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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7가] 여름에 만난 휠체어 아저씨

Los Angeles

2008.09.22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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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도 무더웠습니다. LA 다저스에 온 매니 라미레스가 치렁치렁한 망나니 머리를 짧게 땋아 올릴 정도였으니까요.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20년 20일을 복역한 신영복 선생은 여름 징역살이를 형벌중의 형벌이라고 했습니다.

'여름 징역은 바로 옆 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 사람을 단지 37도의 열 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미워한다는 사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미움 받는다는 사실은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그의 옥중서신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중앙일보사에는 뒷마당이 있습니다. 주차장이면서 직원들의 작은 쉼터이기도 합니다.

그날도 어김없이 마감 중 담배가 손을 끌어당겨 나갔습니다. 휠체어를 탄 아저씨가 홀로 있었습니다. 하의를 반쯤 내리고 하얀 허벅지를 드러낸 채 그는 쉬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어색한 분위기를 넘기려고 어줍지 않게도 아는 척을 했습니다.

"욕창 때문에 많이 힘드시죠?" 한국에서 휠체어를 탄 윗분이 여름이면 고생하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 있어야 하거나 뇌척수신경의 장애로 체위를 자유롭게 바꿀 수 없는 분들에게 체중의 압박으로 압통과 함께 피부가 괴사하고 악취의 분비물이 나오는 욕창만큼이나 여름의 불청객도 없습니다.

몸이 성한 사람들도 괜한 짜증이 나고 기진맥진하는 무더운 여름살이 형벌중의 형벌입니다.

고통의 문외한으로부터 들은 뜻밖의 말에 공명한 것인가요. 그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한마디를 툭 던지고 승강기를 작동시켜 차에 올랐습니다. "문제는 이러고도 돈을 벌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지난주 베이징 장애인올림픽이 막을 내렸습니다. 메달을 딴 한국 선수들의 소감도 하나같이 다르지 않았습니다. 메달의 기쁨보다 앞으로의 생계에 대한 걱정들 뿐이었습니다.

힘겨운 몸짓 속에서도 동아줄을 놓지 않고 살아가는 그들을 보면서 지금 내 삶의 곁누르기에서 새어나오는 신음 소리는 투정이거나 넋두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고 얼굴이 붉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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