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담꽃도 숨고 계수나무 향기도 사라져/삼십 년 세월이 순식간처럼 바빴구나/ 이 늙은이만 홀로 남아 신세가 고단한데/ 봄밤에 잠들지도 못하고 텅빈 집에 누웠네." 옛 사람들의 눈물: 조선의 만시 이야기 전송열 지음, 글항아리, 400쪽 언뜻 보면 나이 들어 홀로된 노인이 자신의 외로움을 그린 평범한 시(詩)로 여길 수도 있겠다. 이 시에 특별한 사연이 있음을 암시하는 '삼십 년 세월이 순식간처럼 바빴구나'라는 구절만 아니라면. 이것은 조선 영조 때 대제학과 판서를 지낸 이덕수(1673~1744)가 아들의 죽음을 애통해 하며 쓴 시다. 60세의 나이에 30세의 아들을 먼저 앞세웠으니 그 슬픔을 어찌 다 말로 표현하랴. 사랑하는 아들을 잃고 잠못 이루는 아비의 허망한 마음과 극심한 외로움이 구절 구절에 눈물처럼 맺혀 있다. 이처럼 누군가의 죽음을 애도하며 쓴 시를 '만시(挽詩)'라 한다. 조선시대 사대부가에서는 가까운 사람이 이생을 떠났을 때 그에 대한 글을 남기는 것이 예의였다고 한다. 지난 20여 년간 조선의 시문학을 전공한 저자는 조선의 만시 중에서 문학적으로 빛나는 작품 35편을 소개하고 역사적 유래와 미학적 특징까지 분석하고 있다. "문을 들어서려다 다시 나와서/고개 들어 바쁘게 두리번 거리네/ 남쪽 언덕엔 산 살구꽃이 피었고/ 서쪽 물가엔 해오라비 대여섯." 팔십 평생을 살면서 처와 3남1녀의 자식을 모두 생전에 잃은 이양연(1771~1856)이 둘째 아들을 떠나보내고 쓴 이 시엔 '슬픔'이나 '눈물' '아픔' 등의 시어는 없다. 대신 자신의 슬픔을 담담하게 보여줄 뿐이다. 슬픔을 피하기 위해 딴전을 피우며 애써 눈물을 삼키는 심정을 그린 이 시를 가리켜 저자는 "슬픔을 철저히 내면화한" 작품으로 꼽았다. "뉘라서 월모에게 하소연하여/서로가 내세에 바꿔 태어나/천 리에 나 죽고 그대 살아서/이 마음 이 설움 알게 했으면"(추사가 유배지에서 아내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 "곱던 모습 희미하게 보일 듯 사라지고/깨어보니 등불만이 외롭게 타고 있어라/가을비가 내 잠을 깨울 줄 알았더라면/창 앞에다 오동나무 심지도 않았을텐데"(이서우가 꿈 속에서 아내를 만나고). 만시는 본질적으로 '눈물의 시'다. 그러나 그 눈물이야말로 누군가를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하고 그리워 했다는 징표다. 그래서일까. 저자가 소개하는 '눈물의 시'를 따라가 만나게 되는 것은 '죽음'이 아니다. 가족과 친구 선배 스승과 어울려 사랑하며 살았던 사람들의 삶 그 자체다.
2008.10.06. 14:55
"드디어 평범한 언어를 사용하는 경제학자가 쓴 대중들을 위한 경제학 안내서가 탄생했다. 이 책은 경제학 종합 가이드북이다." (비즈니스와이어) 베이직 이코노믹스- 경제의 기본으로 돌아가자! 토머스 소웰 지음, 서은경 옮김, 물푸레 '베이직 이코노믹스- 경제의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미국에서 출간된 후 수십 개 나라에서 번역되어 전세계 독자들에게 널리 알려진 기초 경제학 안내서의 세 번째 증보판이다. 일반 대중을 위해 펴낸다고 저자가 밝혔듯이 복잡한 수치나 방정식 그래프 등으로 설명하는 대신 역사적으로 있었던 혹은 현재 진행중인 생생한 사례들을 들어 경제 정책의 허와 실을 설명하고 있어서 경제가 뭔지 처음 접하는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이 책은 개인이 어떻게 하면 돈을 버는가 하는 문제와는 거리가 멀다. 전체 사회가 어떤 경제체제를 선택하여 어떻게 부나 가난을 만들어 내는지 알아보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꼭 알아두어야 하는 아주 기초적인 경제원칙들을 쉬운 말로 정리했기 때문에 정치인들의 무분별한 말이나 편중된 언론에도 휘둘리지 않고 정확하고 올바른 경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각 파트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한 장을 두어 더욱 알기 쉽게 정리했으며 책 말미에 100개가 넘는 질문과 이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는 힌트를 첨부함으로써 복습 효과를 얻게 한 것도 특징이다. 일반 독자들의 경제 관련 궁금증 해소는 물론 강사들 학부모들 나아가 경제학자와 경제 전문가 CEO 언론인 정치인들에게도 여러모로 유익한 내용을 담고 있다. 원제 'Basic Economics'.
