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켈총리 난민보호에 적극적 개인화장실까지 갖춘 난민시설 난민 거주 공간 법으로도 규정 월 350유로 생활비까지 지원 과도한 지원, 반대 여론 부각 총선 앞두고 난민 최대 화두
미국과 독일의 오늘은 닮은 데가 많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달 초 난민 입국자 수를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방안을 발표했다. 반 이민 기조는 숨죽이고 있던 백인우월주의의 출현과도 맞물린다. 유럽에선 난민들이 독일의 문을 두드린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일단 그들을 품에 안았다. 지난 한해 동안만 무려 32만 명의 난민을 받았다. 사회적 반발도 거세졌다. 반 이민 정서 바람은 미국의 현실과 흡사하다. 지난 23일 독일의 수도 베를린을 찾았다. 현재 난민 문제는 독일 총선을 한 달여 앞두고 최대 화두로 떠올랐다. 베를린은 미국과 달리 묘하게 분위기가 갈리고 있다.
독일 베를린=장열 기자
8월임에도 베를린의 아침 바람은 제법 쌀쌀(59도)하다.
23일 오전 8시, 테겔 공항을 나와 다시 한 번 옷깃을 여민 뒤 죽 늘어서 있는 택시 중 하나를 잡았다. 출근 시간대인데 차창 너머 베를린의 풍경은 분주한 LA에 비해 다소 한가하다.
시내 가로수 곳곳에서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얼굴 사진이 눈에 띈다.
택시 운전사 마쿠스 아달후프는 "곧 독일 총선(9월24일)이 다가온다. 머무는 동안 선거 포스터를 자주 보게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서늘한 날씨와 달리 독일은 선거 열기로 달구어지고 있었다.
"지금 총리의 인기는 어떤가"라고 물었다.
아달후프는 "기독민주당(CDU·메르켈의 당)의 승리가 점쳐지지만 나는 그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며 손을 내젓는다.
그는 "힘들게 벌어서 내는 세금이 난민 먹여살리는데만 쓰이고 있다"며 "메르켈은 이미 안정된 삶을 살거나 혹은 난민들에겐 천사 같은 존재일지 몰라도 나 같은 노동자들에겐 최악"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민에 관해 독일은 미국과 정체성이 비슷하다. 전체 인구(8120만 명) 중 무려 1640만 명(약 20%)이 타민족 배경이다. 5명 중 1명이 이민자인 셈이다.
수년간 100만 명 넘게 유입된 난민은 독일을 더욱 급격히 다민족 사회로 바꿔놓고 있다. 난민에 대한 보호는 자본의 출혈도 야기한다.
베를린 시내 한 난민 보호 시설(기에르소·Gierso)로 향했다. 베를린 주 정부는 난민이 증가하자 모텔로 쓰던 이 건물을 난민 보호 시설로 용도를 전환했다. 현재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소말리아 등으로부터 온 난민 250여 명이 공동 생활 중이다.
이곳 책임자인 수아다 돌루박은 "주 정부가 난민 1명당 하루에 18유로씩 계산해서 시설 운영비(인건비 및 각종 비용 포함)를 지원해준다"며 "정부는 시설 규정도 꼼꼼히 검사하는데 한 예로 성인 난민 1명당 거주 공간은 약 300스퀘어피트 정도 확보되게끔 법으로 규정한다"고 말했다.
세르비아 난민 소피아(익명)는 아이 셋을 데리고 이곳에 1년 반째 살고 있다.
허가를 받고 방 내부를 살폈다. 머릿속에 허름한 난민촌을 그렸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모텔로 쓰였던 곳이라 그런지 TV, 간이소파, 침대 등 웬만한 살림살이를 갖추고 있다. 샤워실이 딸린 개인 화장실까지 있다.
소피아는 "공동 주방과 세탁장도 있기 때문에 사는데 불편한 건 없다"며 "이곳에는 유치원도 제공된다. 막내가 곧 유치원에 진학하면 나가서 직업도 구하고 보호소에서 제공하는 독일어 교육도 받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베를린주에 따르면 독일로 들어오는 난민은 일단 초기수용시설(3~6개월 정도 거주)에 배치된다. 이후 난민 자격을 얻게 되면(난민 승인율 62%) 체류 허가를 받아 '기에르소'와 같은 각 도시의 보호 시설로 재배치된다.
취재를 도운 한미순 박사(베를린기독교대학)는 베를린 주 정부 청소년청 난민부에서 근무했었다.
한미순 박사는 "초기 수용시설을 거친 난민에 대한 지역별 배치는 각 도시의 인구, 조세 상황에 따라 배치 비율이 결정된다"며 "베를린의 경우 전체 난민의 5% 정도를 수용중인데, 이들에게는 숙소 및 의료 혜택 외에도 매달 평균 350유로(약 417달러) 정도가 생활비로 지급된다"고 말했다.
물론 사회 깊숙한 곳에선 갈등도 싹튼다. 이미 난민 정책을 반대하는 주장에 슬슬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지난 지역 선거에서 반 난민 정서를 등에 업은 독일대안당(AFD)이 무려 14%의 지지율로 의회에 입성한 것은 그러한 분위기를 방증한다.
지금 미국에선 백인우월주의가 기지개를 펴듯, 독일도 '페기다(pegida·이슬람화에 반대하는 애국 유럽인)'가 등장했다. 무슬림이 대다수인 난민의 유입을 강하게 경계하는 움직임이다.
선거를 앞둔 지금 그러한 반발은 무시하기 힘들다. 일단 메르켈도 한발을 뺀 모양새다.
베를린에서 난민 사역중인 윤바울 선교사는 "한동안 베를린에선 비행기 격납고, 체육관 등을 난민 수용 시설로 내주거나 컨테이너 박스까지 개조해 늘어나는 난민을 받았다"며 "하지만 최근엔 정부도 거세지는 반대 여론을 의식해서인지 일부 시설을 축소해 난민을 내보내려는 움직임도 보인다"고 전했다.
난민 이슈에 대한 독일 사회의 답변은 내달 총선에서 '표'가 대신한다. 베를린의 싸늘한 바람은 과연 누구에게 불까.
# 장열 기자 독일을 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