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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리뷰] 에코, 자신의 죽음을 애도하다

Los Angeles

2008.08.25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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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철학자 롤랑 바르트가 '카메라 루시다'를 쓴 동기는 사진의 속성을 밝히기보다 죽음에 대한 명상을 풀어놓기 위해서였다.

로아나 여왕의 신비한 불꽃(상·하)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욱 옮김, 열린책들


어머니의 모습이 담긴 사진에서 '죽은 자의 귀환'과 조우하는 기이한 경험을 하며 바르트는 모친의 죽음을 넘어 자신의 죽음까지 애도하는 심연 같은 멜랑코리를 드러낸다.

말하자면 『카메라 루시다』는 죽음을 앞 둔 롤랑 바르트의 유언 같은 작품으로 남았다.

'장미의 이름'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작가 움베르토 에코의 다섯 번째 소설인 이 책 역시 소설의 형식을 빌린 죽음에 대한 애도사다. 바르트와 달리 에코가 죽음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에코의 소설 속 분신은 곧 환갑이 될 고서적 판매상인 장바티스타 보도니다. 그의 이름이 18세기 이탈리아의 활자 디자이너와 같다는 점에서 에코 특유의 상호텍스트성(intertextuality)은 이 작품에서도 작동한다.

무수히 많은 작품들이 이 소설에도 뒤섞여 있다. 고서적 전문가인 보도니가 어느 날 갑자기 사고로 기억을 잃어버린다. 그는 백과사전의 내용은 거의 다 기억하는데 신기하게도 사적인 사실들은 전혀 기억하지 못 한다.

심지어 아내의 얼굴조차 모른다. 기억을 잃어버린 노인의 자기 찾기의 긴 여정이 시작되는 것이다.

보도니는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신을 어릴 때 읽은 동화 '늙은이로 태어나서 아기로 죽은 피피노 이야기'의 주인공 피피노와 동일시한다.

늙은이로 태어나서 점점 어려지다가 결국 아기로 죽는 피피노처럼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신은 다시 태어난 늙은이이며 기억을 되찾는 작업은 아기로 돌아가는 과정이라는 이유에서다.

'자궁 속처럼 아늑한 안개 속으로'라는 에코의 표현에 드러나듯 보도니는 생명 이전의 상태 곧 죽음으로의 귀환이라는 달콤하고도 불가능한 꿈을 욕망하고 있는 것이다.

에코는 이 소설이 자신의 마지막 소설이 될 것이라고 했다. 당연한 말이다. 에코가 흠모했던 기호학계의 선배이자 동료인 롤랑 바르트의 '카메라 루시다'처럼 자신의 죽음에 대한 애도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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