2008.10.06. 14:53
햇살 가득한 그곳에선 모두가 음악이 되고 바람이 된다! 구자형의 윈드: 자유, 사랑 그리고 나를 찾은 미국 음악 기행 저자 구자형 지음, 미들하우스 '구자형의 윈드'는 음악방송작가 싱어송라이터 소설가 음반기획자로 활동했던 구자형의 미국 여행 에세이다. 뉴욕 내쉬빌 멤피스 등 주요 음악도시를 다니며 미국대중음악 문화를 알려준다. 불어오는 바람처럼 삶도 한 번뿐이기 때문에 욕심으로 버리고 자유를 선택하라는 저자의 말처럼 현실을 훌훌 털고 여행을 떠난 자유로운 감성이 책을 지배한다. 싱어 송 라이터 한대수는 이렇게 만한다. "이 책은 미국 음악문화의 속살을 보여준다. 그것은 매우 부드러운 사랑의 바람 자유의 바람이다. 그렇다. 음악은 화폐로 환산할 수 없는 세상에서 가장 유익하고 양호한 어머니이자 연인이다." 저자는 음악방송 일을 그만두고 떠난 샌프란시스코 포틀랜드 시애틀 여행에서 옛 사랑을 우연히 만난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가기 하루 전 집시 여인을 스친 일을 통해 화두를 타파하듯 자신의 참모습을 찾는다. 90년 초반부터 미국 음악 여행을 다녔던 지은이의 회상을 통해 주요 음악 도시 이야기를 더하며 미국대중음악의 정신과 뿌리에 관한 이야기가 소설 형식으로 진행된다. 모든 것의 중심이 경제인 시대.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삶이 점점 황폐해지는 시대의 입구에서 무엇으로 상처 입은 영혼들을 달래줄 수 있을까? 음악이 문학이 그 천직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이제 문학과 음악은 불황의 최전선에서 전사한다. 가난하지만 당당했던 시대 철학이 있었고 문학과 음악으로 허기진 육신을 달래고 영혼을 살찌웠던 시대 청년이 세상의 구원을 꿈꿀 수 있었고 노래했던 시대 1960 70년대 궁핍했지만 아름다웠던 시대는 어디로 갔는가. 그 의문에 대한 한 대답이 구자형의 미국 음악 여행 에세이 '윈드'다. 음악 여행의 끝에 저자는 말한다. "내 마음 속 영혼의 자유를 일깨우기 위해 과감히 떠나라." 구자형은 초등학교 시절 비틀스에 15살에 지미 헨드릭스에 빠졌고 기타를 익혔다. 언더그라운드 음악 운동 모임 '참새를 태운 잠수함'을 이끌었다. 1982년부터 방송작가로 일하면서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 '2시의 데이트 김기덕입니다' '유열의 Fm 모닝 쇼' '양희경의 가요 응접실' 등에 참여했고 1992년과 2001년 'MBC 방송연기대상' 라디오 작가부문 특별상을 받았다.
