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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열 기자 독일을 가다 3] 분단의 흔적…독일의 미래 이끄는 힘

Los Angeles

2017.09.05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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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의 지점이 화합의 상징
베를린 장벽 인파로 북적대
독일 시민들 일상 속에서
생생한 역사의 현장 교육
국회의사당 유리 돔 의미
"정치 위에 국민이 있다"


24일 베를린 장벽으로 찾아갔다.

이곳은 한때 '죽음의 구역'으로 불렸다. 베를린의 흐린 날씨가 잿빛 장벽을 왠지 더 냉랭하게 덧칠하는 것 같다.

그 앞에 섰다. 냉전과 분단의 흔적은 인파에 묻히고 있었다. 장벽을 배경으로 기념 사진을 찍거나 벽화를 구경하는 이들로 북적인다. 사람들 얼굴엔 역사의 현장을 마주한 탓인지 들뜬 미소가 묻어났다.

장벽 단면에 손을 대보았다. 딱 한 뼘 정도다. 시선은 자연스레 장벽 끝으로 향했다. 일반 성인 키의 두 배(약 11피트) 정도. 의외로 두껍지도, 높지도 않다.

그러나 이 장벽이 무너지기까지는 무려 28년(1961~1989)이 걸렸다. 160km(약 99마일)에 걸쳐 독일의 동과 서를 하루아침에 갈라버렸던 담벽에는 현재 수많은 예술가의 벽화가 그려져 있지만 그 이면에는 슬픈 눈물과 피가 서려있다.

자녀와 함께 장벽을 찾은 슈테펜 힌데가드(39.베를린)씨는 종종 가족과 함께 산책 삼아 이곳에 나온다.

슈테펜씨는 "이곳이 세계적인 명소가 되어 독일 시민으로서 기쁘고 뿌듯함을 느낀다"며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 이상으로 생생한 역사의 현장이다. 자녀가 교과서를 통해서만 역사를 배우기보다는 자연스럽게 눈으로 보고 접하게 하려고 가끔씩 아이들과 함께 나와 맛있는 것도 먹고 이런저런 대화도 나눈다"고 말했다.

장벽 바로 너머엔 슈프레 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강가에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 연인, 가족 등이 함께 앉아 평온한 오후를 여유롭게 즐기고 있었다.

나는 구 동독 지역에 서있다. 슬쩍 강 폭을 가늠해보려고 한쪽 눈을 감은 뒤 강 건너편 건물을 손가락으로 가리켜봤다. 손가락 끝에 건너편이 너무나 쉽게 닿을 정도로 가깝다. 수영을 한다면 그리 어렵지 않게 금세 닿을 수 있을 거리다.

그러나 슈프레 강은 과거 장벽으로 인한 오랜 단절의 시간을 흘려보냈었다. 무려 7만5000여 명이 베를린 장벽을 넘으려다 구속됐다. 그 중 100명 이상은 현장에서 사살됐다.

김현배 목사(베를린비전교회)는 "당시 동독 군인들에게는 '무조건 사살'이라는 명령이 내려졌기 때문에 이 강을 건너려는 정황만 포착되면 발포를 했다"며 "강폭이 짧아서 슈프레 강을 헤엄쳐 건너거나, 강 밑으로 잠수를 하고, 열기구나 행글라이더를 타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탈출을 시도했던 곳"이라고 설명했다.

베를린 장벽은 띄엄띄엄 세워져 있었다. 장벽 붕괴 후 역사적 실증 보존을 위해 일부분만 남겨둔 탓이다.

거리를 따라 한참을 걸었다. 시내 중심부에 들어서니 이미 신식 건물이 곳곳에 들어서 더 이상 장벽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대신 흔적은 선명하게 남겨뒀다. 길바닥 중간에 붉은 벽돌들이 아스팔트 사이에 묵직하게 박혀있는 것이 보였다. 'berliner mauer'라는 글자가 선명히 박힌 벽돌들이다. 그곳은 장벽이 세워져 있던 곳임을 알려준다. 역사를 그대로 땅에 새겨놓은 셈이다.

장벽의 흔적을 따라 걷다 보니 검문소였던 '체크포인트 찰리(Checkpoint Charlie.검문소 'C'를 정확히 전달하기 위한 용어)'가 시야에 들어왔다. 보잘것없는 구식 초소처럼 보였지만 분단 당시에는 삼엄한 검문소였다.

이곳은 서독으로 탈출하려던 페터 페히터가 철조망 바로 앞에서 총에 맞아 서독 땅 바로 앞에서 안타깝게 죽은 비극의 지점이다. 그가 숨진 곳에는 'er wollte nur die Freiheit(그는 단지 자유를 원했을 뿐이다)'라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베를린은 미래를 위해 과거를 인정하고 보존한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역사가 뇌리에 똬리를 트는 곳이다.

김바울(베를린.금융 컨설턴트)씨는 "학창 시절을 이곳에서 보냈는데 독일은 어렸을 때부터 학교에서 나치의 잘못, 독일의 과오 등 역사 교육을 매우 철저히 시킨다"고 말했다.

독일의 현대 정치를 움직이는 국회의사당으로 향했다. 이 건물은 점령, 붕괴, 화재 등으로 역사의 고초를 담고있다.

웅장함이 압도하는 건물 전면부에는 'Dem deutschen Volke(독일 국민을 위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의사당은 유리돔이 지붕을 덮고 있다. 그곳에 올라가면 각종 사안을 논의하는 의원들의 모습을 위에서 바라볼 수 있다.

의사당 직원은 "유리돔 위에서 정치인들의 모습을 내려본다는 것은 '국민이 정치보다 위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한편으론 정치의 투명성을 강조하겠다는 뜻으로 독일 정치의 특징을 잘 나타내는 건축 양식"이라고 전했다.

독일은 일상과 역사가 가깝다. 그리고 역사의 교훈을 실천하는 무대는 '현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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