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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선 후보들 '말 바꾸기'…누가 더 타격 클까

Los Angeles

2008.08.08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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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4년 대선 당시 존 케리 후보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이라크전과 애국법 등 10여가지의 사안에 대해 선거운동 전후 입장을 바꿨던 케리는 공화당과 언론의 빗발치는 공격으로 유권자들의 인심을 잃은 값을 톡톡히 치렀다. 조지 부시 대통령을 두차례 당선으로 이끈 정치참모 칼 로브는 "케리의 입장 바꾸기(flip-flop)는 더할 나위 없는 선물이었다"고 회상했을 정도다.

그러나 이번 대선에서는 칼 로브가 다시 돌아오더라도 같은 전략을 쓰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민주 공화 양 당의 대선후보들이 앞다투어 예전 발언을 뒤엎고 있기 때문이다. 각 후보들은 서로 번복한 예를 지적하며 공격하고는 있지만 두 후보 모두 말을 바꾸고 있어 예전처럼 심각한 타격을 주지는 못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 전략 비축유(SPR)
"비상시를 위해 남겨 놓아야" -> "개스값 낮추려면 쓰자"

◇ 해외정보감시법
"통과 방해하겠다" -> "개정안이니깐 찬성"

◇ 공공 선거보조금
"매케인이 받으면 나도 받겠다" -> "로비 휘둘리지 않기 위해 안받겠다"







존 매케인

◇ 부시 세제법
"부유층에 과도한 혜택" -> "만료되면 세금 인상이다"

◇ 낙태
"낙태 허락한 '로 대 웨이드' 찬성" -> "대법원 잘못, 번복되어야"

◇ 근해 석유시추
"금지해야" -> "의존 줄이려면 재개해야"








▶ 영원한 것은 없다 변신만이 살길이다

주류 언론들은 두 후보의 입장 번복을 지적하면서도 "급변하는 상황에 두 후보 모두 적응하는 모습" 이라고 분석하며 비판의 강도를 낮추고 있다. 조지 부시 대통령의 가장 큰 인기저하 요인으로 굽히지 않는 강경노선을 꼽으며 국민들은 이념논쟁보다는 현실에 맞춰 발빠르게 정책을 조율할 줄 아는 실용적인 후보를 더욱 원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 1월 "미국은 8년 전보다 살기 좋아졌다"고 발언했던 존 매케인 후보는 최신 캠페인에서 "경제가 4년전보다 악화됐다"고 말한다. 유가가 폭등하면서 개스가격이 5달러에 근접하자 반대해온 근해 석유시추에도 지난 6월 찬성입장을 밝혔다.

버락 오바마 후보도 마찬가지로 반대했던 근해 석유시추를 제한적으로 허락하고 전략 비축유(SPR) 사용을 허락하기로 입장을 바꿨다.

네바다 대학의 데이비드 다모어 정치학 교수는 "두 후보 모두 에너지 정책을 제주넘기 수준으로 바꾸고 있다"며 "수시로 사안이 변화하는 만큼 재빠른 대처를 보이는 것"고 설명했다.



▶ 표만 얻을 수 있다면 소신은 버린다

대선 후보들이 입장을 바꾸는 보다 간단한 이유는 본선을 앞두고 폭넓은 유권자층에 어필하기 위해서다. 프라이머리 시즌에는 당으로부터 지지를 얻어야 하기 때문에 정책도 당의 성향에 맞춰 좌-우로 치우쳤던 후보들이 지명된 후에는 보다 넓은 지지층을 확보하기 위해 중도 노선을 취하는 것은 지극히 일반적이다

버락 오바마 후보의 최근 행보가 바로 그런 케이스. 오바마는 영장없이 해외통화를 도청할 수 있도록 허락하는 해외정보감시법 (FISA)을 막기 위해 긴 연설로 진행을 방해하겠다고 발언했다가 최근 "개정안이라서 괜찮다"며 찬성 투표를 던졌다.

그리고 이라크전을 강력하게 반대하며 주둔 미군의 조기철군을 주장했다가 지난달에는 "군의 치안에 따라 철군계획을 보완할 용의가 있다"고 고쳐 말하며 중도 유권자들의 표심을 얻기 위해 기존 정책을 조율하고 있다. 반면 '공화당의 이단아'로 불리며 부시 대통령과 거리를 두고 중도적인 성향으로 지명후보에 오른 매케인 후보는 오히려 공화당의 핵심 보수표심을 잡기 위해 점점 오른쪽으로 옮겨가고 있다.

1999년에는 낙태를 허락한 대법원의 '로 대 웨이드' 판결이 "번복될 필요 없다"고 말했던 매케인은 이제는 낙태를 불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2001년과 2003년에 상정된 부시 대통령의 세제법안에 대해 "부유층에 과도한 혜택을 준다"며 강경하게 반대했다 공화당 대선후보로 나서면서 "세제법이 만료되면 세금이 인상될 것"이라며 영구연장을 지지했다.



▶ 말바꾸기로 누가 더 손해보나

그렇다면 두 후보 가운데 기존 입장을 번복함으로써 더 큰 손해를 입는 것은 누굴까.

US뉴스는 이미 유권자들에게 오랫동안 알려졌던 매케인에 비해 새롭게 이미지를 쌓아가고 있는 오바마가 조심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미 지지자들에게 오랜 시간 깊은 신뢰를 심어준 매케인 후보는 말을 바꾸더라도 "현재의 상황 때문에 입장을 바꿨을 것"이라는 인식이 들게 마련이지만 현재 일거수 일투족이 이미지를 조성하는 단계에 있는 오바마 후보에게는 본선 경쟁에서 치명적인 결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정하연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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