2008.10.06. 14:51
'어린 시절 나의 할머니는 당신이 태어난 아득히 머나먼 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셨습니다. 제이콥 로버트 무스 지음 문무홍 외 옮김, 푸른역사 그곳은 푸른 초원 맑은 강 둥근 언덕들이 자리한 땅이었습니다. 그곳은 이국적인 언어를 말하는 다정한 사람들의 땅이었습니다.' 미국의 투자전문회사인 제이콥스사의 제프리 제이콥스 회장은 어린 시절 할머니 낸시 체이니 여사가 들려준 신비한 나라의 이야기를 기억한다. 때묻지 않은 자연 속에 순박한 이들이 사는 할머니의 고향 그곳은 20세기 초반 조선이었다. 제이콥스 회장의 외증조할아버지 제이콥 로버트 무스는 목회자였다. 그는 서른다섯이던 1899년 아내와 함께 태평양을 건넜다. 선교 활동을 위해서였다. 그리고 스물다섯 해. 조선 땅에서 무스는 낸시를 비롯한 세 자녀를 얻었고 '무야곱'이라는 한국 이름도 얻었다..1900 조선에 살다.는 무스가 조선 생활 10년 만인 1909년에 발표한 책이다. 지금은 미국의회도서관에만 한 부 소장돼 있는 희귀 서적이다. 허버트의 '조선의 역사' 기포드의 '조선의 풍속' 이자벨라 버드 비숍의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 등 구한말 이 땅을 찾은 외국인들이 기록한 조선 체험기는 적지 않다. 그 중에서도 무스의 책이 단연 돋보이는 것은 조선땅과 조선 사람에 대한 그의 애정이 행간 곳곳에 배어있기 때문이다. '조선에 대해서는 세상에 잘못 알려진 부분이 많다. 나 자신이 대단히 사랑하게 된 조선인들에 대해 독자들이 보다 명확한 지식과 더 깊은 애정을 갖게 되는데 이 책이 보탬이 되었으면 한다.'(서문) '푸른 눈의 조선인'이 바라본 1900년대 초반의 조선은 쇠락해가는 왕국이 아닌 생명력 넘치는 백성들이 살아가는 삶의 터전이었다. 한반도의 역사 지리 자연 환경과 생태계 묘사부터 시작해 당시 조선인들의 풍속과 그 속에 담긴 가치관을 그렸다. 무스는 도시와 지배 계급의 생활상보다는 농촌과 서민들의 삶을 조명했다. '조선의 수도는 서울이다. 그 발음은 인간에게 있어서 영원한 것 즉 영혼(soul)과 거의 비슷하다…서울은 진정 조선의 영혼이다. 삶의 중심이고 사회 정치 나아가 다른 모든 것들의 중심이다. 모든 길은 서울로 통한다.(64쪽) 관찰자가 아닌 내부자가 묘사한 한 세기 전 이 땅의 모습은 익숙하면서도 생경하다. 무스는 열강의 침략에 고통받는 조선 백성 중에서도 특히 이름없는 존재로 살아갔던 여성들의 수난사에 집중했다. '이곳에서 소년은 태어날 때 으레 환영을 받고 큰 축복으로 여기는 반면 소녀는 유감과 슬픔의 위로를 받으며 태어난다.…내 아내가 딸을 낳을 때 조선의 선비인 내 조선어 선생님은 아기가 태어났다는 말을 듣고 큰 미소를 지으며 "아들이오?" 하고 물었고 나는 "아니오 딸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그는 깊은 동정의 표정을 지으며 "I am some sorry" 의미인 "참 섭-섭-합-니-다"라고 말했다.' (144쪽) 그림 그리듯 구체적인 저자 무스의 묘사 덕분에 책을 읽는 내내 100년 전 조선으로 시간 여행을 떠난 듯한 느낌이 든다. 저자 역시 서구인이자 선교사이기에 계몽주의적인 틀을 완전히 벗어던지지는 못했다. 무속신앙이나 전통 습속에 대한 부정적인 묘사도 등장한다. 그럼에도 이 땅을 사랑했던 한 외국인의 눈빛은 따뜻하게만 느껴진다. 원제Village Life in Korea.
