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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리뷰] 이해인 수녀 시집 '엄마'···엄마를 부르면 일단 살 것 같다'

Los Angeles

2008.09.22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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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투병중 그리운 어머니·고향 담은 시집 펴내
'누가 종이에/ '엄마'라고 쓴/ 낙서만 보아도/ 그냥 좋다/ 내 엄마가 생각난다(...) 몸이 아프고/ 마음이 아플 때/ 제일 먼저 불러 보는 엄마/ 엄마를 부르면/ 일단 살 것 같다(...)'

암 투병 중인 이해인 수녀(63.사진)가 어머니를 그리며 쓴 시를 엮어 시집 '엄마'를 냈다. 어머니 살아생전에 '엄마'를 주제로 쓴 동시 20여 편과 돌아가신 뒤에 적은 사모곡 60여 편이다.

처음부터 책으로 낼 생각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어머니 1주기를 맞아 어머니와 제가 주고받은 편지를 엮어 가족끼리 비매품으로 돌려 보려고 했어요. 그런데 우리 엄마는 모든 이의 엄마이기도 하니까 함께 나누고 싶어진 거에요. 사모곡을 더해서 고운 책으로 냈지요."

시집을 준비하던 중 이해인 수녀는 암 선고를 받았다. 올해 7월의 일이다. 세상이 원망스러웠을 법도 하지만 이해인 수녀는 담담한 목소리다.

"어머니를 보내드리고 나서 아픈 걸 다행으로 생각했어요. 투병의 고통을 통해서 더 넓고 깊게 모든 이들을 끌어안고 보듬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어요.. 이 아픔이 그대로 하나의 기도이고 시입니다."

언제나 '귀염둥이 작은 딸'이었던 이해인 수녀는 유독 정이 깊었던 모양이다. '써도 써도 끝이 없는 글/ 불러도 불러도 끝이 없는 노래'인 사모곡이 멈추질 않는다. 길을 가다 엄마 닮은 이가 지나가면 잠시 걸음을 멈추고 길을 돌아보며 하늘나라에 전화를 걸고 싶어진단다. 달을 올려다보면 '내가 너를 낳을 무렵엔/둥근 달 속에서/고운 선녀들이 비단구두 신고/춤추는 모습을 보았단다'라고 말씀하시던 엄마가 떠올라 그립다고 한다.

'성당 노인잔치에서 받은 내의.수건.비누.인형까지 선물로 넣어 오시느라 가방이 늘 무거우신 어머니'와 그런 엄마가 한껏 차려입기라도 하면 '좀 수수하게 입으시지'라고 잔소리하는 수녀 딸.

그 모녀가 주고 받은 편지는 눈물과 웃음을 함께 준다. 책 중간 중간 고인의 손때가 묻은 골무.가방.단추 등 유품의 사진이 실려 소박하고 애잔하다.

시 '어머니의 나들이'는 생전 어머니와의 나들이 추억 또 한번 함께 가고픈 모녀 사이 나들이에 대한 안타까운 꿈을 그린다. 그리고 양구를 포함해 넓은 의미의 고향이라 할 수 있는 춘천에 대한 애정을 표현한다.

'날마다 새롭게/ 여행용 보따리를 싸시던 어머니/ 소지품을 잘 분류해/ 메모하며 챙겨 놓으시던 어머니를/ 요즘은 제가 그대로 흉내 내고 있답니다// '작은 수녀 무엇 하나?/ 나랑같이 나갈 건가?…'

시인은 "보따리를 쌌다 풀었다 일과처럼 되풀이하던 어머니의 서랍장에는 많은 보자기들이 우리를 기다리던 어머니의 마음처럼 엎드려 울고 있다"며 어머니에 대한 마음을 대신한다.

또한 시인은 다시 소녀가 된다. "오늘은 어머니랑 기차를 타고 춘천에 가고 싶네요. 어머니를 닮은 친척들이 많이 살고 있는 강원도에 가서 실컷 산과 호수를 보고 싶습니다."

시인의 시선은 세상을 떠나기 전 어머니의 마지막 나들이 장면으로 옮겨간다.

'가정간호 수녀님의 인솔 하에/ 노인들이 단체로 어린이 대공원에 가기로 하셨다고/ 설레는 마음으로 손꼽아 기다리며/ 메모를 되풀이 하셨지요…. 비록 부축을 받아 어렵게 다녀온 나들이이지만/ 어머니는 즐거워하셨고/ 이것이 지상에서의 마지막 나들이셨지요'

어머니의 마지막 나들이를 이렇게 회상한 시인은 "지금도 어린이대공원을 지나노라면 어머니의 즐거운 웃음소리가 들린다. 이제는 먼 곳으로 나들이를 떠나신 어머니 부디 천상에서 행복하시길 바란다"고 딸의 마음을 전한다.

마지막 장에는 지난달 19일 수술을 마친 뒤 병상에서 독자들에게 쓴 이해인 수녀의 편지가 실려있다.

"생전 처음으로 큰 수술을 받으면서 수없이 하느님과 엄마를 불렀고 마취에서 깨어날 때까진 어딘가 딴 세상을 다녀온 느낌이 들었습니다.

엄마가 이미 가 계신 저 세상에 가도 좋고 좀 더 지상에 남아 제가 할 수 있는 사랑의 일을 하고 가도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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