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최신기사

[스포츠 7가] 차라리 말씀들이나 마시지

지나가던 소가 웃을 이야기 한 토막. 베이징올림픽 금메달로 병역면제를 받은 한국 프로야구 선수가 4주 기본군사 훈련을 마친 후 감기몸살에 걸려 응급실 신세를 졌답니다. 1년 내내 강행군을 해오다 숙원의 군 문제를 해결하니 갑자기 긴장이 풀려 몸의 밸런스가 무너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덧붙였습니다. "4주 훈련도 이렇게 힘든데 2년이나 군 생활을 하는 군인 여러분이 참 존경스럽습니다." 한국 프로선수들에게 군 문제는 황소 같은 장정도 아무렇지 않게 거꾸러뜨리는 스트레스의 등짐입니다. 내년 3월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대표 팀 구성에 어려움이 많은가 봅니다. 해외파 선수들이 대거 불참을 선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군 문제가 가장 큽니다. 1회 대회 때와 달리 이번엔 4강에 오르더라도 병역 면제 혜택이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이미 군 문제를 해결한 선수들은 물론이고 그렇지 않은 선수들도 선뜻 응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나마 출전을 자원한 일부 선수들은 자신들의 절실한 필요 때문입니다. 야구 엑스포라고 할 수 있는 WBC를 통해 더 큰 리그로 진출하기 위해서입니다. 출전을 꺼리는 선수들을 나무랄 수는 없습니다. 소속 팀과의 문제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프로선수들은 몸이 재산이고 그 자신으로서 독립기업이니까요. 이익이 나지 않는 곳에 투자하지 않는 게 기업입니다. 그런데 이들에겐 궁색한 면도 없지 않습니다.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하더라도 나라가 부르면 기꺼이 달려가겠다던 선수는 아예 침묵으로써 발언 자체를 없던 일로 만들었습니다. 나중에 돌아오는 게 알맹이 없는 쭉정이뿐이란 것을 뒤늦게 알았기 때문입니다. 계약 기간이 '1년이냐 2년이냐'에 따라 출전할 수도 있고 못할 수도 있다며 절묘하게 퇴로를 열어놓은 선수도 있었습니다. 이들에 비하면 "팀을 위해 한 게 없어 못 나가겠다"는 선언은 에누리 없이 속마음을 털어놓아 낫습니다. 수틀리면 손바닥을 뒤집는 여반장(如反掌)의 세태야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고 프로선수들에게만 국한된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때만 되면 나라와 국민을 들먹이는 것도 그들이었기에 차라리 '말이나 말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2008.12.15. 21:13

[스포츠 7가] 월드시리즈의 '나무와 숲'

해마다 월드시리즈란 미니시리즈엔 테마가 있습니다. 비바람에 사상 첫 방송 사고(?)까지 나 엔딩이 매끄럽지 못하긴 했지만 올해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저는 '나무와 숲'을 주제어로 뽑았습니다. 먼저 나무 이야기입니다. 젊은 탬파베이와 그들보다 손위인 필라델피아의 승부를 가른 핵심어였습니다. 폭우 때문에 사상 첫 서스펜디드게임이 선언되고 근 50시간 만에 속개된 마지막 5차전이 좋은 예였습니다. 3-3 동점을 이루고 계속된 탬파베이의 7회초 공격 2사 2루. 이와무라 아키노리의 센터쪽으로 흐르는 2루쪽 깊숙한 안타가 나왔습니다. 이미 늦었다 판단한 필라델피아 2루수 체이스 어틀리는 1루로 던지는 척하다 2루 주자 제이슨 바틀렛에게 눈길을 돌렸습니다. 그런데 바틀렛은 어틀리의 위장 동작에 속아 3루를 돌아 내처 홈으로 달렸고 횡사하고 말았습니다. 탬파베이의 흐름이 끊기면서 필라델피아는 곧이은 말공격서 결승점을 뽑았습니다. 이처럼 나무를 보는데서 드러난 두 선수의 시야 차는 곧 양 팀의 격차이기도 했습니다. 큰 무대를 처음 밟은 선수들이 대부분인 탬파베이가 그만큼 정밀하지 못했던 반면 필라델피아는 그 틈조차도 놓치지 않았던 것입니다. 기록되지 않는 섬세한 플레이 하나로 희비가 갈리는 게 월드시리즈라면 필라델피아가 3경기서 1점차 승리를 하면서 4승1패로 챔피언에 오른 것은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필라델피아 선수들이 나무를 읽었다면 숲을 본 것은 버드 실릭 커미셔너였습니다. 그는 폭풍우에 수은주까지 급강하하는 악천후 속에서도 월드시리즈가 월드시리즈답게 막을 내리는 데 톡톡히 지휘자 노릇을 했습니다. 이미 3차전을 앞두고 일찌감치 양팀에 날씨와 관계없이 9회 완전 게임을 한다는 방침을 통보해 초유의 서스펜디드게임이 불러일으킬 잡음을 차단했습니다. "월드시리즈를 정규시즌 경기처럼 취급할 수 없다"는 그의 확고한 의지로 5차전은 노게임은커녕 라스베이거스 도박판처럼 5회까지 스코어로 챔피언이 가려지는 촌극도 피할 수 있었습니다. 비록 선수들에게 이런 사실을 미리 알려주지 않은 실수를 범했지만 "우리에겐 12개의 아웃카운트가 남아 있다"(찰리 매뉴얼)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무슨 불만이 있겠는가"(존 매든)라면서 가타부타 군말을 덧붙이지 않은 두 감독도 또 하나의 숲이었습니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것은 필라델피아 팬들이었습니다. 그들은 3차전 시작을 91분이나 기다리고도 다음날 새벽 1시47분까지 지켜보고 이틀을 넘긴 마지막 5차전까지도 스탠드를 가득 메우며 열렬히 하얀 손수건을 흔들었습니다. 그것은 28년만의 꿈을 이루게 한 숲의 장관이었습니다.