2008.09.29. 14:58
1948년 8월15일과 9월9일. 남과 북에서 각각 정부가 수립됐다. ‘역사비평’ 편집위원회 엮음 역사비평사, 296쪽 정부의 '건국 60주년' 행사에 대한 논란은 상해임시정부 수립(1919년 4월13일)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둘러싼 학술 논쟁이면서 두 개의 남.북 국가 체제 탄생을 의식한 이념적 요소가 개입돼 있다. 올해를 '남북 정부수립 60년'이라고 규정한 '역사비평' 편집위원회는 ▷정치(박정희-김일성) ▷언어(최현배-김두봉) ▷문학(염염상섭-한설야) ▷법조(유진오-최용달) ▷과학(이태규-리승기) ▷역사(이병도-김석형) ▷영화(윤봉춘-문예봉) ▷무용(조택원-최승희) 8개 분야에서 남과 북의 라이벌 16명의 삶을 이 책에 모았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가 쓴 '박정희와 김일성: 한국적 근대화의 두 가지 길'이 흥미롭다. 남북한 정부수립 당시 이승만(1875~1965)은 일흔 셋이었고 김일성(1912~1994)은 서른 여섯이었다. 두 사람이 남과 북의 정치적 라이벌이기엔 나이 차가 너무 컸다. 김일성은 13년 뒤에야 자신의 진정한 라이벌을 맞는다. 박정희(1917~1979)는 김일성과 나이 차이도 다섯 살 밖에 나지 않았다. 한 사람은 만주군 장교 다른 한 사람은 항일 무장투쟁 지도자로서 두 사람 모두 만주에서 군사적 경험을 쌓았다는 공통점도 있다. 두 사람에 의한 치열한 체제 대결은 결과적으로 남측의 박정희의 승리로 끝이 났다. 하지만 여기에 역사적 아이러니가 있다. 김일성은 간접적으로 박정희의 개인적 삶을 '구원'했고 그와 그 체제의 승리를 역설적으로 도왔다. 1948년 여순사건으로 체포된 뒤 무위의 세월을 보내던 박정희는 한국전쟁 때문에 남한 군부에서 재기할 수 있었다. 박정희의 '좌익 경력'을 김일성이 전쟁을 통해 씻어준 셈이다. 또 김일성이 도발한 한국전쟁은 남한사회에서 군부의 급속한 과대성장을 가져왔다. 전란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군부에 대한 남한 국민의 신뢰도 커졌다. 박정희의 5.16 군사 쿠데타가 성공할수 있는 토대를 제공한 것이다. 박 교수는 김일성을 가리켜 "자기가 제공한 토대로 인해 자신이 패배하는 비극적 패러독스의 주인공"이라고 규정한다. 한글학자 최현배(1894~1970)와 김두봉(1889~1960?)은 남북한 언어의 분단을 막은 학자로 조명된다. 분단 반세기가 넘었지만 남북한 언어의 이질성은 크지 않다는 평가다. 한글전용 가로쓰기 형태주의에 입각한 맞춤법 등 문자 생활의 기본적 틀이 유사하다. 남북한 언어 정책의 골격을 세운 두 학자가 주시경의 애제자로 절친한 학문적 동료였기 때문이다. 김두봉은 한글학자로서 항일 무장투쟁에 가담해 북한 정계의 거물이 된 인물이다. 그는 1947년에 북한 학교에서 가르칠 문법책을 고를 때 자신의 저서 대신 최현배의 책을 추천할 정도였다. 한문에서 한글로 문자생활의 전환. 남북한에서 동시에 진행된 이'언어혁명'은 이 두 학자의 공로였다.
2008.09.29. 14:55
현재 대한민국 예능 MC의 두 지존 유재석과 강호동에 관한 책이 나왔다. 이 두 스타 외에도 이경규 신동엽 박명수 박미선 김구라 등 대한민국의 내노라하는 최고 MC들의 장단점 및 프로그램을 이끌어가는 특징을 잘 담아두고 있다. 대중문화평론가인 서병기 씨는 날카로운 관찰력과 인터뷰 등을 이들이 최고인 이유를 밝혀낸다. 어렵지 않아서 쉽게 읽을 수 있고 이들의 도전과 성공과 실패 사이에서 자기 반성과 더불어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리더십과 행동 유형을 통해 직장 생활이나 사회 생활에서 대처하는 방법을 전달해주고 있다. 유재석이 다른 패널 혹은 게스트들을 챙겨주며 배려하여 타인의 숨은 재능을 이끄는 겸손한 리더라면 강호동은 본인의 외모를 통한 힘의 과시를 통해 강하지만 상대에게 속절없이 무너져 주는 지능적이고 세심한 현장형 리더다. 유재석의 진가는 그가 맡은 4개의 프로그램에서 각기 다른 모습을 보여 주며 일주일에 4번 시청자들과 마주해도 질리지 않는 진행으로 국민MC의 칭호를 받고 있다. 그의 장점은 역시 겸손함과 오랜 무명 동안 콩트를 통해 내공을 쌓아온 덕분이다. 강호동은 80년대말~90년도 초 씨름판에 혜성같이 등장해 당시 최고 스타였던 이만기 장사를 누르고 천하장사를 차지하며 승승장구를 하고 있었지만 이경규를 만나면서 연예계로 인생의 항로를 바꾸게 된다. 억센 경상도 사투리와 억양은 그에게 텔레비전 무대에서는 치명적인 단점일 수 있었지만 본인의 단점을 남들과의 차별화를 통한 장점으로 만들고 탄탄한 몸을 통한(뚱뚱한 모습) 힘의 과시를 재미라는 요소에 자연스럽게 녹이며 시청자들에게 힘센 사람이지만 어리숙하게 보여주기도 하는 영리한 예능 MC로 성장했다. 이 외에도 현재 인기를 누리고 있는 '영원한 2인자' '박거성' 박명수와 No.1이 아닌 Only 1 전략으로 틈새를 찾은 김구라 등등 대한민국의 대표 MC들의 성공사례를 담고 있다.
