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만큼 '소통'을 중시하는 선수도 없을 것입니다. 시즌 중에도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팬들과 끊임없이 소통합니다. 친절하게 댓글도 달고 메시지도 띄웁니다. 그래서 그에게는 아직도 수많은 팬들이 있습니다. 잘 던진 날엔 잘 던진 대로 못 던진 날엔 못 던진 대로 찬사와 격려와 위로의 글이 주렁주렁 달립니다.
한국 매스컴도 그의 메시지가 나올 때마다 빼먹지 않고 그럴 듯한 제목으로 덧칠 포장까지 해 소리통 구실을 톡톡히 합니다. 대변인도 이런 대변인은 없습니다.
소통의 노하우를 몰라 취임 3개월 만에 퇴진하라는 치도곤을 맞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은 벤치마킹해볼만 합니다.
가장 최근 띄운 박찬호의 메시지는 이렇게 끝을 맺습니다. "힘들어 하는 국민들에게 조금이나마 기쁨과 희망의 공을 던질 수 있어 다행이고 제가 여러분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다는 생각에 다시금 파이팅을 외쳐봅니다."
전날 원정에서 돌아와 보니 너무 글이 많아 다 읽지 못하고 아침부터 다시 읽으면서 감동의 기쁨을 만끽했다는 박찬호의 답신은 팬들을 넘어 이제 대국민 메시지입니다. 뭔 일이 있을 때마다 발표되는 정부 담화문은 저리 가라입니다.
그런데 박찬호는 사흘 후 다저스가 3개월여 만에 애리조나와 서부조 공동 선두를 이룬 가운데 열린 10일 플로리다전서 기대에 못 미쳤습니다. 4이닝 동안 9피안타 4실점하며 겨우 패전을 면했습니다. '회춘'의 소리를 듣고 있는 최근 가장 안 좋은 내용이었습니다.
경기 전날 굴 순두부를 먹었는데 탈이나 설사를 4차례나 해 링거를 두병이나 맞아야 할 정도로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답니다.
하지만 스스로 밝혔듯이 '집착'도 그에 못지않은 난조의 원인이었습니다. 평소 잘 하지 않던 보크를 하고 유리한 볼카운트서 조급한 승부로 홈런을 맞고 투수인 9번 타자에게 원스리에서 패전 위기의 추가 실점 적시타를 허용한 것들은 기실 그 부산물이었기 때문입니다.
기회 앞에선 누구나 그렇기에 박찬호의 견물생심을 탓할 수는 없습니다.
문제는 그것이 넘쳐흘렀을 때입니다. 평상심(平常心)을 깨뜨려버리는 탓입니다. 평상심이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감으로 바뀌는 순간 투수는 피칭 메커니즘이 무너지면서 무덤으로 들어갑니다.
언제부터인가 박찬호는 국민 투수도 아닌 시나브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투수가 됐습니다. 그가 정색하고 그렇게 이야기를 해도 하나도 어색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더욱 그를 집착의 골짜기로 떨어트리는 것도 바로 '그의 국민'일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그는 늘 그들에게 용기와 희망과 기쁨을 줘야 한다는 게 신념이 됐고 그렇게 또 던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 080825_스포츠7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