2008.11.03. 21:23

[스포츠 7가] 1/3 베이스볼과 탬파의 한계

현대 야구는 '1/3 베이스볼'입니다. 마지막 3이닝 7~9회를 어떻게 막아내느냐가 승부의 관건으로 등장한 지 이미 오래입니다. 한국과 일본 그리고 메이저리그가 따로 없습니다. 투수 분업화가 완전 정착하고 6이닝 3자책점만 해도 '퀄리티 스타트(Quality Start)'란 말을 들을 정도로 선발 투수들의 이닝 수가 짧아지면서 미들맨-셋업맨-마무리로 이어지는 불펜 투수들의 비중이 비약적으로 커졌습니다. 그것은 팀 성적으로도 여실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6년 전 자이언츠와 에인절스는 메이저리그 전체 2 3위의 막강한 불펜을 앞세워 월드시리즈에 올라 프란시스코 로드리게스가 혜성같이 나타난 에인절스가 샴페인을 터뜨렸습니다. 2004년 보스턴이 86년 만에 밤비노의 저주를 끊은 원동력도 불펜의 힘이었습니다. 테리 프랑코나 감독은 뉴욕 양키스와의 챔피언십시리즈에서 3연패로 몰리자 이후 매 경기 불펜을 풀가동하면서 미증유의 4연승을 거두고 월드시리즈까지 제패했습니다. 올해도 마찬가지입니다. 평균 자책점 3.19와 3.55로 2 5위의 튼실한 불펜을 갖춘 필라델피아와 탬파베이가 월드시리즈에 진출했습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양팀의 불펜 운용은 전혀 판이했습니다. 필라델피아가 단계를 밟아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였다면 탬파베이는 모든 것을 쏟아 붓는 '인해전술'이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필라델피아는 정규 시즌 41세이브 월드시리즈 1차전까지 포스트시즌 6세이브 등 경이적인 100% 구원 성공을 기록한 마무리 브래드 리지와 막강한 좌우 셋업맨(J.C 로메로와 라이언 매드슨)이 포진해 무리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반면 탬파베이는 트로이 퍼시벌이 허리 부상으로 이탈하면서 마무리가 사라져 그 때 그 때 상황에 따라 불펜을 꾸려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불펜의 출혈은 피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보스턴과의 챔피언십시리즈 5차전서 7-0의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역전패를 당했고 7차전서는 한 이닝에 4명의 투수를 투입하고 나서야 간신히 승리를 지켜낼 수 있었습니다. 당시 맨 끝에 나온 루키 데이비드 프라이스는 월드시리즈 2차전서도 마지막 2.1이닝을 책임져야 했습니다. 탬파베이는 붙박이 마무리 없이 월드시리즈에 오른 초유의 팀입니다. 거기에는 회복이 빠른 젊은 불펜의 힘이 결정적이었습니다. 하지만 1/3을 온전히 채워 최후의 승자까지 되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2008.10.27. 21:33