2008.09.22. 15:27
올해로 9회째를 맞은 2008년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수상작 김애란의 '칼자국'을 비롯해 자선작('큐티클')과 문학적 자전('여름의 풍경') 전년도 수상자인 박민규의 '낮잠' 소설가 김중혁과 쌍둥이 언니의 '내가 만난 김애란' 추천우수작으로는 김도연의 '북대' 김윤영의 '내게 아주 특별한 연인 3' 백가흠의 '그런 근원' 손홍규의 '푸른 괄호' 정미경의 '타인의 삶' 한창훈의 '삼도노인회 제주여행기' 등이 수록됐다. 김애란은 일상을 꿰뚫는 민첩성 기발한 상상력 탄력 있는 문체로 한국문학의 새로운 도약을 알려온 젊은 소설가다. 김애란은 '칼자국'에서 '딸이 말하는 어머니 이야기'라는 너무나 흔한 이야기를 독특한 감각과 표현으로 전혀 새로운 차원에 펼쳐놓는다. 이 작품을 빛나게 하는 작가 특유의 예리함 신랄함 명랑함 상처가 될 법한 일을 상처로 구성하지 않는 독특한 발상법이 돋보인다. 등단 15년 이하의 작가를 대상으로 하는 이효석문학상은 매년 탁월한 작품을 발표한 젊은 작가들을 발굴해냄으로써 현대 소설의 흐름을 이끌고 있다. 이번에 추천 우수작에 오른 작품들은 작가들의 개성을 잘 드러내면서도 우리 소설의 미래와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2008.09.22. 15:26
'누가 종이에/ '엄마'라고 쓴/ 낙서만 보아도/ 그냥 좋다/ 내 엄마가 생각난다(...) 몸이 아프고/ 마음이 아플 때/ 제일 먼저 불러 보는 엄마/ 엄마를 부르면/ 일단 살 것 같다(...)' 암 투병 중인 이해인 수녀(63.사진)가 어머니를 그리며 쓴 시를 엮어 시집 '엄마'를 냈다. 어머니 살아생전에 '엄마'를 주제로 쓴 동시 20여 편과 돌아가신 뒤에 적은 사모곡 60여 편이다. 처음부터 책으로 낼 생각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어머니 1주기를 맞아 어머니와 제가 주고받은 편지를 엮어 가족끼리 비매품으로 돌려 보려고 했어요. 그런데 우리 엄마는 모든 이의 엄마이기도 하니까 함께 나누고 싶어진 거에요. 사모곡을 더해서 고운 책으로 냈지요." 시집을 준비하던 중 이해인 수녀는 암 선고를 받았다. 올해 7월의 일이다. 세상이 원망스러웠을 법도 하지만 이해인 수녀는 담담한 목소리다. "어머니를 보내드리고 나서 아픈 걸 다행으로 생각했어요. 투병의 고통을 통해서 더 넓고 깊게 모든 이들을 끌어안고 보듬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어요.. 이 아픔이 그대로 하나의 기도이고 시입니다." 언제나 '귀염둥이 작은 딸'이었던 이해인 수녀는 유독 정이 깊었던 모양이다. '써도 써도 끝이 없는 글/ 불러도 불러도 끝이 없는 노래'인 사모곡이 멈추질 않는다. 길을 가다 엄마 닮은 이가 지나가면 잠시 걸음을 멈추고 길을 돌아보며 하늘나라에 전화를 걸고 싶어진단다. 달을 올려다보면 '내가 너를 낳을 무렵엔/둥근 달 속에서/고운 선녀들이 비단구두 신고/춤추는 모습을 보았단다'라고 말씀하시던 엄마가 떠올라 그립다고 한다. '성당 노인잔치에서 받은 내의.수건.비누.인형까지 선물로 넣어 오시느라 가방이 늘 무거우신 어머니'와 그런 엄마가 한껏 차려입기라도 하면 '좀 수수하게 입으시지'라고 잔소리하는 수녀 딸. 