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탁수(一魚濁水)가 아니라 일용청수(一龍淸水)입니다. 뽕밭이던 LA 다저스는 푸른 바다가 됐습니다.
4월4일 단 하루 단독 선두에 오른 뒤 153일을 그 밑에서 맴돌던 다저스가 애리조나를 제치고 그 자리를 되찾은 데는 매니 라미레스라는 용의 가세가 결정적입니다.
이적 후 35경기서 타율 4할1푼 11홈런 34타점의 불방망이를 휘둘렀습니다(다저스는 19승16패). 6일 애리조나전서는 선제 3점 홈런과 2루타로 5타점을 뿜어 마침내 0.5경기차로 뒤집고 1위를 탈환하는 기폭제가 됐습니다.
상대 팀들은 그가 타석에 들어서면 기껏해야 고의4구로 거르는 것 외에 뚜렷한 방책이 없는 모습입니다. 이것도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역부족인 재앙으로 번지기 일쑤입니다.
그의 앞뒤로 포진한 타자들을 반드시 잡아야 한다는 압박 속에 승부를 하다보니 혹 떼려다 더 큰 혹을 붙이고 마는 꼴이 속출하는 것입니다. 이는 거꾸로 다저스가 올시즌 최다 8연승을 거두는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습니다.
맞붙자니 두렵고 도망가도 막다른 골목인 라미레스를 잡아낼 묘책은 없는 것인가요?
타석에서 그의 위치는 늘 홈플레이트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져 있습니다. 또 투수 쪽을 향해 왼발을 들었다가 내딛으면서 칩니다.
왼발을 들었다 내딛으면서 하는 타격은 그의 영리함의 소산입니다. 투수들이 큰 것을 안 맞으려 '열이면 열' 바깥쪽 승부만 해와 그에 대처하면서 체득한 노하우입니다. 그는 바깥쪽 공을 집중적으로 노려 밀고 잡아당기면서 장타를 양산합니다.
주목해야할 것은 배터 박스의 절반에 서는 그의 타석 위치입니다. 이것은 그 스스로 몸쪽 공에 대한 취약점을 드러내는 대목입니다. 자신의 스윙 궤적이 커 몸쪽 공에 대처하기가 쉽지 않은 까닭입니다. 실제 그의 삼진도 대부분 몸쪽을 파고드는 높은 패스트볼을 헛스윙해 나오고 있습니다.
역설적으로 그를 잡는 해법은 장판교에서 장팔사모를 휘두르며 선 장비처럼 그가 잔뜩 기다리고 있는 바깥쪽이 아니라 몸쪽에 있는 것입니다.
성공 사례도 있습니다. 필라델피아는 8월 두 번째 대결에서 철저한 몸쪽 승부를 선언하고 14타수 2안타(0홈런 0타점 4삼진)로 막아내며 첫 대결 11타수 4안타(1홈런 5타점 3삼진)의 패배를 갚고 다저스에 당한 4연패도 고스란히 되돌려줬습니다.
물론 투수에게 몸쪽 승부는 위험을 수반합니다. 자칫 핀트가 안 맞으면 가운데로 몰려 장타로 연결되기 십상입니다. 하지만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 합니다.
# 080825_스포츠7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