[스포츠 7가] 토리 감독의 쾌도난마

조직의 첫 단추는 인사(人事)입니다. 어떻게 사람을 뽑고 얼마나 적재적소에 배치하느냐로 조직의 닻이 올라가고 성패도 갈립니다. 그래서 인사가 만사(萬事)라고 했습니다. 조직을 이끄는 리더의 가장 큰 고민도 여기에 있습니다. LA 다저스가 시카고 컵스를 꺾고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시리즈에 올랐습니다. 1988년 월드시리즈 우승 이후 20년만입니다. 더욱 컵스는 정규시즌 97승을 올리며 내셔널리그 최강으로 꼽혀 100년 염소의 저주를 끊고 월드시리즈 우승을 바라본 팀이었는데 다저스가 예상을 뒤엎고 3연승으로 압도했습니다. 다저스의 압승을 놓고 여러 가지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저는 조 토리 감독의 '인사의 승리'라고 요약하고 싶습니다. 사실 다저스는 포스트시즌 진출을 확정지은 뒤 25명의 로스터를 구성하고 다시 베스트 9을 추리는데 적잖은 변수가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부상에서 회복한 노장 주전 선수들이 많은 탓이었습니다. 포스트시즌에서 노장들의 비중을 감안하면 선뜻 이들을 배제하기가 힘들었습니다. 또 그렇게 할 경우 시즌 내내 고생한 젊은 선수들과의 형평성 문제도 대두할 만했습니다. 자칫 팀을 적전분열로 내몰 수 있는 요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토리 감독이 쾌도난마(快刀亂麻) 했습니다. 그는 컵스와의 디비전시리즈에 앞서 일찌감치 42세의 최고참에 현역 최다승 투수인 그렉 매덕스를 선발이 아닌 불펜 투수로 기용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어떤 선수에 대해서도 감상적인 생각이 개입할 여지를 두지 않겠다"고 분명히 밝혔습니다. 과거의 화려함이 아닌 오직 자신이 지금 보고 판단한 컨디션을 기준으로 베스트 라인업을 구성하겠다는 뜻이었습니다. 전력의 극대화만을 생각한 그의 치우치지 않은 용병술은 매덕스에게만 해당한 게 아니었습니다. 노장들은 물론 젊은 선수들까지 예외가 없었습니다. 노마 가르시아파라 제프 켄트 그리고 사이토 다카하시가 부상으로 빠진 2개월 동안 마무리로 고생했던 조나단 브록스턴의 셋업맨 복귀까지 냉정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결국 다저스는 이들 대신 선발 출전한 제임스 로니와 블레이크 드위트 라파엘 퍼칼 등이 맹활약하면서 컵스를 가볍게 3연파했습니다. 간과할 수 없는 또 한 가지 사실은 다저스가 되는 집안이라는 것입니다. 감독의 처사에 불만을 품을만한 선수들이 군말 없이 따라주고 있습니다. 맷 캠프와 안드레 이디어에게 밀려난 외야수 후안 피에르는 여전히 이들 후배들에게 경험담을 들려주며 멘토 노릇을 하고 있고 브록스턴은 "내가 마무리를 맡느냐 셋업맨을 맡느냐는 전적으로 감독의 뜻"이라며 흔쾌히 받아들였습니다. 다저스가 남은 경기서도 승승장구하며 20년 숙원의 월드시리즈 우승까지 이룰 지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다저스가 인사가 만사라는 승리의 원리에서 한치도 빗겨가지 않고 진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2008.10.06. 21:21

[스포츠 7가] 다저스 위협할 '매니의 수비'