그 모녀가 주고 받은 편지는 눈물과 웃음을 함께 준다. 책 중간 중간 고인의 손때가 묻은 골무.가방.단추 등 유품의 사진이 실려 소박하고 애잔하다. 시 '어머니의 나들이'는 생전 어머니와의 나들이 추억 또 한번 함께 가고픈 모녀 사이 나들이에 대한 안타까운 꿈을 그린다. 그리고 양구를 포함해 넓은 의미의 고향이라 할 수 있는 춘천에 대한 애정을 표현한다. '날마다 새롭게/ 여행용 보따리를 싸시던 어머니/ 소지품을 잘 분류해/ 메모하며 챙겨 놓으시던 어머니를/ 요즘은 제가 그대로 흉내 내고 있답니다// '작은 수녀 무엇 하나?/ 나랑같이 나갈 건가?…' 시인은 "보따리를 쌌다 풀었다 일과처럼 되풀이하던 어머니의 서랍장에는 많은 보자기들이 우리를 기다리던 어머니의 마음처럼 엎드려 울고 있다"며 어머니에 대한 마음을 대신한다. 또한 시인은 다시 소녀가 된다. "오늘은 어머니랑 기차를 타고 춘천에 가고 싶네요. 어머니를 닮은 친척들이 많이 살고 있는 강원도에 가서 실컷 산과 호수를 보고 싶습니다." 시인의 시선은 세상을 떠나기 전 어머니의 마지막 나들이 장면으로 옮겨간다. '가정간호 수녀님의 인솔 하에/ 노인들이 단체로 어린이 대공원에 가기로 하셨다고/ 설레는 마음으로 손꼽아 기다리며/ 메모를 되풀이 하셨지요…. 비록 부축을 받아 어렵게 다녀온 나들이이지만/ 어머니는 즐거워하셨고/ 이것이 지상에서의 마지막 나들이셨지요' 어머니의 마지막 나들이를 이렇게 회상한 시인은 "지금도 어린이대공원을 지나노라면 어머니의 즐거운 웃음소리가 들린다. 이제는 먼 곳으로 나들이를 떠나신 어머니 부디 천상에서 행복하시길 바란다"고 딸의 마음을 전한다. 마지막 장에는 지난달 19일 수술을 마친 뒤 병상에서 독자들에게 쓴 이해인 수녀의 편지가 실려있다. "생전 처음으로 큰 수술을 받으면서 수없이 하느님과 엄마를 불렀고 마취에서 깨어날 때까진 어딘가 딴 세상을 다녀온 느낌이 들었습니다. 엄마가 이미 가 계신 저 세상에 가도 좋고 좀 더 지상에 남아 제가 할 수 있는 사랑의 일을 하고 가도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2008.09.22. 15:24
칼바람 친다 아직 죽을 수 없다 내려가자 내려가 술잔에 메아리쳐 술을 붓자 -고은 ‘소백산에서’ 전문 내 어깨에는 굴뚝이 하나 있어 열 받거나 가슴에 연기가 가득할 때 그리로 그것들을 내보낸다. -정현종의 ‘굴뚝’ 중에서 술만 익을수록 맛이랴. 시(詩)도 틀림없이 그러하리라. 고희(古稀)를 넘긴 두 원로 시인의 신작 시집을 펼쳐본다. 고은 시인은 1933년 전북 군산에 태어나 전쟁으로 학교를 마치지 못한 채 18세에 출가했던 이력이 있다. 시력 50년. 정현종 시인은 1939년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했다. 시력 43년. 각각 한국 문단의 양대산맥인 창비(창작과 비평)와 문지(문학과 지성)의 대표 시인이다. 어느 길로 오르든 정상에 서면 같은 땅을 밟듯, 색깔이 뚜렷이 다른 두 시인이건만 만나는 지점이 있다. 미쳐 돌아가는 세태에 휘말리지 않고 냉철히 바라보는 시인의 눈이 있다. “왜 세상은/너도 나도/얼마짜리인가/왜 얼마짜리로/여기저기 팔려가는가/왜 얼마짜리로/미쳐버리는가 미쳐 날뛰는가/아, 공짜배기 내 고향은 어디로 가버렸는가”(고은 ‘울란바타르의 마음’ 중) “돈과 기계에 마비되어/바삐 움직이면서/시간을 돈 쓰듯 물건 쓰듯 쓰기만 하고/시간 자체!