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청년이 한국 이태원 거리를 걷다 지나가던 럭서리 스포츠카 포르셰911의 뒷모습에 반하게 된다. 자동차 디자인을 가르치는 학교가 있다는 소식에 유학길에 오른 이 청년이 문들 두드린 곳은 디자인 명문 '아트센터'.
14년 뒤 제너럴모터스(GM)의 디자인 매니저가 된 이 청년이 최근 2010년형 카마로 런칭행사를 위해 노스할리우드 GM 디자인센터를 방문했다.
영화 '트랜스포머'에서 주인공 역할을 한 자동차 '범블비'의 모델이며 GM의 차세대 주력차종으로 부활하는 카마로를 디자인한 이상엽(38)씨다.
"홍익대학교에서 조소를 공부했어요. 자동차 디자인도 흙을 빚어 깍고 다듬는 게 조소와 유사하더군요. 자동차를 조각해 보자고 생각했지요. 기회가 보였어요."
아트센터에서 자동차 디자인을 전공한 이상엽씨는 졸업 후 페라리 디자인 스튜디오인 이탈리아 '피린파리너' 독일 포르쉐 자동차 디자이너를 거쳐 1999년부터 9년째 GM에서 근무하고 있다.
당시만 해도 한국인 자동차 디자이너는 이씨 등 2명에 불과했다. 지금은 디트로이트 GM의 디자인센터에서 일하는 디자이너 200여 명 중 무려 40여명이 한인이다. 창의적인 디자인 감각과 함께 손재주가 뛰어나며 열정을 가지고 일하는 한인 디자이너들이 자동차 디자인 분야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는 게 GM관계자의 평가다.
콜벳 캐딜락16 컨셉카 뷰익 컨셉카 디자인에 참여했던 이씨가 본격적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카마로 컨셉카를 디자인하며서 부터.
1969년 출시된 카마로는 머스탱과 함께 미국 머슬카를 대표하면서 클래식 자동차로 인정받았지만 2003년 단종됐다. 생산이 중단됐던 카마로를 부활시킨 것이 바로 그다.
GM은 2006년 디트로이트와 LA오토쇼에서 동시에 카마로 컨셉카를 일반에 처음 공개했다. 당시 LA컨벤션센터에선 한인 1.5세 디자이너 김성수씨가 카마로 컨셉카의 베일을 걷어 올렸고 같은 시간 디트로이트에선 이상엽씨가 카마로를 취재하던 언론들로 부터 집중조명을 받았다. 〈본지 2006년 1월9일자 중앙경제 1면>
카마로 컨셉카가 '2006년 올해의 컨셉카'로 선정되는 등 상품성을 인정받자 GM은 컨셉카를 양산하기로 결정 2009년 초 2010년형 카마로를 출시한다는 계획이다.
"자동차 디자이너로서 카마로와 같이 역사와 문화가 있는 명차를 재 디자인 한다는 것은 굉장한 영광입니다."
이씨가 디자인한 카마로는 미국 스포츠카 답게 전반적을 공격적인 디자인 컨셉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머스탱이 복고풍으로 재탄생 한대 반해 카마로는 모던한 디자인이 많이 가미됐다. 1969년 카마로 원형의 역사성을 살리면서도 현재 소비자들의 취향에 맞도록 모던한 느낌을 강조했다는 게 이씨의 설명이다.
카마로 등이 전성기를 구가했던 1960~70년대 쌓아 올렸던 브랜드 가치를 지키지 못해 미국차가 고전하고 있다고 지적한 이씨는 반면 미국시장에서 한국 차의 성장은 '놀랍다'고 평가했다.
"현대차 브랜드는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 정말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GM에서 일하고 있어 현대차는 분명 경쟁차종이지만 현대차의 빠른 성장은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을 느낄 정도입니다."
이씨는 한국차를 위한 조언을 해달라는 주문에 "한국차의 완성도는 이미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며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 캐릭터가 풍부한 한국차 고유의 디자인을 추구할 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