LA 야구에 가을이 왔습니다. 2년 만에 다저스가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것입니다. LA 언론들은 잔뜩 들떠 있습니다. '이번 주에 경기하는 것(디비전 시리즈)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사상 첫 에인절스와의 월드시리즈 맞대결'까지 들먹이면서 연일 추임새를 넣고 있습니다. 1988년 월드시리즈 우승 이후 4차례 포스트시즌에 나갔지만 1승12패로 모두 1라운드에서 탈락한 다저스였기에 LA 언론이나 팬들의 열망도 그만큼 클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 19년과 달리 이번 다저스의 도전이 더욱 LA를 들썩거리게 하는 것은 뭐니뭐니 해도 매니 라미레스의 존재 때문일 것입니다. 트레이드돼 오자마자 불방망이를 휘두르며 촛불 같았던 다저스를 화톳불로 타오르게 한 그는 LA 팬들의 20년 타는 목마름을 적셔줄 물장수로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습니다. 포스트시즌에서도 그의 활약은 독보적이었습니다. 클리블랜드와 보스턴 시절 9번이나 포스트시즌에 출전하고 월드시리즈도 4차례나 뛰었습니다. 총 95경기에 출전해 95안타 64타점을 쳐냈습니다. 24홈런은 포스트시즌 기록입니다. 보스턴은 덕분에 2004년 밤비노의 저주를 끊고 지난해까지 두 번이나 월드시리즈 우승을 했습니다. 하지만 보스턴의 가을과 LA의 가을이 전혀 다르듯 레드삭스의 라미레스와 다저스의 라미레스가 같을 수는 없습니다. 그 중 가장 우려스러운 대목이 그의 수비입니다. LA 언론은 대사를 앞두고 천기누설인양 하나같이 언급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의 어설픈 수비가 다저스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포스트시즌은 많은 점수가 나지도 않고 1~2점차로 승부가 결판나기 일쑤입니다. 그래서 어떤 점에선 공격보다 더 중요한 게 수비입니다. 기록되는 실책은 말할 것도 없고 눈에 보이지 않는 실책을 결코 용납하지 않습니다. 보스턴에서 라미레스의 좌익수 수비는 크게 문제될 게 없었습니다. 펜웨이파크 좌측엔 '그린 몬스터'라는 또 하나의 거대한 글러브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내셔널리그로 건너와 처음으로 치르는 이번 포스트시즌에 그의 뒤엔 아무런 배경이 없습니다. 오히려 구장은 훨씬 더 넓어졌습니다. 실제 라미레스는 정규 시즌에서 자신의 뒤로 넘어가거나 조금이라도 오른쪽으로 빠지는 타구는 여지없이 장타를 만들어줬습니다. 어슬렁거리는 느린 동작 결코 강하지도 정확하지도 않은 어깨 탓이었습니다. 다저스가 단 한 팀도 만만히 볼 수 없는 전력이고 그래서 매경기 박빙 승부가 불 보듯 하다면 라미레스의 수비는 방망이만큼이나 가공할 만합니다.

2008.09.29. 21:40

[스포츠 7가] 여름에 만난 휠체어 아저씨

지난 여름도 무더웠습니다. LA 다저스에 온 매니 라미레스가 치렁치렁한 망나니 머리를 짧게 땋아 올릴 정도였으니까요.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20년 20일을 복역한 신영복 선생은 여름 징역살이를 형벌중의 형벌이라고 했습니다. '여름 징역은 바로 옆 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 사람을 단지 37도의 열 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미워한다는 사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미움 받는다는 사실은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그의 옥중서신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중앙일보사에는 뒷마당이 있습니다. 주차장이면서 직원들의 작은 쉼터이기도 합니다. 그날도 어김없이 마감 중 담배가 손을 끌어당겨 나갔습니다. 휠체어를 탄 아저씨가 홀로 있었습니다. 하의를 반쯤 내리고 하얀 허벅지를 드러낸 채 그는 쉬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어색한 분위기를 넘기려고 어줍지 않게도 아는 척을 했습니다. "욕창 때문에 많이 힘드시죠?" 한국에서 휠체어를 탄 윗분이 여름이면 고생하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 있어야 하거나 뇌척수신경의 장애로 체위를 자유롭게 바꿀 수 없는 분들에게 체중의 압박으로 압통과 함께 피부가 괴사하고 악취의 분비물이 나오는 욕창만큼이나 여름의 불청객도 없습니다. 몸이 성한 사람들도 괜한 짜증이 나고 기진맥진하는 무더운 여름살이 형벌중의 형벌입니다. 고통의 문외한으로부터 들은 뜻밖의 말에 공명한 것인가요. 그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한마디를 툭 던지고 승강기를 작동시켜 차에 올랐습니다. "문제는 이러고도 돈을 벌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지난주 베이징 장애인올림픽이 막을 내렸습니다. 메달을 딴 한국 선수들의 소감도 하나같이 다르지 않았습니다. 메달의 기쁨보다 앞으로의 생계에 대한 걱정들 뿐이었습니다. 힘겨운 몸짓 속에서도 동아줄을 놓지 않고 살아가는 그들을 보면서 지금 내 삶의 곁누르기에서 새어나오는 신음 소리는 투정이거나 넋두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고 얼굴이 붉어졌습니다.