를 느끼는 일은 전무한 듯/하니, 시간의 꽃인 그 시간 자체는/어떻게 되었는가./(…)꽃 시간은 희귀하게 동터오니/이미 망한 세상에서 우리는/이미 망한 줄도 모르고 살고 있는/여지없이 망한 인생임에 틀림이 없다”(정현종 ‘꽃 시간2’ 중) 돈과 기계에 마비된 보통 사람들은 꿈에 로또 숫자가 탁 떠오르길 기대한다. 그러나 시인들은 꿈에서 시를 기다린다. “잊었다/새벽 꿈속/시 한수 와 있다가/꿈 깨이자/천리 밖으로 갔다/굳이 돌아오길 바라지 않는다//가서/세상의 티끌이거라 나의 시라는 것들 다 남의 핏줄이니라/돌아오지 마라”(고은 ‘자각’ 전문) 그런데 꿈에서 깨는 ‘자각’의 순간 시는 달아나버린다. 자각이 곧 망각이다. ‘아이구 아깝다’란 탄식은 꿀꺽 삼킨다. 잊어버리든, 적어 내어놓든 품을 떠난 시는 ‘남의 핏줄’. 집착을 버린다. “잠결에/시가 막 밀려오는데도,/세계가 오로지 창(窓)이거나/지구라는 이 알이 알속에서 부리로 마악 알을 깨고 있거나/시간이 영원히 온통/푸르른 여명의 파동이거나/(…)/하여간 그런 시가 밀려오는데도/나는 일어나 쓰지 않고/잠을 청하였으니……”(정현종,‘시가 막 밀려오는데’ 중) 시 쓰는 일이란 천형(天刑)이라 했다. 때론 제 발로 걸어오는 시마저 훠이 훠이 쫓아내며 시에 붙들린 운명을 놓아버리고 싶을 터다. “지금부터 쓰는 시는/시집도 내지 말고/다 그냥/공기 중에 날려버리든지/하여간 다 잊어버릴란다./그럴란다./(아이구 시원해)”(정현종, ‘지금부터 쓰는 시는’ 전문) 시 몇 수 남기고 하직했다면 ‘요절한 천재 시인’으로 길이 남았을지도 모를 일. 동료들을 수없이 떠나보내며 40년, 50년 시를 쓰는 건 축복이자 짐이다. “이 시간이면/올 사람이 왔겠다 생각하니/슬프다./갈 사람이 갔겠다 생각해도/슬플 것이다./(왜 그런지)/그 모오든 완결이/슬프다.”(정현종 ‘슬프 다’ 전문) “오랜 두려움 끝/이제 두렵지 않다/오전의 하늘에 없던 구름이 슬쩍 와 있다/구름 밑/산이 간다/산 밑/산그늘이 간다/그동안 내가 나에게 목숨 바쳤다//정말이지/죽음은 남이 아니다 아니구말구”(고은 ‘죽음을 보며’ 전문) 죽음마저 끌어안는 시인에게도 두려운 게 하나 있다. 11일 저녁 고은 시인의 등단 50주년 기념 그림전 폐막 뒤풀이 자리. 밤이 깊어갈 무렵 시인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응~. 오늘 마지막 날이라 친구들이랑 술 한 잔 하고 있어. 오늘만 양해해줘요.” 아내 이상화 중앙대 교수의 전화였다. 너무나 사랑해서 두려운 존재, 아내. “엄마가 어린 딸의 손을 잡고 지나간다./뭐라고 뭐라고 딸이 옹알거리고/뭐라고 뭐라고 엄마가 되풀이한다./나는 누구인가./나는 저 딸아이가 낳은 것이다/라는 생각이 번개처럼 스친다./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정현종 ‘거대한 무의식’ 중) “너 낳은 몸/너 기른 몸/너에게 말과 무언을 준 몸/저 끝 간 데 모를 푸른 하늘이/아득히/아득히/네 에미니라//그 동안의 삼천년 잘못이었다/하늘은 네 아비가 아니라/네 에미니라”(고은 ‘에르푸르트에서’ 중) 생명을 낳는 여성에 대한 경외감은 하늘과 땅, 음양의 순서까지 바꾸어 말할 정도로 강력하다.
