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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7가] 월드시리즈의 '나무와 숲'

Los Angeles

2008.11.03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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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겸/스포츠부장
해마다 월드시리즈란 미니시리즈엔 테마가 있습니다. 비바람에 사상 첫 방송 사고(?)까지 나 엔딩이 매끄럽지 못하긴 했지만 올해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저는 '나무와 숲'을 주제어로 뽑았습니다.

먼저 나무 이야기입니다. 젊은 탬파베이와 그들보다 손위인 필라델피아의 승부를 가른 핵심어였습니다.

폭우 때문에 사상 첫 서스펜디드게임이 선언되고 근 50시간 만에 속개된 마지막 5차전이 좋은 예였습니다.

3-3 동점을 이루고 계속된 탬파베이의 7회초 공격 2사 2루. 이와무라 아키노리의 센터쪽으로 흐르는 2루쪽 깊숙한 안타가 나왔습니다. 이미 늦었다 판단한 필라델피아 2루수 체이스 어틀리는 1루로 던지는 척하다 2루 주자 제이슨 바틀렛에게 눈길을 돌렸습니다.

그런데 바틀렛은 어틀리의 위장 동작에 속아 3루를 돌아 내처 홈으로 달렸고 횡사하고 말았습니다. 탬파베이의 흐름이 끊기면서 필라델피아는 곧이은 말공격서 결승점을 뽑았습니다.

이처럼 나무를 보는데서 드러난 두 선수의 시야 차는 곧 양 팀의 격차이기도 했습니다. 큰 무대를 처음 밟은 선수들이 대부분인 탬파베이가 그만큼 정밀하지 못했던 반면 필라델피아는 그 틈조차도 놓치지 않았던 것입니다.

기록되지 않는 섬세한 플레이 하나로 희비가 갈리는 게 월드시리즈라면 필라델피아가 3경기서 1점차 승리를 하면서 4승1패로 챔피언에 오른 것은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필라델피아 선수들이 나무를 읽었다면 숲을 본 것은 버드 실릭 커미셔너였습니다. 그는 폭풍우에 수은주까지 급강하하는 악천후 속에서도 월드시리즈가 월드시리즈답게 막을 내리는 데 톡톡히 지휘자 노릇을 했습니다.

이미 3차전을 앞두고 일찌감치 양팀에 날씨와 관계없이 9회 완전 게임을 한다는 방침을 통보해 초유의 서스펜디드게임이 불러일으킬 잡음을 차단했습니다.

"월드시리즈를 정규시즌 경기처럼 취급할 수 없다"는 그의 확고한 의지로 5차전은 노게임은커녕 라스베이거스 도박판처럼 5회까지 스코어로 챔피언이 가려지는 촌극도 피할 수 있었습니다.

비록 선수들에게 이런 사실을 미리 알려주지 않은 실수를 범했지만 "우리에겐 12개의 아웃카운트가 남아 있다"(찰리 매뉴얼)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무슨 불만이 있겠는가"(존 매든)라면서 가타부타 군말을 덧붙이지 않은 두 감독도 또 하나의 숲이었습니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것은 필라델피아 팬들이었습니다. 그들은 3차전 시작을 91분이나 기다리고도 다음날 새벽 1시47분까지 지켜보고 이틀을 넘긴 마지막 5차전까지도 스탠드를 가득 메우며 열렬히 하얀 손수건을 흔들었습니다. 그것은 28년만의 꿈을 이루게 한 숲의 장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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