2008.09.22. 22:26

[스포츠 7가] '매니 라미레스 죽이기'

일어탁수(一魚濁水)가 아니라 일용청수(一龍淸水)입니다. 뽕밭이던 LA 다저스는 푸른 바다가 됐습니다. 4월4일 단 하루 단독 선두에 오른 뒤 153일을 그 밑에서 맴돌던 다저스가 애리조나를 제치고 그 자리를 되찾은 데는 매니 라미레스라는 용의 가세가 결정적입니다. 이적 후 35경기서 타율 4할1푼 11홈런 34타점의 불방망이를 휘둘렀습니다(다저스는 19승16패). 6일 애리조나전서는 선제 3점 홈런과 2루타로 5타점을 뿜어 마침내 0.5경기차로 뒤집고 1위를 탈환하는 기폭제가 됐습니다. 상대 팀들은 그가 타석에 들어서면 기껏해야 고의4구로 거르는 것 외에 뚜렷한 방책이 없는 모습입니다. 이것도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역부족인 재앙으로 번지기 일쑤입니다. 그의 앞뒤로 포진한 타자들을 반드시 잡아야 한다는 압박 속에 승부를 하다보니 혹 떼려다 더 큰 혹을 붙이고 마는 꼴이 속출하는 것입니다. 이는 거꾸로 다저스가 올시즌 최다 8연승을 거두는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습니다. 맞붙자니 두렵고 도망가도 막다른 골목인 라미레스를 잡아낼 묘책은 없는 것인가요? 타석에서 그의 위치는 늘 홈플레이트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져 있습니다. 또 투수 쪽을 향해 왼발을 들었다가 내딛으면서 칩니다. 왼발을 들었다 내딛으면서 하는 타격은 그의 영리함의 소산입니다. 투수들이 큰 것을 안 맞으려 '열이면 열' 바깥쪽 승부만 해와 그에 대처하면서 체득한 노하우입니다. 그는 바깥쪽 공을 집중적으로 노려 밀고 잡아당기면서 장타를 양산합니다. 주목해야할 것은 배터 박스의 절반에 서는 그의 타석 위치입니다. 이것은 그 스스로 몸쪽 공에 대한 취약점을 드러내는 대목입니다. 자신의 스윙 궤적이 커 몸쪽 공에 대처하기가 쉽지 않은 까닭입니다. 실제 그의 삼진도 대부분 몸쪽을 파고드는 높은 패스트볼을 헛스윙해 나오고 있습니다. 역설적으로 그를 잡는 해법은 장판교에서 장팔사모를 휘두르며 선 장비처럼 그가 잔뜩 기다리고 있는 바깥쪽이 아니라 몸쪽에 있는 것입니다. 성공 사례도 있습니다. 필라델피아는 8월 두 번째 대결에서 철저한 몸쪽 승부를 선언하고 14타수 2안타(0홈런 0타점 4삼진)로 막아내며 첫 대결 11타수 4안타(1홈런 5타점 3삼진)의 패배를 갚고 다저스에 당한 4연패도 고스란히 되돌려줬습니다. 물론 투수에게 몸쪽 승부는 위험을 수반합니다. 자칫 핀트가 안 맞으면 가운데로 몰려 장타로 연결되기 십상입니다. 하지만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 합니다.

2008.09.08. 21:53

[스포츠 7가] 달라진 한국 야구의 힘

한국 야구가 베이징올림픽 금메달을 따냈습니다. 100년이 조금 넘는 한국 야구사의 '일대 사건'입니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명실상부한 세계 제패입니다. 한국 야구는 1977년 니카라과 대륙간컵 1982년 서울 세계선수권대회서 두 차례 정상에 올랐지만 모두 '최강' 쿠바가 빠진 '반쪽' 우승이었습니다. 그런 역사적인 가치와 함께 야구적으로도 중차대한 의미를 새긴 금메달이었습니다. 바로 한국 야구가 힘대 힘으로 맞서 세계를 정복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동안 한국 야구는 맨땅의 정신력 잔 기술의 스몰볼 희생의 야구였습니다. 힘에 부치기에 근성을 요구하고 정공법이 아닌 변칙이 필요했으며 보내기 번트를 대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습니다. 일본과의 준결승전 쿠바와의 결승전에서 그 힘을 오롯이 보여줬습니다. 일본전 2-2 동점이던 8회초 무사 1루. 당연히 보내기 번트가 예상됐으나 강공으로 밀어 붙였습니다. 그리고 1사 후 4번 타자 이승엽이 결승 좌월 투런 홈런을 꽂았습니다. 앞서 일본도 2-1로 앞선 6회말 무사 1루의 호기를 잡았습니다. 일본 감독의 선택도 강공이었습니다. 그러나 4 5번타자가 거푸 범타로 물러났습니다. 절체절명의 승부처에서 양팀 모두 강공으로 맞짱을 떴는데 한국이 승리한 것입니다. 쿠바와의 결승전 3-2로 앞선 9회말 1사 만루의 위기. 쿠바는 동점으로 가는 스퀴즈 번트가 아닌 한방을 택했습니다. 하지만 마무리 정대현의 공격적인 투구에 막혀 유격수 병살 땅볼이 나오면서 게임 끝이었습니다. 한국은 수비도 정상 포메이션을 고수했습니다. 벼랑 끝에서도 힘에 힘으로 맞서 금메달을 지켜낸 것입니다. 스몰볼이 아닌 빅볼 희생이 아닌 영웅을 낳는 한국 야구의 변화 한복판에 김경문 감독이 있습니다. 그는 예선전부터 감독이 경기를 만져 점수를 제조해내는 구태(?)의 야구를 하지 않았습니다. 차라리 방임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철저히 선수에게 맡기는 야구를 했습니다. '뚝심과 배짱'의 승부사라는 칭송도 그래서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줄곧 모험과 도박에 가까운 강공으로 일관한 그의 야구는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말합니다. 개인적으로 김 감독에 대한 평가는 유보입니다. 그보다 더 중요하고 명백한 사실이 있습니다. 뚝심이 됐건 막가파가 됐건 한국 야구는 이제 한 개인이 아닌 총체적 기량으로써 손색없는 세계 정상이기 때문입니다.

