 심각한 문제다. 이는 목회자 개인의 신앙적 양심에만 맡길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모두가 나서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게 교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설교 표절 문제는 목회자들 사이에 불편한 현실이다.

이 때문에 안타까워하는 건 목회자 뿐일까. 아니다. 교인들 역시 이 문제 때문에 고민하고 안타까워한다.

"가슴이 아프다. (중략) 표절하는 목사님을 따라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가, 아니면 그 목사와 결별을 해야 하는가."

'표절설교 반대 및 표절설교자 거부운동'이라는 소셜네트워크 카페에 올라왔던 글이다.

우선 사회에서는 '표절'을 어떻게 인식할까.

학계에서는 표절(plagiarism)에 대해 각 지침 문서 등을 통해 'theft(절도)' 또는 'burglary(강도)'라는 표현까지 빌려 매우 엄격하게 다룬다.

바이오텍 연구소 이준 실장은 과거 캘리텍(Caltech)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하며 학술 논문 등을 써왔다.

이준 실장은 "표절에 대한 학계의 경각심은 극도로 심하다. 타인의 연구 결과를 일부러 누락하거나, 표현을 차용했을 경우에도 모든 책임은 글을 쓴 주저자와 책임저자에게 주어진다"며 "그 결과로 논문은 철회되고 저자는 대부분 소속 기관에서 직위를 잃게 된다. 연구비는 회수되고, 사안에 따라서는 형사 처벌도 받게 되는데 처벌 수위는 실험 내용을 조작했을 때만큼 높다"고 말했다.

본지는 UCLA 측에 표절에 대해 문의한 결과 "표절에 있어 의도가 있느냐, 없느냐, 타인의 페이퍼나 프레젠테이션(발표)을 어떻게 표절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표절'이라는 사실만이 명백한 증거"라며 "표절은 절대 용납될 수 없는 행위다. 페이퍼를 낼 때 인용구 없이 한두 만장만 똑같은 게 적발돼도 학점을 받지 못하며 최악의 경우 재적까지 당할 수 있다"고 전했다.

실제 표절은 사회적으로 매우 심각하게 여겨진다.

오바마 행정부 시절 부통령이었던 조 바이든도 지난 1987년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왔다가 돌연 사퇴를 한 적이 있다. 당시 인기 절정의 바이든이 경선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건 영국 노동당 닐 키녹의 연설문 표절과 대학원 시절 타인의 논문을 베꼈다가 F학점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지난 2012년엔 헝가리 팔 슈미트 대통령도 논문 표절 때문에 물러나야 했다. 독일의 칼테오도르 쿠텐베르크 국방장관, 아네테 샤반 교육부 장관 역시 표절로 장관직을 사임했다.

에니 김(UCLAㆍ박사과정)씨는 "미국에서는 학생들에게 가장 먼저 기본적으로 교육하는 게 MLA(Modern Language Association), 시카고 스타일, APA(American Chemical Society) 등 참고문헌 인용법"이라며 "그만큼 표절에 민감하기 때문에 정직하게 출처를 밝히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교계에서는 설교 표절의 기준이 불분명하기 때문에 먼저 표절을 명확하게 정의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국진 목사(예수비전교회)는 이와 관련, 표절 기준으로 판명돼야 할 부분과 표절로 판명돼선 안 되는 부분에 대한 의견을 밝힌 바 있다.

이 목사는 ▶타인의 설교 원고를 거의 그대로 설교하는 행위 ▶타인의 경험을 마치 자신의 경험인 것처럼 각색하여 설교하는 행위 ▶타인의 책 내용이나 설교에서 나온 이야기를 출처를 밝히지 않고 마치 자신이 스스로 생각해 낸 창작물인 것처럼 표현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표절로 판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널리 알려진 예화나 유머가 설교 흐름상 필요하다면 출처를 밝히지 않아도 되고 ▶일반적인 기독교의 진리로 알려진 내용을 전달하는 것도 출처를 밝히지 않아도 가능하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설교 표절은 곧 설교가 전달되는 강단의 위기로 이어진다.

LA지역 한 신학교 교수는 "사실 신학교의 책임도 크다. 신학교가 난립하고 생존에 허덕이다 보니 신학생에 대한 검증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고 자격미달의 목사들이 배출됐다"며 "신학교의 위기가 표절과 같은 강단의 위기로, 그것이 곧 교회와 기독교의 위기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낳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번에 표절로 논란이 됐던 동부 지역 Q교회 이모 목사는 표절 사실을 인정하며 교계 현실에 대해 토로했다.

이모 목사는 "사실 교인들은 부목사보다 담임목사의 설교만 원하는 부분이 있다"며 "이 때문에 다른 부목사들에게 설교를 맡기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토로했다.

이러한 교인들의 인식은 곧 목회자에 대한 압박으로 이어져 어쩔 수 없이 설교 표절 유혹에 시달리게 한다. 실제 교인들이 유명 목사들의 '설교'를 좇아 교회를 옮겨다니는 현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LA지역 한 은퇴 목사는 "교인들이 교회가 갖는 본질적인 의미와 개념은 배제하고 설교 잘한다는 소문만 나면 그 목사에게 우르르 몰려다니는 건 '교회론'의 부재에서 비롯된 현상"이라며 "교인들도 표절이든, 뭐든 상관없이 '나'만 만족을 얻으면 된다는 인식이 있다. 또, '좋은 설교'만 하면 된다는 자기 합리화와 윤리 의식이 실종된 채 설교만 번지르르한 목사들이 많아졌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목회자에게 충분한 설교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실제 미국 유명 설교가인 존 맥아더 목사는 과거 본지와의 단독 인터뷰본지 2014년 3월4일자 A-1면>에서 "나는 설교 준비에 보통 20시간 이상을 할애한다"고 말한 바 있다.

교인 지윤건(45·세리토스)씨는 "오늘날 교인들의 수준이 얼마나 높아졌는가. 설교를 들어보면 오랜 묵상과 고뇌 없이 짧은 큐티식으로 전달하는 설교는 금방 티가 난다"며 "목회자들이 그만큼 사역이 바쁠 수도 있고, 혹은 게을러서 남의 설교를 표절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양심을 떠나 하나님을 속이는 행위다. 목회자들이 충분한 시간을 갖고 성경 앞에서 오랜 시간 묵상할 수 있게 교회가 뒷받침을 해줘야 한다"고 전했다.

목사의 표절 사실이 드러났을 경우 교회는 어떤 식으로 징계를 해야 할까.

노정식 목사(어바인)는 "일단 목사는 표절행위에 대해 공개사과와 하나님 앞에서 철저한 회개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며 "하지만 교인과 당회는 먼저 목사가 왜 표절 유혹에 넘어갔는지 근본 원인을 찾아서 문제를 해결 및 시정하도록 사랑으로 돕는 게 필요하다. 목사가 충분히 자숙할 수 있는 근신의 시간을 가졌음에도 문제가 재발한다면 그땐 자진 사임이나 교회가 징계를 내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장열 기자 [email protected]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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