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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리뷰]그것은 꿈이었을까 '첫 연애소설···은희경이 꿈꾸다'

Los Angeles

2008.09.08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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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인생의 다른 버전일지도 몰라' 기존의 '냉소 포즈' 정반대로 달라져
"호수와 강이 가까워서인지 도시는 밤이 되면 곧잘 안개로 뒤덮인다…세상은 온통 안개 천지이다. 뿌옇게 감싸인 아파트 숲과 밤거리가 어찌 보면 저주와 재앙의 도시 같은가 하면 신비한 신생(新生)의 의식이 치러지는 신전 같기도 하다."

은희경씨의 첫번째 연애소설 '그것은 꿈이었을까'는 안개의 소설이다.

주인공인 의대생 준은 이야기의 말미에 결혼해서 안개의 도시에서 살고 있다.

아내와 다섯 살 난 아들 약간의 저축과 콘도미니엄 회원권 등 그는 신도시에 사는 평균적인 사람이다.

하지만 준은 지금에 이르기까지 지독한 상실과 블랙홀에 빠져드는 듯한 젊음의 한 시기를 통과했다. 안정된 미래가 보장되어 보였던 의대생이었던 시절 그는 '꿈'을 꾼 것이다.

준이 무엇 하나 특별할 것 없는 인생에서 특별하게 여기는 것이 3가지 있다.

화가 에곤 실레의 화집과 하드 커버로 된 카프카의 소설 '성' 그리고 비틀스를 좋아하는 같은 의대생인 친구 진. 준은 이 3가지를 통해 갑자기 안개 속에서 길을 잃듯 삶의 낯선 지점으로 빨려 들어간다.

카프카의 고향 프라하에서 돌아온 준은 교통사고로 죽은 친구 진의 약혼녀와 결혼한다.

적당한 양을 적당한 시간에 규칙적으로 먹어서 체중을 유지하는 일에 신경쓰는 아내. 그리고 준 자신은 언제부터인지 젊은 캐디와 같은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선배와 함께 일상을 보낸다.

선배와 같은 속인이 되어갈 준도 더 이상 꿈을 꾸지 않는다.

무서운 꿈을 꾸었다며 놀라는 아이에게 아내는 "너도 곧 어른이 되면 무서운 꿈을 안 꾸게 돼. 다 크느라고 그런 거야"라고 말해준다.

"꿈은 인생의 다른 버전(version)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은씨는 일부러 '인생은 꿈이었을까'를 모호한 분위기의 소설로 썼다고 말했다.

사실 날선 칼처럼 세상의 폭력에 대해 위악과 냉소의 포즈를 취하던 은씨의 작품 경향은 이 소설에 와서 180도라 해도 좋을 정도로 달라졌다.

준이 스스로를 '마리아' 혹은 '미리암'이라고 부르는 실레의 그림을 닮은 초록옷을 입은 여자를 만난 고시원 '레인 캐슬'은 2년여 전 은씨가 장편소설 '새의 선물'을 쓰기 위해 보름여 체류했던 가야산의 고시원을 무대로 한 것이다.

'불은 항상 켜져 있습니다' '수련 중 체험하게 되는 현상은 수련의 과정이니 당황하지 말고 정진하십시오'라는 마치 비밀 집단의 강령 같은 소설 속 문구도 그대로였다고 한다.

'스노랜드'에서 간판의 '스' 자가 떨어져 나가버려 아무것도 아닌 땅이라는 뜻의 '노랜드'가 되버린 위락시설이 있던 설천은 전북 무주에 실재하는 지역이다.

준이 마리아를 만난 뒤 수련의 생활을 그만 두고 프라하로 떠나기 전 혼자 살았던 복합건물은 소방서였고 길 건너편의 주유소가 있는 피자집 건물은 일산 신시가지의 6차선 도로 옆 한적한 뒷길에 실제로 서 있다.

은씨는 "나는 나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어릴 적에는 세상은 이러저러하다고 반듯한 교육을 받고 자랐습니다. 그러나 점점 그 반듯함이 세상의 본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나는 그것을 견딜 수가 없었지요. 그래서 소설을 쓴 것인지도 모릅니다. 내 소설의 위악은 삶의 그 허상을 걷기 위한 방법"이라고 부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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