2008.08.25. 21:56

[스포츠 7가] 라미레스와 맥코트 구단주

'여기도 매니 저기도 매니'. LA가 온통 매니 라미레스(36) 이야기 뿐입니다. 신문.방송.인터넷이 연일 도배질을 하고 다저스타디움에서는 그의 이름만 들립니다. 트레이드 마감 직전 극적으로 그를 영입하는데 성공한 다저스는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습니다. 이적 3경기서 연이틀 홈런을 포함해 13타수 8안타 5타점을 뿜어낸 무시무시한 화력 덕분에 조 선두 애리조나와의 승차를 다시 1경기로 좁혔습니다. 뿐만아니라 흥행도 대박을 터뜨렸습니다. 평균 관중 5만4252명. 다저스가 3경기 연속 5만 관중을 기록한 것은 3개월만에 처음입니다. 다저스의 라미레스 영입은 '식은 죽 먹기'요 횡재였습니다. 보스턴이 남은 연봉 700만 달러를 모두 부담하는데다 어느 팀이나 탐내는 젊은 트리오(맷 켐프 제임스 로니 안드레 이디어)를 한명도 잃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조 토리 감독도 "그런 선수를 얻는다면 어떤 감독이 마다하겠느냐"고 입이 함지박만하게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롭게 지켜볼 일이 있습니다. 투수 교체 때 그라운드를 벗어나 셀룰라폰을 걸지 않나 중계 플레이되는 공을 중간에서 다이빙캐치해 장내 홈런을 만들어주지 않나 팀에 대한 불만 때문에 멀쩡한 무릎이 아프다면서 경기를 보이콧하는 등 갖가지 기행에 넌더리가 난 보스턴이 '참을만큼 참았다'며 내친 그의 남은 계약 기간입니다. 그는 트레이드되면서 내년과 내후년에 걸려 있는 구단의 옵션을 없애버렸습니다. 자유계약선수가 되기 위해서였습니다. 플레이오프 진출이 시급한 다저스는 웬떡이냐며 데려왔지만 쓸 수 있는 시간은 불과 2~3개월입니다. LA 언론은 그러면 어떠냐 공짜로 데려와 플레이오프 때까지만 써도 남는 장사라고 합니다. 아예 떠나는 것을 기정사실로 여기고 말썽없이 열심히 운동만 해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친절하게도 그것이 자신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라는 조언까지 덧붙여서 말입니다. 보스턴에서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망나니 취급을 받았지만 LA에 와서는 예측불허의 행태가 최고의 연예인 기질로 둔갑하여 할리우드 진출도 노려볼만하다는 극찬으로 바뀌었습니다. 라미레스는 스프링캠프에서 숙박비를 아끼려 호텔이 아닌 '인(Inn)'에서 잘 정도로 돈에 관해서도 최고의 해결사로 알려져 있습니다. 보스턴과 갖은 기행으로 마찰을 일으키고 트레이드의 전제조건으로 구단 옵션의 삭제를 내세운 것도 다시 한번 억소리가 나는 계약을 노려서입니다. 그의 뒤에는 에이전트 스캇 보라스까지 있습니다. 하지만 다저스 구단주 프랭크 맥코트 또한 돈에 관한 한 전문가입니다. 얼마전 클리블랜드에서 C.C 사바시아가 트레이드 시장에 나왔을 때 다저스 내부에서 시즌 후 FA가 되는 비싼 몸값 때문에 결코 그를 잡을 수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올 정도였습니다. 당장 다저스의 성적도 그렇지만 비슷한 두 사람이 시즌 후 보일 행보도 흥미롭기 짝이 없습니다.