2008.09.15. 15:23
'그날 밤의 거짓말'은 이탈리아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스트레가 수상작이자 20세기 이탈리아 문학을 대표하는 명작으로 꼽힌다. 작가 제수알도 부팔리노는 1981년 환갑이 넘은 나이에 첫 소설을 발표했지만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의 문단과 매스컴에서는 그를 모라비아나 레오나르도 샤샤 같은 대가들과 같은 반열에 올려놓고 있다. 제수알도 부팔리노는 데뷔작인 '전염병 전파자의 잡다한 이야기'로 '캄피엘로 문학상' 대상을 수상하며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무명작가의 처녀작이 대상을 수상한 일은 이탈리아 문단에서 유례가 없는 사건이었다. 이어 발표하는 작품들도 여러 상을 수상하며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다. 1988년 발표한 '그날 밤의 거짓말'은 발표되자마자 각종 문학상의 후보로 올랐으며 이탈리아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스트레가 상을 수상했다. 특히 부팔리노가 후보에 오르자 "이렇게 훌륭한 작품과 경쟁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며 "우리 중 부팔리노와 경쟁할 작가는 아무도 없다"며 후보자들이 전원 자진 사퇴하여 화제가 되었다. '그날 밤의 거짓말'은 시칠리아 왕국의 외딴 섬 요새 감옥에서 다음 날이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사형수 네 명이 함께 한 마지막 하룻밤을 그리고 있다. 출신 성분 나이 직업이 각기 다른 이들 네 명은 국왕 암살 혐의라는 같은 죄목으로 참수형을 기다리고 있다. 이들은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에서 페스트의 공포를 달래기 위해 이야기를 하듯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 가장 행복하고 기억할 만한 순간 혹은 자신이 누구이며 지금 이 자리에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를 차례대로 회고해나간다. 그러나 그들의 이야기 속에는 거짓과 꿈과 회한이 뒤섞여 있으며 이 모든 것은 결국 또 다른 음모를 향하여 치밀하게 전개된다. 국왕 암살 음모에 가담한 죄로 다음날 새벽이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네 명의 사형수. 남작 인가푸 시인 살림베니 병사 아제실라오 학생 나르시스. 감옥의 사령관은 이들 네 명에게 탈출구 없는 협상을 제시한다. 한 사람이라도 음모의 배후 인물을 밀고한다면 모두를 사면해 주겠다. 그러나 모두가 거부한다면 예정대로 사형대 위로 올라가게 될 것이다. 배신이냐 죽음이냐. 그들은 이제 목숨과 정치적 신념을 건 도박을 하게 된다. 마지막 밤을 보낼 위안실로 옮겨진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사령관의 제안에 답할 네 장의 백지와 그것을 넣을 상자 그리고 그들과 함께 단두대에 올라갈 유명한 산적인 치릴로 수도사이다. "마지막 밤을 침묵하며 보낼 것이냐 아니면 얘기나 하면 보낼 것이냐?" 이들은 죽음이 페스트와 같으니 '데카메론'에서처럼 이야기를 하며 보내기로 한다. 배경이 다른 네 이야기는 결국 '국왕 암살 음모'라는 한 가지 주제로 모이는데 부팔리노는 그 속에 추리 소설적 기법과 장치를 몇 겹으로 숨겨놓고 있다. 부팔리노는 소설 곳곳에 위트와 눈속임으로 가장한 함정을 파놓고 그것을 독자로 하여금 찾아내게 만든다. 마지막 이 모든 것들이 하나로 연결되며 극적인 이중 반전이 이루어지게 된다. 한마디로 '그날 밤의 거짓말'은 추리 소설적 기법을 차용한 지적 유희 소설이며 미스터리와 심리적인 관찰력이 담긴 매혹적인 소설이다.
2008.09.15. 1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