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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리뷰] '가까운 사람을 잃었을 때' 선비들은···

Los Angeles

2008.10.06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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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담꽃도 숨고 계수나무 향기도 사라져/삼십 년 세월이 순식간처럼 바빴구나/ 이 늙은이만 홀로 남아 신세가 고단한데/ 봄밤에 잠들지도 못하고 텅빈 집에 누웠네."

옛 사람들의 눈물:
조선의 만시 이야기
전송열 지음, 글항아리, 400쪽


언뜻 보면 나이 들어 홀로된 노인이 자신의 외로움을 그린 평범한 시(詩)로 여길 수도 있겠다.

이 시에 특별한 사연이 있음을 암시하는 '삼십 년 세월이 순식간처럼 바빴구나'라는 구절만 아니라면. 이것은 조선 영조 때 대제학과 판서를 지낸 이덕수(1673~1744)가 아들의 죽음을 애통해 하며 쓴 시다.

60세의 나이에 30세의 아들을 먼저 앞세웠으니 그 슬픔을 어찌 다 말로 표현하랴. 사랑하는 아들을 잃고 잠못 이루는 아비의 허망한 마음과 극심한 외로움이 구절 구절에 눈물처럼 맺혀 있다.

이처럼 누군가의 죽음을 애도하며 쓴 시를 '만시(挽詩)'라 한다. 조선시대 사대부가에서는 가까운 사람이 이생을 떠났을 때 그에 대한 글을 남기는 것이 예의였다고 한다.

지난 20여 년간 조선의 시문학을 전공한 저자는 조선의 만시 중에서 문학적으로 빛나는 작품 35편을 소개하고 역사적 유래와 미학적 특징까지 분석하고 있다.

"문을 들어서려다 다시 나와서/고개 들어 바쁘게 두리번 거리네/ 남쪽 언덕엔 산 살구꽃이 피었고/ 서쪽 물가엔 해오라비 대여섯."

팔십 평생을 살면서 처와 3남1녀의 자식을 모두 생전에 잃은 이양연(1771~1856)이 둘째 아들을 떠나보내고 쓴 이 시엔 '슬픔'이나 '눈물' '아픔' 등의 시어는 없다.

대신 자신의 슬픔을 담담하게 보여줄 뿐이다.

슬픔을 피하기 위해 딴전을 피우며 애써 눈물을 삼키는 심정을 그린 이 시를 가리켜 저자는 "슬픔을 철저히 내면화한" 작품으로 꼽았다.

"뉘라서 월모에게 하소연하여/서로가 내세에 바꿔 태어나/천 리에 나 죽고 그대 살아서/이 마음 이 설움 알게 했으면"(추사가 유배지에서 아내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 "곱던 모습 희미하게 보일 듯 사라지고/깨어보니 등불만이 외롭게 타고 있어라/가을비가 내 잠을 깨울 줄 알았더라면/창 앞에다 오동나무 심지도 않았을텐데"(이서우가 꿈 속에서 아내를 만나고).

만시는 본질적으로 '눈물의 시'다.

그러나 그 눈물이야말로 누군가를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하고 그리워 했다는 징표다.

그래서일까. 저자가 소개하는 '눈물의 시'를 따라가 만나게 되는 것은 '죽음'이 아니다. 가족과 친구 선배 스승과 어울려 사랑하며 살았던 사람들의 삶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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