2008.08.04. 22:04

[스포츠 7가] '진상' 될 베이징 올림픽 야구

모든 것은 움직이고 변화합니다. 변화는 흐름입니다. 막을 수가 없습니다. 흐름 그 안에 그 무엇으로도 제어할 수 없는 운동 에너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야구는 가장 흐름의 스포츠입니다. 한 경기에서도 수 많은 변화의 연속입니다. 봄이 가면 여름이 오는 식도 아닙니다. 갑자기 봄에서 겨울로 건너뛰는가 하면 곧바로 여름이 옵니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고 꽃이 지는 게 야구입니다. 열흘 앞으로 다가온 베이징올림픽에서 '희한한' 야구가 등장할 모양입니다. 연장 10회까지 승부가 안 나면 11회부터 양팀 모두에 똑같이 무사 1 2루의 기회를 준 뒤 거기서 나오는 점수로 이기고 지고를 가르는 '승부치기'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때부터는 타순도 마음대로 짜고 승부가 날 때까지 마냥 'Go'라고 합니다. 미국 사람이 회장인 국제야구연맹의 아이디어라고 합니다. 그 사람에 따르면 야구는 시간 제한이 없어 안전요원 배치 이동 약물검사 TV 중계 등에서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야기시켰고 그래서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도 제외된 만큼 다시 정식종목이 되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채택이었다는 것입니다. 당장 일본이 볼멘소리를 냈습니다. 대회를 2주 남겨놓고 출전국들과 협의도 없이 규칙을 바꾸는 게 말이 되느냐며 이미 항의 절차를 밟고 있습니다. 한국은 재빠르게 주판알을 튕기며 대책수립에 골몰하고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투수들의 퀵 모션이 빠르고 빠른 선수들이 많은 한국에 승부치기가 불리할 게 없다고 하는데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입니다. 동등한 조건이라면 투.타에서 앞선 팀에 유리한 것은 불문가지입니다. 절차의 부당성과 유.불리는 차치하고 승부치기가 황당하기 짝이 없는 것은 야구의 본질을 깡그리 부정한 발상이란 점입니다. 야구는 가변성이 핵심입니다. 둥근 배트로 둥근 공을 치기에 그렇습니다. 변화의 가능성이 항상 열려 있기에 시간의 제한을 두지 않고 끝장을 볼 때까지 가는 것입니다. 야구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인생에 자주 비유되고 각본 없는 드라마의 맨꼭대기에 자리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흐름 속에 내재된 변화의 가능성과 연속성을 인위적으로 막고 다시 백지에서 시작한다는 것은 자연보다 더 자연스러운 야구의 본성을 죽이는 짓입니다. 허름하고 추레한 것을 속된 말로 '진상'이라고 합니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참으로 '진상'인 야구가 벌어지게 생겼습니다.

2008.07.28. 21:49

[스포츠 7가] 미셸 위에겐 '어처구니가 없다'

'어처구니'는 지붕 위에 올리는 작은 동물 돌 인형입니다. 옛날에 궁궐이나 집의 위엄을 살리고 잡귀를 쫓기 위해 설치한 것입니다. 그런데 집짓는 사람들이 의당 있어야 할 이것을 깜박 잊기 일쑤였답니다. 그래서 생겨난 말이 '어처구니가 없다'입니다. 지금은 참으로 기가 막히고 어이없을 때 그렇게 말합니다. 엊그제 LPGA 투어에서 바로 그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미셸 위가 2라운드를 마친 후 사인을 하지 않고 스코어 카드를 제출해 실격을 당하고만 것입니다. 그동안 부진을 씻어내고 모처럼 좋은 성적(3라운드까지 17언더파 단독 2위)을 올려 데뷔 첫 승도 노려볼 만한 와중이어서 아쉽기 짝이 없었습니다. 대회관계자에 따르면 실격 통보를 받는 순간 그의 표정은 마치 '이 세상에 산타크로스 할아버지는 없다'는 이야기를 들은 어린 아이 같았다고 합니다. 어처구니가 없다는 말의 기원이 그렇고 하물며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는데 실수란 누구나 저지를 수 있습니다. 박세리나 한희원 같은 베테랑들도 그 비슷한 실수를 했습니다. 문제는 실수의 반복입니다. 미셸 위는 3년 전 프로 데뷔전에서도 볼 드롭 규정을 어긴 게 취재 기자의 제보로 알려져 실격을 당했습니다. 더욱 큰 문제는 그것이 그의 무지 내지 부주의의 소산이란 점입니다. 그는 그 때도 이번에도 똑같이 말했습니다. "문제가 되지 않을 줄 알았다." 16세 때나 어엿한 명문대생이 된 지금이나 룰을 정확히 모르고 가볍게 여기기는 한가지로 하나도 달라진 게 없습니다. 미셸 위는 분명 여느 선수들과 다릅니다. 예외적인 선수입니다. 아버지의 추상같은 명령에 벌벌 떨고 울면서 공동묘지를 다녀오는 훈련을 받아본 적도 없고 어머니가 남의 집 가사 도우미를 하며 손에 찬물을 묻히는 뒷바라지를 하지도 않았습니다. 대신 그는 일찌감치 매스컴의 주목은 있는 대로 다 받고 고급 SUV를 타고 골프장을 오갔습니다. 세상 물정을 알기도 전에 수천만 달러의 돈도 벌었습니다. 바늘구멍 통과하기라는 퀄리파잉스쿨도 거치지 않았는데 여기저기서 초청하지 못해 아직도 안달합니다. 심하게 말하면 그렇게 치외법권(?)적인 웃자람이 결코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 그린에서 어처구니가 없는 실수로 돌출하는 것은 아닐까요. 어처구니가 없어서 한번 품어본 생각입니다.

