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욕심은 무조건 버려야 하는 것인가
양은철 교무 / 원불교 LA교당
"욕심을 버려라!"는 가르침은 불가의 트레이드마크로 여겨질 만큼 불가에서 욕심은 버려야 할 그 무엇이 되었고, 동양의 전통적 가치인 소욕지족(少慾知足, 적은 것으로 넉넉할 줄 알며)과 안빈낙도(安貧樂道, 가난한 생활을 하면서도 편안한 마음으로 도를 즐겨 지킴)는 불가에서도 강조되는 덕목이다.
무엇인가를 '원하고 바라는 마음(욕심)'은 무조건 버리고 소멸시켜야만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인가? 부처가 되려는 마음, 남북통일이나 세계평화를 바라는 마음도 버려야 하는 것인가? 예가 너무 멀리 갔다면, 좋은 대학에 가길 원하고, 좋은 직장, 멋진 배우자를 원하는 마음은 어떤가? 역시 고통의 소멸을 위해 버려야 할 마음들인가.
부처님이 말씀하신 공(空) 자리는 무(無)와 허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현실생활과 불법을 둘로 보지 않으셨기 때문에 현실 생활을 도외시한 산중 불교는 부처님의 본의가 아니다. 수행에 필요한 덕목으로 '분심'(忿心, 용장한 전진심. 만사를 이루려 할 때에 권면하고 촉진하는 원동력)도 이야기하셨고 '서원'(誓願, [불교] 부처·보살이 중생을 구하고자 하는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하는 일)도 강조하셨다.
버려야할 욕심과 지키고 키워가야 할 서원의 차이는 무엇일까. 첫째, 정당하지 못한 욕심은 버려야 한다. 진리적 차원에서 쉽게 구분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만, 현실적 차원에서는 분명히 가려서 취사를 해야 한다. 성현의 말씀과 경전 공부 등을 통해 지혜를 키워가는 것도 바른 판단을 통해 바르게 취사하기 위해서이다.
둘째, 정당한 원이라도 집착을 하게 되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제자가 물었다.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도 애착심이 아니옵니까" 대종사께서는, "그대는 감각 없는 목석을 도인이라 하겠다. 애착이라 하는 것은 사랑에 끌리어 서로 멀리 떠나지를 못한다든지 갈려 있을 때에 보고 싶은 생각이 나서 자신 수도나 공사(公事)에 지장이 있게 됨을 이름이다." 사랑하는 마음은 같지만, 착심이 없으면 키워가야 할 사랑이 되는 것이고, 착심이 있으면 버려야 할 애착이 된다 하겠다.
좌선을 지도할 때 다양한 방법으로 설명을 하지만, 좌선 방법에 대한 가장 정확한 안내는, 'Just sitting(그냥 앉아있는 것)', 행선은 'Just walking(그냥 걷는 것)'이다. 강조하는 바가 다소 다르긴 하지만, 이런 면에서 예전 모 스포츠 회사의 광고문구인 'Just do it'은 가히 법문이라 할 만하다. 정당한 원을 세웠으면 '그냥' 하면 된다(Just doing).
무엇인가를 원하고 바라는 마음이 인간 고통의 주된 원인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단, 정당한 원을 집착 없이 추구한다면, 이는 고통의 소멸을 위해 버려야 하는 욕심이라기보다는 행복을 위해 키워 가야할 서원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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