2008.07.21. 21:15

[스포츠 7가] 차라리 국민을 던져 버려라

박찬호만큼 '소통'을 중시하는 선수도 없을 것입니다. 시즌 중에도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팬들과 끊임없이 소통합니다. 친절하게 댓글도 달고 메시지도 띄웁니다. 그래서 그에게는 아직도 수많은 팬들이 있습니다. 잘 던진 날엔 잘 던진 대로 못 던진 날엔 못 던진 대로 찬사와 격려와 위로의 글이 주렁주렁 달립니다. 한국 매스컴도 그의 메시지가 나올 때마다 빼먹지 않고 그럴 듯한 제목으로 덧칠 포장까지 해 소리통 구실을 톡톡히 합니다. 대변인도 이런 대변인은 없습니다. 소통의 노하우를 몰라 취임 3개월 만에 퇴진하라는 치도곤을 맞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은 벤치마킹해볼만 합니다. 가장 최근 띄운 박찬호의 메시지는 이렇게 끝을 맺습니다. "힘들어 하는 국민들에게 조금이나마 기쁨과 희망의 공을 던질 수 있어 다행이고 제가 여러분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다는 생각에 다시금 파이팅을 외쳐봅니다." 전날 원정에서 돌아와 보니 너무 글이 많아 다 읽지 못하고 아침부터 다시 읽으면서 감동의 기쁨을 만끽했다는 박찬호의 답신은 팬들을 넘어 이제 대국민 메시지입니다. 뭔 일이 있을 때마다 발표되는 정부 담화문은 저리 가라입니다. 그런데 박찬호는 사흘 후 다저스가 3개월여 만에 애리조나와 서부조 공동 선두를 이룬 가운데 열린 10일 플로리다전서 기대에 못 미쳤습니다. 4이닝 동안 9피안타 4실점하며 겨우 패전을 면했습니다. '회춘'의 소리를 듣고 있는 최근 가장 안 좋은 내용이었습니다. 경기 전날 굴 순두부를 먹었는데 탈이나 설사를 4차례나 해 링거를 두병이나 맞아야 할 정도로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답니다. 하지만 스스로 밝혔듯이 '집착'도 그에 못지않은 난조의 원인이었습니다. 평소 잘 하지 않던 보크를 하고 유리한 볼카운트서 조급한 승부로 홈런을 맞고 투수인 9번 타자에게 원스리에서 패전 위기의 추가 실점 적시타를 허용한 것들은 기실 그 부산물이었기 때문입니다. 기회 앞에선 누구나 그렇기에 박찬호의 견물생심을 탓할 수는 없습니다. 문제는 그것이 넘쳐흘렀을 때입니다. 평상심(平常心)을 깨뜨려버리는 탓입니다. 평상심이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감으로 바뀌는 순간 투수는 피칭 메커니즘이 무너지면서 무덤으로 들어갑니다. 언제부터인가 박찬호는 국민 투수도 아닌 시나브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투수가 됐습니다. 그가 정색하고 그렇게 이야기를 해도 하나도 어색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더욱 그를 집착의 골짜기로 떨어트리는 것도 바로 '그의 국민'일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그는 늘 그들에게 용기와 희망과 기쁨을 줘야 한다는 게 신념이 됐고 그렇게 또 던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2008.07.14. 21:52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